[한자 이야기]<595>子謂子産하되 有君子之道四焉이니…
‘논어’ 公冶長(공야장)편의 이 장에서 공자는 鄭(정)나라 명신 公孫僑(공손교)의 인격과 정치력을 높이 평가했다. 공손교의 字(자)가 子産(자산)이다. 국정을 맡은 지 3년에 큰 공적을 이루었다고 한다. 공자가 서른일 때 죽었다.
子(자)는 선생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공자를 가리킨다. 일컬을 謂(위)는 어떤 사람을 논평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君子之道(군자지도)는 군자로서의 도리란 뜻이다. 焉(언)은 단정의 어조를 지닌 종결사다. 行己(행기)는 자기 몸을 지킴이니, 곧 세상에서의 處身(처신)을 말한다. 也(야)는 문장의 중간에서는 어떤 사실을 주제로서 거론하는 기능을 하며, ‘∼로 말하면’의 뜻을 갖는다. 흔히 ‘∼은’으로 풀이한다. 事上(사상)은 윗사람을 섬겨 그를 위해 일함을 말한다. 恭(공)은 謙遜(겸손)이고 敬(경)은 謹恪(근각·삼감)이다. 둘을 합하여 恭敬이라고 쓴다. 養民(양민)은 백성을 보살펴 잘살 수 있게 만듦을 말한다. 使民(사민)은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거나 백성을 노동에 동원함을 말한다. 惠(혜)는 이익을 베풂을 뜻하고 義(의)는 적절히 함을 뜻한다.
이 장에서는 군자의 도리로 恭, 敬, 惠, 義의 넷을 들었다. 선인들은 자기를 완성하면서 또한 백성들도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다. 자기의 완성을 成己(성기)라 하고 백성의 완성을 成物(성물)이라고 한다. 恭과 敬은 成己의 덕목이고 惠와 義는 成物의 덕목이다. 使民은 현대에 맞지 않지만, 成己와 成物의 정신은 현대 정치의 근본이념과 통하는 면이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자 이야기]<596>季文子가 三思而後行하더니 子聞之하고…

季文子가 三思而後行하더니 子聞之하고 曰, 再斯可矣라 하다
‘논어’ 公冶長(공야장)편의 이 장에서 공자는 優柔不斷(우유부단)을 경계하였다. 季文子는 魯(노)나라 대부로 이름은 行父(행보, 행부가 아님)이다. 文子는 죽은 뒤에 조정에서 내린 諡號(시호)이다. 높은 벼슬로 있으면서 사사로이 재물을 쌓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思慮(사려)가 깊어서 정치를 잘 했다고는 할 수 없다.
三思(삼사)는 여러 번 거듭거듭 생각한다는 뜻이다. 而後(이후)는 ‘∼한 뒤’라는 뜻으로, 以後라고 적어도 좋다. 선생을 뜻하는 子는 여기서는 공자를 가리킨다. 之(지)는 앞에 나온 전체 말을 가리킨다. 曰(왈)은 말씀한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흔히 ‘가라사대’라고 풀이했다. 再斯可矣(재사가의)의 再는 꼭 두 번이란 뜻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는 말고 적당하게 거듭’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斯는 ‘이에’로 풀이하는데, 則(즉)과 쓰임이 같다. 可(가)는 ‘옳다, 좋다’는 말이다. 矣(의)는 문장 끝에 오면 단정의 어조를 나타낸다.
이 장에 대해 주자(주희)는 善行을 하는 사람이라도 서너 번 생각하다 보면 사사로운 마음이 일어나 헷갈리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명나라 말의 李贄(이지)는 주자를 비판했다. 계문자는 대부의 병사를 몰아다가 齊(제)나라를 공격한다든가 노나라에 弑逆(시역)이 일어났을 때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에 따르면 공자는 “계문자가 멋대로 군사를 일으킨 일과 역적에게 붙은 일을 보면 두 번 생각도 하지 못했거늘 어찌 세 번 생각한 뒤 실행한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셈이다. 정약용은 이지의 설에 동조했다. 어느 풀이를 따르든, 思慮(사려)의 지나친 綿密(면밀)함보다 실천의 果斷(과단)을 중시했다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