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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고흥 70코스 제1부
백석마을-동적마을 입구-대곡삼거리-오마방조제-한센인추모공원
20220511
1.보리피리 불며, 한센인들의 한(恨)과 원(願)
남파랑길 69코스를 마치고 백석마을 복지회관 앞 쉼터정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한다. 남파랑길 70코스, 지도를 보며 미지의 길을 미리 학습해도 그 미지의 길을 걸으면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만나게 된다. 매곡리 백석마을 앞 간척지는 예전에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이 염전에서 흰 소금을 100석 이상 생산하여 '흰 소금이 많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백석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염전을 1979년에 방조제를 쌓고 매립하여 이제는 넓은 간척지 농토가 되었다.
백석마을 앞 드넓은 간척지를 보고 천마로를 따라 고개를 넘으면 매곡삼거리, 오마 제1호 방조제가 나타난다. 오마방조제는 세 개의 방조제를 이르는데, 제1호는 풍양면 매곡리 풍남반도와 도덕면 오마리 오동도를 연결하고, 제2호 방조제는 오동도와 오마도를 연결하며, 제3호 방조제는 도덕면 오마리 오마도와 도양읍 봉암리 봉암반도를 연결한다.
오마 간척지 조성사업은 보사부 주관하에 소록도 음성나환자들의 정착목적으로 1962년 6월 1일자로 정부로부터 사업인가를 받아 시작되었다. 당시 소록도병원 조창원 원장이 주도하여 소록도 원생을 주체로 방조제 축조를 위한 '오마도 개척단'을 창설하여 1962년 7월 10일부터 1964년 5월 25일까지 방조제 축조공사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정치권과 지역주민들이 한센인들의 간척지 정착을 반대하여 결국 오마도 개척단은 방조제 공사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방조제 사업은 전라남도에서 완공하였고, 간척지 조성사업은 농림부로부터 매립허가를 받아 고흥군에서 1988년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간척지는 누구에게 소유되었는가? 공사를 56.7%나 수행한 한센인들에게 어떠한 혜택이 돌아갔는가. 한센인들의 간척지를 강탈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센인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드넓은 간척지를 파랑새처럼 날아간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한하운(1920~1975)의 '보리피리'(1955) 전문
오마 제2호 방조제를 건너 은전마을 뒤 나즈막한 산길을 걸으면, 박치기 레슬러 김일 선수의 고향 거금도가 맞은편 가까이서 손짓한다. 거금도의 명산이면서 고흥을 대표하는 적대봉이 우뚝 솟아 다도해를 내려보고 있다. 그 산길에서는 거금도와 소록도를 이어주는 거금대교가 보이고, 남파랑길 70코스의 종점이 그 아래에 있는 비봉산이 늠름하게 솟아있는 모습도 보인다.
은전길 산길에는 바다를 자기네 마당으로 끌어들인 두 채의 아름다운 주택이 있다. 여인 둘이서 뜰을 손질하고 있다. 자매가 맞나요? 네. 수줍은 듯 여인이 대답한다. 자매가 이곳에 함께 거주할 계획을 세워 남편들을 설득하여 주택을 지었을 것이다. 울타리가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집 마당은 남해 바다를 끌어들이고 있다. 마당이 열리고, 바다가 열려서,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 열린 공간의 평화가 밀려온다. 그 마당에 아름다운 꽃들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생활환경의 겉면만으로 판단하는 게 옳지 않지만, 이 풍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삶의 내면이 풍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반한 것인가? 아니면 집 장사를 하는 것일까? 그 옆에 집 두 채를 신축공사하고 있다.
은전길 산길을 내려가면 오마간척 한센인추모공원이 있다. 문둥병 환자, 치료가 되어 음성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도 받아주지 않아 다시 소록도로 되돌아온 한센인들, 그들의 꿈과 희망은 정착이다. 그 정착지를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방조제 공사를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땅을 강탈당하게 되는 이중의 고통을 당했다. 그들을 추모하는 공원에 한센이들의 공사하는 모습의 조형물과 그 뒤 벽면에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와 개척단 부단장 김형주의 글 '아으 슬프도다!'가 새겨져 있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문둥이가 되어서, 떨어져 나가는 살 한 점 한 점을 땅에 묻으며 소록도에 왔다. 소록도에서 치료되어 고향으로 되돌아가며 땅에 묻은 살 한 점 한 점을 다시 찾아보았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오마도 간척사업 당시의 작업도구와 방법으로 한센인들의 힘겨웠던 공사현장을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현장체험장을 거쳐 오마간척 한센인추모공원 출입구로 내려오면, 오마 제3호 방조제가 길게 뻗어 있고, 그 오른쪽에 간척지 농토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만약 음성 한센인들에게 정착의 기회를 주었다면 저곳이 그들의 생활터전이 되어 있었을 것인데, 그들은 정착지를 잃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고흥군에서는 이러한 아픔을 치유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관광지로서 개발하려고 한 것인지 방조제와 간척지가 보이는 언덕에 한센인 추모공원을 세워 우리 모두가 그들의 고통과 恨을 공감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오마 제3호 방조제 입구에 오마간척지 현황을 알리는 안내판과 오마간척사건을 소설화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 소설 작품에서 한센인의 아픔을 토로한 인용문을 적어 놓았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한하운(1920~1975)의 '전라도 길 - 소록도 가는 길' 전문
2부로 이어짐
2.걸은 과정
왼쪽 뒤에 천등산과 칼바위 능선이 조망된다.
매곡리(梅谷里) 백석(白石)마을 앞에 염전이 많이 있어 옛날 흰 소금이 100석 이상 생산하였으므로 흰 소금이 많다는 뜻에서 백석이라 하였으며 그 후 1979년에 앞바다를 매립해서 간척지가 농토화 되었다.(고흥군청)
앞쪽에 백석방조제가 보인다. 이 간척지는 예전에 염전이었다고 한다.
동적(洞笛)마을은 본래 매곡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 앞에 장고치라는 고개가 있고 바로 그 아래 점대(笛)처럼 생긴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 되었으므로 점대형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동적(洞笛)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천등산 오른쪽 산봉은 딸각산(월각산)이다.
오른쪽 섬은 오동도, 오마간척사업은 오동도를 중심에 두고 방조제를 건설하였다.
건너편에 보이는 마을은 매곡마을이다. 앞의 도로는 유자로라고 명명된다.
오른쪽 뒤에 뾰족한 산봉이 비봉산으로 70코스 종점은 비봉산 아래에 있다.
풍양면(豊陽面) 매곡리(梅谷里) 매곡(梅谷)마을은 삼면이 바다로 접하여 모래로 둘려 있어 당시 ‘모래추’라 칭하였는데, 어느날 풍수 한 분이 뒷산을 오르다 마을을 내려다 보니 삼면은 백사장이고 마을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어 구름 위에 학이 나는 듯한 아름다운 경치에 감복하여 마을로 내려와 마을 이름을 다음과 같이 부르라 하여 매화 매(梅), 골 곡(谷)자로 개명했다. 이 꽃가루가 떨어진 곳이 불무섬에 떨어져 꽃가루 분 매화 매로 개칭 현 도덕면 오마리 분매마을이다.(고흥군청)
오마 제1호 방조제는 풍양면 매곡리 풍남반도와 도덕면 오마리 오동도 사이를 가로막은 방조제이다. 건너편 섬이 오동도이다. 옛 방식의 고기잡이 설치물들이 보인다.
금계국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저 멀리 끝에 나로도가 있을 것이다.
천마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식품판매업체 '바다랑해초랑' 건물 앞을 거쳐 매곡삼거리에서 오마 2교를 건너 오마 제1호 방조제로 올라와 이곳으로 왔다. 풍양면 매곡리에서 도덕면 오마리로 넘어왔다.
오마1교를 건너 오동도로 들어와 뒤돌아 보았다. 갈대습지와 건너편의 매곡마을이 보인다.
왼쪽 오동도의 멍이섬 음식점이 있다. 천마로에 후박나무 가로수들이 즐비하다. 오마 제2방조제를 향한다.
오마 제2호 방조제는 오동도와 오마도를 가로막은 방조제이다. 건너편이 오마도이다.
오른쪽에 도덕면 오마리의 오마도가 길게 바다로 나와 있다.
오마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고흥군 금산면에 속하였으며, 본래 오마도와 여러섬으로 구성되었으나 풍양면과 도덕면으로 분리되어 조선 후기에 오십도, 영조 때 흥양지에는 오질마도라 하여 현 남쪽 20리에 있고 주위가 10리이며 조수가 나가면 육지와 이어진다고 하였다. 오마도라는 명칭은 옛 오질마도가 바뀐 것이다. 오마(봉도)는 오마리의 주된 섬으로서 섬의 모양이 봉과 같아서 일명 봉도라고도 부른다.(고흥군청)
왼쪽에 오동도, 오른쪽에 오마도, 건너편은 고금도, 그리고 저 멀리 나로도가 있을 것이다.
중앙 왼쪽 뒤에 천등산이 보인다. 앞의 오동도를 중심으로 왼쪽에 오마 제1호 방조제, 앞에 오마 제2호 방조제가 있다.
멀리 왼쪽 끝에 천등산, 왼쪽에 오마 제1호 방조제, 오른쪽에 오마 제2호 방조제가 모두 보인다.
천마로에서 오른쪽 농로로 진행한다.
종점까지 9.5km가 남았다.
축사 왼쪽에 태양광발전시설 집열판들이 설치되어 있다. 왼쪽으로 돌아 정면의 산길로 들어가 진행한다.
왼쪽으로 돌아서 오른쪽 산길로 진행한다.
멀리 천등산과 칼바위 능선, 그 오른쪽에 딸각산이 보인다.
맨 뒤에 천등산과 딸각산이 보인다. 바로 아래 고개 하동 정씨 묘지에서 이곳으로 올라왔다.
아래는 은전마을, 바다 건너는 거금도 적대봉
은전(움밭굼)은 오마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움밭굼이라 부르다가 같은 뜻의 음점과 은전으로 바뀌었다.(고흥군청)
중앙 뒤쪽에 소록도, 그 왼쪽에 거금대교, 오른쪽에 비봉산이 우뚝하다. 앞의 작은 섬은 만제도이다.
왼쪽에 거금도와 적대봉, 오른쪽에 거금대교, 그 오른쪽에 소록도, 오른쪽 앞 작은 섬은 만제도
석류 체험&치유농장인 'Farm&Builder' 입구를 거쳐 묘지와 아담한 농가를 지나간다.
주택 2채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태양광발전시설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에 도덕면 오마리 오마도와 도양읍 봉암리 봉암반도를 가로막은 오마 제3호 방조제가 길게 뻗어 있으며, 그 뒤에 비봉산이 우뚝하다. 오른쪽은 간척지 농토이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한하운(1920~1975)의 '보리피리'(1955) 전문
*'오마도 간척사업사건'이란 1962년 7월 10일부터 1964년 5월 25일까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이 자생할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남 고흥군 도양면 봉암반도와 풍양반도를 잇는 간척공사를 하던 중 정치권과 지역주민들에 의해 사업을 강탈당한 사건이다. 1964년 7월 25일 간척사업 공사권이 전남도로 이관되면서 한센인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간척사업이 끝난 뒤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1976)은 이 사건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오마 제3호 방조제가 길게 뻗어 있고, 그 오른쪽에 간척지 농토가 펼쳐져 있다. 보이는 산은 비봉산이다.
도덕면 오마리 오마도와 건너편의 도양읍 봉암리 봉암반도를 가로막은 방조제이다.
2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