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4일 전교주일 (마태28,16-20) "양적 성장을 넘어 선, 진정한 복음화을 이루기 위해"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교회는 전교주일을 통해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
신자들에게 열심히 가르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한 번쯤은 반성해봐야 할 문제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천주교에서 발표되는 ‘선교에 관한 통계’라든지 ‘선교 관련 뉴스’를 보면
대부분 너무 ‘양적(量的)인’ 면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표되는 ‘가톨릭 교세 통계’ 같은 것을 보면
신자 수, 신심단체 수, 주일학교 학생 수 등
대부분 양적(量的 통계 위주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신문 같은 걸 보더라도
전교주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사가 바로
“신자 000가 00명의 사람을 성당으로 이끌어 세례를 받게 했다.”라거나
“모 본당에서는 한꺼번에 몇백 명 세례성사를 거행해서 최고기록을 세웠다.”는
기사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통계를 통해서 신자 증가 수치를 보는 것은
분명 교회의 선교 사업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이 곧 ‘복음화’라고 생각하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양적인 성장만 추구하다 보니
지금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적 태도가
우리 교회 안에도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얘기입니다만, 당시 교구장님이 새로운 교구청 신축공사를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신자 200만 명을 모으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늘어나는 신자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새로운 사무실과 새로운 본당 건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독려를 했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성전을 신축하고, 교구마다 신학교를 지어나갔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염려를 표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런 반대의견은 힘을 쓰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부들 사이에서는 ‘성전을 새로 짓는 일’이
하나의 통과의례나 과업처럼 인식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중에 특히 국가 보조금을 얻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러 의료시설이나 복지시설을 확장하면서
교구가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다소 비판적 시각일 수도 있는데,
일선 사목 현장에서 직접 느껴지는 것은
무리하게 성전을 건축하다 보면
돈 있는 신자들을 독려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그들을 두둔할 수밖에 없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자칫 가난한 사람들은 성전 밖으로 밀려나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밀려난 자리에 부자들이 들어오는 이런 현상을 일컬어
어느 칼럼니스트는 ‘영적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국가나 정부기관은
교회 비즈니스의 최대 파트너가 되면서
교회 고유의 향기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중매(雪中梅),
차가운 눈 속에 피어있는 매화는 매서운 추위에 떨지언정
품위를 잃지 않고 함부로 자기 향기를 팔지 않고
꼿꼿하게 향기를 간직한다고 합니다.
향기를 잃은 매화나 ‘영적 젠트리피케이션’이나
모든 단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숫자로 판정하는
‘성장제일주의’나 ‘개발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는 ‘기쁨과 희망,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나누고자 했던
공의회 정신은 ‘교회의 양적 성장’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의 비율은 17년 전, 2004년 에는 약 54%였지만
2021년엔 약 40%로 줄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난 종교가 없다”는 사람들 100명당 61명은
“아예 호감이 가는 종교조차 없다”고 했는데
이는 2004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그뿐 아니라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기대도
비종교인의 82%는
‘종교가 사회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각 종교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고민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