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오 동숙은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 한 채,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농촌에서 성장한 탓으로 순박하고, 순진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착하고, 착한 처녀였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가발공장 최고의 미녀! 정의의 여신! 오 동숙.
그녀는 공장의 여공(생산직사원)들이 믿고 의지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시골 부모님에게 돈을 내려 보냈다.
그리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 그 수당으로 은행 적금을 꾸준히 부은
그녀는 희망에 삶을 살아간다.
아버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한마디로 억척이다.
가난이 무슨 죄인지..........동생들 학비와 가사에 보탬이 되라고...
그러기를 십 여년, 이제 시골집 생활이 나아졌다.
문득 자신을 뒤 돌아 보았으나, 그녀는 이미 서른이 가까운 노처녀 나이로
지나간 세월이 너무도 아쉬웠다.
요즈음은 여자 나이 서른에 결혼이 허다하나,
그 때는 여자가 25세를 넘기면 올드미스라고 했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검정고시 준비를 한다.
대학교에 들어가 글을 쓰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중앙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해 중학교 졸업자격을 얻는다.
그러던 그에게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났다.
학원에서 잘 생긴 총각 ‘박 선생’님을 사모하게 된다.
동숙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역시 그녀에게 접근,
둘은 이내 남의 눈을 피해 데이트를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박 선생’의 자취방까지 찾아가
밥도 해주고, 옷도 빨아주며 행복을 느낀다.
첫 사랑에 눈이 뒤 집혀진 그녀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오직 ‘박 선생’ 뿐 이다.
옛날 말에 첫 사랑에 미쳐 버리면 “백인 보다 흑인이 더 좋아 보이고,
째보가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둘은 장래를 약속하며 몸과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다.
처녀가 넘어서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어 버린 것 이다.
이제 동숙은 ‘박 선생’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견디게 되었다.
그렇게 둘만의 만남이 잦아지던 어느 날,.........
‘박 선생’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숙 이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쓰러져 급전이 필요하다”고 고민 섞인 한 숨을 늘어놓았다.
이에 상심한 동숙은 아버지 수술비 마련을 위해
몇 년간을 부은 적금통장을 한 번만 부으면 만기가 되는 것을 해약 하고,
그 돈을 ‘박 선생’에게 건넸다.
순진한 동숙은 몸과 마음, 재물까지 가지고 있는 것 몽땅 털어서
‘박 선생’에게 갖다 바치게 된 것이다.
사랑에 미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듯이.......
그야말로 완전히 이성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경제의 환경변화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자
가발공장은 악화일로를 치닫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가발공장들은 부도가 속출하고, 전자산업에 밀려서
더 이상 운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열심히 일해서 다시 돈을 모으겠다고 작심한 동숙이었지만,
다니는 공장도 경영악화로 폐쇄조치 되어 직장을 잃어 충격에 빠진다.
이리하여 동숙은 생활이 어렵게 되고,
시골집에 돈을 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학원비조차도 없어 학원에도 나가지 못하는 불쌍한 처지가 된다.
순진한 동숙이의 마음 속 ‘희망 탑’의 ‘직업의 기둥’이 쓰러진 것이다.
할 수 없이 부모님 도움을 받으려고 시골에 내려온다.
공부하겠다고 돈을 요구했으나,
부모님은 “야아~ 공부는 무신 공부냐? 여기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
씰데 없는 소리 고마해라.”
그녀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울면서 서울로 돌아온다.
어떻게 만난 내 사랑인데 하며, 동숙은 ‘박 선생’이 필요했고,
어렵게 친구에 돈을 빌려 두 달 만에 학원에 등록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들리는 얼음장 같은 싸늘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박 선생, 그가 약혼자도 있고 이번에 결혼 한다더라.
순전히 너그를 등쳐먹은 기라. 가시나야.......”
동숙은 설마, 그럴 이가 있겠는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고,
그를 만나서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동숙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박 선생’ 집을 찾아갔지만......,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게 된다.
그는 “그까지 돈 때문에 내 발목 잡지 마라”라며,
동숙을 싸늘하게 대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마음 속 ‘희망 탑’의 ‘사랑의 기둥’이 크게 흔들거렸다.
그리고는 “너와 난 학생과 제자야. 내가 어떻게.....
니가 좋아서 날 따라 다녔지. 고등학교 검정고시나 잘 보라구.....”
라며 쏘아 붙인 뒤
“충고하나 하겠는데, 이렇게 남의 집에 불쑥 들이닥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동숙을 문전박대 했다.
그녀의 마음 속 ‘사랑의 기둥’이 크게 요동치며 쓰러지자.
십 여년간 애써 쌓아 올린 ‘희망 탑’이 순식간에 와르르 와르르 무너졌다.
‘사랑’이 조각조각 깨어지고 있었다.
조각난 ‘사랑’이 수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흔적도 없이 다 부서지고 말았다.
‘돈’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멀리 멀리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흔적도 없이 다 날아가 버렸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동숙은 “내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라고
통한의 눈물을 뿌리고, 뿌리며........
“알았 씸더 예...........”
더 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땅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내 사랑............” “어떻게 해 벌인 돈인데...........”라며
수없이 고민을 한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했어 사무친 미움”
‘양’ 같이 순한 동숙은 이미 농락당한 여자임을 알게 되자.
악랄한 ‘여우’처럼 변해 간다.
그리하여 동숙의 가슴에 ‘복수의 불씨’가 잉태하기 시작 했다.
동생들과 부모님에게 희생만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며, 돈 다 날리고,
그렇게 살아온 동숙은.....“어차피 내 인생 이런 거야” 하며 비관을 한다.
‘여우’처럼 변한 그녀는 동대문 시장에서 비수의 칼을 사서
가슴에 품고 학원에 온다.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이미 동숙의 가슴에 ‘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고 있었는데......
그리고 다음 날 수업시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동숙은 ‘박 선생’이 칠판에 필기를 하고
막 돌아서려는 찰나,
‘여우’가 덮치듯, 그를 향해 몸을 날린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 복수의 비수를 꽂는다.
“야, 이! 나쁜 놈....................” 상상치도 않는 순간적인 일이다.
“아~악~......” 비명 소리가 교실을 뒤 흔들고......
두 사람은 바닥에 나둥그러져, 널브러진다.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동숙의 가슴에 활활 타던 ‘복수의 불길’은 사그라지고...
학생들과 선생들이 달려오고...........
결국 동숙은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악랄한 ‘여우’같은 동숙은 순진한 ‘양’처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동숙은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내면서......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때는 늦~으리.”
“우째 됐어예? 잘 못했어요. 형사님! 선생님만 살려주세요.”
자신을 탓하면서 ‘박 선생’ 안부를 더 걱정하지만,
동숙은 결국 살인 미수죄로 복역을 하게 된다.
가난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가 뒤늦게 얻은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살인미수라는 비극으로 마무리한다.
그리하여 그녀를 모델로 ‘영화’와 ‘동숙의 노래’도 만들어 졌다.
한산도 선생이 이 사연을 노랫말로, 백영호 선생이 작곡을 했다.
2011. 9. 4.
오 일 육
첫댓글 TV에서 한번쯤은 본듯한, 책에서도 읽은듯한..... 그런데 이렇게 적어놓으신 글을 읽으니 참 재미있습니다. 글솜씨가 정말 최고세요~~^^* 언제나 연화마을을 아껴주시고 관심갖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말이라 잠시 틈내어 들러보았더니 어렇게 재밌는 글이 있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지은수.
쥔장님, 바쁘신데도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 주신데 대하여 감사할 따름 입니다. 저의 어머님이 건강하게 잘 계셔서 연화마을 직원들의 노고에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