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칼럼 72] 백향목이 아니라 겨자씨
사람들은 크고 높고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우뚝 솟은 것을 바라봅니다. 많은 것을 이루고, 큰 영향력을 가지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삶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시대의 백향목도 그러한 상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백향목은 크고 웅장했으며 귀한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백향목은 힘과 영광, 위엄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어쩌면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하나님 나라도 백향목과 같았을 것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다시 강한 나라를 세우며 세상 앞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백향목이 아니라 겨자씨에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마가복음 4장 31~32절)
겨자씨는 작습니다. 너무 작아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도 않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겨자씨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주목하는 크고 강한 것으로 시작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은 믿음으로, 작은 순종으로, 한 사람의 기도로, 이름 없이 드려지는 섬김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거대한 종교 권력과 로마 제국의 위세 앞에서 너무나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작은 사람들 안에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심으셨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백향목이 되고 싶어 합니다.
더 커지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싶습니다. 교회도 크면 좋겠고, 우리의 삶도 사람들의 눈에 성공적으로 보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묻지 않으십니다.
“너는 얼마나 커졌느냐?”
오히려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네 안에 생명이 있느냐?”
겨자씨는 작지만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씨앗은 자랍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처럼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가 세상의 기준으로는 작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면 결코 작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겨자씨는 자라 큰 가지를 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가지에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목적은 단순히 더 높아지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큰 인생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크기를 보여 줍니다.
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아서만 큰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친 사람이 찾아와 쉴 수 있고, 상처받은 사람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이 따뜻하게 품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곳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큰 나무가 자라고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백향목처럼 높아지는 것을 꿈꾸지만, 예수님은 겨자씨처럼 살아 있기를 원하십니다.
작아도 생명이 있으면 자랍니다.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나님께서 심으신 생명이 있으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늘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작음을 아쉬워하지 맙시다. 지금 작다는 것이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작은 곳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향목처럼 높아지는 것을 꿈꾸기보다, 겨자씨처럼 생명을 품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실 때, 더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깃들고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백향목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에서 시작하여 작은 영혼들을 품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은 얼마나 크게 보이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작지만 살아 있는 생명이 자라 결국 다른 사람을 품어 주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백향목이 아니라 겨자씨가 되라.
작아도 좋습니다. 다만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자라 언젠가 누군가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그늘 아래에서 쉼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