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안전한 미래를 현실로 끌어오는 일
겨울 숙지원 소식
벌써 가을걷이는 끝났다.
찾아온 친지들과 나누었음에도 고구마는 우리 가족의 겨울나기에 걱정 없고, 무는 작년에 비해 크기가 잘지만 한 겨울 우리 가족의 반찬거리로는 충분하다고 한다. 흉작이라는 팥도 아내가 좋아하는 팥죽을 쑤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니 가을걷이는 그런대로 실패는 아닌 듯 싶다.
(숙지원 비닐하우스.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다.)
그렇다고 텃밭 농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마늘밭을 매주는 일은 아내의 몫이지만 비닐하우스안에 퇴비를 뿌려 흙을 뒤집고 이랑을 내는 일은 나의 몫이다. 더구나 지난 겨울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에 잘 자라던 상추를 잃은 터라 올해는 그런 실수를 사전에 막기 위해 비닐 터널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종 쑥갓, 상추, 케일 등 각종 채소를 심었다.
이제 그것들이 잘 자라도록 지켜내기 위해 아내와 나는 주말이면 여전히 숙지원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방심했다가는 겨울철 신선한 채소를 우리의 밥상에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꽃밭의 이랑을 정비하고 종류별로 심을 꽃밭을 만들고 튜립 등 알뿌리를 심는 일도 이 시기에 할 일이다.
이어 유실수에 퇴비주기, 가지치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내년 농사지을 텃밭을 구획하는 일도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오는 길에 상추 몇 잎 뜯고 풋마늘 한 주먹 뽑아 오는 것이 전부지만, 눈이 오는 날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숯불에 고구마를 구어먹는 재미를 덤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숙지원의 동쪽길. 철쭉과 자두나무가 어우러진 길이다. 붉게 물든 철쭉 잎이 꽃처럼 보인다.)
겨울 숙지원.
텃밭 한쪽에는 완두콩과 마늘, 양파, 시금치가 찬바람에도 씩씩하고, 꽃밭에는 꽃양귀비와 샤스타데이지가 서리 내린 땅을 파랗게 덮고 있다. 형체를 잃은 꽃들의 넋이 땅 속에서 그리움과 희망을 키우는 곳.
겨울은 텃밭 농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졸린 듯한 눈으로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눈이 시리게 맑았던 봄날의 자두꽃, 한 여름의 녹음, 가을의 낙옆을 꿈꾸는 계절이다.
나무에게는 추위와 싸워야하는 인고의 계절, 씨앗으로 땅속에 숨은 꽃들에게는 기다림의 계절이다.
가급적 희귀한 수종보다는 지역의 기후와 토양을 고려하여 나무를 골라 심고 지형은 인위적으로 훼손하지 않으려 했다. 꽃을 심되 요즘 유행을 따르지 않으려 했고 가급적 아내의 추억에 남은 꽃을 심으려 했다.
텃밭에는 돈이 되는 특별한 먹을거리보다 채소 한 가지라도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작물,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작물을 골라 심었다.
숙지원을 마음의 짐을 부려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아마 내년에도 그런 원칙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즘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말이면 숙지원을 찾는 부부도 심심치 않다.
귀촌을 망설이는 분들, 특히 여성분들에게 팔을 걷어 부치기를 권한다.
거창하게 농촌의 미래가 여성의 손에 달렸다고 하지 않는다.
꽃향기 감미롭고 솔바람에 새소리도 정겨운 곳이라는 말이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들먹이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시대에 긴 노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로 꼬드기지 않는다.
(비닐 하우스 안의 배추밭에 계절을 잊은 메뚜기가 보였다.)
연평도 포격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만약 전쟁이 터져 발전소 몇 곳만 피해를 입는다면 어떻게 될까?
고층 아파트는 부서지지 않아도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공간이 될 것이다.
거기에 통신 시설이라도 피격당하는 말이면 지갑 속의 카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밖의 피해를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랴!
이 땅 어디를 간들 전쟁 불안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으랴만 도시에 비해 농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다.
앞으로 텃밭 농사하는 농민의 감소로 채소, 과일 등 가격 상승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때문에 채소만이라도 가꾸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면 그건 또 다른 행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촌이란 결코 작은 평화, 작은 희망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
안전한 미래를 현실로 끌어오는 일이다. 2010.12.5.
첫댓글 선생님, 숙지원의 겨울풍경이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겨울철을 잊은 듯 의외로 겨울에도 할 일이 많군요. ^^ 건강은 어떠신지요?
저도 작년 겨울~년초까지는 당장에라도 귀농할 것 같이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몇년 후로 미루었습니다. --;;
대신에 귀농을 대비해서 내년엔 텃밭을 임대해서 주말농사라도 지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귀촌이 힘드리라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후에 귀촌 하겠다는 말은 헛된 약속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적어도 50대 초반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농촌이라고 겨울철에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급자족 정도라면 일이라기 보다는 놀이라고 하겠지요. 염려 덕분에 건강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