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 18:41-46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무용담 속 17대1도 아니었고, TV에서 본 1대100도 아닙니다. 적어도 1대450, 많게는 1대850의 대결에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보다 넓은 차원에선 한 방랑 선지자와 한 절대 군주의 결투에서 전자가 이겼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승리보다 어쩌면 더 극적인 승부였습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살펴 온 열왕기상 18장은 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건 중 하나를 다룹니다. 바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펼친 전투입니다. 이때 엘리야는 450명이나 되는 바알 선지자들의 목을 쳤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 누구도 토를 달거나 불복할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한편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두 신의 대리전이기도 했던 이 전투는 비단 각 진영 대표만 모인 자리에서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갈멜산 기슭에서, 많은 백성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싸웠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압도적 승리를 본 사람들은 그동안 두 신 사이 갈팡질팡했던 마음을 하나로 확실히 정하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열왕기상 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아마 이때 이들의 외침은 모인 그곳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산 전체에 메아리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절정은 아직입니다. 왜냐하면, 남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전율이 채 가시기 전, 모인 많은 이 중 이 사실을 아는 단 한 사람이 움직입니다.
아합에게 명령하는 엘리야(41-42a절)
(41-42a)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성경 기자가 주목한 건 엘리야의 입입니다. 여기서 오직 엘리야만 하나님이 하실 일이 이게 끝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입을 연 엘리야의 말은 연속된 세 개의 명령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했다. 올라가라! 먹어라! 그리고 마셔라!” 엘리야는 아합에게 권위를 갖추고 명령했고 아합은 군말 없이 순종합니다. 여전히 많은 백성이 보는 앞에서도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은 엘리야가 아합에게 명령한 뒤 덧붙인 한 마디가 알려줍니다. ‘큰 비 소리가 있다.’ 바로 이 말이 지금 엘리야에게 깃든 권위의 배경입니다.
사실 이날 하나님의 목적은 바알과 그 선지자들의 심판이 아닌 다른 일이었습니다. 바로 지난 3년간 나라에 멈춘 비를 다시 내리시는 일입니다. 3년 전 떠돌이 선지자 엘리야는 갑자기 성경 무대에 올라 아합왕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수년 동안 이스라엘에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때 하나님 의지를 대언한 그도 이 수년이 얼마나 될지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이 다시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이제 비를 내리겠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들은 이후 엘리야는 아합과 만나 앞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환호와 비명이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중 큰 비 소리를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앞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임박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합에게 권위를 갖추고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자기 뒤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아합은 무력한 피조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합은 순한 양이 되어 엘리야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엘리야가 맞은 상황 역전은 오늘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당신의 아들을 통해 승리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내가 이기었노라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합 때보다 더 험악한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의지할 권위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오늘 우리도 엘리야처럼 세상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 그리스도의 권위가 우리에게 있으니 말입니다. 그때 분명 우리가 속한 곳에 있는 아합은 꼬리를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문제 상황은 역경과 좌절의 장이 아닌 승리를 경험하는 영광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시는 모든 교우님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후 어느새 고분고분해진 아합이 자리를 뜨자 엘리야도 다시 움직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엘리야(42b-45절)
(42b)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엘리야는 갈멜산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땅에 꿇어 엎드린 채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무슨 행동을 한 건지 성경은 정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다수의 해석을 따라 그가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그의 편지에서 엘리야의 행동을 이렇게 주석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하나님께 비 내려 주시길 구했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을 의심해서 기도한 게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기를 겸손히 요청했습니다. 엘리야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에스겔 36:37,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족속을 시켜서 내게 도움을 간청하게 하겠고, 그들의 인구를 양 떼처럼 불어나게 하겠다.
하나님은 자신이 일을 계획하고 정하셨더라도, 준비한 은혜를 주시기 전 우리가 당신께 아뢰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자기 신앙을 자랑하고 증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견지에서 기도자는 응당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의지를 갖고 계시면서도 수혜자가 기도하기를 바라는 건 생색내시려는 게 아닙니다. 기도해야만,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누가 하는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만, 일어나는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해주셨구나!’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께만 매달리며 살게 됩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이 마음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 기도자가 자기 독생자여도 말입니다. 세상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죄인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그저 ‘다 이루었다’ 한마디만 하셨어도 예수님의 희생은 결코 그 크기나 가치가 줄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십자가 위 첫 일성으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a)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셨기에 우리는 더욱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분명 우리의 죄 용서 때문이고,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다는 것을 말입니다. 교우님들께서는 평소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 아뢰고 계십니까. 엘리야가 그런 것처럼, 또한 더 큰 엘리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신 것처럼 항상 모든 일에 기도하십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자비하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이 비를 내리 실 걸 누구보다 확신하면서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 뒤 자기를 따라온 사환에게 한 가지를 명령했습니다.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엘리야는 자신을 따라온 사환에게 바다 쪽을 바라보라고 명령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접한 해발고도 500여m의 갈멜산은 평소 바다를 건너오는 습한 공기가 구름을 만들고 비를 뿌리는 곳이었습니다. 다만 지난 3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이 현상이 이제 다시 일어나는지 엘리야는 사환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사환이 처음 바라봤을 때 바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재차 사환을 보냈습니다.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사환은 바다를 일곱 번째 바라봤을 때 비로소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들은 엘리야는 이제 기도를 멈추고 사환을 아합에게 보내 속히 마차를 타고 하산할 것을 명했습니다. 곧 있을 폭우로 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엘리야가 믿은 대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지난 3년간의 가뭄을 끝내는 단비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아합은 조금 전처럼 엘리야의 명령에 단 하나의 토도 달지 않고 그의 왕궁이 있는 이스르엘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엘리야가 특이한 행동을 보입니다.
아합과 함께 비를 맞는 엘리야(46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해 그가 아합 앞에서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합은 분명 마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즉, 엘리야는 말보다 빠르게 달려 산에서 내려갔고 약 25km 떨어진 이스르엘까지 갔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아니고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마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합에게 경고하신 것 같습니다. 불과 비만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불가능한 게 없고 부족한 게 없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다시는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기이한 행동을 통해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비록 아합이 역대 이스라엘 왕 중 가장 악한이었더라도, 하나님 은혜는 이 아합에게도 똑같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5b, 새번역)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건 세상의 심판이 아닙니다. 세상의 구원과 회복입니다. 즉, 심판은 종점이 아닌 과정입니다. 죄와의 단절은 아프고 쓰리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지나야 할 다리입니다. 그러나 그 끝에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3년간의 가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셨지만, 결국에 비를 내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이 비는 하나님 백성만이 아닌 아합에게도 내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속 좁지 않습니다. 아합도 누릴 수 있고, 오늘 우리도 누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이 사실을 엘리야가 아합과 함께 비를 맞게 하심으로 더욱 극적으로 전하셨습니다. 실제로 함께 맞는 비만큼 따뜻한 위로가 없습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건, 위로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함만 확인시켜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비를 맞는 것 만큼의 공감과 연대는 없습니다.
아합이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압니다. 우리와 함께 비를 맞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엘리야로 오신 예수님은 갈멜 산 전투보다 더 험악한 싸움, 보다 근본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기신 예수님은 결코 승자독식(勝者獨食)하지 않으셨습니다. 승자중식(勝者衆食), 승리를 모두에게 나누셨습니다. 아합처럼 악한 우리에게도 말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기억하며 흐트러진 우리 마음의 중심을 오늘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십시다. 우리에게도 큰 비를 아끼지 않고 내리실 뿐 아니라 독생자의 생명까지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우리 마음속 소원을 겸손히 아뢰고, 여전히 악한 이 세상에서 담대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십시다. 나아가, 먼저 은혜받은 자로서 그 은혜를 주변에 나누며 승자중식하십시다. 이것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대망하는 우리가 오늘 걸을 제자의 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야의 갈멜 산 전투 마지막 장면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새 아합은 말을 잃었고 바알의 흔적이 가득했던 그곳에 울리는 건 하나님 사람의 담대한 선포와 기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승리한 엘리야가 승리에 도취해 승자독식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합도 불쌍히 여기시며 그와 함께 비를 맞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은혜 입은 자임을 기억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 하루에도 수 만 번 하나님 아닌 우상에 마음을 뺏기는 우리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도 비를 내리실 뿐 아니라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아버지께 돌리게 하옵소서. 나아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도 그 은혜를 흘릴 줄 아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합이 그 어떤 대응도 할 수 없게 명령하는 엘리야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요?
2. 비를 내리겠다는 하나님의 전언을 듣고도 엘리야가 기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3. 제단에 불을 내리실 땐 신속히 응답하신 하나님이 구름을 만드실 땐 지체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4. 위대한 승리를 이후 하나님이 엘리야를 다소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모습으로 달리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성: 이종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