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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에 얽힌 애절한 사연
작가: 백화 문상희
(유튜브 낭독을 위한 단편소설 2편)
능수버들 휘휘 늘어진 어느 봄날
임금님 나들이하실 적에 행궁길 궁궐 대문 앞에
상궁과 나인들 까지 고개 숙여 도열해 있었다.
그중에서 뽀얀 얼굴에 유난히 청초해 보이는 나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 나인은 임금님의 눈에 들어 용상으로 불려 왔고
소화 나인은 용상 앞에서 임금님과 마주해 하사하신
차를 마셨다.
임금님은 소화 나인의 재주를 시험하기로 하였다.
"그래, 너는 서책 공부를 하였더냐?"
"예이~, 전하!
조부님과 아버님께 지도를 받았나이다."
"그래, 그러면 어디 그 내용을 말해보거라!"
"예이~, 전하!"
나인 소화는 논어, 사서삼경 한시까지 줄줄 외웠다.
"그래, 그러면 너는 어느 집 가문의 여식이더냐?"
소화 나인의 박식함에 깜짝 놀란 임금님은
궁금증에 집안 내력을 하문하였다.
임금님의 하문에도 소화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상왕의 집권시절 조부가 반역죄로 처단되어
멸문지화가 되었기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하 ~,
죽을죄를 졌사옵니다."
"그래,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나중에 조용히 다시 물어보겠다."
임금님은 멀찍이 서있는 김상궁을 불렀다.
"이보게, 김상궁!"
"예이 전하 ~,
하문하시옵소서!.
"나인 소화에게 빈의 첩지를 내릴 것이니
내일 당장 제반 준비를 하도록 해라!"
"예이 전하~,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이튿날 궁궐에는 난리가 났다.
중전을 비롯하여 먼저 빈의 첩지를 받은
후궁들 까지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전하~,
나인 소화는 상왕께서 집권하던 시절
이괄의 반란에 가담한 죄로 조부는 효수형에
처해졌고 멸문된 집안의 여식 이옵니다.
첩지를 거두어 주시오소서!"
중전과 빈들은 화가 복받쳐 소화 빈을 내칠 작당을 했다
나인 소화의 후궁 첩지에 반대 상소가 빗발치듯 올라왔지만
미모의 얼굴에 학식까지 두루두루 갖춘 소화에 푹 빠져버린
임금님은 대차게 밀어붙여 결국 빈의 첩지를 내렸다.
임금님은 다시 김상궁을 비밀리에 불렀다.
"김상궁!"
"예이 전하~,
"십 년 전 김상궁을 빈으로 삼으려 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지요!
그때도 중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해
결국은 내가 상궁의 자리에 않혔지요!"
"예이 전하~, 그러하옵니다!"
"이번에는 나도 내 고집대로 해야겠소이다.
그러니 김상궁이 나를 좀 도와주시구려!"
"예, 알겠사옵니다 전하!"
"첩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소화 빈을
독살할지도 모르니 기미상궁을 붙여서
감시를 하도록 해주시게!"
"예, 알겠사옵니다 전하!"
임금님은 예전에 세자가 살던 동궁을 새로 수리하여
소화 빈이 살도록 하명을 내렸다.
중전을 비롯하여 빈들의 반대 상소에 넌들이가 난
임금님은 그때부터 중전과 빈들을 더 멀리 하게 되었고
정사가 끝나고 대전을 떠나면 날마다
소화 빈의 거처로 향했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중전의 사주를 받은
반대 세력의 대신들이 대전으로 몰려와서
다시 상소를 올렸다.
"전하 ~,
소화 빈의 뒷조사를 해본 결과 소문이 사실 이옵니다.
소화 빈의 조부는 이괄의 난에 가담하여
역모죄로 효수되고 집안이 멸문하여 살아남은
자식들은 먼 친척집 양자나 양녀로 들어가서
성씨를 바꾸고 살았다 하옵니다.
이에 소화 빈 역시 대역죄인의 여식이오니
부디 혜안을 찾으시어 처신하옵소서!"
"그러사옵니다 전하~,
또한 복수를 하려고 일부러 나인으로 들어왔다는
소문도 있으니 이점, 유념하시오소서!"
중전과 한통속인 대신들의 거듭되는 상소와 반대에
임금님도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이 뜸해지고 말았다.
그 후, 임금님은 못 견디게 소화 빈이 보고 싶을 때는
내관을 시켜서 몰래 소화 빈을 임금님의
처소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설이 있듯이
그 사실이 중전의 귀에 들어가고 결국은 중전에게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아니, 중전께서 대전까지 어인일이시오?"
"전하~,대역죄인의 여식을 대전까지 들이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
중전은 임금님의 잘못을 파고들었다.
이에 임금님은 다시 부를 구실도 없어
차츰차츰 소화 빈을 멀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다 싶은 중전은 소화 빈의 처소에 들어가는
식량과 음식 재료들도 절반으로 줄이고
나인들도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나 중전도 소화 빈을 당장 내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임금님의 엄명이 있었기에 중전도
어느 정도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전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소화 빈을 살던 처소에서
쫓아내 궁궐 끝 빈방에 유폐 아닌 유폐를 시켰다.
그러나 임금님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소화 빈은 매일같이 들리던 임금님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까워 속을 태웠다.
그때부터 소화 빈은 피눈물을 삼켜가며 지내야 했다.
"그리도 예뻐하던 군주께서 이럴 리가 만무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소화 빈은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인들에게 물어보았으나 하인도 알 수가 없었다.
소화 빈은 하메나 임이 오실까 애태우다 장마철에
결국은 병으로 몸져누웠다.
또한 중전이 보낸 군졸이 사방에 지키고 있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소화 빈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그렇다고 의원을 부를 처지도 아니었다.
어느 날 소화 빈은 하인 순심이를 불러않혔다.
"순심아~!"
"예, 빈궁마마!
얼른 쾌차하셔야 제 마음도 편하답니다 마마!"
"그래, 순심아!
다른 나인은 서슬 퍼런 중전이 무서워 모두 떠났지만
순심이 네가 끝까지 나를 지켜줘서 정말 고맙구나"
"빈궁마마,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는 마음씨 고우신 빈궁마마가 처음부터
좋아서 따라왔으니 걱정하지 마시오소서!"
사실 순심이는 어릴 때 홍역을 앓아 죽다가 살아나서
체구는 작았지만 용기와 의리를 가진 하인이었다.
"순심아~,
내가 오래 살진 못할 것 같구나!
그래서 말인데 저기 보석함에 들어있는 패물을 가지고 오너라
그 패물은 임금님이 직접 나에게 주신 선물이란다.
내가 죽고 나면 보석과 패물이 무슨 소용 이겠느냐!
그 패물들을 너에게 줄 테니 잘 간수하거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보석함은 아궁이에 불태우고
패물만 따로 보관하도록 하거라!
그것은 끝까지 나를 지켜준 보답이란다!"
"아이고 빈궁마마,
소인은 빈궁마마가 좋아서 이곳에 있는 것이오니
선물은 거두어 주시오소서!"
"아니다 순심아!
내가 죽으면 저 패물은 어차피 중전이 가져갈 것
아니더냐?
다행히 임금님 께서 중전 몰래 준 것이니 걱정 말고
받도록 해라!"
"아이고 빈궁마마,
그 말씀 거두어주시고 건강부터 회복하시오소서!"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소원이 하나 있단다.
순심이 네가 좀 들어줘야겠구나!"
"말씀하시옵소서 마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사옵니다."
"그래, 순심아 고맙구나!
내가 죽어서라도 임금님을 보고 싶으니
내가 죽거든 임금님이 산책하시는 뜰앞에 나를
좀 묻어다오!"
"아이고, 빈궁마마!
그 말씀을 듣기가 망극하옵니다."
"아니다. 순심아!
내 소원을 꼭 들어줬으면 고맙겠구나!
순심이 너는 용기를 가진 명석한 사람이니
저 패물을 이용하면 충분히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빈궁마마!"
팔월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결국 소화 빈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래, 나는 어릴 때 이미 홍역에 걸려 죽었다.
다시 살아난 몸인데 두려울게 뭐 있겠는가!"
용기와 의리에다 명석함을 지닌 순심이는
대문을 지키고 있는 군졸 두 명을 안채로 불렀다.
"이봐요, 아저씨들 보소!
내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면 큰 보답을 하겠소!"
"그래 무엇인지 말해보시오!"
"사실 오늘 아침에 빈궁마마가 돌아가셨소!
"에구요,
어찌 또 그런 일이 쯔쯔쯔!
사실 우리도 중전 마마의 명예 따라 지키고는 있소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오!"
"그래서 말인데,
빈궁마마의 마지막 소원이 임금님이 산책하시는
뜰앞에 묻이는게 소원이었소!
나를 도와서 빈궁마마를 묻어주면 이 패물을
나누어 주겠소!"
"아이고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중전 마마에게 들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요!"
"아저씨들 걱정 마세요!
이 패물은 임금님이 중전 마마 몰래 주신 것이니
받으셔도 되는 것입니다."
군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비싼 패물을 받아 들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갈등에 휩싸였다.
병졸들의 갈등을 눈치챈 순심이는 결심을 하게끔
말을 이어갔다.
"그 패물을 팔면 집과 밭떼기를 사고도 남을 것이오!
평생을 벌어도 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순심이는 병졸들을 다독여 주야장천 내리는
장마철에 조심조심 뜰앞에 소화 빈을 묻었다.
꽤가 많은 순심이는 남은 패물을 이용해서
궁궐에 다른 시체를 사서 시구문 (지금의 광희문)
밖으로 내보내고 군졸들을 시켜 중전에게
보고를 하도록 일을 마무리하였다.
병으로 죽었다는 병졸들의 보고를 들은 중전은
그제야 반색을 하였다.
"그래, 소화가 죽은 것을 너희들이 분명히 보았느냐?"
"예이 ~, 중전 마마!
저희 둘이서 시체를 싫은 우마가 시구문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나이다!"
"그래, 그 말이 사실이렸다."
"예이 ~, 중전 마마!
빈께서 오랫동안 기침소리가 나더니 돌아가셨나이다."
중전은 눈엣가시였던 소화 빈이 죽었으나
임금님께는 알리지도 않고 세월이 흘러버렸다.
임금님 역시 정사에 쫏겨 소화 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소화 빈이 머물던 처소는 폐가가 되어버렸고
순심이는 남은 패물을 이용해서 대전 나인에 배속되었다.
이듬해 춘삼월이 돌아오고 임금님이 산책하시는
뜰에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러던 오월 어느 날
임금님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뜰앞을 거닐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뜰앞을 거닐던 임금님은
평시에 보지 못했던 꽃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노랑도 아닌 것이 빨강도 아닌 것이
이리도 예쁠 수가, 도대체 이 꽃은 무슨 꽃이더냐?"
상궁도 내시도 나인들도 꽃 이름을 모르기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대전 나인으로 배속된 순심이가 용기를 내어
임금님께 허리를 숙인 채 죽을 각오를 하고
소화 빈이 묻힌 사연을 말씀드렸다.
"전하~,
소인 죽음을 각오하고 감히 말씀을 올립니다.
소화 빈궁 마마께서 온갖 모함과 질투로 인해
궁궐 끝 빈방에 유폐를 당했사옵니다.
하여 빈궁마마는 임금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장마철에 몸이 쇠하여 병석에 누웠습니다.
그러던 작년 팔월에 결국은 돌아가셨고
유언으로 하신 말씀이 "내가 죽으면 임금님이
산책하시는 뜰앞에 묻어주거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에 묻어드렸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소화가 죽어서 묻힌 자리에 소화 빈이
꽃으로 환생을 했다는 말이 아니더냐?"
"그러사옵니다 전하!
임금님이 보고 싶어서 돌아가셔서도 그리움에 사무쳐
꽃으로 환생을 하였사옵니다."
"그래 그래,
내가 그리도 아끼고 사랑했던 소화 빈이,
중전과 대신들의 반대로 내가 가지를 못했더니 허~,
기어이 이렇게 죽어서 꽃으로 환생을 하였구나!
미안하구나 소화야!
내가 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구나!
내가 잘못했다 소화야~!"
임금님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다.
"소화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내가 죄인이구나!
오늘부터 이 꽃의 이름은 소화의 이름과 성씨를 따서
능소화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 예이 전하~,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나이다."
"그리고 이 사연을 얘기한 순심이 저 나인이
한 말은 절대 비밀에 부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예이 전하~,
분부 받잡고 그리하겠나이다."
임금님은 소화 빈의 죽음으로 상심에 잠겼으나
소화 빈의 죽음이 궁궐에 전해지자 빈의 첩지를
반대했던 대신들과 후궁들은 빈정거리며
보란 듯이 웃고 다녔다.
임금님은 이 사실을 얘기한 순심이 나인도
핍박을 받을까 해서 평생 동안 살 수 있는 재물을
챙겨주고 아무도 몰래 궁궐에서 내보냈다.
임금님은 능소화를 궁궐 담장 여러 곳에 심게 하였고
능소화는 담너머 그리운 님을 기다리듯이
발돋움으로 담장 너머 님을 보려는 듯이
해마다 늘어지게 피어서 애달픈 기다림의 눈물을
흘렸다.ㅁ
능소화(凌霄花): 꽃말:여성, 명예,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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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꽃뱀 (콩트)
작가: 백화 문상희
*낭독을 위한 최종 수정본입니다*
오늘 미선이와 춘자는 강남으로 향했다.
"얘, 미선아!
주름살 제거수술 패키지로 하면 둘이 백만 원에
한다는 게 사실이니?"
"그래, 춘자야!
며칠 전에 전화 통화하고 오늘 예약까지 했잖아!"
"그래, 맞다 맞아 미선아!
사십대로 예쁘게 보여야 늙은이들 주머니 돈을
우려내지 안 그래? 호호호!"
"춘자 너는 물려받은 쌍꺼풀이라도 있잖아!
그래서 나도 이번기회에 쌍꺼풀 수술도 하기로 했어!"
"그래, 미선아 우리 예쁘게 가꾸어서 올 가을엔
대박 찬스를 한번 만들어보자 호호호!"
"혹시 아니?
돈 많은 영감탱이 꼬드겨서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주고 생활비나 받아내면 장땡이지
안 그러니 미선아?"
"그래그래 맞아!
가을이 되면 남자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그 허전한 마음속으로 파고들면 되는 거야 호호호!"
춘자와 미선이는 꽃뱀 행세를 해서 번 돈으로
장마철에 성형과 쇼핑으로 치장을 했다..
일주일은 용마산 아차산으로 또 일주일은 남한산성으로
때로는 도봉산 수락산까지 번갈아 가며 돌아다녔다.
춘자와 미선이는 갈바람 불어오는 구월이 되자
주 무대인 산으로 향했다
"춘자야!
저번주엔 남한산성 갔다 왔으니 이번주는
아차산 근처에서 한번 해보자!"
"그래, 그나저나 오늘 일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춘자야!
오늘은 호구가 하나 걸려들어야 할 텐데 말이야!"
춘자와 미선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장 가까운
긴고랑 길에서 용마산 정상에 올랐다.
"미선아, 네가 먼저 내려가라!
나는 십분 시차를 두고 따라서 내려갈게!"
"그래, 춘자야!
호구 하나 물색해서 바로 문자 해라!
그러면 우리 작전대로 저 아래서 만나기로 하자."
"오케이~!"
춘자와 미선이는 드디어 작전개시에 들어갔다.
한편, 홀아비 두 명도 산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이 우성이!
내일 일요일인데 뭐 하냐?"
"응, 그래 친구야!
뭐 하긴 뭐 해 그냥 집에 있지!"
"그래?
그러면 내일 가까운 용마산이나 가세!"
"그래 좋지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열 시쯤 중곡역에서 만날까?"
"오케이 ~!"
단풍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구월,
가벼운 차림으로 산행에 나선 철수와 우성이었다.
둘이는 이런저런 안부와 또 되지도 않는
정치 예기까지 수런거리며 산에 올랐다.
두 사람은 약 한 시간 후 정상 근처에 도착했다.
긴 휘파람을 불던 우성이 말을 꺼냈다.
"기왕 올라왔으니 내려갈 때는 아차산 쪽으로 내려가세!"
"좋지 좋아, 자네 말대로 아차산으로 내려가서
중곡동 할베 두부집에서 순두부에 막걸리나 한잔하세!"
철수의 답을 들으며 둘이는 하산 중이었다.
철수는 키 180에 장신의 롱다리로 성큼성큼
따라잡을 수 없게끔 언제나 앞서갔다.
우성은 철수와 50m 정도 거리를 두고 내려가고 있었다.
미선이는 두 사람을 뒤따라가며 통박을 재고 있었다.
"춘자야~,
홀아비로 보이는 호구 두 명이 하산 중인데
얼굴도 번들번들한 게 돈도 좀 있어 보이고
밤일도 제법 잘할 것 같다 춘자야!
말을 걸어보고 이따가 다시 문자 할게!"
"오케이!
돈도 챙기고 오랜만에 남정네 맛도 좀 보고
잘 좀 해봐라 미선아 호호호!"
우성이가 중간쯤 내려왔을 때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샛길로 접어들면 샛길로, 등산로로 접으들면 또 같은 길로
따라오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우성은 꼭 미행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성이 돌아다보니 환갑 전후의 나이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우성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와 같은 하산길이네요 아주머니!
이 근처에 사시나 봅니다!"
"네, 저는 광진구 구이동에 살아요!
산길이 무서워서 아저씨 빨간 배낭만 보면서 따라왔지요!"
"아~!, 그러셨군요 아주머니!
저기 앞에 가는 친구와 할베 순두부집에서
한잔하기로 했는데 그러면 같이 가실래요?"
"네~ 좋지요!
그런데 일행이 있었나 봐요?"
"네, 저기 앞에 가고 있는 멀대같이 키 큰 놈이
함께 온 친구입니다!"
미선이는 친구와 조금 떨어져서 가는 걸 보고도
일행이라는 걸 모른 척하였다.
"아~! 그러시군요, 호호호 잘 됐네요!
저도 친구 하나가 이 근처에 산답니다!
제가 아차산에 왔다니까 친구가 집에 들러서
커피나 한잔하라고 했답니다.
그럼 합석하도록 제가 불러볼까요?"
미선이는 돌아서서 번개같이 춘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홀아비 호구 두 명 접수!
영화사 쪽 할베 두부집으로 내려와!"
"오케이, 십분 후 도착!"
미선이는 작전대로 진행을 했다.
"아저씨, 친구집이 이 근처에 있어서 바로 나온답니다!"
"네, 그렇군요 그것 참 잘되었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성은 그 아주머니가
친구와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우성이와 아주머니는 주고받은 이야기 끝에
산 아래 중곡동에 있는 할베 두부집 앞에 도착했다.
먼저 내려간 철수와 우성이 만나서 소개를 했다.
"철수야!
너 따라서 천천히 내려오다 만난 아주머니야
인사해라!"
"그래? 반갑습니다 김철수입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저는 송미선이라고 합니다.
조금 후 제 친구 춘자가 온다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친구 오면 바로 따라서 들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철수와 우성은 먼저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두 여자를 따먹을지 작전을 세웠다.
미선이는 춘자와 합류하여 바깥에서 작전 모의를
하였으니 네 명은 그야말로 동상이몽의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할베 순두부집은 인터넷에 올라있는 맛집이라
언제나 자리가 만원이었다.
미선이와 춘자가 안으로 들어오자 철수와 우성은
다시 통성명을 했다.
"에~, 이 집은 제가 자주 들리는 맛집입니다.
도토리 묵무침에 순두부가 최고지요!
오늘 산행 중에 맺어진 인연인데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그래도 여자분이 우선이니 뭘로 시킬까요?"
"저들은 아무거나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우성은 띵똥, 하고 바로 벨을 눌렀다.
"여기는 순두부 전문집이니 순두부 네 개 하고
도토리 묵무침 한 접시 주세요!
그리고 목이 마르니 우선 막걸리부터 두 병 주세요!"
네 명은 술잔을 가득 채워 합창을 하며 건배를 했다.
"만남을 위하여~!"
철수와 우성은 목이 말라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춘자와 미선이는 술잔을 받아놓고서 조금씩 마시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술은 철수와 우성이 거의 다 마셨고 아주머니 둘은
막걸리 한잔에 부지런히 안주만 집어먹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막걸리 네 병을 마셨고
안주도 술도 바닥이 나서 우성이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철수와 우성은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네 명은 바깥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철수가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
우리가 비슷한 세대라서 거리감도 없고 여러 가지로
잘 됐네요!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노래방이나 가볼까요?"
철수와 우성은 아주머니들과 애인을 만들어볼까 하고
서로의 눈짓으로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춘자와 미선이는 이미 철수와 우성이 홀아비라는 걸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고
그래서 빼껴먹으려고 처음부터 따라붙은 것이었다.
네 명은 근처 노래방으로 들어가서 캔맥주 네 개를
시켜놓고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머릿속을 굴리며 두 시간에 서비스까지
세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신나는 댄스곡엔 함께 모여서 춤을 추었고
블루스 곡에는 남녀 짝을 이루어 몸을 밀착시킨 채
춤을 추었다.
춘자와 미선이는 남정네의 거시기가 의도적으로
몸에 밀착시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것은 네 사람 모두의 작전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꽉 채우고 밖으로 나오자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 한 밤이었다.
길거리 한적한 곳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우성과 짝을 이뤘던 미선이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미선이는 전화를 끊고 말을 이어갔다.
"저번주 산에서 만난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네요!
제 친구가 손주를 낳았는데 다음 주 백일이에요!
그래서 그 아저씨에게 백일반지 말을 했더니
지금 건대역으로 오면 반지를 사 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옆에 있던 춘자가 또 한마디를 거들었다.
"너도 반지를 사가면 나도 필요하잖아 같은 친구인데!"
하며 피드백을 연발하고 있었다.
"우성 씨, 철수 씨, 이건 어때요?
그 아저씨는 나중에 또 만나도 된답니다!
그러니까 그 대신 아저씨들이 오늘 우리에게 반지
한돈씩을 사주시면 오늘밤 멋진 파트너 해드릴게요!"
철수와 우성은 뒤통수를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춘자와 미선이는 몇 미터 떨어져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철수가 다가와 우성에게 귓속말로 전해왔다.
"애인 하나 만들려고 술값에다 모텔비에 금반지까지 사준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거야?"
철수와 우성은 서로를 쳐다보며 말을 잊지 못했다.
그때, 조금 전 전화를 받았던 미선이가 말을 했다.
"길거리에서 이게 뭐예요?
남자들이 연애를 하려면 통 크게 한번 쏴야지요!
그깟 반지 하나도 못 사줍니까?"
미선이는 아예 대놓고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철수와 우성은 어이가 없어서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남자가 쫀쫀하기는요!
통 크게 한번 쐈으면 가끔씩 홀아비 객고라도 풀어주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우리들 좋다는 사람들이 온 산에 넘쳐나거든요?
야, 춘자야 가자!
저 아저씨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네!"
철수와 우성이도 투덜거리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야, 우성아!
아까 그 전화받은 것도 모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어!
재들 분명히 노인네 등쳐먹는 꽃뱀이야 꽃뱀!"
"야, 그래도 그렇지!
잘 나가다가 파투가 났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창피냐?
"야, 우성아 길 가다가 똥 밟았다 생각하고 그만 가자!"
"그래그래 알았다 철수야!"
미선이와 춘자 역시 오늘 허탕 친 것을 투덜투덜하며
반대쪽으로 향했다.
"미선아!
그렇게 통박을 잘 굴리던 네가 실수를 할 때도 있구나!
처음부터 내가 볼 때는 아니다 싶더라 호호호.
오늘은 일진이 안 좋아 그렇다 치자 어쩌겠니!"
"그래, 춘자야!
나도 이제 사람 보는 눈이 흐려졌나 봐!
그나저나 매달 이백만 원씩 주던 영감탱이가
죽었으니 빨리 호구를 하나 잡아야 할 텐데 말이야!
다음번에는 춘자 네가 주머니 빵빵한 호구를
좀 잡아봐라 호호호."
"그래 알았다 미선아!
오늘 일은 잊어버리고 우리 파이팅이나 한번 하자!"
" 송미선, 임춘자 호구 작전 파이팅!"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꽃뱀들의
파이팅 소리가 어둠을 파고들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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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