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거수일투족에 사띠하라
수행센터 프로그램에 조금씩 몸과 마음이 적응하고 있다. 그래도 수행시간표대로 움직이려니 다소 버겁기는 하다. 기상부터 취침에 이르기까지 정진 프로그램은 하루도 거름 없이 돌아간다. 아침 죽 공양과 오전 10시 30분의 점심공양 시간, 그리고 하루 두 차례의 인터뷰 시간 및 새벽 5시 예불시간을 빼놓고는 전 시간이 다 앉음수행과 걸음수행으로 채워져 있다.
담마마마까 수행센터는 숲속 수행처이다. 망고나무, 야자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5만평에 가까운 수행센터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앉음수행이 7시간, 걸음수행이 5시간, 도합 12시간이 수행 정진시간이다. 가능한 모든 정진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오전 4시와 8시, 오후 4시와 8시에 시작되는 앉음수행에는 참여하는 것이 정진력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선배 한국인 수행자들이 귀띔해준다.
수행센터 내를 거닐 때에는 모여 다녀서는 안 되고, 묵언을 해야 한다. 뛰어다니거나 빨리 걷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이유는 사띠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진을 하다가 일어난 의문이나 수행체험은 오전 9시와 오후 3시 에인다까 사야도와의 인터뷰 시간에는 수행자라면 출·재가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참가해 물을 수 있다.
수행센터의 모든 시스템이 오직 수행자들이 불편 없이 수행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한국인 수행자들은 짧게는 보름, 길게는 3개월 일정으로 수행에 참여한다. 미얀마의 기후로 건기에 해당하는 12~2월까지가 주로 한국인 수행자들이 미얀마 수행센터를 찾는 시기이다. 방학 기간이기도 하지만 이 기간이 그나마 쾌적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창건주이자 수행센터 운영을 총 책임지고 있는 혜송스님으로부터 이틀째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았다. 앞에서도 언급했거니와, 오리엔테이션은 혜송스님의 풍부한 수행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스님의 표정에 연민과 자애가 충만해 있다. 혜송스님은 앞으로 실행하게 될 담마마마까에서의 수행생활에 관한 지침을 교육 주제로 삼았다.
“수행자들 사이에 공양을 할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이 있으면 사띠가 되는데, 마음에 드는 음식이 있으면 사띠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식탐이 일어나면 사띠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지요. 이곳 담마마마까의 스승 에인다까 사야도께서는 ‘대중 속에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것처럼 규칙을 지키며 생활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사띠를 하면 저절로 최소한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직 잠자는 시간만이 잠시 사띠를 쉬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사띠하라, 일거수일투족 사띠를 놓치지 말라.’는 간절한 가르침에 저절로 심신이 오그라들었다. ‘아, 한 달 동안의 빡빡한 수행 일정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담마마마까는 마하시 계열의 수행센터로 한국의 비구니 혜송스님의 발원과 에인다까 사야도의 원력으로 세워진, 미얀마에서 최신의 시설을 갖춘 위빠사나 수행센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담마마마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센터의 최고스승인 에인다까 사야도와 창건주 혜송스님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박스 참조)
에안다까 사야도의 설법 모습
에인다까 사야도
담마마마까의 최고스승인 에인다까 사야도는 올해 64세로 지난 1970년 출가해 사미계를, 1978년 비구계를 수지한 후 약 20여 년간 교학 과정을 수료하고, 마하시, 모곡 등 제방의 수행처에서 안거수행을 마친 후 교화전법에 나선 이사를 겸비한 스님이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2013년 2월 13일 양곤 지역 흘레구시 쭝글레이 마을 아지와짜웅 길에 있는, 한국 비구니 혜송스님이 보시한 부지에 담마마마까 고려사 센터를 창건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혜송스님과의 인연으로 우리나라를 방문, 한국의 불자들에게도 많은 지도를 한 바 있다. 2003년 남양주 봉인사 선원에서의 수련지도를 시작으로, 천안시 호두마을, 강원도 인월사, 김천 백련암 등에서 수련지도를 했고, 익산 백운사와 대구 미타사, 전북불교회관, 청도 보갑사, 서울 능인선원, 경주 동국대병원, 완주 안심사, 함양 용화사, 대구 보현사, 관오사 등 여러 사찰에서 설법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담마마마까가 완공되지 않았을 때에도 한국인에게 상시수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미얀마 불자들을 위하여 4차례 수련을 열기도 했다. 2006년 담마마마까가 문을 연 이후부터는 365일 내내 수련을 열어서 누구나 자신의 일정대로 센터에 와서 수행할 수 있도록 최고의 수행 및 수행지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과 성과를 거둔 것을 미얀마 정부에서도 높이 평가해 2017년 1월 4일 광복절을 기해 선사 칭호와 함께 인장을 헌정하기도 했다.
혜송스님의 설법 모습.
혜송 스님
에인다까 사야도와 함께 창건주로서 담마마마까를 중심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한국 비구니 혜송스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직지사 백련암으로 출가해 덕형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81년 고암스님을 계사로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사미니계를, 1986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혜송스님은 직지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지리산 대원사, 양산 내원사 등 선원에서 안거한 후, 속가의 부모님이 마련해준 토굴에서 3년 동안 묵언정진을 하기도 했다. 구도를 향한 혜송스님의 간절한 원력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스님은 1996년 처음 미얀마를 방문해 양곤 만달레이 사가잉 몽유아 바간 등 불교성지를 순례하면서 미얀마 불교를 파악, 상가의 고귀한 위상과 불자들의 독실한 신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혜송스님은 미얀마 불교의 놀라운 저력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아보던 중 깨달음의 법을 전하고 몸소 지도하는 스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미얀마에서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이 해(1996년) 다시 미얀마를 찾은 혜송스님은 마하시 센터, 모비찬미에 센터에서 수행했고, 이후 2002년까지 사띠빠타나 위빠사나를 배우고 실천했고, 빨리어, 미얀마어, 아비담마 등을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러던 중 2002년 계정혜 삼학이 구족된 에인다까 사야도의 수행자에 대한 자비심과 법에 대한 명철함에 크게 감복하여 후원제자가 되었다. 이후 혜송스님은 놀라운 원력과 정진력으로 양곤에 4만여 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에인다까 사야도와 함께 담마마마까 수행센터의 불사를 시작했다. 혜송스님은 모든 재정을 책임지면서 불사의 주역인 창건주가 되어 담마마마까를 최고의 시설과 내실을 갖춘 수행센터로 우뚝 서게 하는 불사 성취를 이루어냈다. 혜송스님은 지난 해(2018년) 미얀마 정부로부터 ‘땃담마 조띠까 다사’(불법을 번창시킨 기수)라는 최고의 종교부 칭호 인장을 헌장 받기에 이르렀다.
담마마마까에서의 수행 일정에는 매일 오후 2시에 법문시간이 들어있다. 이 시간에 한국인 수행자들은 신축 중인 한국관 1층 법당에 모여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을 혜송스님의 통역으로 듣는다. 물론 이때의 법문은 녹음법문이다. 마치 노래하듯, 시를 읊듯 이어지는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을 혜송스님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전달하니, 송곳이 살갗을 찌르듯 법문내용이 폐부를 자극한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법문은 수행의 진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야도의 첫 법문 주제는 ‘수다원이 되려면’이다. (*본 수행기에서는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을 매회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예정이다.)
“정진력이 없으면 깨달음은 물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정진력은 세간과 출세간을 불문하고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처가 되고자 보살이 10바라밀을 닦습니다. 충분한 정진력이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들에게 ‘게으르지 말고 일체 시 일체 처에 사띠하라.’고 부촉하셨습니다. 이렇게 부단한 정진을 부촉하신 이유는 수행 없이 3계6도(三界六途, 불교의 세계관으로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 육도는 천상 인간 수라 아귀 축생 지옥을 말함)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은 범부중생과 성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와 과를 얻지 못해 끝없는 윤회에 빠진 사람을 범부중생이라고 합니다. 범부중생이 선업을 닦아 천상에 태어날 수도 있으나, 4악도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범부중생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해 끝없이 고통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성인이란, 절대로 4악도(四惡途, 육도 가운데 수라 아귀 축생 지옥을 가리킴)에 나지 않으며 머지않아 열반에 도달하실 분들입니다. 수다원도에 드는 순간 4악도는 절대 없습니다. 또한 자동적으로 5계가 지켜집니다. 수다원을 비롯해 사다함, 아나함은 열반이 보장된 분들입니다. 아라한은 이미 열반을 성취하여 윤회를 벗어난 분입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설법한 내용의 핵심은 ‘아라한이 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다원도는 금생에 성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다원도에 들려면 4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훌륭한 스승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것이며, 둘째 훌륭한 스승의 법문을 들어야 하고, 셋째 정확한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며, 넷째 여래가 설한 그대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4가지 조건을 실천하면 범부중생도 얼마든지 수다원이 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이란 허물이 없고(계행 구족) 선업만 생각하는 분(意), 허물을 말하지 않고 선업만 말하는 분(口), 선업만 행하는 분(身)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구의 3업이 청정하고 계행이 청정하여 일체의 허물에서 벗어난 분이 훌륭한 스승인 것입니다.
훌륭한 스승을 찾아 함께 지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스승으로부터 반드시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법문을 들어야 합니다.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법문을 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나서 그분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할 때 비로소 성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 훌륭한 법문이란, 보시, 지계와 함께 수행,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에 관한 법문, 특히 위빠사나 법문을 말합니다.
법문은 들은 대로 실천해야 하며, 정확한 방법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정확한 방법으로 수행해야 도과를 얻을 수 있다는 증거는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인 사리풋따와 목갈라나 존자의 예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두 존자는 대단히 훌륭한 수행자였으나, 부처님을 만나 정확한 수행지도를 받고서야 아라한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정확한 방법으로 하는 수행은 어떤 것일까요? 보일 때 보임, 들릴 때 들림, 가려울 때 가려움, 쑤실 때 쑤심이라고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의 순간까지 가르치신 것은 ‘매순간 사띠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상이 보일 때 바로 보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대상이 좋으면 탐심(貪心)이, 대상이 싫으면 진심(嗔心)이 일어납니다. 탐심과 진심이 일어나면 어리석은 마음, 즉 치심(癡心)은 저절로 따라붙습니다. 그러므로 육근(六根, 감각기관으로 눈·귀·코·혀·몸·생각(眼耳鼻舌身意)를 말함)이 육경(六境, 감각기관의 대상으로 色·聲·香·味·觸·法을 말함)에 부딪칠 때마다 바르게 알아차리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순간순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좋아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그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십시오. 수행하는 장소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오로지 수행만 하지만 순간순간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매순간 놓치지 않고 신수심법을 알아차려야 선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수다원이 된다는 것은 성인이 된다는 것인데, 선업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근이 육경을 만날 때 바르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겉모양은 버리고 실제성품을 봐야 합니다. 수행 초기에는 겉모양을 보지 않을 수 없지만 수행이 점점 깊어지면 느낌에 집중하게 되고, 실제적인 성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 느낌, 실제 성품을 보십시오. 실제성품을 보는 것을 정확한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방법으로 실천 수행하는 것은, 지나간 것,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보지 않고 오직 현재 그 순간을 보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통증, 아직 오지 않은 통증은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통증을 봐야 바르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첫째 신구의(身口意) 3업(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업보를 말함)이 청정한 스승을 두어야 하고, 둘째 스승으로부터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받아야 하며, 셋째 지금 이 순간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띠파타나 수행의 대상은 신수심법(身受心法)입니다.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잘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가지가지 동작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리는 것, 즉 몸 관찰을 잘 해야 합니다. 앉자마자 배의 일어남 사라짐,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주의를 기울여서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집중력이 생깁니다. 좌선을 할 때 다른 현상이 없을 때 몸을 관찰하고 몸 움직임의 흐름을 관찰합니다. 그래야 집중력이 생기고 집중력이 강해지면 도과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몸이 쑤시고, 아프고, 가렵고, 저리는 등의 여러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강한 것 한 가지를 선택해서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 이것을 ‘느낌관찰’이라고 합니다. 느낌에는 좋고, 싫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중간의 느낌이 있습니다. 느낌의 모든 것, 가지가지 느낌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면 마음이 달아나지 않기 때문에 집중력이 일어나고, 집중력이 늘어나면 위빠사나 지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일어나는 대로 알아차려 바로바로 놓아버리고 몸으로 돌아가십시오.(마음 관찰)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바로 놓아버리고 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 관찰은 냉정한 자세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육근이 대상(육경)과 부딪쳐 일어나는 실제 성품들의 생멸을 알아차리면 집중력이 일어나고, 집중력이 늘어나면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도과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할 때 보이고 들리고 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아차리십시오.(법 관찰) 수다원이 되려면 이와 같은 조건들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붓다의 수행법이 아무런 변질 없이 내려온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법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