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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의 숲 카페》
## 제51화 ―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금요일 오후였다.
며칠째 맑았던 하늘에 얇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마른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소진은 말린 국화꽃을 작은 채반에 펼쳐놓고 있었다.
오늘 햇볕을 조금 더 받으면 차로 쓰기에 좋을 것 같았다.
주방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
지영이 밥을 짓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지영이 밥을 만들어 파는 날이었다.
메뉴가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제철 나물 몇 가지.
된장국.
그리고 그날그날 지영이 준비한 작은 반찬.
“오늘 밥 잘됐어요.”
지영이 밥솥을 열며 말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소진이 주방을 들여다보았다.
“냄새 좋네.”
“냄새만 맡지 말고 이따 돈 내고 드세요.”
“내 가게에서 내가 돈 내고 먹어?”
“밥은 제가 파는 거잖아요.”
소진이 웃었다.
“알았어. 외상.”
“지난주 것도 아직 안 줬어요.”
“장부에 적어.”
“진짜 적습니다.”
지영이 수첩을 찾는 척하자 소진이 웃었다.
그때였다.
딸랑.
문 위의 작은 종이 울렸다.
소진이 시계를 보았다.
오후 세 시였다.
“오셨네.”
지영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편지 쓰시는 분?”
소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남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세 시쯤 카페에 왔다.
처음 온 것은 두 달쯤 전이었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늘 낡은 갈색 가방을 들고 왔다.
옷차림도 수수했다.
말도 많지 않았다.
처음 왔던 날 남자는 메뉴판을 한참 바라보다 물었다.
“차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어떤 게 좋습니까?”
소진이 물었다.
“향이 좋은 차가 좋으세요, 구수한 차가 좋으세요?”
“구수한 게 좋습니다.”
“그럼 우엉차 드셔보세요.”
그날부터 남자는 늘 우엉차를 마셨다.
소진은 이제 묻지도 않았다.
남자가 들어오면 따뜻한 우엉차를 준비했다.
남자도 자연스럽게 창가 끝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편지지를 꺼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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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은 우엉차를 내왔다.
“오늘도 우엉차 드릴게요.”
남자가 웃었다.
“이제 주문도 안 해도 되네요.”
“다른 거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이게 좋습니다.”
소진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구수한 향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남자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좀 차분해집니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거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진이 돌아서자 남자는 가방을 열었다.
편지지 한 장.
봉투 하나.
그리고 검은색 펜 한 자루.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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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편지를 천천히 썼다.
한 줄을 쓰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한 줄을 썼다.
급하게 쓰는 법이 없었다.
편지 한 통을 쓰는 데 두 시간이 걸리는 날도 있었다.
이상한 것은—
한 번도 편지를 부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봉투에는 주소가 없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도 없었다.
편지를 다 쓰면 봉투에 넣어 가방 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지영도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저분 매주 편지 쓰죠?”
“응.”
“누구한테 쓰는 걸까요?”
“모르지.”
“그런데 왜 안 보내요?”
“모르지.”
지영이 웃었다.
“소진 씨도 궁금하죠?”
“조금.”
“저는 많이 궁금한데.”
“남의 편지 궁금해하면 안 돼.”
“편지를 읽겠다는 것도 아닌데요.”
소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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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남자는 평소보다 오래 펜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지 않았다.
빈 편지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엉차도 거의 식었다.
소진은 뜨거운 물을 조금 더 가져갔다.
“차가 다 식었어요.”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아, 그러네요.”
소진이 찻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더했다.
“오늘은 편지가 잘 안 써지세요?”
남자가 웃었다.
“티가 납니까?”
“평소에는 계속 쓰시잖아요.”
“오늘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소진은 빈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말이 너무 많아도 못 쓰고, 너무 없어도 못 쓰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너무 많아서 못 쓰는 것 같습니다.”
소진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매주 누구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세요?”
남자는 소진을 바라보았다.
불쾌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젠가 누군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는 잠시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
“네.”
소진은 맞은편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만날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남자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한참 뒤 말했다.
“제 딸입니다.”
---
소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의 이름은 강재훈이었다.
마흔여섯 살.
그리고 스물두 살 된 딸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딸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재훈이 말했다.
스물셋에 결혼했다.
너무 어렸고 가진 것도 없었다.
둘은 자주 다퉜다.
결국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헤어진 뒤 재훈은 고향을 떠났다.
공장에서도 일했고,
공사장에서도 일했다.
몇 년은 지방을 옮겨 다녔다.
그 시절에는 자신 하나 살아가는 것도 버거웠다고 했다.
그리고 스물두 해가 흘렀다.
얼마 전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물었다.
“딸은 만나고 사냐?”
재훈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무슨 딸?”
친구의 얼굴이 굳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헤어진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딸이었다.
---
“어떻게 스물두 해 동안 모르셨어요?”
소진이 물었다.
재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전처가 연락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하지만 당시 재훈은 주소도 자주 바뀌었다.
전화번호도 여러 번 바뀌었다.
가족과도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누가 저를 찾을 수 있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재훈이 말했다.
“돌아보면 제가 도망다닌 거죠.”
“무엇에서요?”
재훈은 잠시 생각했다.
“사는 것에서요.”
---
재훈은 어렵게 전처에게 연락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연락 끝에 짧은 답이 왔다.
**딸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한 문장이 전부였다.
재훈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한 번만 만나고 싶습니다.**
답은 며칠 뒤 왔다.
**그건 딸이 결정할 일입니다.**
재훈은 그 뒤로 더 연락하지 않았다.
“왜요?”
소진이 물었다.
“맞는 말이니까요.”
재훈은 말했다.
“저는 그 아이한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습니다.”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었다.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간 적도 없었다.
학교 입학식에 간 적도 없었다.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준 적도,
졸업식에 꽃 한 송이 준 적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내가 네 아버지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재훈은 자신이 없었다.
---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썼다.
하지만 한 줄도 쓰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켰다 껐다 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숲 카페를 발견했다.
차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한 줄을 쓸 수 있었다.
**안녕.
나는 네 아버지라고 한다.**
그것이 첫 번째 편지였다.
“두 줄밖에 못 썼습니다.”
재훈이 말했다.
“그래도 쓰셨네요.”
“한 시간 걸렸습니다.”
소진이 웃었다.
“두 번째는요?”
“조금 길었습니다.”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릴 때 무엇을 좋아했는지.
왜 고향을 떠났는지.
그런 이야기를 썼다.
세 번째 편지에는 좋아하는 음식을 썼다.
네 번째 편지에는 자신의 나쁜 버릇을 썼다.
다섯 번째 편지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썼다.
“제일 긴 편지였습니다.”
“얼마나 썼는데요?”
“일곱 장.”
소진이 놀랐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많았어요?”
재훈은 웃지 않았다.
“스물두 해니까요.”
---
“그런데 왜 안 보내세요?”
소진이 물었다.
재훈은 편지 봉투를 바라보았다.
“딸이 받고 싶다고 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 말에 소진은 더 묻지 않았다.
차를 조금 더 따라주었다.
재훈이 말했다.
“편지를 쓰면서 알았습니다.”
“뭘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받는 사람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걸요.”
소진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재훈은 다시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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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침 지영이 밥을 파는 날이었다.
주방에서 된장국 냄새가 났다.
손님 몇 명이 들어왔다.
“오늘 밥 돼요?”
“네.”
지영이 대답했다.
따뜻한 밥.
된장국.
시금치나물.
무생채.
멸치볶음.
그리고 계란말이.
재훈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진이 물었다.
“저녁 안 드셨으면 밥 드실래요?”
재훈은 잠시 망설였다.
“밥도 팝니까?”
“일주일에 한 번요.”
지영이 주방에서 말했다.
“오늘이 그날이에요.”
재훈은 밥을 주문했다.
잠시 뒤 작은 밥상이 나왔다.
재훈은 숟가락을 들었다.
된장국을 한 숟갈 먹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지영이 물었다.
“맛없어요?”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러세요?”
재훈이 웃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 생각이 나서요.”
지영의 표정이 풀렸다.
“그럼 한 그릇 더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국은 더 드려도 돼요.”
재훈은 그날 된장국을 두 그릇 먹었다.
---
다음 금요일.
재훈은 또 왔다.
그다음 금요일에도 왔다.
어느새 소진은 금요일 오후가 되면 우엉차를 준비했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재훈이 오지 않았다.
세 시가 지나고,
네 시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지영이 말했다.
“오늘 편지 쓰시는 분 안 오네요.”
“그러네.”
“무슨 일 있나?”
소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금요일에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금요일.
소진은 괜히 우엉차 재료를 정리했다.
“기다리죠?”
지영이 물었다.
“아니.”
“기다리는데.”
“일이나 해.”
그때—
딸랑.
문이 열렸다.
재훈이었다.
소진이 반가운 마음에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네.”
그런데 재훈은 혼자가 아니었다.
젊은 여자가 한 명 함께 들어왔다.
스물두세 살쯤 되어 보였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재훈은 평소와 달리 몹시 긴장해 보였다.
“사장님.”
“네.”
재훈은 옆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자 젊은 여자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재훈이 천천히 말했다.
“제 딸입니다.”
---
서윤이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재훈이 편지를 쓰던 사람.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재훈의 옆에 서 있었다.
소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디 앉으실래요?”
재훈이 늘 앉던 창가 자리로 갔다.
의자는 두 개였다.
지금까지는 하나만 사용했다.
오늘 처음으로 맞은편 의자에도 사람이 앉았다.
소진이 물었다.
“어떤 차 드릴까요?”
재훈은 말했다.
“저는 우엉차요.”
서윤은 메뉴를 한참 보았다.
“저는 차를 잘 몰라서요.”
소진이 물었다.
“달콤한 향이 좋아요, 구수한 게 좋아요?”
“달콤한 향이요.”
“그럼 대추차 드셔보세요.”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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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어색했다.
재훈이 먼저 물었다.
“오는 길 안 힘들었어?”
“네.”
침묵.
“날씨가 좀 춥지?”
“괜찮아요.”
다시 침묵.
재훈은 찻잔만 만졌다.
서윤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진은 두 사람의 차를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났다.
지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분이에요?”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도 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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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
재훈이 가방을 열었다.
편지 봉투들을 꺼냈다.
한 통.
두 통.
세 통.
모두 열두 통이었다.
서윤이 물었다.
“뭐예요?”
“편지.”
“누구한테요?”
재훈은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너한테.”
서윤의 눈이 편지로 향했다.
“저한테요?”
“응.”
“언제 썼어요?”
“네가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서윤은 편지에 손을 대지 않았다.
“왜 안 보내셨어요?”
재훈이 대답했다.
“네가 받고 싶은지 몰라서.”
“그럼 지금은요?”
“지금도 몰라.”
재훈은 편지들을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겼다.
“읽고 싶지 않으면 안 읽어도 돼.”
서윤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편지는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평생?”
“아마도.”
서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첫 번째 봉투를 집었다.
“이거 읽어도 돼요?”
재훈이 말했다.
“네 편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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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은 첫 편지를 펼쳤다.
두 줄이었다.
한참 읽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다예요?”
재훈이 민망한 듯 웃었다.
“응.”
“두 줄인데요?”
“그 두 줄 쓰기가 제일 어려웠어.”
서윤이 다시 종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말했다.
“글씨 되게 못 쓰시네요.”
재훈이 웃었다.
카운터에 있던 소진도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서윤이 소진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웃었다.
“그렇죠?”
“네.”
재훈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이 벌써 한편이네요.”
그 말에 서윤이 조금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재훈도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으로 같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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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은 편지를 세 통만 읽었다.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재훈이 물었다.
“그만 읽을래?”
“네.”
재훈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런데 서윤이 말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읽을게요.”
재훈이 고개를 들었다.
“다음에?”
“왜요?”
“아니.”
재훈이 웃었다.
“그 말이 좋아서.”
“무슨 말이요?”
“다음에.”
서윤은 대추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저 아직 아빠라고 부르기는 어려워요.”
재훈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괜찮아요?”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서윤이 그를 바라보았다.
재훈이 웃었다.
“조금 서운하겠지.”
“…….”
“그래도 기다릴게.”
“얼마나요?”
재훈은 잠시 생각했다.
“네가 정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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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침 지영의 밥이 조금 남아 있었다.
지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녁 안 드셨으면 밥 드시고 가세요.”
서윤이 물었다.
“여기 밥도 해요?”
“일주일에 한 번만요.”
재훈이 말했다.
“여기 밥 맛있어.”
서윤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먹어봤어요?”
“응.”
“언제요?”
“지난번에.”
“혼자요?”
“응.”
서윤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오늘은 같이 먹어요.”
재훈의 표정이 멈췄다.
“그래도 돼?”
“밥 먹는데 허락이 필요해요?”
재훈이 웃었다.
“그러네.”
두 사람 앞에 밥상이 놓였다.
된장국에서 김이 올랐다.
나물 반찬과 따뜻한 밥.
특별한 음식은 아니었다.
재훈은 딸이 밥 먹는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왜 자꾸 봐요?”
서윤이 물었다.
“안 봤는데.”
“봤어요.”
“미안.”
“그런 것까지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
재훈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서윤이 된장국을 한 숟갈 먹었다.
“맛있다.”
주방에 있던 지영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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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서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제 갈게요.”
재훈도 일어났다.
“데려다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
재훈은 더 권하지 않았다.
서윤이 문을 열려다가 돌아보았다.
“저기요.”
“응.”
“다음 주 금요일에도 여기 와요?”
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저도 시간 되면 올게요.”
재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서윤이 나갔다.
딸랑.
문이 닫혔다.
재훈은 한동안 그 문을 바라보았다.
소진이 물었다.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재훈이 웃었다.
“오늘은 대추차 주세요.”
“평소에는 구수한 게 좋다면서요?”
재훈이 딸이 마시던 찻잔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는 달콤한 것도 한번 마셔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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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금요일.
오후 세 시.
재훈이 먼저 왔다.
우엉차가 나왔다.
그런데 편지지를 꺼내지 않았다.
세 시 십 분.
딸랑.
문이 열렸다.
서윤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서윤은 자연스럽게 재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은 편지 안 써요?”
“네가 왔잖아.”
“그래도 쓰세요.”
“왜?”
“나중에 읽게.”
재훈은 웃으며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 첫 줄을 적었다.
**오늘은 네가 내 앞에 앉아 있다.**
그다음 줄을 쓰려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서윤이 물었다.
“왜 안 써요?”
재훈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래.”
“또 두 줄짜리 편지 쓰려고요?”
“아니.”
재훈이 웃었다.
“편지 쓸 시간에 너랑 이야기하려고.”
서윤이 잠시 웃었다.
“그럼 이야기해요.”
“뭐부터?”
서윤이 생각했다.
“어릴 때 이야기요.”
“내 어릴 때?”
“네.”
“재미없는데.”
“그래도요.”
“그럼…….”
재훈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열 살 때 냇가에서 신발을 잃어버린 이야기.
할머니 몰래 엿을 훔쳐 먹었다가 들킨 이야기.
학교에 가기 싫어 아픈 척했다가 정말 병원에 끌려간 이야기.
서윤은 웃었다.
“어릴 때도 좀 이상했네요.”
“너는 안 그랬어?”
“저는 착했어요.”
“진짜?”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두 사람은 오래 이야기했다.
그날 편지는 한 줄뿐이었다.
하지만 재훈은 지금까지 쓴 어떤 편지보다 많은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었다.
---
해가 지고 두 사람이 돌아갔다.
소진과 지영은 카페를 정리했다.
지영이 말했다.
“두 사람 많이 편해졌네요.”
“조금.”
“앞으로 잘 지내겠죠?”
소진은 찻잔을 닦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지.”
“왜요?”
“스물두 해를 따로 살았잖아.”
소진은 찻잔을 선반에 올렸다.
“오늘 몇 시간 같이 있었다고 갑자기 평범한 아버지와 딸이 되는 건 아니지.”
서운한 날도 있을 것이다.
딸에게는 묻고 싶은 것이 생길 것이다.
왜 몰랐느냐고.
왜 찾지 않았느냐고.
재훈에게도 미안함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는 생겼잖아요.”
지영이 말했다.
“뭐?”
“다음 금요일.”
소진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러네.”
---
소진은 수첩을 펼쳤다.
천천히 적었다.
**기다린다고 모든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음 줄.
**미안하다는 말로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잠시 펜을 멈췄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숲에는 저녁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적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앞으로 함께할 시간을 하나씩 만들어가면 되는지도 모른다.**
소진은 수첩을 덮었다.
지영이 주방에서 불렀다.
“소진 씨.”
“왜?”
“밥 조금 남았어요.”
“먹자.”
“돈 내고요.”
소진이 웃었다.
“아직도 그 얘기야?”
“장사는 정확해야죠.”
“얼마인데?”
“오늘은 그냥 드릴게요.”
“왜?”
지영이 웃었다.
“좋은 날이니까.”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된장국.
남은 나물 몇 가지.
창가에는 아직 우엉차 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소진은 조금 전까지 재훈과 서윤이 앉아 있던 두 자리를 바라보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쪽 의자는 늘 비어 있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먼 거리는
한꺼번에 좁혀지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차 한 잔.
밥 한 끼.
짧은 이야기 하나.
그리고—
**다음에 또 만나자는 약속.**
그런 작은 것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소진은 따뜻한 된장국을 한 숟갈 먹었다.
숲속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다음 금요일에도
창가에는 찻잔 두 개가 놓일 것이다.
**― 제51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52화
매주 같은 날, 혼자 찾아와 전통차 두 잔을 주문하는 할머니.
한 잔은 자신 앞에, 다른 한 잔은 늘 맞은편 빈자리에 놓는다.
소진이 이유를 묻자 할머니는 빈 찻잔을 바라보며 웃는다.
“오늘도 이 사람이 늦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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