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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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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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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씨시
마음이 가난한 자의 평화를 구하는 여정~ Assisi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겠다고 관광객이나 순례객들이 많지 않은 겨울에 다시 찾은 호젓한 중세의 마을 아씨시입니다. 로사리아는 2018년에 성지 순례단과 함께 2003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Assisi 순례하면서..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네.. 오가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가게도 많아진 것 같고.. 2003년에 둘이 왔을 때에는 중세의 골목길을 오갈 때에 성가도 들려오고~ 오가는 수녀님과 수도사들과도 눈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지나치기도 많이 하고.. 정말 좋았었는데.."하며아쉬움을 이야기 했었죠.. 내게는 그래도 그냥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인데요~ 그래서 이탈리아 여행 끝에 리턴 연장하여 그동안 패키지 여행의 잦은 도시이동 스케쥴에서 벗어나 제대로 쉬어가기로 ! 로사리아와 둘이 따로 Assisi로 오게 됩니다. 십여년만에 기차표도 끊고 숙소 예약, 식사 구상, Itineary 작성 등등 마음도 바쁘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Assisi는 잘 들리지 않고 다녀온 사람들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보통 당일치기하는 곳.. 조금 더 마음을 내려 놓으려고 1박2일로 머무는 아씨시에서~
울 부부는 성인의 발자취도 차분히 더듬어보고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최소한 3박, 4박은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며 말씀 묵상하며 그리고 중세의 뒷골목길들을 산책하며 보내고 싶었어요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멍하게 걷게만 해도 될 정도로 지나간 두번의 1박2일 머무름 속에서도 순례하지 못했햇던 곳들도 순례하고.. (산 다미아노 수도원, 산 루피노 주교좌 대성당, 리보토르토 성지(Il Santuario di Rivotorto) 등등) 그리고 시간에 쫓기듯 대충대충 순례한 곳도 조금은 여유롭고 차분하게 돌아보고 싶어서.. 3박 4일(?) 4박 5일(?) 차디찬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움브리아 평원에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씨시의 생활 몇일~ 그냥 그대로가 좋은 듯했습니다. 당일치기나, 1박2일로 머무르기에 아씨시는 중세 도시의 예스러운 풍광과, 해질 무렵 들판을 물들이는 보랏빛 석양을 만끽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아침 7시 미사 참례하고 나올 때는 마치 울부부가 중세도시 아씨시의 주민인 듯... ^&^~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옆모습입니다. 코뮤네 광장쪽에서 내려왔든, 성 피에트로 광장쪽에서 올라왔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순례하기 위해서는 성당 들어가기 전에 처음 맞게 되는 풍경이 바로이 사진이죠.
회사 생활하면서 거의 20번도 넘게 출장으로 이탈리아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Roma, Milano, Venezia, Firenze, Sorrento, Bari 등등 내게는 아주 커다란 은총이었네요.. 그 후 로사리아와 함께 출장에 동행하기도 했고..
울 부부가 Assisi를 처음 순례한 것은 자유여행으로 성지 순례 한다고 2005년 2월에 15박 16일 일정으로 (프랑스/독일/스위스/이탈리아) 여행 하던 중 2월 10~11일 1박 한 것이죠.그 당시에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는데요~~~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018년 5월 성지순례단과 함께 왔네요.. 13년만에 맞는 아씨시의 아침~ 예전에는 아씨시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이 울부부 둘만의 무작정 순례였었고.. 이번에는 성지 순례단들과 함께.. 또 다른 감흥 속에서~ 십여년 전의 기억 그대로인 Assisi~ 다만 사람이 많아지고 상점이 많아진 듯한 느낌..[자료 사진]
그래도 지금 누가 나에게 '유럽에서 어느 곳이 가장 가고 싶은가?' 하고 물으면
아마 1초의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Assisi일 듯 하답니다. 그 다음이 Lourdes 아닐런지요~ ^^![]()
호텔 정원의 타우 십자가 마루금 왼쪽에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오름쪽 로카 마죠레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Francesco)
Basilica di San Francesco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di S, Francesco)은
수사 엘리아(Elia)의 설계에 의하여 성 프란치스코 사망 2년 후인 1228년에 착공하여1253년에 건축되었는데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2층 성당이다.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지하 경당, 하부 성당(Basilica Inferiore), 상부 성당(Basilica Superiore)으로 구분된답니다. 'Basilica Papale di San Francesco d'Assisi' 작은형제회 총장을 지냈던 교황 니콜라오 4세는 1288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교황 성당(Papal Church)'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1층 겅당 정면과 2층 성당 정면
한 젊은이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놀기 좋아하고 인생을 노래하던 부잣집 아들 프란치스코는
전쟁에 나갔다가 계시처럼 "네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씨시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 광장에는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과 결혼하게 되는
프란치스코의 상이 있다.
모처럼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창문을 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밀려들어 오는 상큼한 공기와 창문 밖으로 펼쳐진아씨시의 풍경을 함께 들이마셔요. 낮게 깔린 안개 사이를 파고드는 아침 햇살 속으로조식 후에 순례단원들은 호텔 주변을 산책하면서 아씨시를 음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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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순례단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순례를*
하부 성당 입구 옆으로 들어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안뜰인교화 시스토 4세의 정원이 있는수도원의 평화의 경당(Chapel of Peace)에서미사를 봉헌하고 시작하는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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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지하성당(무덤성당)
하부성당
상부성당
제일 중심이 되는 곳이 지하성당입니다.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지요
[출처] 아씨시 델 질리오 수녀원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내부는 프레스코화들로 뒤덮여있다.
하부 성당에 그려진 벽화들은 치마부에, 로렌제티, 마르티니 등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13~14세기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데,
하지만
이 성당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상부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를 묘사한 조토의 프레스코화 연작이다.
<조토의 프란치스코 성인 생애 연작>
먼저 하부 성당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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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창 외부에는 4대 복음사가의 상징물 조각이 있어요.. 마태오(Matthew) : 천사 마르코(Marco) : 날개달린 사자 루 카 (Luke) ; 날개달린 암소 요 한 (John) : 독수리
이곳도 엄격하게 내부 사진 촬영하지 말라고 해서 예전에 담아왔던 사진과 인터넷, Website 등에서 퍼옵니다. 아마도 지진 피해 후 더 엄격해진 듯 하네요. 하부 성당에 들어가면 성 마르티노 소성당, 성녀 막달레나 소성당, 성모 마리아와 성 프란치스코의 벽화, 그리고 중앙 제대와 아치형 천장이 있고, 석양의 성모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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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onna Enthoned with Child . San Francesco & 4 Angels/Lower Church . . St. Francesco Preaching to the Birds ▲
중앙제대 위의 가난, 순명, 정결, 영광의 천장화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하부성당에는 르네상스 이전의 화가 지오토의 천정화가 그려져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영광의 옥좌에 앉은 성프란치스코가 그려져 있습니다. 만약 성프란치스코가 살아 돌아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제발이 그림을 지워달라고 했을게 분명합니다. 자신은 이 영광의 옥좌에 앉을 자격이 없는 벌레 같은 존재라고,,,, 그러나 800년 가까이 이 그림은 대성당과 함께 존재하고 있고 수많은 순례객들이 보고 기도하고 감탄하고 돌아갔습니다. 성프란치스코의 영광의 옥좌는 그의 영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닮고 그의 삶과 복음을 온전히 살아낸 그리스도의 영광의 현현이기 때문입니다.성프란치스코 대성당의 하부성당(Inferiore) 입니다. 지하무덤성당이 생기기전에는 이 하부성당을 무덤성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상부성당(Superiore)에 비해 천정이 낮고 약간 어두운이미지가 있습니다. 중앙제대에 보이는 불빛은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있는 지하성당에서 비춰지는 불빛입니다. 또 하나의 빛,,,, 십자가가 빛나고 있습니다.
[출처] 아시시 수녀원 순례자의 집
하부 성당 내부
여기서 잠깐
상부 성당으로 올라가기 전에... 지진으로 인한 파괴와 복원
이탈리아 움브리아와 마르케 지방에 리히터 규모 5.6과 6.1의 강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하부성당은 무사했지만, 조토 디 본도네가 그린 상부성당의 프레스코벽화는 산산조각이 나 벽면에서 떨어져나가는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잔해더미에서 벽화의 파편을골라냈고, 30만개가 넘는 파편들을 기존에 촬영된 사진자료와 컴퓨터를 이용해 짜맞추는 > 작업을 통해 복원에 착수했다.조토(Giotto)의 벽화는복원을 시작한지 3년여 만인 2000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8만개 가가운 파편이 지금까지도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기사, 출처 나무위키]조토의 프란치스코 성인 생애 연작1997년 9월 26일,↑ 지진으로 상부 성당의 프레스코화가 내려앉는 순간 벽화의 파편과 원래 모습을 찍은 사진 ↑ . . 미술을 전공했다는 길잡이는 아쉬움을 표하면서 비록 복원을 한다고 했지만 원형과는 느낌이 엄청, 전혀 다르다며 안타까워 합니다.
상부 성당 중앙 내부, 지진 前의 사진입니다 상부 성당 중앙 제대 옆쪽에는 '치마부에'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려져 있고 중앙 제대의 천장에는 4대 복음사가인 성 마태오, 성 마르코, 성 루카, 사도 성 요한이 그려져 있으며 그리고 중앙 복도의 양쪽 벽면 윗부분에는 오른쪽에 구약성서 16개, 왼족에 신약성서 16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사진에서와 같이 양쪽 벽면 하단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그린 '조토 디 본도네'의 28개의 프레스코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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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 조토 / 손용환 신부 블로그 ★ 아씨시에 가신다면, 미리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공부하고 가야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성화를 보면서 이해하기 쉬울 듯 합니다.
지하로 내려가 성 프란치스코 무덤가에서 잠시 기도를 드렸어요. 그리고 상부 성당으로 올라왔습니다. 이곳은 원래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무덤 터였기에 성당 벽에는 여러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돌무덤이 안치되어있고 성당 중앙에 성 프란치스코 무덤의 윗부분이 있다. 대성당의 상부 성당은 하부 성당과는 달리 매우 환하면서도 잘 정리된 짧은 중앙복도로 되어 있다. 상부 성당에는 조토(Giotto)가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영성을 그린 28점의 프레스코화가 있어요. 제대쪽은 지진으로 복구된 것들이고 출구에 가가이 갈수록 원래의 그림입니다. 그 중 새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죠...
ASSISI
Giotto의 Presco화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는 ‘주님 성탄’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 두 점이 있습니다. 한 점은 로마의 장인들(Maestri Romani e di Cantiere)이 1288~1290년께 그린 작품으로 맨 위층 성당에 있습니다.*
다른 작품 한 점은 보테가 디 지오토(Bottega di Giotto)가 1313년에 그린 것으로 그 아래층 성당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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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정원에 자리한 '프란치스코의 귀환' 기마 동상(Sculture of St Francis on Horse) 청년 시절의 프란치스코는 세상적인 명예와 성공을 추구한 나머지 두 번의 전쟁에 참여하였지만 결국 포로로 잡혔다가 병을 얻고, 그 어버지가 몸값을 치러 줌으로서 풀려났다. 당시의 프란치스코의 심정을 절절하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대성당 앞 평화정원에 패잔병으로 귀환하는 프란치스코의 기마상이다. 말 위에서 방향 감각을 잃은 프란치스코,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떨어질 듯 푹 숙인 고개와 축 처진 어깨, 땅이 꺼져라 내뱉는 한 숨 소리가 지금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윗성당 앞 평화정원의 'PAX', '타우 십자가', '프란치스코의 귀환' 기마상 '타우(Tau) 십자가' 다미아노 십자가와 더불어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상징이겠죠. 타우(T)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아홉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의 스물두번째(마지막) 글자로 라는 의미이고.. ""이마에 표(타우)가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라" 고 에제키엘 예언서에도 나온다네요.. 하느님께서는 그를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사로 쓰시려고 이런 모습으로 부르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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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 십자가는 십자가의 일종으로 그리스어 알파벳의 아흡번째
그리고 히브리어의 스물 두 번째 즉 마지막 글자입니다
타우는 성서적으로 "하느님의 것"이란 표지이며 (에제키엘9.6) 구원의 표시로 이해합니다.
또한 타우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문장이요 서명으로도 알려졌고
회개와 가난의 표시로 프란치스칸들은 알고 있습니다.
… 『지옥의 언덕에서 천국의 언덕으로』 원래 이곳은 성 밖의 사형장이었는데...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세워지고, 성인의 유해가 묻힌 이후로 부터... 이곳을 천국의 문, 천국의 언덕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1226년 10월 3일 선종한 프란치스코는 아씨시에서 범죄자들이 처형되는 장소였던 '지옥의 언덕'이 예수가 못박힌 골고타 언덕을 닮았다며 죽은 뒤 그곳에 묻히기를 바랐다.생전의 바람대로 지옥의 언덕에 묻힌 프란치스코는 선종 2년 만인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묻힌 무덤 위에 성당을 건설하기로 정해졌으며 성인이 묻힌 언덕의 이름은 '지옥의 언덕'에서 '천국의 언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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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프란치스코의 시성식이 거행된 바로 다음날인 7월17일에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 언덕 경사면에서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체 구조는 하부와 상부 두 개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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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지 않은 채 완전한 상태를 유지한 성인의 유해는 2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1230년 5월25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새로 지어진 하부 성당에 모셔졌으며, 상부 성당은 1239년부터 1253년까지 공사에 들어가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같은 해에 상부 성당과 하부 성당을 축성했다.
성당 지하에는 1818년에 와서야 발견된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의 그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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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가운데 부분에 석관이 있고 거기에 시신을 모셨다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오랫동안 프란치스코의 유해는 행방이 묘연했다고 전해진다.
이슬람의 탈취 우려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다.
1818년 비로소 유해를 확인해 현재의 석관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처음 그가 다녔고 글라라가 처음 성인의 설교를 들었던 성 지오르지오성당 (현재 성 글라라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1230년 5월 25일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제단 아래로 옮겨졌다.
『현재의 무덤은 1925년에서 1932년 사이에 우고 타르키(Ugo Tarchi)의 설계로 개조된 것이라고 합니다. 기둥을 중심으로 앞과 뒤가 열린 타원형 부분이 있고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중심으로
앞 오른쪽에 루피노형제의 무덤, 사진의 오른쪽 뒤에 안젤로 형제의 무덤,
왼쪽 뒤에 맛세오 형제의 무덤, 앞 왼쪽에 레오 형제의 무덤이 있습니다.
1층 성당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중앙 부분에,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맞은편에
세떼솔리의 야고바 부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녀를 '야고바 형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역시 이곳도 겨울에 한적할 때 옴이 바람직한 것 같네요. 성인의 무덤을 조배하는 데도 줄지어 밀려가 듯 하니.. ㅠㅠ ![]()
성 프란체스코의 유해가 있는 지하1층에는 아담한 유물전시관이 있고 안쪽으로 돌무덤 같은 곳이 있다. 돌벽을 기대 짚으며 간신히 지하를 돌아보는 수녀님들의 신념과 충만함이, 성 지순례 여행자들이 의자에 앉아 올리는 희망의 기도가, 돌무덤 뒤편에서 철망에 매달리듯 이마를 대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수도사들의 고뇌와 간절함이 뒤엉킨다. 하나의 공간 안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속에 나의 작은 희망의 기도도 희미하게 섞어본다. 여기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성 프란치스코 기도의 귀절도 되뇌어 본다.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성인이 태어나고 묻힌 땅 아씨시
그 아씨시에서도 사부 성 프란치스코가 누워 있는 곳인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는 꼭 한 번쯤 순례를 다녀올 만한 곳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삶은 그리스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 어쩌면 무지할 정도로, 무식할 정도로.... 성서 말씀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였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가난을 천직으로 알고, 그리스도가 바라던 십자가만이 전부였던 프란치스코에게 이러한 거대한 성전을 지어바친 것이 어쩌면 그에게 누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한계를 가진 우리 후손들로서, 이러한 유산이 있음으로 해서 그나마 정신을 잃지 않고, 때때로 우리를 질책하는 매개체임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쟁과 자연파괴, 질시와 증오로 얼룩져 가는 현대에 있어 가장 필요한 정신을 가르쳐주시는 분이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이라 생각합니다.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지하무덤에서 그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평화를 이야기하여야 하며, 자연사랑을 이야기하여야 하고, 불의에 대해서 정의를 외칠 줄 알고, 소외받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라고 오늘도 조용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평화를 빕니다. [자료 출처] : 한국프란치스칸 청년회(www.youfra.or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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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성당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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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DULE FOR LITURGIES AND CONFESSIONS
Lower Church: Office of Readings and Morning Prayer: 6:30 a.m. Holy Mass: 7:15 a.m., 11:00 a.m., 6:00 p.m. Evening Prayer and Meditation: 7:00 p.m. (except Wednesdays) Confessions: From 7:30 a.m. until 12:30 p.m. - From 3:00 p.m. until 6:30 p.m. Sundays and Holidays: Upper Church: Holy Mass: 10:30 a.m., 12:00 p.m., 5:00 p.m. Lower Church: Holy Mass: 7:30 a.m., 9:00 a.m., 11:00 a.m., 6:30 p.m. Evening Prayer: 6:00 p.m. Confessions: From 7:00 a.m. until 12:45 p.m.- From 2:30 p.m. until 6:30 p.m.
아씨시
막상 그 앞에 서면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사원들의 모습과......... 중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들의 모습
분홍빛갈과 하얀 벽돌의 집과 성당들 사이로 난 내리막 오르막 좁은 골목길들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벅찬 감동 그자체 였다. 마을 집들의 창가 마다 예쁜 꽃으로 장식 되어 있고, 중세 느낌 물씬 나는 좁다란 돌바닥 골목길하며, 분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여기 저기 간간히 들려오는 성가
모두들 이 중세 마을에 한번 발을 담가 봐도 좋을 듯 하네요
여기 Assisi에서 1박 2일의 머무름
평온 속에서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Assisi, Italy: Basilica of St. Francis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답니다.
“주님 보시기에 우린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풀 같을 뿐이요” 1209년 여름, 프란치스코와 ‘작은형제회’는 평등한 인간, 무소유의 삶을 교리로 삼고 교황청에 정식으로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인준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교리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러면서 ‘작은형제회’ 안에서 프란치스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성 프란치스코' (Francesco d'Assisi) 프란치스코회의 창립자. 가톨릭의 성인(축일 10월 4일). 중부 이탈리아 아씨시의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향락을 추구하였고, 기사(騎士)가 될 꿈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20세 때에 회심(回心)하여, 세속적인 재산을 깨끗이 버리고 완전히 청빈한 생활을 하기로 서약, 청빈 ·겸손 ·이웃에 대한 사랑에 헌신하였다. 1209년 11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만나, 청빈을 주지(主旨)로 한 ‘작은 형제의 모임’의 최초의 수도회칙(修道會則)의 인가를 청원, 구두약속을 받은 다음 이 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아씨시의 성녀 클라라에게 권유하여 여자를 위한 수도회(클라라회)를 설립케 하고,
작년 10월 고교 Cell 친구들과 함께 관람한 영화 '성 프란치스코'의 한 장면 다시 속인(俗人) 남녀를 위한 제3회도 조직하였다. 만년인 1224년에 자신의 몸에 성흔(聖痕: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옆구리와 양손 ·양발에 생긴 5개의 상처)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애로운 인품과 그가 행한 기적은, 시대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는데,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되어 있다. ‘신의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 불리고 있듯이, 《태양의 찬가》를 비롯하여 뛰어난 시도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란체스코 [Francesco d'Assisi] (두산백과) 성 프란치스코 - 태양의 찬가 / 'Fratello sole sorella
축일:5월24일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봉헌 축일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인 자녀들과 모든 신자들의 신심 때문에 성인의 유해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9 세는 프란치스코가 죽은지 2년이 지난 후인 1228년 3월 성인을 위한 무덤 성당을 짓도록 명하였으며, 엘리야 수사에게 공사의 책임을 맡기면서 1228 년 6 월 16 일 성인이 새로 묻히게 될 대 성전의 머릿돌을 축성하였다. 1230 년 5 월 25일 성인의 유해는 장엄하게 새로운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인노첸시오 4 세가 이 성전을 축성하였다. 여러 세기를 통하여 이 프란치스칸 건축물은 온 세상의 수많은 순례자들의 목적지가 되어왔다. 베네딕도 14세는 이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대성당(patriarchal basilica)과 교황 기도소(papal chapel)로 지정하였다. 요한 23 세는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을 위한 준비 기간 동안 이 성당에 순례하였다. 성당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무덤을 본 딴 양식으로 성인의 유해를 담은 관을 중심으로 성당을 지었다. 성당은 겉의 모양뿐만 아니라 성당이 지닌 의미 또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살아 생전 프란치스꼬는 당시에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던 곳을 자신이 무덤으로 선택하였다. 이곳은 중세가 지날 때까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로 도시의 성 벽 밖에 위치해 있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한 장소는 도시밖에 위치 "해골산"(마태 27,32; 마르 15,21; 요한 19,17)이라고 불렀듯이, 아씨시 역시 교수대가 있던 언덕은 도시의 서쪽에 위치한 성 벽 밖에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꼬는 백성들에게는 형벌이 이루어져 혐오감을 주는 곳이지만, 복음으로 회심한 프란치스꼬에게 있어서 이곳은 그가 본받아야 할 전형인 그리스도의 수난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곳이 되었다. 오직 성인의 뜻만이 교황 그레고리오 9세, 엘리야 수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고, 처형장을 도시의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함으로서 아씨시의 서쪽 언덕 위에 대성당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 프란치스꼬의 무덤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성당과 유사하다. 1230년에 무덤과 아래층 성당의 형태가 완성되자 바로 성인의 유해를 모셔올 계획에 따라 5월 25일에 이장하였으며, 아래층과 위층으로 된 2층 구조의 이 대성당은 1253년 5월 25일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장엄하게 축성되었다. 여러 세기를 통하여 이 대성당을 온 세상의 수 많은 순례자들의 목적지가 되어 왔다. 보존하기 위해 지은 성 프란치스꼬 대성당입니다. 1228년 6월 17일, 성인의 시성식 다음날, 교황 그레고리 9세의 축성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인의 유해는 1230년 5월 25일, 지금은 산타 글라라 대성당에 포함되어 있는 성 죠르지오 성당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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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성당 사진에 아름다운 태양의찬가!! 넘 감동입니다..
2005년 2월 처음 로사리아와 둘이서 아씨시에 갔을 때,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물방에서 흐르는 음악에 빠져들어서.. 수사님께 묻고는 CD한장 사온 기억이 있어요. 그게 '태양의 찬가' 였어요..
윗성당 안쪽은 지진으로 파손 되어, 복구를 하고 있지만~
옛 모습과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해서 안타깝기만 하더군요..
이번에는 두번째여서인지, 아니면 순례단 따라와서인지 여유로워서,
저녁에는 식사 후에 호텔 전망대에서 야경도 내려다 보고,
아침에도 아씨시의 아침 풍광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
Assisi는 기회가 된다면(아마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지만~~`),
꼭 한번 다시 와서 수녀원 숙소에서 3박 정도는 하면서
조용히 산책하거나 한가롭게 좁고 가파른 골목길과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주택들 사이로
천천히 여기저기 돌아보고 싶어요.. 2번 왔어도 들르지 못했던 곳도.. 순례하고픈 바램이 있답니다.
뭔가를 꼭 봐야한다는 강박과 어딘가를 둘러봐야 한다는 부담을 벗어던지고
그저 마을길 따라 느릿느릿 걷다가 어쩌다 만나는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여유를 부리면서 지나가는 순례객들, 관광객들을 바라보면 되는거~ ^^
May God's peace be with you!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유럽 패키지 여행은 성지순례이든 일반 관광이든 꽉 짜여진 일정 속에
휴식과 잠을 희생한 바쁜 일정으로 짜여져 있죠.
쉼이란 오랜 거리를 이동하면서 불편하게 관광버스 안에서였고,
여행지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일로
그 장소를 음미고 진정한 순례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일반적인 여정이 대부분입니다.
사전에 순례지를 공부하고 가면 나름대로 시간을 쪼개어 조금은 나을 듯하죠.
2번의 아씨시 1박2일 순례를 했어도
울부부에게 아씨시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그런 순례의 일정이기도 합니다.
현재 아시시의 중심은 기차역 부근이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 아시시는 저 언덕 구름 위에 있지요.
산 중턱에 까닭에 길이 가로 방향으로 길게 나 있다.
양 옆으로 1.5km, 위아래로 0.5km 남짓에 불과한 규모로,
가파른 계단 길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답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걸었던 길을 다시 만나게 되죠.
아씨시는 순례전에
성인의 생애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온다면 그만큼 많은 것을 보여줄 듯 합니다
사흘 동안 아씨시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단체 관광객들로 종일 북적이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기념품 가게와 식당 등이 몰려 있는 코뮤네 광장 근처를 제외하면,
여전히 아씨시는 성지의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남아있어요.
여느 패키지여행처럼 한두 시간 잠깐 들렀다 가는 여행으로는
아씨시에서 성인의 숨결을 느낄 수 없죠.
중세 도시의 풍광과 해질 무렵 들판을 물들이는 보랏빛 석양을 만끽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성 프란치스코를 느낄 수는 없겠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새벽미사에 참례.. 6시 30분에 시작하는 수도자들의 성무일도부터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성당에 들어서는데, 수도자들의 노래 소리가~
성무일도 후 미사가 시작되었고 이탈리어 미사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매일미사책 펴들고..
평화의 인사때 앞에서 미사를 드리던 수사님이 뒤돌아 "빠체(평화라는 뜻)"하며 악수를 청하기도
이렇게 미사참례도 하였습니다..
미사 전에 미리 적어간 기도 지향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모든 바램을 그 분께 청했습니다.
성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올리는 미사..경건하고 감동적이며 벅찬 미사였답니다.
성지순례단과 함께 한 아래 수도원에서의 미사와는 또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