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를 통해 '탄저균'(anthrax bacilli)이 흡입되면 면역계(immune system)가 무력해지거나 탄저균이 면역계를 회피하는 과정이 진행한다. 이 틈을 타서 '탄저균'은 체내로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이 같은 감염 기작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의 인터넷 웹사이트 "사이언스 익스프레스(Science Express)", 8월 29일자 온라인판을 통해 발표됐다. 연구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Univ. of California, San Diego)의 과학자들이 수행했다.
연구진은 쥐의 세포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배양 실험을 통해 '탄저균'으로부터 생성되는 '치사 독'(lethal toxin)라는 단백질 복합체가 대식 세포(macrophages)를 방해 및 파괴하는 기작을 동정했다. 대식 세포는 일종의 백혈구 세포로서 병원체가 침입하면 최전선에서 이를 공격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탄저균의 치사 독소는 면역계 활성을 유도하는 신호를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일련의 독소 기능을 통해 탄저균이 면역계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염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
탄저균을 흡입하면 폐포(pulmonary alveoli)에 존재하는 대식 세포가 탄저균의 포자(spores)를 포획하기 시작한다. 이는 정상적인 면역 반응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대식 세포의 공격을 받더라도 포자는 사멸하지 않고 대식 세포 내에서 발아(germination)까지 하면서 오히려 임파절(lymph nodes)을 경유하며 대식 세포와 함께 체내로 확산된다. 이 와중에 탄저균이 혈류로 침투하게 되고 결국 매우 심각한 탄저균 감염증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결과를 빚는다.
대식 세포가 사멸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p38이란 단백질 키나아제(protein kinase)의 활성이 저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 효소가 제 기능을 못하면 대식 세포가 사멸하고 면역계에 외래 침입자 정보를 알려 주는 신호 물질인 케모킨(chemokine)과 사이토킨(cytokines)의 분비까지 중단된다.
탄저균이 대식 세포를 가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호 항원(protective antigen)이란 단백질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단백질은 대식 세포 표면에 결합하면서 세균 단백질이 대식 세포를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보호 항원의 도움을 통해 대식 세포에 잠입하는 단백질을 '치사 인자'! (lethal factor)라 부른다. 이 단백질은 미토겐 활성 단백질 키나아제(mitogen activated protein kinase kinases)를 파괴한다. 대식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p38 단백질 키나아제가 반드시 활성을 나타내야만 하며, 다시 p38 단백질 키나아제가 정상적인 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미토겐 활성 단백질 키나아제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보호 항원과 치사 인자의 작용은 결국 대식 세포를 사멸의 길로 몰게 된다.
바로 치사 인자와 보호 항원을 합쳐서 치사 독소라 부른다. 탄저균은 치사 독소 외에 부종 인자(edema factor)라는 또 다른 독소 단백질도 분비한다. 이 독소는 세포 조직에 부종을 일으키며 이 단백질의 도움으로 면역계의 방해 없이 감염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할 때, 치사 독소의 활성을 인위적으로 저해하면 면역계가 좀 더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힘으로써 탄저균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탄저병이나 선페스트(bubonic plague) 같은 감염증의 경우 증상이 겉으로 나타날 때까지 몇 일에서 1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정상적? ?면역 반응이 어떤 이유로 억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이번 연구 결과와 일맥 상통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학자들은 후속 연구의 일환으로 배양한 쥐의 세포가 아닌 살아 있는 동물에서도 동정된 기작이 작동하는지의 여부를 현재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연구진은 탄저병 연구에 있어 대식 세포의 활성과 세포 사멸 사이의 균형 관계에 초점을 두는 연구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