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이동 준비
한낮에도 더운 기는 다 가시고 바람결은 서늘서늘했다. 아침 저녁으로 일어나는 찬바람은
선뜩선뜩하게 옷 속을 파고들었다. 산속에는 풀 들이 먼저 저 추위를 타며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잎들이 작고 얇은 싸리나무며 단풍나무 같은 것들이 가을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짙푸른녹음과 함께 산꼴짜기마다 진을 쳤던 무더위는 팔월이 가고 구월이 오
면서 시나브로 사위어져가고, 잎들이 누릿누릿 물들어가는 산줄기로는 소슬바람이 소리 낮
게 스쳐가고는 했다.
산속에서 찬바람이 이는 것을 가장 반기는 곳이 있었다. 골짜기들 그 어디엔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환자트들이었다. 환자트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총상이나 파편상을 입은 사람
들이었다. 그 상처들은 거의가 깊게 마련이었고, 깊은 상처는 약을 제대로 쓰는 경우에도 무
더운 한여름에는 염증이 생기거나 곪기가 쉬웠다. 그런데 현대의약품은 거의 쓰지 못하고
민간요법에 의지하고 있는 환자트의 환자들의 경우에는 그 치료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깊은 상처의 치료에 무더위는 치명적인 장애였다. 무더위 자체가 상처
를 에워싸고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물이었고, 또 환자의 체온을 전체적으로 상승시켰
으며, 파리를 위시해서 상처에 해로운 온갖 세균들을 번창시켰다. 그런 백해무익한 무더위가
가고 선들선들 찬바람이 일게 되었던 것이다. 깊은 상처에 찬바람은 무더위와 정반대의 치
료효과를 나타냈다. 무더위 속에서 고름이 질질 흐르던 상처가 거슬거슬해지며 아물어들었
다. 꼭 거짓말 같은 자연치유의 효과였다.
"동무들, 이제 됐소. 이제 됐소. 여름을 견디느라고 동무들 너무 고생했고, 다들 장하시
오."
의무과장의 그 감격스러워함은 틀림이 없어서, 구월로 접어들면서 환자들의 창서는 나날
이 고름이 걷히고, 새살이 돋고, 아물어갔다. 그러면서 의무과장이 이 환자, 저 환자를 붙들
고 노래하듯 되풀이하는 말이 있었다.
"긁지 말아요, 절대로 긁지 말아요. 지금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긁어서 덧나버리면 그땐
위험해요. 가려운 건 상처가 다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참기가 어렵더라도 참아야 합니
다."
의무과정은 낮에 잠깐씩 눈을 붙이면서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환자들을 지켰다. 환자들
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잠결에 상처부위를 벅벅 긁어댔고, 그럴 때마다 그의 손은 환자
의 손을 떼내며 사정없이 때리고는 했다. 그의 그런 열정에 환자들은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일도 하지 않으면 어쩌겠소. 동무들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오히려 민망스런 얼굴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환자들은 그의 그런 마음을 다 헤아리
고 있었다. 약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서 그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 것이며,
그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는 모두가 충분히 짐작했고, 또 이해했다.
그는 오히려 민망스런 얼굴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환자들은 그의 그런 마음을 다 헤아리
고 있었다. 약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면서 그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 것이며,
그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는 모두가 충분히 짐작했고, 또 이해했다.
그는 환자들은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여름내내 무더위를 무릅
써가며 늙은 호박속을 작은 나무절구에 찧는 일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호박속을 환
자들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나눠 붙여주고는 했다. 그 일을 하는 얼굴은 한없이 침울하고 괴
로움에 차 있었다.
환자들의 상처에 호박속을 찧어 붙이고 있는 양의사-그건 희극 같기도 하고, 비극 같기도
하고, 영 아리송했는데, 어쨌거나 진풍경인 것만은 사실이어서 조원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
며 빙긋이 웃고는 했다. 희곡에 희비극이 있다는 걸 배운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 싶었고, 침울하고 괴로운 얼굴로 호박속을 붙이고있는 의무과장은
가장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 명배우같이 보였던 것이다. 그 일이 웃음을 자아내지 않았
으려면 호박속을 붙이는 사람이 의무과장이 아니라 할머니여야 했다. 지극히 과학적이어야
할 의사가 지극히 비과학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었고, 의무과장의 괴로움도 바로거기서
비롯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장 동무는 양의사시다요, 한의사시다요?"
조원제는 이죽거렸다.
"죽도 밥도 아니오."
의무과장은 더 얼굴을 찡그려붙였다.
"이왕 붙일라면 웃음스로 붙이씨요. 그래야 환자들이 맘이 편해 병이 낫제라."
조원제는 과장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며 한번 더 몰아댔다.
"아 그럽시다, 그래야지요."
진지하기만 했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과장은 금방 어색스러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조원제가 과장에게 붙인 별명은 '땡초'였다. 차마 가짜의사라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는 없
었고, 그건 또 별명으로서 맛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과장은 그 별명을 아무 싫은 내색이 없
이 그저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그는 어쩌면 그렇게 불리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할는지도 몰
랐다.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침은 물론이고 한약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가 그보다
더 비과학적인 호박속 붙이기를 하고 있으니 그 곤혹스러운 입장을 면하려면 아예 가짜의사
라는 것을 수긍해버리는 것이 자연스런 해결책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정말 가짜의사가 되는 위기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죽지 못해서, 아니 환자들을 그냥 죽일 수가 없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찧어붙인 호박속이 꼭
거짓말처럼 신기하게도 상처치료에 효과를 나타냈던 것이다.
"보시씨요, 우리 민간요법이 무턱대고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랑께라. 과학적이라고 낯 내세
우는 서양의학이 우리 민간요법이 갖고 있는 과학성을 몰르고 허는 비과학적인 소리제라.
나 말이 워쩐가요?"
조원제가 비꼬는 투로 서양의학의 허점을 찔렀다.
"글쎄요, 호박에 염증을 빼는 무슨 성분이 좀 들었는지 원..."
의무과장은 미심쩍고 마땅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원제의지적을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다.
"서양의학이 지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혀도 이 세상에 허천나게 많이 있는 생물덜이 사람의
병에 워떤 효력얼 나타내는지 일일이 분석실험얼 못혔으면 한방이고 민간요법을 무작정허고
비과학적이라고 몰아때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게라? 돼지고기나 닭고기럴 묵으면 상처가 곪
아터지는디 개고기럴 묵으먼 암시랑토 않은 것도 서양의학이 과학적으로 답허덜못허지 않는
게라?"
조원제의 또 다른 공박에 과장은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는 환자들이 체험한 그
두 가지 약효에 대해서 대꾸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어채피 약 구허기넌 틀렸응께 과장 동무도 빨치산의학이나 새로 연구허는 것이 워쩔랑가
몰르겄구만요."
조원제는 짓궂게 웃으며 계속 이죽거렸다. 그건 옆구리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데서 얻은
심적인 여유이기도 했다.
약이 조달되지 않는 환자들의 유일한 상처치료제는 호박속이었고, 상처에 부작용 일으키
지 않는 영양식은 개고기였다. 그건 새로운 것이 아니고 구빨치들이 벌써 써온 방법이었고,
그보다 앞서서는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요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양식
의 하나였던 늙은호박이 봄을 거치고 여름까지 남아 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혼할 것 같
은 개도 구하기가 그리 손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빨치산들은 자신들의 야간활동을 위해
중요한 지역에 해당하는 마을에서 기르던 개들을 일찌감치 잡아 개장국을 끓여먹어버렸던
것이다. 호박은 천상양식이 넉넉한 집들을 훑어야 나왔고, 개도 해방구에서 멀리 떨어진 마
을에서나 잡아챌 수 있었다. 두 가지 다 위험을 무릅써야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두
가지는 보투를 나갈 때 양식과 함께 확보해야 하는 대상물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늘어감에
따라 후방부에서는 전담조를 따로 짜기도 했다. 그렇지만 환자보다 싸우는 사람들이 언제나
우선되어야하기 때문에 어는 환자트에서나 개고기는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옆구리의 상처가 나날이 나아가는 것을 조원제는 확실하게 느
낄 수가 있었다. 부기가 빠지면서 욱씬거리는 통증이 가라앉았고, 배 전부가 묵지근하던 기
운이 사라지면서 상처부위가 가렵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몸 전체가 가벼워지면서 기분
도 아주 상쾌해졌다. 그런데 새로 생긴 고통이 있었다. 가려움을 참아내는 것이었다.가려움
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는데, 긁지를 못하고 참아내자니까 가려움은 더 심하게 느껴졌고,
더 심해진 가려움을 긁어서 풀지 못하니까 끝내는 고통이 되었다. 손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옆구리로 가고는 했고, 그손이 상처부위에 닿기 직전에 멈춧게 해서 앞으로 끌어당기기가
그렇게어려울 수가 없었다. 손을 멈추게 하는 순간 가려움은 와아 소리라도 지르는 것처럼
갑자기 더 심해지고, 어금니를 맞물며 손을 끌어당기다 못해 손가락들은 상처부위에 닿을
듯 말 듯해가며 허공을 긁어댔다. 그럴 때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팔다리가 저릿거리며
꼬이고, 정신까지 흐릿거리고 헝클어지려 했다. 가려움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견디기 어렵게
심한 것도, 가려움을 참아낸다는 것이 그렇게도 괴로운 고통이라는 것도 조원제는 처음 겪
는 경험이었다. '사람 환장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가려
움
을 참는 고통은 통증을 참는 고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가려운 데를 마음놓고 박박
긁어댈수 있다는 그 하찮은 행위가 회복기의 환자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 되어 있었
다. 멀쩡한 정신으로도 그런 정도이니 잠결에 환자들의 손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의무과장이 밤샘을 해가며 상처를 긁어대는 손들을 사정없이 쳐내고 있는 것
은 너무나 현명한 치료법이었다.
"아 참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소. 복막에 염증이 생길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르
오. 복막염이 됐더라면 참 곤란했을 텐데... 체력이 강한 데다 젊어서 무사했던 거요."
의무과장은 헤벌어져 있던 상처가 차츰 아물어붙고 있는 조원제의 옆구리를 들여다보며
못내 기뻐했다.
"워디가라, 명당 자리에 묘럴 써서 그렇제라."
조원제는 또 걸고 들었다.
"맞소, 동무의 그 여유있는 마음도 상처회복에 큰 도움이 됐소."
분명 웃어야 할 대목인데도 의무과장은 이렇게 진지하기만 했다. 농담을 걸었던 조원제가
오히려 멋적어지고 말았다. 그는 체질적으로 의사같기도 했고, 정서감이 모자라는 쑥맥 같기
도 했으며, 저런 사람이 어떻게 입산까지 하게 되었는지 의아스럽기도 했고, 그런 진지함이
바로 열렬한 사회주의자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원제는 그의 별명을 또 하나
생각해내고 있었다. 그건 '맹물'이었다. 그는 진지하되 답답한 사회주의자는 될 수 있어도,
활달하면서도 멋있는 사회주의자는 되기 틀렸다고 생각했다. 조원제는 의무과장의 모습에다
'대꼬챙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문화부중대장으로서 원리원칙을 어
기지 않으려고 하는 자신을 대원들이 마치 의무과장처럼 생각하고 '대고챙이'란 별명을 붙
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활
달하면서도 멋있고, 지혜로우면서도 따뜻한 사회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세 사
람이 종합되어 이루어진 욕구였다. 서중학교 교장이었던 출판과장, 연대장 이택식, 총사 부
사령 염상진이었다. 출판과장의 지혜로움과, 이태식, 염상진의 활달함과, 염상진의 멋있음과,
이태식의 따뜻함을 고루 갖추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자기 반성을 하게 된 것은 조금 별난 의무과장에 대하게 된 때문만은 아니었다. 환
자트까 일부러 병문안 왔던 노만석의 책망하는 것 같았던 말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
이다. 연대가 다른 노만석 중대장이 환자트를 찾아온 것은 열흘쯤 지나서였다. 분트사업을
할 때 소대장이었던 그가 환자트를 찾아온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물론 함께 사업을 할 때
너덧 살이 많은 그가 자신을 유달리 아껴주었고, 부대 재편에 따라 서로 헤어지면서 그는
무척이나 아쉬워했고, 작전중에 어쩌다가 스치게 될 때도 그는 자기 부대로 오라는 말을 꼭
하고는 했었다. 그런 정리가 서로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연대가 다르면서 트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역시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중대장 동무, 워칳게 아셨는게라?"
조원제는 혈육을 만나는 반가움으로 노만석의 손을 잡았다.
"이 그그저께 조 동무 중대럴 만냈는디, 눈 씻고 찾어도 조 동무가 웂덜 않더라고. 워메,
그때 땅이 푹 꺼짐스로 놀래분 거, 말또 말소, 수명 십년 감순께로."
노만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어뿐 줄 알았구만이라?"
"항, 우리 처지에 사라이 안 뵈었다 하먼 열에 아홉은 그리 되는 법잉께. 근디 말이여, 부
상얼 당혔단 말 듣고 당장에 쫓아오고 잡었는디, 빈손으로 안 올라다 봉께 늦어부렀구마.
"노만석은 이렇게 말하고는, "어이 천 동무, 고것 일로 딜이씨요. "밖에다 대고 일렀다.
그의 말에 조원제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밖에서 들어온 것은 너무나 뜻밖의 물건이었
다.
"이, 요것으로는 부상당헌 디 쨈미는 디 쓰고, 요것으로는 보신 잠 허드라고."
노만석이 말의 순서대로 먼저 내놓은 것은 무명 한 필이었고, 다음에내놓은 것은 소다리
한 짝이었다. 그가 저지른 두 번째의 뜻밖의 일에 조원제는 한동안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요 많은 물건이 워찌 된 것이다요?"
조원제는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엇갈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 인민덜 괴롭히고 뺏은 물건이 아닝께 안심허드라고, 후방부 특무장헌테 정식으로 말
혀 배당받은 것잉마."
노만석은 어떠냐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나 조원제는 마주 웃을수가 없었다. 개인적
으로는 목메이도록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공적으로는 한 대원의 위문품으로
너무나 지나친 양이었다. 아무리 특무대를 거쳤다 하더라도 한 대원에게 그 많은 양이 배당
되어버리면 다른 여러 대원들에게 배당될 양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
다. 그것을 지적하자니 개인적 정리가 상하게 될 것이고, 그냥 지나치자 니 원칙위배에 대한
동조였던 것이다. 조원제는 짧은 시간 동안에 심한 갈등을 느꼈다. 노만석의 행동은 분면 정
이 넘치는 것이었지만, 그건 조직의 입장에서 보며 감정에 치우친 인정주의 내지는 가족주
의였다. 환자트는 후방부의 조직을 통해서 엄연히 보급을 받고 있으니까 그런 사적인 이중
보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일들이 자꾸 묵인되면 조직의 건강은 병들 수밖에 없었
다. 그가 빈손으로 왔어도 고마움은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꼭 정을 표시하고 싶었으면 그 양
이 지금 것의 십분의 일 쯤만 되었다라면 이쪽에서도 마음 가벼웠을 것이다. 조원제는 조직
원으로서의 상식과 양심으로서 도저히 그 물건들을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중대장 동무, 나럴 생각혀주는 중대장 동무 맘얼 다 암스로도 요 물건들에 대해서 한 말
슴 안 디릴 수가 웂구만이라. 이리 많은 양이 나 한나럴 위해서 요렇크름 처리되는 것은 조
직의 원칙에 많은 어긋나는 것 이구만요. 워찌 생각허시는게라?"
조원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철도노동자 출신인 그는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조금
심한 편이었고, 자신보다 나이도 많았으며, 특히 호의를 저버리는 것 같은 오해가 생긱 염려
도 있었던 것이다.
"하! 그 말얼 안허고 넘어가먼 조 동무가 아니제." 그는 어글어글한 생김에 어울리게 턱을
치켜들며 야성적으로 헛웃음을 치고는, "나가 조 동무럴 좋아하는 대목 중에 한나가 탱자까
시겉이 꼿꼿헌 양심인디, 요것덜얼 갖고 옴스로 폴쎄 조 동무가 그 점을 끌탕잡을 거이다
생각혔구만. 근디 말이여, 원칙은 지키라고 정헌 것잉께 꼭 지켜야 허는 것이야 당연 지산
디, 고것도 사람이 서로가 위험스로 탈웂이 똑바라지게 살아보자고 맹글어 낸 것이 분명헐
시, 고것얼 지켜도 사람얼 우선으로 생각혀서 받들고 위허는 쪽으로 늘품있이 지키고, 낙낙
허게 지키고, 푼더분허게 지키고 깝깝혀서 사람이 원칙얼 지킬라고 사는 것이다냐, 사람보담
도 원칙이더 중허고 웃질이다냐, 어질어질혀질 판이여. 조 동무가 안직 펄펄허게 젊어서 그
러기도 헐 것인디, 그리 대꼬챙이맹키로 뺏시기만 혀갖고는 조직생활이 에로와. 조 동무넌
시방 나가 볼 것도 웂이 원칙얼 위반혔다고 믿고 있는디, 미안허제만 요것덜언 원칙 하나또
위반허덜 않고 갖고 왔다는 것을 알아두드라고잉. 무신 말이고 허니, 우리 중대원덜이 괴기
국 한 끄니 안 묵기로 만장일치 동의헌 것이 요 소다리짝이고, 나가 개인돈얼 내서 보충해
놓게 허고 변통헌 것이 요 무명필이다 그것이여. 요래도 원칙 위반인게라, 지도원 동지이?"
노만석은 고개를 쭉 늘여 조원제를 빤히 들여다보며 말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있었다. 조
원제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끼며 눈길을 떨구고 말았다.
"글고 말이여, 환자트에 워디 조 동무 혼자만 있간디? 이참저참혀서 다른 환자들도 보신
잠 더 허고 그러는 것이제. 긍께로 원칙얼 지키기넌 지키는디 유도리가 있게, 아니시, 아니
시, 안직도 요놈에 쌧바닥꺼지넌 사상무장이 덜 되야갖고 왜눔말이 튀나오고 그렁마. 왜눔말
일단 취소허고, 긍께로 맘 쪼깐 넉넉허니 묵고 살살 혀, 살살, 뻣뻣허기만 허먼 뿐질러져뿔
고, 자리가 높음스로 땁땁허먼 사람이 안 딸른 법잉께로. 조 동무말이시, 사사로운 자리서
나가 요렇크름 말얼 놓는 것도 원칙 위반잉께 당장에 원칙대로 존대럴 붙이까?"
"와따 중대장 동무, 너무 그리 몰아치지 마씨요. 무신 말인지 다 알아묵었고, 나가 면목이
웂어서 똑 죽을 것 겉으요."
조원제는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조원제는 노만석이 돌아가고 나서도 그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그의 말이
옳고, 그는 훌륭한 조직운영자이면서 원칙실행자였던 것이다. 그보다 학력이 조금 높고, 당
사나 좀더 많이 외우고, 논리적인 단어나 얼마만큼 많이 늘어놓을 줄 아는 자신에게 조원제
는 심한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일은 또 하나의 기억과 연결되었다. 출판과장을 놓고 이태식과 벌였던 사유재산 시비
였다.
오랜 교단생활의 경험으로 출판과장은 어려운 이론을 아주 쉽게 풀어서 강연하는 솜씨로
지구의 모든 대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특히 배움이 없는 기본출들에게 그 인기는 절대적
이었다. 그 인기는 인기로 끝나지 않고 기본출들 거의 출판과장을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가
주로 하는 강연은 '사회발전사'였다. 인간의 원시생활과 노동의 시작, 노동의 신성과 평등,
농경생활과 집답사회, 공동경제사회와 정치권력구조, 봉건사회와 경제 착취, 착취의 부당성
과 노동신성권의 회복, 혁명의 필요성과 인민이 주도하는 혁명, 이런 단계로 풀어가는 강연
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웠고, 설득력이 강했다.
"출판과장 동지 강연얼 듣고 나께 이 시상이 대낮맹키로 훤허게 보이네."
"긍께로 말시. 눈이 번허게 열링마."
"듣고 봉께 우리가 시상얼 속고 속고 또 속음서 헛지랄만 허고 산 것이여."
"참말로 원통허고 절통헐 일이제."
"어허, 긍께로 혁명으로 나서야제. 그 존 말씸 듣고도 앞으로 나슬 생각 않고 죽은 자석
붕알만 맨진당가!"
"옳여! 썩은 시상 다 때래뿌식뿌러야제. 혁명혀야 혀!"
"하먼, 우리 권리 찾아나서야제!"
강연을 듣고 난 기본출들은 이렇듯 감동하고, 자각하고, 결의하고 되었다.
의식무장이 안 된 입산자들을 집단적으로 교육시키는 데 출판과장의 강연은 더없이 효과
적이었다. 출판과장은 연일 강연을 다녔고, 한번 들은 대원들이 또 다른 강연을 원해서 부대
마다 다투어 새 강연을 청하기에 바빴다.
대원들이 출판과장 앞에서 허리를 반을 꺾어 깊이 절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고, 멀
리서 일부러 달려가 절하는 대원들도 많았다. 그런존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투를 나
간 대원들은 출판과장에게 선물할 물건들을 따로 챙기게 되 것이었다. 꿀, 조청, 약과 같은
것을 손에 넣게 되면 출판과장에게 갖다주었고, 그런 귀한 것을 구하지 못한 대원들은 지고
온 쌀을 축내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출판과장에게는 먹을 것이 쌓이다. 못해 사유재
산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유재산얼 소유하는 것은 원칙위반이오."
조원제는 정색을 하고 나섰다.
"아서,아서,조 동무. 고걸 그리 한 가닥만 보지 마씨요. 고 물건덜얼 과장 동지께서 원허신
것이 아니라 존경의 맘으로 쪼깐씩 갖다디린 것이야 다 아는 일 아니오?"
이태식이 고개를 저어댔다.
"동기야 그렇제만 결과적으로 사유재산얼 소유헌 것이야 틀림웂이 원칙위반인디요. 고것
문제제라."
조원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허, 그눔에 원칙. 사람 참 땁땁허시. 글먼 묻겄는디, 그 사유재산얼 뒤로 빼돌렸소?"
"그러지넌 않제라."
"떡이고 식혜럴 과장 동지 혼자 다 묵고 배탈이 났소?"
"그도 안 그렇제라."
"글먼 해결난 일 아니겄소? 과장 동지가 아무리 마다고 혀도 대원덜언 선사럴 해대제, 쌀
이 쌯잉께 과장 동지넌 헐수할수웂이 떡얼 허고 식혜럴 맹글어 대원들헌테 도로 갈라믹이는
것 아니겄소? 결국에 과장 동지넌 사유재산이 하나또 웂는 심이요. 워째 나 말이 틀렸소?"
조원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조 동무, 원칙 잘 지킬라고 허는 것이야 참 존 일인디, 원칙도 다 사람 살라고 하는 것잉
께 그리 무시 치대끼 생각덜 마씨요. 이 시상에 사람보담 중헌 것이 따로 웂응께."
이태식의 조용한 말이었다. 그러나 출판과장에게 전해지는 선물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양
식이 바닥나는 계절로 접어들면서 자연히 없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비트들이 그렇듯이 환자트들도 많은 골짜기를 따라 그 어딘가에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환자트는 병기과 비트처럼 땅을 파내려간 굴이 아니었다. 반드시 물이 가까
이 있는 지점에 설치되는 것은 같았지만, 환자트는 가시덤불숲이거나 칡덤불 같은 것이 잡
목과 우거져 자연은폐를 이루고 있는 곳에 움막을 치거나 비탈을 파내 반쪽굴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환자트는 병기과의 비트나 너덜겅 밑의 곡식저장굴처럼 위장이 완벽하지는 못해도
그 은폐가 아주 교묘해서 어지간한 눈이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환자트
에 며칠 간격으로 차질없이 공급되는 양식은 후방부 요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때 이런저런 약품들도 들어오고는 했다. 미군야전용 다이야찡 가루 한 봉에 의무과장은 환
성을 지르기도 했고, 머큐로크롬 한 병에 목이 메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때는 큼직한 조
개껍질을 한지 띠로 두른 약 아닌 약이 들어와 의무과장을 실망시키거나 짜증나게 만들었
다. 한지 띠에는 용도가 씌어 있었지만 의무과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던져버렸다. 그건
바로 정체불명의 떠돌이 약장수들이 파는 사제품이었다. 약에 따라 그렇게 감정이 민감하게
달라지는 의무과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원제는 의사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치료
약을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화선에 나서는 전사가 화력 좋은 총알을
넉넉하게 갖기를 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환자트에서는 막소주도 소금도 약품이었다. 소주는 수술 마취제와 소독제였고, 소금물도
고름을 닦아내는 소독제였다. 그러나 한두 잔 마시게 하는 소주의 취기가 생살을 찢는 수술
의 통증을 잊게 해줄 리가 없었다. 더러 파편을 빼내는 수술을 할 때마다 목 찢어져나가는
처절한 비명 소리는 골짜기를 흔들어대고는 했다.
환자트에는 특별한 규율은 없었지만 대변 처리만은 엄격하게 지켜야했다. 똥은 가능하면
밤에 누고, 그것은 반드시 표나지 않게 땅에 묻어야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땅에
묻되 표가 나서는 토벌대에게 트 위치를 발각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땅에 묻지 않으면
그 냄새를 맡고 날아온 까마귀가 상공을 맴돌아가며 내려앉기 때문에 토벌대가 트의 위치를
알아채게 되었다. 까마귀는 사람의 시체만 뜯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똥도 즐겨 먹었던 것이
다. 까마귀가 떼를 지어 맴돌이하는 곳 에는 시체들이 있고, 한두 마리가 선회하는 곳에는
아직 썩지 않은 똥이 있다는 것쯤은 토벌대들도 다 알고 있었다. 대변의 뒷처리를 야무지게
해야 하는 것은 환자트가 완전 비무장상태인데다가, 무장대는 화선투쟁에 나서기도 바빠 무
장보호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똥을 묻지 않는 사소한 실수 같은 것으로 환자트가 발각당하
면 꼼짝없이 몰살이었다. 토벌대에게 발각된 환자트 사방에는 언제나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토벌대가들이치는 순간 비무장인 환자들은 제각기 도주하다가 총을 맞고 죽는 것이었다.
환자들은 트에서 무위도식만 하지는 않았다. 어느만큼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들은 후방부
의 일을 거들었다. 그건 담배썰기였다. 후방부에서 가져온 잎담배를 서너 장씩 말아 자살용
칼로 실담배를 만들어 다시 후방부로 돌려 보냈다. 그 실담배는 대원들에게 나누어지는 것
이었다. 그 일이 대원들을 위한다는 의미는 접어두더라도, 회복기의 환자들에게는 그 일 자
체가 일종의 구원이었다. 그 일을 하게 되면 그 괴로운 가려움 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이다. 담배썰기를 하려면 두 손이 다 필요하기 때문에 우선 두 손을 묶을 수 있었고,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자연히 생기게 마련인 성취욕구에 의해 담배를 더 가늘고 고르게 썰려고
정신을 모으게 되어 가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담배썰기가 소일거리도 된다는 것은 그 다음
에는 오는 덤이었다. 조원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담배썰기에 몰두했다. 그는 상처가 큰 만
큼 가려움도 심했던 것이다. 그가 몰두를 하는 만큼 썰어낸 실담배의 볼품은 누구 것보다
좋았다. 조 동무는 해방되면 전매청장할 거냐고 사람들이 놀렸다.
점심으로 배당된 밀 한 주먹씩을 생으로 우물거리며 모두 담배썰기를 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참이라 불을 피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총소리들이 산울
림으로 여울져가며 아슴푸레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환각적이고 몽환적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멀찍이서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뒤따라 사람들이 말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은 모두 담배썰기를 멈추었다. 그들의 눈길이 의무과장에게로 쏠렸다. 의무과장은 벌써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무과장의 뒤를 따라 그들은 트 밖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었다. 아래쪽 숲 사이로 서
너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자지러지는 신음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다 왔소, 쪼깐만 참으씨요."
숨이 가쁜 소리였다.
의무과장이 후적후적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갑자기 침울해져 아래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의무과장과 함께 올라오고 있는 것은 들것이었다. 가마니로 만든 들것에는
손을 내저으며 계속 신음하는 사람이 실려 있었다. 그들은 트의 위장문 앞에서 비켜서며 서
로를 쳐다보았다. 침울했던 그들의 얼굴은 이제 어두워져 있었다. 들것에 실려올 정도면 목
숨에 위험은 없더라도 중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켜선 그들 앞으로 들것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저, 저 사람..."
조원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더듬거리고 있었다. 들 것을 뒤에서 들고있는 사람은 땀범벅
인 얼굴로 조원제를 힐끗 쳐다보았다. 조원제가 급히들 것을 따라붙으며 다시 환자의 얼굴
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아이고 오마니, 나 좀 살려주시라요, 나 죽갔시요오."
들것이 트로 들어가며 환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이북 사람인디, 아는 사람이요?"
옆에 선 사람이 조원제에게 물었다. 조원제는 아무것도 보는 것 없는 빈 눈길을 앞에다
둔 채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아랫배짬이 피투성이가 되어 들것에 누워 있는 것은 틀림
없이 그 인민군이었다. 작년 구월하순의 북상길에서 총알을 놓고 시비가 붙었던 그 인민군.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민군복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
민국복은 너무 표가 나서 입산 초기에 벌써 후방부에서 만든 옷 이나 국방군복으로 바꿔입
기 시작했고, 굳이 인민군복 입기를 고집한 사람들도 그 동안의 거친 산생활로 다 헐고 찢
어져 다른 옷으로 갈아입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결국 북상을 하지 못했군... 그렇겠지, 도당도, 염상진 동지같은 사람도 발길을 되돌
렸으니까... 그는 그 동안 어느 지구에 있었을까... 찾아헤매던 중대장은 찾은 것일까...
"아이쿠 오마니이, 나 죽갔어! 동지, 의무관 동지, 나 좀 살려주시라요. 나 죽어도 오마니
있는 고향에 가서 죽갔시오. 그때까지만 살려주시라요. 아우, 야야야야..."
환자트에서 터져나오는 절규였다. 의무과장이 진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원제는 마
른침을 삼켰다. 그의 부상이 자신처럼 기적적(?)이기를 바랐다. 그가 불러대는 귀에 선 '오
마
니'라는 소리가 그리도 절망적일 수가 없었다. 조원제는 잡히는 대로 풀줄기를 뽑아 잘근
잘
근 씹어대고 있었다.
간호병을 앞세우고 의무과장이 트에서 나왔다. 조원제는 그쪽으로 걸음을 빨리 옮겼다.
"어두워지기 전에 수술을 해야겠소. 빨리 좀 끓이시오."
의무과장이 간호병에게 지시했다.
"워디럴 다쳤는게라?"
조원제가 물었다.
"오른쪽 허벅지하고 아랫배 사이에 파편이 박혔소."
얼굴이 냉정해진 의무과장의 대답이었다.
"근디, 어쩌겄는게라?"
"글쎄... 위치가 고약해서 아직 잘 모르겠소. 참, 조 동무가 불 피우는 걸 좀 거들어주겠
소?"
"하먼요, 그러제라."
의무과장은 곧 트로 들어갔다.
조원제는 간호병을 제치고 연기가 나지 않게 때죽나무를 우물 정자로 걸쳐놓고 불을 피웠
다. 수술기구가 끓는 동안에도 환자는 계속 신음과 함께 어머니를 외쳐부르고 있었다.
수술기구가 트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으악! 아으 아아아아..."
곧 죽는 것 같은 발악적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비명은 끊일
줄 모르게 길게 이어지며 골짜기를 울려대고 있었다. 그 피를 토해내는 것 같은 소리의 힘
으로 풀들도 떨리고, 나뭇잎들도 떨리고, 바위들도 금이 가는 듯싶었다. 주먹을 부르쥐고 선
조원제는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환자들도 제각기 침묵에 빠져 있었다.
"아으 나 죽어어! 오마니, 나 여기서 죽기 싫으니까 나 좀 데려 가시라요오, 오마니이-"
그리고 비명은 뚝 끊어져버렸다. 모두의 고개가 환자트로 돌아갔다. 긴장된 얼굴들에 의문
이 서려 있었다.
"죽어뿌렀으까!"
누군가가 침묵을 깼다.
"금메, 그 소리가 쪼깐 요상허기넌 혔는디..."
누군가의 자신없는 말이었다.
"아니오, 혼절혔을 것이오."
조원제의 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완강했다.
아무도 더는 말이 없었다.
먼 산울림으로 들리던 총소리의 기세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맑게 높아진 하늘에 날개짓
느린 새가 서너 마리 날아가고 있었다. 옆의 산등성 이를 넘어오는 바람결이 선뜻하게 느껴
지면서 풀벌레 소리가 가느다랗게 울리기 시작했다.
환자트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의무과장이었다. 조원제는 그에게로 빨리 걸어갔다. 얼굴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그는 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워찌 됐는게라?"
"복막이 다치지 않았길 바랐는데, 상하고 말았소. 내출혈이 너무 심해서 어려울 것 같소."
의무과장은 먼 곳을 바라본 채 고개를 저었다. 조원제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옆구리의
상처가 긴 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뜨끔 결렸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왼손으로 옆구리를
받쳤다. 그 인민군이 어머니를 부르는 외침이 쟁쟁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 인민군은 혼수상태인 채 자정 무렵에 숨이 끊어졌다. 그가 남기고간 것은 환자트에 가
득한 피비린내뿐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부터 땅을 파기 시작했다. 여덟 명의 환자는 부실한 연장들을 가지고 묵묵
히 땅을 파기만 했다. 연장이 시원찮아 땅을 깊이 팔 수는 없었다. 그가 실려온 가마니를 뜯
어 한 자락을 깔고, 한 자락은 덮다. 봉분 없는 그의 무덤은 산풀들로 덮였다.
"동무들, 이 인민군 동무가 어지께 소지질르는 말 다 들었제라? 이북동무들은 다 그리 고
향땅에 가고 잡아 험스로 수천리 타향땅에서 이리 죽어가고 있소. 거그에 비허먼 고향땅에
서 죽을 수 있는 우리넌 을매나 큰 복이오. 이점 생각혀서, 우리가 다 이북 동무덜헌테는 감
정이 쪼깐썩 안 좋은디, 앞으로 그런 맘 다 웂애고 진심으로 잘 대허도록 헙씨다."
조원제의 침통한 말이었다.
"야아, 존 말씸이구만이라. 지도원 동지 말씸대로 허겄구만요."
누군가가 대꾸했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몸들 나서갖고 부대로 돌아가먼 오늘 이약 차근허게 혀서 다른 동무덜도 그리 허게
맹글어주씨요."
"하먼이라."
"그리허제라."
서너 사람이 대답했다.
조원제는 갓 피어난 갈대꽃 하나를 꺾었다. 무덤을 덮고 있는 풀들 사이에 그것을 꽂았다.
같은 나이 또래인 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조원제는 흰 갈대꽃이 바
람결에 가벼이 흔들리는 것을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가 돌아섰다.
환자트에 긴급대피령이 내려온 것은 이틀 뒤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세 명씩 소조를 이루
어 대피에 들어갔다. 대피령은 토벌대가 공격해 오는 골짜기와 등성이에 따라 그때그때 내
려오고는 했다. 만일의 위험에서 환자들은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그 동안 두 차례의 대피경
험이 있어서 그들의 신속한 움직임에는 여유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승리고지 산마루를 넘어 골짜기를 타고 내려갔다. 토벌대는 해방구에서 공격해오
는 것이고, 아직도 해방구를 사이에 둔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쩌그 양쪽 등성에서 쌈이 붙을 것잉께 요 골짝 밑으로 퍼져서 피허씨요. 글고, 쩌 통명산
새끼맹키로 생긴 고지럴 우리가 점령허먼 만세 두분, 개덜이 점령허면 만세 한 분얼 불를
것잉께, 그 신호를 듣고 움직기리씨요덜."
선요원이 길을 바꿔 떠나며 남긴 말이었다.
그들은 각기 조별로 분산했다. 조장인 조원제는 은신처를 찾으며 비탈을 내려갔다. 왼손으
로는 옆구리를 받치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두 사람은 똑같이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하나는 무릎뼈 부상이었고, 또 하나는 발목 부상이었다. 조원제도 몸 움직임이 자유
롭지 못했지만 걷는 것은 그중 나은 편이었다.
조원제는 골짜기가 휘어져 돌며 다른 산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발을 멈추었다. 만일 토
벌대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더라도 곧 옆의 산줄기로 붙기 위해서였다. 키 작은 잡목들 사
이의 풀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골짜기 위에서 총소리가 울
리가 시작했다. 조원제는 눈을 감았다. 총소리의 울림이 유난스러웠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
고 양쪽 등성이에서 맞총질을 해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지형적으로는
총알들이 난무하는 아래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토벌대가 해방구 쪽에서 공격을 하고, 이쪽에서 승리고지를 비롯한 외곽고지 밖에서 전투
를 벌이는 것은 해방구를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해방구를 다 잃게 되면... 투쟁
할 산이야 얼마든지 남아 있지만 투쟁은 그만큼 어렵고 불리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식량확
보도 그렇고, 그 많은 비무장대원들의 보호도 그렇고... 또 사기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다. 자
꾸만 물을 잃어가는 고기들이 아닌가... 해방구를 장악했던 투쟁이 일년, 어쩌면 적들의 그
막강한 화력 앞에서 그 세월은 기적처럼 길었는지도 몰랐다. 그 동안 도당 전체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반 가까이 죽지 않았을까, 아니 반이 넘을지도 모른다. 돌림병 재귀
열로 그리 떼죽음을 당했고, 또 싸우면서 수없이 죽어가지 않았나... 반으로 잡아도 그 수가
얼마인가... 만여 명이 죽은 것이다. 정규군이 아닌 인민들이 그렇게 죽어간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죽어간 것인가... 더 말할 것도 없이 인간해방의 역사를 위해, 인민행방의 세상을
위해... 그들은 짓밟히는 인간으로 주저앉아 있지 않고 스스로 전사가 되어 불의의 역사와
맞서 싸우다가 죽어간 것이다. 빨치산-자각한 인민들이 전사로 뭉쳐진 덩어리. 강제가 없는
그 자주적 군대는 가장 순수한 혁명의 동력이고, 바로 인민의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그들
의 피는 가장 순결하고 가장 뜨겁다. 그래서 그들이 죽어가면서 뿌린 피는 고결하고, 그 피
는 참다운 인민의 역사를 키운다. 그 역사는 기필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역사의
성취를 위해 몸 내던져 죽어간 인민전사들은 전남도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차이
가 있을 뿐 도당마다 다 있는 것이다. 그 수를 다 합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수만명... 그
러나, 그러나, 아직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투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구빨치들이 그
랬던 것처럼. 앞서 죽어간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 앞에서 지금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은 죽음을 건 투쟁뿐이다. 투쟁을 통한 죽음은 의무가 아니다. 앞서간
동지들이 보여주었듯이 그건 권한이다... 인민해방의 역사를 창출하기 위한 권한이다...
조원제는 언제나처럼 감정의 뜨거운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눈을 꼭
감은 그의 입에서는 무엇엔가 억눌린 소리가 무슨 신음처럼 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총소
리들이 강약의 물굽이를 이루며 계속 울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외침이 가끔씩 그 사이에 섞
이고 있었다.
"인자 저 잡녀러 새끼덜이 공화국 시간도 안 무서바 헌당께로."
조원제의 왼쪽에 쪼그리고 앉은 남자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기운이 씨졌다 그것 아니겄소."
맞은쪽에 앉은 남자가 말을 받았다.
"저 잡것덜이 갈수록 심이 씨지는 모냥인디, 은제꺼정 그럴께라?"
"금메 말이요, 영 지랄 겉은 일인디... 고것얼 워찌 알겄소?"
"휴전얼 헌다헌다 해쌓는디, 휴전이 되면 그짝 병력이 이짝으로 왈칵 내리밀리는 것 아니
겄소?"
"이, 그럴란지도 모를겄소. 그리 되면 우리가 큰탈나불 것인디, 으쩌제라?"
조원제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길이 왼쪽사람에게 박혔다. 그리고 눈동자가 오른쪽으
로 느리게 움직였다.
"동무덜..." 조원제의 목소리가 낮고 무거웠다. "동무덜언 앞날이 걱정인 모냥인디, 그리
걱정헐 것 웂소. 우리헌테넌 당이 있고, 항꾼에 목심 걸고 싸우는 동지덜이 있소. 근디 머시
가 걱정이고, 머시가 겁나시요? 물런 동무덜 맘 몰르는 것이 아닌디, 목심이 위태혀지먼 겁
안 묵을 사람 이 시상에 하나또 웂을 것이오. 허나, 고것이야 지 욕심밖에 못 채리는 쫌팽이
쌔끼덜이 허는 짓거리고, 동무덜이야 새시상 맹글겄다고 총 들고 나슨 전사덜 아니오? 글먼,
우리보담 먼첨 죽어간 동지덜얼 생각해 봇씨요. 그 동지덜이 재수가 웂어서 먼첨 죽었겄소?
명이 짧아서 먼첨 죽었겄소? 그것이 아니오. 그 동지덜언 우리럴 대신혀서 먼첨 죽어간 것
이오. 우리헌테 날라오는 총알얼 그 동지덜이 먼첨 맞고 죽었다 그것이오. 글먼 우리넌 인자
워째야 쓰겄소! 그 동지덜 원수를 갚어야 쓸 것 아니겄소? 그 원수들이 또 우리럴 죽일라고
뎀비는디 맞대거리고 싸와야 쓸 것 아니겄소? 새시상 맹글기 바랬든 뜻 못 이루고 원통허게
먼첨 죽어간 동지덜이 사방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우리를 뻔하니 쳐다보고 있소. 그러고, 당
도 건재허고, 모든 동지덜도 용맹시럽게 싸우고 있소. 동무덜언 워째야 허는 것이 좋다고 생
각허요?" 조원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성적이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지도원 동지, 면목웂구만이라."
"지도원 동지, 다시넌 고런 짜잔헌 소리 안허겄구만이라."
두 사람은 고개를 수그렸다. 조원제는 그들의 손을 덥썩 잡았다.
"동무덜, 믿으씨요. 우리가 바래는 시상이 꼭 올꺼싱께. 고것얼 믿고 용감하게 싸웁시다.
그러다가 죽으먼 아까울 것이 머시가 있소. 우리 뒤에는 또 우리 뜻얼 따라 싸우는 동지덜
이..."
"지도원 동지! 쩌그 저 만세 소리!"
오른쪽 대원의 다급한 말에 조원제는 말을 중단했다. 그리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만세 소리?"
"야아, 만세소리가 났구만요."
"멫 분이요?"
"두 분인디요."
"틀림웂소?"
조원제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다. 말에 취해 그 소리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럴 것인디요..."
그 대원은 약각 더듬한 얼굴이 되었다. 조원제는 미심쩍어 골짜기 위쪽으로 귀를 기울였
다. 총소리가 걷힌 그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만세는 약소대로 한차례 불렀으면
그만이지 계속 부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갑시다. 우리가 이겼는갑소."
조원제는 풀덤불을 헤쳤다.
조원제는 당원이면서 정치지도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다시 앞장섰다. 아까 피신을 하
려고 골짜기를 내려갈 때보다는 다시 올라가는 것이 한결 마음도 몸도 가벼웠다. 조언제는
빨리 걸으면서도 물들기 시작하고 있는 나뭇잎들과, 언제나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을 눈에 담으며, 아아, 벌써 가을인가! 하는 감정의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
다.
골짜기를 절반쯤 넘어섰을 때였다. 앞에 인기척을 느끼며 조원제는 반사적으로 발을 멈추
었다. 아니다 다를까, 숲 사이에서 사람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아니, 저게 뭔가! 조원제와
두 사람은 딱 굳어지고 말았다. 이십여 미터나 될까, 비탈 저 위에서 까딱까딱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은 경찰이었다.
"여기야, 이리 와, 이리!"
총을 세워 들고 있는 경찰은 빠른 손짓과 함께 낮춘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헛것
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은 비무장인 자기네들을 자수자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조제원는 퍼뜩 깨달았다.
"우측 사면!"
조원제는 돌아서며 외쳤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서라! 안 서면 쏜다"
뒤에서 외쳤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귀에 그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세 사람은 마치 성한 사람들처럼 오른쪽 비탈
을 향해 제각기 내달리고 있었다. 조원제의 옆구리를 받치고 있던 왼쪽 팔은 오른쪽 팔과
똑같은 모양으로 힘차게 엇갈리며 허공을 쳐내고 있었고, 두 사람의 발도 절룩거림 없이 길
도 없는 비탈진땅을 박차대고 있었다.
탕! 타당! 탕!
세 사람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들의 뜀박질은 더 빨라지고 있었다.
타당, 탕! 탕, 탕!
총소리는 더 많아졌다. 그들의 옆이고 뒤에 총알이 푹푹 박혔다.
그때 오른쪽 등성이에서도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여럿의 목소리
가 합쳐져 외쳐댔다.
"이 새끼들아 쏘지 마라, 환자다아!"
"환자다, 환자! 쏘지 말아라아!"
그 외침이 조원제의 가슴을 콱 막히게 했다. 그는 눈물이 울컥 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동
지들을 향해 더 세게 달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쏘지 말어! 환자야!"
"더 씨게, 더 씨게 뛰어!"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오른쪽 등성이에서는 총소리와 함께 이런 외침과 응원이 뒤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비탈로
너덧 사람이 총을 난사해대며 달려내려오고 있었다. 환자구출에 나선 돌격대였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조원제를 끌어안았다.
"조 동무, 나 눈앞에서 조 동무럴 죽이는지 알었소!"
그 사람이 격하게 한 말이었다. 조원제는 비틀거리며 그 사람이 연대장 이태식인 것을 알
아보았다. "나 동상허제, 동상. "평소에 이태식이 농담처럼 하곤 했던 말이 떠오르며 조원제
는 눈물이 울컥 솟았다.
"연대장 동지!"
조원제도 이태식을 끌어안았다. '강철' 말고도 '백아산 호랑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지
닌
이태식의 눈에 눈물이 엷게 번지고 있었다.
이태식의 부축을 받으며 등성이로 올라와서야 조원제는 옆구리가 견딜 수 없도록 아픈 것
을 느꼈다.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터져버린 것처럼 쑤시고 화끈거리고 쥐어짰다. 몸을 잔득
웅크린 채 옆구리를 감싼 그는 어이없는 쓴웃을을 짓고 있었다. 그 목숨을 건 한바탕 굿은
물론 신호를 잘못 들어 그렇게 된 것이었다.
"나가 워째 찾아가보고 잡은 맘이 웂었을 것이오. 맘이야 하로에도 열분도 더 일어나도
트에 워디 조 동무 혼자뿐이간디. 딴 부하들도 있는디 조 동무헌테만 표나게 헐 수 웂는 일
이고... 아픈 디가 에진간허먼 트에서 나오제 그려. 신색이 많이 상혔는디, 위험시런 고비 넘
겠으먼 그 담 부터야 묵는 것이 실해야 병도 얼렁 낫고 사람 몸도 지대로 넘겠으먼 그 담
이오. 후방부에서 지아무리 열성으로 묵을 것얼 댄다 혀도 고것이 워디 부대허고 댈 것이나
있간디. 다 아는 일이제만, 부대야 움직이다 보면 과외 것도 생기기도 헌께. 의무과장허고
의논혀서 하로라도 얼렁 나오도록 혀, 조 동무."
이태식이 헤어지기 직전에 간곡하게 한 말이었다.
환자트에 돌아와서 보니 아물었던 옆구리의 상처는 손가락길이만큼 다시 터져 있었다. 굳
어진 피를 물고 벌어져 있는 상처를 내려다보며 조원제는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
했다. 흉터의 길이가 한뼘이 넘는 중에서 가운데가 그 정도 벌어지고 목숨을 구한 것을 생
각하면 별로 억울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옆구리의 흉터는 자신이 보기에도 끔찍하고 흉측
스러웠다. 총알이 헤집고 지나간 자리는 푹 패인 채 살이 우둘투둘하게 되어 아물어붙어 있
었다. 그리고 그 색깔이 다른 피부와 달리 거무 칙칙하게 붉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물린 자
리는 주위의 살을 잡아끄는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흉터는 총알이 지나간 자리만이 아
니라 그 주위까지도 흉터인 것처럼 보여 엄청나게 크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상처가 그
렇게 못난 것을 조원제가 불평하자, 의무과장은 의학치료를 못하고 자연치료가 되어 그렇다
며 민망하게 웃었던 것이었다.
"더 무슨 약물치료를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까 환자트에 머무는 건 요양치료 정도인 셈이
지요. 이 상태에서 부대로 돌아가는 건 별 무리가 없겠지만, 아문 자리가 그리 됐으니 부대
로 감고 여기서 한 사나흘 더 지내다가 가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 자리가 다시 발리 아물
어야지 무리해서 움직이다가 덧나기 시작하면 참 곤란해집니다."
의무과장의 말이었다.
조원제는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덧나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통증이 심해 떠나라고
해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함께 변을 당한 두 사람도 상처의 통증이 도져 끙끙 앓아대
고 있었다. 그런데 만세 소리를 잘못 들었던 사람이 더 심하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
원제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그저 비식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벌써 다른 환자들에게 한바
탕 면박을 당했던 것이다. 그 사람의 실수는 세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것이
었지만, 결과가 무사하게 된 이상 굳이 들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실수를 따지자면 그
궁극적인 책임은 조장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조원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이 어
쨌든간에 만세 소리를 놓친 것도 그렇고, 직접 확인이 안 된 상태로 행동을 개시한 것도 그
랬다.
조원제는 사흘 뒤에 환자트를 떠났다. 시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동안 한 달 반이 지나
가 있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감각은 별것이 아닌데 그 동안에 일어난 시각적 변화는 엄
청났다. 짙푸른 녹음을 헤치며 환자트를 찾아들었는데 그 녹음이 단풍 드는 것을 보면서 환
자트를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대로 돌아오니 더 크고 많은 변화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부
대원들이 얼굴이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얼굴들은 딴 부대로 간 것이 아
니라 그 동안 죽어간 것이었다. 그 다음이 지구 재편성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 비무장대원들
을 지리산으로 피신시키는 작전이었다. 각 지구의 해방구가 유린되면서 비무장대원들의 보
호가 어렵게 되자 취해지는 불가피한 조처였다. 여순항쟁 때 그러했든 지리산은 또 피신투
쟁지로 선택된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지난 구월 이십일에 이승만이 휴전수락 사대 원
칙을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정전반대국민대회를 극성스럽게 열어대던 그 영감이 휴전을 '
수
락'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투쟁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정치국면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휴전수락 사대 원칙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조원제는 하늘을 보고 한
참이나 웃어야 했다. 중공군 철퇴, 북한군 무장해제, UN감시하 총선거, 휴전조건 동의기간,
회담종결 기한 설정이 그것이었다. 이승만의 그 원칙을 뒤짚어놓고 보면, 남쪽에는 UN군
주둔, 남한군 무장유지, UN보호하 강압선거가 되었다. 휴전협정의 '협정'이란 말뜻을 최소
한
이나마 안다면 그 따위 잠꼬대 같은 일방적 주장은 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의 권력
장악과 그 유지를 위해서는 무슨짓이든 서슴지 않는 파렴치하고 뻔뻔스런 늙은이의 또 다른
작태를 보
며 조원제는 옆구리가 결리도록 헛웃을 칠 수밖에 없었다. 끝으로, 네번째의 소식은 너무나
통쾌했다. 그러나 통쾌한 만큼 실망을 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그 신화
적인 인물인 이현상의 부대 '남부군'의 곡성읍 전체와 그 인접지역 점령에 대한 것이었다.
"긍께로 구월 삼십일 자정에 남부군이 우리 도당 백운산부대허고 합동작전으로 곡성을 들
이쳤는디, 새북꺼지 깨끔허게 읍내럴 묵어불고, 오곡지서꺼지 손 안에 넣었구마. 구례 쪽이
고 남원 쪽이고 질이란 질언 남부군 손에 다 맥히고, 곡성은 완전허게 해방구가 된 것이제.
시뻘건 대낮에 신작로럴 턱턱 막고 선 남부군덜얼 봉께 그 뱃보허고 용감시런 모냥이 참말
로 기맥히등마. 소문에 듣든 대로 천하무적이란 말이 바로 저것이로구나 허고 탄복이 절로
나왔제. 금메, 곡성으로 진격험스로도 대낮에 행군얼 혔당께 무신 말얼 더 허겄어. 빨치산이
'밤손님'이란 말얼 싹 뒤집어뿐 것이제. 근디, 남부군 작전은 곡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
었
어. 곡성 담으로 광주럴 치고 들어간다고 혀서 우리 백아산지구도 합동작전에 나슬라고 단
단허게 준비럴 혔제. 광주럴 새로 접수헌다고 생각헌께 그 심정얼 참말로 말로 다 헐 수가
웂드란 말시. 대원들이 모다 새 기운얼 체리고 나스는디, 남부군이 따로 웂었제. 근디 말이
여, 본시 곡성 것덜이 싹수웂이 경찰 쪽에 많이 붙고, 보투에도 질로 협조럴 안 허는 느자구
웂는 땅 아니드라고? 요분 참에도 그 행투럴 또 부려서 젊은눔덜이 경찰허고 붙어서 저항얼
벌인 것이여. 경찰에, 의경에, 청년단에, 새로붙은 눔덜꺼지 합친게 그 수가 수백 명인디, 요
것덜이 여그저그서 찝쩍기리고 뎀빈께 광주로 치고들어가기 전에 그것부텀 쓸어얄 것 아니
라고, 그러고 있는 판에 얼토당토않는 일이 터져뿌렀어. 아 금메 남원 쪽에서 경찰 전투사령
부 병력이 기차로 느닷웂이 곡성 읍내로 들이닥쳐뿐 것이여. 그 가당찮은 일이 워찌 벌어졌
냐 허먼, 외곽방어럴 맡고 있든 남부군 일부가 맘얼 턱 놓고 놀고 있는 새에 기차가 통과혀
뿐 것이드라 그것이여. 기차에서 쏟아진 적덜이 공격얼 해대는 디다가, 전남경찰국에서 또
기동대가 몰아닥친 것이로구만. 그렁께 남부군은 두 패로 갈라져서 협공을 당허는 꼴이 되
야뿐 것이제. 헹펜이 그리 된께 남부군이라고 워쩌겄어. 병력도, 화력도 딸린께 도로 지리산
으로 물러슨 것이제."
이태식이 허탈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참 맥빠지고 싱겁게 되야부렀소이. 그 씨다는 남부군이 워째 본전치기도 못되는 고런 일
얼 혔는지 몰르겄소?"
조원제도 떫은 입맛을 다셨다.
"지내놓고 찬찬히 따져봉께 남부군 작전에 문제가 많아. 경찰이 그리 빠르게 양쪽에 들이
닥친 것은 남부군이 대낮에 헹군얼 헌 것 땜시여.자신있게 행동허는 것이야 존디, 고것이 적
얼 끌고 댕낀 꼴이 되야부렀어. 글고, 그리 쉽게 물러슬람서 적이 날로 씨져가는 판에 멀라
고 곡성얼 쳤나 그것이제. 남부군 실력얼 한분 뵈잔 것이먼 몰라도, 이문 본 것이 암 것도
웂는 그런 작전은 빨치산 기본전술에도 어긋나는 것이로구만. 남부군얼 새로 봐야 쓰겄어."
이태식은 아주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금메 말이요, 쌈이 다 끝난 것도 아닌디 기차가 그냥 통과허도록 방어럴 허술허게 헌 남
부군도 우섭고, 적진으로 무작정 들이닥친 경찰도 우섭고 그렇구만이라."
"바보허고 바보허고 붙은 쌈에서 더 바보가 이게뿐 것이 요분 쌈이여!"
이태식의 일갈이었다.
조계산지구도 지리산으로 피신시킬 비무장대원들을 편성하느라고 한창이었다. 비무장의
범위는 원시무장까지 포함시켰다. 그러나 비무장대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내지는 않았다.
일단 그 원칙을 정해놓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무장대원과 비무
장대원이 바뀌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무장대원이 지리산으로 가기를 원하면 무기를 반납하
고 비무장대원 되었고, 비무장대원이 지리산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으면 무장대원으로 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아 부대편성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비무장대원들의 지리산 이동은 단순히 피신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건 모든 지구의 투쟁
력 정예화였다. 토벌대의 세력확산으로 해방구들을 잃게 괴고, 그에 따라 신속한 기동성을
발휘하는 산악이동투쟁이 본격화되었다. 그런데 해방구의 투쟁인민들까지 포함한 비무장병
력을 전투 때마다 안전지대로 이동시키고 보호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연대는 통 그
연대의 병력보다 두세 배가 많은 비무장들을 이끌게 되었다. 그건 이동투쟁의 생명인 기동
성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기동성의 약화는 곧 전력의 약화였으며, 또한 전투중
에도 그들을 보호해야 했으므로 실질적인 전력약화도 초래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방법은 언제 커다란 인명피해를 입을지 모를 위험을 안고 있었다. 화선투쟁에 나선 무
장대가 무너지면 그 보호를 받고 있는 비무장대가 따라서 결정적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투쟁을 두 달 가까이 해온 결과 도당은 지리산 이동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동과 함께 또 한 가지 일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젋은 대원들을
대상으로 간부양성을 위한 대학생들을 뽑았다. 지리산에는 단기과정의 당학교, 군정대학, 의
과대학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장기투쟁에 대비해 안전지대인 지리산에 간부를 길
러내자는 계획이었다. 자원과 추천의 두 방법으로 젊은 대원들은 그 길을 나서고
있었다.
"어이, 천 동무, 동무도 지리산으로 가는 거이 어쩌겄소?"
어느날 하대치가 천점바구를 조용하게 불러 한 말이었다.
"야아? 지리산이라고라?"
천점바구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워째 그리 놀래고 그요? 나할라 깜짝혔구만."
하대치는 가볍게 혀를 차며 씨익 웃었다.
"지가 무신 과오 범했는게라?"
천점바구는 하대치의 친근한 웃음은 아랑곳없이 긴장되어 있었다.
"그 무슨 생뚱헌 소리요?"
하대치가 정색을 했다.
"지럴 비무장 맹글라고 그러신게라?
"이, 고런 것이 아니고 천 동무보고 대학상 되야보라는 이약이오."
"야아? 지까징 것이 뜽금웂이 무슨 대학상이라?"
천점바구의 얼굴이 이젠 어리둥절하게 변해 있었다.
"고것이 무신 말인고 허니, 지리산에 대학이 서너 개 있는디, 천 동무가 갈 아조 마땅헌
대학이 한나 있소. 고것이 군정대학이라는 것인디, 거그서 공부허고 나오먼 천 동무가 염상
진 대장맹키로 되고 잡아허든 질이 훤허니 열리게 되야뿌는 것이오. 으쩌요?"
"금메요, 핵교는 문턱도 못 볿아보고, 포도씨 글이나 깨친 지겉은 것이 워쩌크름 대학생이
되겄는게라. 맥없이 뱁새가 황새 따라갈라다가 가랭이나 찢어지제라."
천점바구는 고개를 저었다.
"어허 천 동무, 동무넌 아직도 그 못된, 거 머시냐, 잉, 계급적 피해의식을 청산허지 못혔
소! 무학자에서 당원꺼지 된 몸으로 고것이 무신 못난 소리요. 동무 자격이야 당이 인정헌
것잉께 가서 잘 배와갖고 당당허니 염상진 대장 겉은 인물이 되게 혀봇씨요."
그건 하대치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였다. 지난날 염상진이 자신을 이끌어주었듯이 자신은
천점바구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염상진의 되풀
이된 다짐이기도 했다. 끝없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해야 한다. 인간사업
없이는 당도 혁명도 해방도 없다. 하나의 적을 무찌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 인간에
대한 사업이다. 적의 척결과 인간사업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당의 이대 사업이다.
"염 대장 동께서 지리산으로 가신당가요?"
천점바구가 뚜벅 물었다.
"여그넌 으쩌고?"
"허먼, 연장 동지가 가시는게라?"
"나도 안 가는디..."
"글먼 지도 안 가겄소."
천점바구의 태도는 단호했다.
"어허 천 동무..."
하대치가 입을 열기 바쁘게 천점바구가 말허리를 자르고 들었다.
"지 맘언 한 가닥으로 땅 정해졌응께 더 말씸혀도 소양웂구만이라. 두 동지 옆에서 한 발
도 안 띌 참잉께라."
"허 참, 저 고집통머리! 넘 웂는 저눔에 점 땀세 긍가 워쩐가..."
하대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어디까지 순조롭게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한 천점바구의 완강한 태도에서 하대치는 어떤 뜨거운 믿음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군정
대학을 가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원으로서의 내일을 보장하는 것이면서, 당장
의 위험을 피하는 길이기도 했다. 천점바구는 그 정도를 모를 리가 없는데도 망설이는 것
없이 그 길을 마다했던 것이다.
장흥 유치지구에서 이해룡이가 도착할 날이었다. 그저께 안창민에게 그 소식을 전해들은
뒤로 하대치는 지난날 씨름대회를 기다리던 심정으로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것이 꼬박 일년 세월이었다. 산 생활 일년 동안에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오래
헤어져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날을 위험 속에서 살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몰랐
다.
이해룡은 해질녘이 다 되어 안창민과 함께 나타났다.
"하 동무, 나요, 이해룡이!"
두 팔을 쫙 벌린 이해룡이 소리쳤다.
"우화아, 이 동무!"
하대치도 맞받아 소리치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와따, 보고 잡아 죽을 뿐혔소. 이도령 기둘리넌 춘향이 맴이 나만 혔을랍디요?"
하대치가 반가움이 출렁거리는 소리로 이해룡을 불끈 들어올렸다.
"어허, 그 황소기운은 여전하군요."
이해룡이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참 해도 너무합니다. 남자끼리 좀 기다린 걸 가지고 춘향이까지 팔아 먹습니까 그래."
웃음띤 안창민이 하대치에게 눈총을 보냈다.
"안 동무, 섭헌 소리 마씨요. 이도령허고 춘향이야 하로밤 정 통헌 풋정이고, 우리야 목심
항꾼에 내걸고 싸운 짠득짠득헌 갱엿정잉께."
이해룡을 내려놓은 하대치가 지체할 것 없이 대거리한 말이었다.
"아이고, 그리 말하면 내가 손발 들었소."
안창민이 팔을 드는 시늉을 하며 물러섰다. 객담으로 하대치의 입심을 이길 재간이 없었
던 것이다.
"아니, 이 동무! 얼굴이 워째 그리 되얐소!"
하대치가 느닷없이 소리질렀다. 그는 그때서야 이해룡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던 것이
다.
"뭐, 이거 별거 아니오."
이해룡이 왼쪽 볼을 손바닥으로 쓱 문지르며 말했다.
"아닌디, 많이 상혔는디. 워찌 해필나게 얼굴이여, 그려. "얼굴을 잔뜩 찡그린 하대치는 고
개를 저으며 혼잣말 하듯 하고는, "빌어묵을, 워디 잠 똑똑허니 봅씨다. "이해룡에게로 다가
서며 혀를 차댔다.
이해룡의 왼쪽 볼은 그 흉터가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참말로, 은제 이리 됐습디여? 씨부랄 눔덜이 그 좋든 인물얼 요리 망쳐놨구만 그려."
하대치는 빠드득 이빨을 갈아붙이더니 또 혀를 차댔다.
"지난 사월달에 그리 됐어요."
이해룡은 그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옳여, 그때 쌈판이 컸제라. 총알입디여, 파편입디여?"
"총알이었어요."
"와따메, 큰탈날 뿐혔네! 총알이먼 이만허기 참말 요행이요."
"그렇지요, 운이 좋은 셈이지요."
이해룡은 얼굴이 그리 흉하게 망가진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워쨌그나 그 좋든 인물이 너무 아깝게 되얐소."
하대치는 '안직 장개도 안 간 나이에...' 하는 말을 꿀떡 삼키고 있었다.
"아깝기는요, 얼굴 뜯어먹고 사는 악극단 배우도 아닌데요. 이게 다인민의 훈장이고, 빨치
산의 훈장 아니겠소? 어때요. 진짜 빨치산 같지 않아요?"
이해룡이 두 손을 허리에 거리며 가슴을 펴보였다. 그런 이해룡의 모습은 전과 다르게 훨
씬 억세고 강해 보이기도 했다.
"이, 아조 당당허고 용맹시러와 보이요. 워쨌그나 이 동무가 그리 화통허게 생걱헌께 사람
도 맘이 씨림스롱도 좋으요. 그리 맘묵기가쉽덜 않은디, 하여튼지간에 이 동무가 장허요."
"장하긴요, 의당 그리 생각해야지요."
이해룡이 담배쌈지를 꺼냈다.
"자아, 저쪽으로 앉읍시다. 그래야 담배도 말고, 다리도 쉴 테니까."
안창민이 움막 쪽으로 발을 옯겼다. 세 사람은 움막 안에 자리를 잡았다. 통나무로 기둥을
얽어세우고 지붕을 갈대와 풀로 위장해 덮은 움막이 해방구를 잃은 것을 실감시켰다. 그 임
시방편인 움막은 구빨치투쟁을 겪은 그들에게는 친숙한 것이기도 했다.
"이지숙 동무도 불를 것인디 그렸소. 이 동무가 을매나 반가와라 헐 챔인디."
하대치는 안창민과 이해룡에게 동시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창민과
이지숙을 한번이라도 더 같이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보투에서 묻어들어온 분통을 굳
이 이지숙에게 갖다주었던 것도 안창민을 만날 때 쓰라는 뜻이었다. 이지숙이 무색해할까
봐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거 좋은 생각이오. 당장 부릅시다. 어디 있는지, 하 동무, 연락병 띄울 수 있소?"
이해룡이 반색을 했다.
"아니오, 아니오, 내일 만나도록 합시다. 지리산으로 떠나는 걸 최종 점검하기 위해 총사
에서 염상진 동지가 내일 오도록 돼 있소. 그때 한꺼번에 다 만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안창민의 말이었다.
"글세, 그럼 옛날 군당간부회의가 되겠군요."
이해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려도 오판돌 동무가 빠지제라."
하대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참, 오 동무는 더러 만났나요? 그쪽 사업은 좀 어떤지..."
안창민이 이해룡에게 눈길을 주었다.
"예, 가끔 만났는데, 군당도 형편이 좋지가 못합니다."
"왜 안 그렇겠소. 항시 지구보다 먼저 당하는 게 군당 아니오."
안창민의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리산으로 빠지는 게 괜찮은 방법일까요?"
이해룡이 말이담배에 침을 묻히고 나서 물었다.
"글쎄요, 지금 상황으론 무모한 인명손실을 막기 위해 그 방법밖에 더 있겠소? 이 동무
생각엔 마땅찮은 모양이지요?"
"나라고 무슨 방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내 경험으로 봐서는 별로 좋다는 생각이 안 듭
니다."
그게 뭐냐고 안창민이 눈으로 물었다.
"겨울이 곧 닥칩니다. 십일월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해서 다음해 사월가지 가니까 지리산
의 겨울은 반년인 셈입니다. 거기다가 산간 마을들은 사십팔년 말에 거의 다 소개시키고 불
러버렸습니다. 많은 인원에 추위와 식량난이 동시에 문제 아니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도
앞으로 토벌대가 투입되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예, 이동무 지적이 적절한 것 같소. 도당에서는 그런 문제점들이 검토된 것 같은데, 그러
나 일단 이동을 결정한 모양이오. 현재의 위기를 넘기는 데는 그래도 그게 최선이니까 말이
오."
"혹시 그 결정에 이현상 선생 부대가 지리산에 도착한 것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닙니까?"
"글쎄요, 도당에서 그 점을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전혀 모를 일이오. 나 혼자 생각인데, 위
원장 동지의 평소 태도로 보아 별다른 연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이해룡은 더 말이 없이 담배만 깊이 빨고 있었다.
"워째, 맘이 껄쩍지근허요?"
하대치가 담배 연기로 눈을 찡등그리며 이해룡을 쳐다보았다.
"아니오. 내가 가게 되니까 그저 한번 생각해본 문제지요."
이해룡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는 새로 편성된 지리산지구로 가기 위해 조계산지구에 들른 것이었다. 도당에서는 지라
산 경험자들로 간부편성을 하고자 했다. 학병을 피해 지리산에서 생활했던 그는 적임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유치지구와 조계산지구의 비무장대원들을 이끌고 지리산으로 갈 참이
었다.
"염상진 동지가 같이 가시면 좋았을 텐데..."
이해룡이 담배를 끄며 뇌었다.
"도당 문제가 더 급해놔서 염 동지는 움직일 수가 없는 모양이고, 아마 김 소장께서 같이
가실 것 같소."
안창민은 이해룡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했다.
"김 소장이오?"
"김범준 소장 동지 모르시오? 거 왜 김범우란 사람..."
"아, 예 알아요. 그분이 도당에 계신다면서 어쩐 일인가요? 사령관을 맡게 됩니까?"
이해룡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소만, 하여튼 이번에 도당을 뜨시는 것만은 틀림
없소."
"그분이 사령관을 맡으시면 아주 괜찮겠는데요. 투쟁경력이 굉장히 혁혁하시던데, 그런 분
밑에 있으면 힘이 절로 나지요."
이해룡은 금방 힘이 절로 나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그럴 가능성이 많으니까 내일까지 기다려봅시다."
안창민은 전혀 자신이 없으면서도 이해룡의 기분을 생각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눈치도 모르고 하대치가 뚜벅 말을 내놓았다.
"인민군 소장신디 워찌 지구사령관에 어울리겄는게라?"
그는 가당치 않다는 듯 고개를 내둘렀다.
"글쎄요, 그것도 그렇군요. 도당 총사령관이면 몰라도 지구사령관이면 좀 곤란하겠는데요.
계급과 직책이 제대로 어울려 하는 건데..."
이해룡은 하대치의 말을 수긍하며 실망스런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오, 그건 꼭 그렇지가 않소. 지금 하는 말은 사무적인 경우에 한해서 그렇고, 문제는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소. 무슨 말인가하며, 김 소장 동지께서는 본인이 필요하다
고 생각하기만 하면, 계급에 상관없이 무슨 일이든 맡으실 분이다 그런 말이오. 그분은 그
동안 단 한번도 당신의 투쟁경력을 자랑한 적도 없고, 계급을 내세운 일도 없고, 오로지 사
업에 유익한 입장에서만 일을 가리지 않고 한다고 그 인품이 알려져 있소. 그 좋은 예가, 도
당위원장의 뜻에 따라 남해여단장의 일을 해결하려고 나서서 끝까지 애썼는데, 일이 잘 풀
리지 않고 결국 남해여단장이 총살을 당하게 되자 그분은 "다 내 잘못이다" 하며 눈물을 흘
렸다는 거요. 그게 무슨 뜻인가 하면,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남해여단장의 마음을 돌리지 못
해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이었다는 거요. 남해여단장에 대해선 비난은 물론이고 비판도 한마
디 없었다는 거요. 그게 어디 당성만 가지고 될 일이겠소."
안창민은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에서 김범준에 대한 존경이 숨김없
이 드러나고 있었다.
"예에, 그런 분이시군요." 이해룡은 한참이나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그런데 말입니다, 총
살을 당해 죽으면서까지 싸우기를 거부한 남해여단장의 속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분은 그것에 대해서도 아무말이 없었던가요?"
이해룡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었다.
"한마디했다는데, 그 말이 아주 알아듣기가 어렵고 뜻이 모호해요."
안창민이 입꼬리가 약간 돌아가는 묘한 웃음을 피워냈다.
"그 말이 뭔데요?"
이해룡은 말을 재촉하는 턱짓까지 했다.
"지친 혁명가의 허무적 초월주의!"
안창민은 마치 시를 읊듯했고, 이해룡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니, 그게 다요?"
이해룡이 잠에서 깨듯 불쑥 물었다.
"그렇소."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오?"
"아까 말했잖소, 알아듣기 어렵다고."
"원, 제기랄, 지친 혁명가에다가, 허무니, 초월이니, 다 반동적인 말들뿐이오."
이해룡이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아니, 이 동무, 남해여단장이 그랬다는 말이니까 반동이 누군지는 확실히 구분해얄 거
요."
"아니, 그럼, 김 소장 동지가 반동인 줄 알까 봐 그럽니까! 남해여단장 그 사람 죽어도 싸
요."
이해룡이 자르듯이 말했다.
"혁명가가 지치면 그것 자체가 죽음인 거요."
안창민의 나직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