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의 마지막 역이자 국경지역인 수흐바토르역과 역 바깥 일부시내모습
▲ 몽골북부에는 초원스텝지구가 연이어 전개되면서 마소와 양을 먹이는 축산농가가 많다
몽골의 수흐바토르(Suchbaatar ; 苏赫巴托)역을 지나면서 러시아 입국심사관으로 보이
는 제복을 입은 세 사람이 객실로 와서는 "빠스뽀뜨?" 라고 말한다. 여권과 입국신고서
를 건네주니, 신고서는 걷어가고 여권은 얼굴만 확인하고는 돌려준다. 짐칸을 한 번 둘
러보고는 “짐이 이것뿐이냐?” 고 물었다.
▲ 트랜스 몽골기차 -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출발하여 러시아국경을 넘어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 노보시비르스크 -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달린다
▲ 열차가 몽골에서 시베리아로 국경을 넘어서서 달리고 있다
모든 승객들은 러시아의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
고는 검역관이 방마다 다니면서 짐을 검사한다. 그리고는 다른 여자검사관이 여권과
신고서에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작은 노트북형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한다. 드디어 열
차가 출발하는데, 그때의 시간이 익일 02:15 이다. 이곳은 (러시아연방의) 부랴트공
화국이므로 모든 절차와 방식은 부랴트공화국에서 하는 대로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부랴트공화국은 몽골과 같은 표준시각을 쓰고 있지만, 여름시간(Summer Time)을 실
시하므로 익일 새벽 03:15 이다. 졸리운 순간을 참다가 잠이 들었다.
▲ 시베리아에 들어와서도 스텝초원이 넓게 전개되는 지형은 몽골에서와 똑 같다
러시아에는 모든 간판이나 기차역이름이나 물건들의 이름에 영어를 병기한 곳은 하
나도 없다. 오직 키릴문자의 러시아어로만 써두었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러시아여
행을 혼자서 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필자도 영어와 중국어 및 한자는 알고 있지만, 러
시아어는 모른다. 그런데, 옆 칸의 복도쪽 침대를 배정받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
치는 58세의 여자선생이 4명의 그룹과 함께 여행팀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여기가 어느
역인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필자는 비록 러시아를 모르지만, 여행할 곳의 지리나
볼 것에 대한 지식을 사전에 나름대로 착실히 공부하고 갔다.
▲ 시베리아에 들어와서 스텝초원이 넓게 멀리 전개되는 것은 몽골북부와 같지만,
중간중간에 소나무를 비롯한 큰키를 가진 나무 숲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 영어선생이 러시아의 여성담당자에게 물었다. "Where are we now?(여기가 어디죠?)"
<실제로는 '여기가 무슨 역이냐' 는 의도로 물은 것 같다> 그 여자심사관은 짧게 대답했
다. "Buryat('부랴트'입니다)" 그러자 그 여선생은 옆의 자기 팀원들에게 "여기가 부랴트
역' 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런데 실제는 '여기는 러시아연방의 부랴트공화국입니다' 라는
뜻으로 대답한 것 같다. 역이름은 "나우시키"인데, 영어나 한자나 한글로 써두지 않았으며,
오직 키릴문자로 Наушки 라고만 써두었다.
▲ 트랜스몽골리아와 시베리아횡단철도가 만나는 울란우데역의 모습
열차 안에서 처음 맞은 러시아의 자연은 몽골과 별다르진 않지만 저습지가 넓게 분포
한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몽골의 수흐바토르를 떠나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황토빛의 큰 강을 곁으로 하고 열차가 굼벵이 걸음을 한다.
▲ 시베리아 남부지역에서 한없이 펼쳐지는 초원지대
나중에 안 일었지만, 러시아 영토에 들어와서 처음 맞이한 그 조그만 역은 이름이 없고,
러시아 입국수속을 하기 위한 우선 절차로 나우시키역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업무를 하
게 되는 것이다. 조금 지나니 나우시키 본역에 도착했다.
▲ 시베리아 남부지역의 스텝습지에는 항상 물기가 흐르는 스텝지구
‘러시아’ 하면 우선 무뚝뚝한 출입국 심사관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몽골에서 러시아로
처음 들어가는 마음은 러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몹시 궁금하다. 러시아에서는
태도나 자세를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나우시키에서 입국
수속을 끝내고 러시아에 대한 인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입국 심사하는 이들의 역할
이 매우 중요하다.
▲ 시베리아 남부지역의 초원지대에 잘 뚫여진 도로
나우시키에 도착하자 러시아사람으로는 키가 좀 작은 편에 속하면서 물 살인듯 조금
은 통통해 보이는 여자 입국심사관이 필자의 객실에 와 섰다. 흰 셔츠에 노랑이 조금
감도는 녹색 바지, 그리고 같은 색의 모자를 쓴 이 심사관의 얼굴엔 무엇보다도 착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잔잔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입국심사 확인 스탬프를 날
인하기 전까지는 그냥 사무적이었지만, 심사필 확인 후에는 그렇게 친절하고 예쁠 수
가 없었다. 아마도 러시아계의 혈통에 동양적인 피가 섞인 모습이다.
▲ 시베리아 남부지역의 스텝습지 지역
“러시안?” 필자를 보고는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지 물어본다. “니옛”(못해요)하고
대답하자 “잉글리시 오케이?”하고 묻는다. “예스” 라고 대답하니, “오케이” 하고는
“앞으로 한 시간 동안 여권심사를 한다.” “그 동안은 객실 안에만 있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여권을 돌려받은 뒤에는 마음대
로 돌아 다녀도 좋다.”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 좋은 여행하길 바란다.” 부드러운표
정과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건네는 말이 마치 오랜 친구 같고 동양적인 어른을
모시는 태도 같다.
▲ 시베리아에는 철도교통이 대단히 중요한 대동맥이다
▲ 남부 시베리아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로교통이 발달해 있다.
여태껏 어느 나라의 출입국에서도 이 러시아 심사관보다 더 ‘인간다운 얼굴’을 한 심
사관과 대면한 적이 없다. “지금 현재 시각이 몇 시냐?” 고 묻자 여전히 웃는 얼굴로
“알다시피 러시아는 워낙 시간대가 많아서 러시아서 시간을 물을 때는 ‘어디’ 시간인
지 분명히 말해 주는 것이 좋다.”며 나우시키는 울란바토르와 같은 시간이지만, 여름
시간(Summer Time)을 적용하여서 부랴트시간은 1시간이 빠른 것도 알려주었다.
▲ 시베리아를 여행하는 중 수영하는 러시아소녀가 망원렌즈의 앵글에 잡혔다.
이렇게 몽골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세관직원이 신고서를
회수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여권과 러시아 내에서 외국인을 검문하거나 출국할 때
꼭 필요한 입국확인서를 돌려준다. 참고로 이 입국확인서는 러시아를 출국할 때 없으
면 출국이 불가능하다. 잘 보관하여야 한다. 드디어 모든 입국절차가 끝난 것이다. 이
제는 객실을 떠나 러시아 땅에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아구대륙(亞歐大陸)을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다.
▲ 시베리아 철도역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열차서 내려 할 일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답답한 객실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
으니 발길이 자연스레 밖으로 향한다. 열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은 열차내의 화장실을
잠가 두기에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러니 여권을 돌려받은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역
사내의 화장실을 찾게 된다. 어느 나라나 말과 글은 몰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 화장실이다.
▲ 입국심사후 열차승객이 모두 내려 객실이 텅비고 복도까지 조용해 진 상태의 열차
열차승객들은 입국심사가 끝나자 마자 모두가 갑갑한 마음에서 열차밖으로 나갔다
나우시키역의 화장실은 역사와는 별도로 떨어져 있다. 무심코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
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하다. 여자 화장실이야 가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남자화장실의 상황에 견주어 보면 뻔할 것이다.
어쩜 지저분해도 그렇게 지저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오직하면 화장실 사진을
다 찍었겠는가? 차마 그 지저분한 사진을 올리지 못하겠다.
▲ 나우시키역도 상당히 붐비는 역이다.
▲ 나우시키역의 이쪽 플랫폼은 너무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잠깐동안 아무도 없다 .
사람들이 앉기 편한 곳이면 아무 데나 여기 저기 죽치고 앉아있다. 모든 승객들이 입
출국수속과 느린 기차에 너무 피곤하게 보인다. 역사 안에 가면 24시간 현금지급기가
있다고 어느 친구가 얘기를 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현금지급기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
다. 우선 아쉬운 대로 비자카드를 사용해 1천 루블 ($1=26R) 신용인출 했더니 그냥 돈
이 나온다. 현금서비스 개념이어서 수수료가 만만치 않지만 달러로 환전하여 다시 루
블로 바꾸는 불편함이나 수수료를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조건인 것 같다.
▲ 나우시키역에서 포즈를 잡은 이 아가씨는 부랴트족으로 울란우데대학 1학년이라고 한다.
이 편리한 시스템을 진작 알았더라면 현금을 많이 가져가지 않았을 텐데 정보가 없
어 돈 주머니를 하루 24시간 목에 차고 다니며 신경 쓰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이 현
금지급기는 비자나 마스터카드만 있으면 바로 바로 현금서비스를 해 주는데 세계여
행을 해보면 대도시 여기저기 많이 볼 수 있다. 이용도 러시아어와 영어를 선택하도
록 되어있어 별 불편함이 없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한 은행의 현금지급기를 이용
한 적이 있는데 이 기기가 러시아어로만 되어 있어, 뒤에 줄선 사람들 중에 영어하는
친구 찾느라 고생한 것 말고는 대부분 영어 선택이 가능한 지급기들이었다.
▲ 나우시키의 열차에서 입국심사를 끝내고나서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에서 만난 독일인부부
베를린에서 기차로 카자흐를 거쳐 北京까지 왔다가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철도로 뒤돌아간다
▲ 필자나 이 독일인부부나 모두 북경(Beijing)에서 출발하여 대동(Datong/大同)과 후허하오터(呼
和浩特)를 비롯한 내몽고를 돌아보고, 얼롄(Erlian/二連)에서 중국과 몽골국경을 넘어 울란바토
르(Ulan-Bator)에 도착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넓은국토의 몽골을 비포장 도로로 사막과 초원 및
고비산맥을 동서로 보름간 고생하면서 여행하고, 다시 기차로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지금 부랴트
공화국 나우시키역이다. 앞으로 얼마간 더 가면 부랴트공화국 수도인 울란우데에 도착하게 된다
베를린을 출발하여 폴란드와 벨라루시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모스크
바에서 노보시비리스크 → 알마티 → 우루무치(乌鲁木齐) → 서안(西安) → 상해(上海)
→북경(北京)을 돌아보는 기차여행을 하고, 북경(北京)에서 출발하여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돌아갈 때는 북경(北京)에서 출발하여 필자처럼 몽골의
울란바토르까지 가서 내려서, 몽골여행을 2주일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랴트공화
국의 울란우데에서 가서 그곳에 내려 구경하고 이르쿠츠크로 간 다음 바이칼호수를 돌
아볼 예정이라고 한다.
▲ 나우시키역에서 만난 독일인부부가 모스크바까지 타고가게 되는 북경-모스크바 철도
러시아 루블화를 확보했으니 부드러운 맥주를 한잔 마시고 싶다. 러시아에는 어느
열차역이나 플랫폼 위에 매점이 서너 곳 있다. 나우시키에도 플랫폼 뒤쪽에 매점이
있는 것을 찾았다. 소시지와 치즈가 많이 보이고 아이스크림, 통조림, 과자 등도 팔
고, 맥주도 종류별로 여러 개 보였다. 손짓으로 맥주를 가리키면서 아이스크림을 같
이 하나 사서는 다들 하듯이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 먹었다.
▲ 나우시키역 플랫폼 뒷쪽에서 몽골여인이 펼치는 보따리상 도깨비시장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