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는 한편의 글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어학연수를 가서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현지인 친구를, 그것도 친절하게 배려해 주는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성공연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친구에는 여러 면에서 할머니가 적격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홍세화 님의 문화비평서인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중의 내용입니다. 작가는 이전에 프랑스에서 장기 거주했기에 여기에는 프랑스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프랑스'를 자신이 어학연수를 갈 나라로 바꾸어서 참고해 보도록 합시다.
::::: 공원의 할머니를 친구로
프랑스에 오는 젊은 그대는 부디 프랑스 땅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프렌치 지골로(주: 동양인 여학생에 접근해서 거짓사랑을 나누고, 용돈을 얻어쓰려는 자들을 일컫는 말)와 만나지 않고도 프랑스 말을 배우고 익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온 천지에 널린 게 프랑스 말이고 프랑스 사람 아닌가. 그대가 사는 동네에서도 공짜로 프랑스 말을 가르쳐주고 있을 것이다. 그 교사도 그대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크리스천 우애의 만남(1'A.R.C.)'같은 곳에서는 은퇴한 학자, 교사들과 만날 수 있다.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받아준다. 그대의 친구가 된 그들은 나중에 그대가 쓴 논문도 교정해줄 것이다.
그대는 지금 프랑스에 있다. 서울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프랑스 문화원 그리고 프랑스 대사관 근처에서 프랑스인과 직접 대화를 가져보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런 중에 설움을 당하기도 했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제 희소 가치는 프랑스인 쪽이 아니라 그대 쪽에 있다. 그러니 제발 생각을 바꾸라. 그리고 문화적 열등감일랑 고이 접으라.
돈으로 그 열등감을 대신 채우려 하지 말라. 두 개의 문화는 서로 다른 것일 뿐, 고급한 것과 저질의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라. 설사 고급한 것과 저질의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대는 스스로 고급한 한국문화의 대변자가 되라. 그리고 서툰 프랑스 말을 헤픈 웃음으로 때우려 들지 말라. 프랑스 말을 잘하는 사람은 프랑스 사람들이다. 프랑스 말을 익히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신문을 읽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만 프랑스 말에 서툴다고 기죽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대는 한국에서의 학업이 신통치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프랑스에선 기어이 학업에 성공하거나 혹은 프랑스 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익혀서 돌아가겠다고 단단한 각오를 했을 수도 있다. 아무하고도 사귀지 않고 특히 한국인은 만나지도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랬다간 자폐증에 걸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실제로 그렇게 된 여학생들이 적지 않다. 나는 몽파르나스 근처의 길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한국 여학생을 본적이 있다. 또 그 중 전화에서 상대방도 없이 수다를 떠는 한국 여학생을 본 적도 있다. 좋은 선배 언니를 갖는 게 그대에겐 아주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임을 명심하라.
프랑스 말을 빨리 익히기 위해 말을 나눌 단짝친구가 필요한가. 그대의 단짝 친구가 될 프랑스 사람은 길에 널려 있다. 프랑스 땅에 숱하게 깔려 있는 공원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그대의 예비 친구들이 언제나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이다. 남편을 잃고 혼자 된 할머니도 있지만 젊었을 때부터 아예 혼자 산 사람도 많다. 그 많은 할머니 중에서 인상이 괜찮은, 특히 눈빛이 어진 할머니를 선택하라. "40살이 넘으면 사람됨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불가(佛家)의 말씀은 프랑스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화장이 요란스런 할머니는 피하라. 눈빛이 어질지 않고 화장을 진하게 한 할머니는 국민전선에 투표하는 사람이기 쉽다. 외국인을 내쫓으라고 주장하는 극우정당에 표 찍은 사람이 그대를 환영할 리 없다.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할머니도 피해야 한다. 강아지로 외로움을 달래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인간혐오증에 걸린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브리지트 바르도 할머니처럼 말이다.
친구가 될 할머니를 선택했으면 그 옆에 가만히 앉으라.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대는 할머니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대가 할머니의 친구가 돼주는 것이다. 그 할머니들은 같은 나이 또래의 할머니들과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점은 한국의 할머니들과 다른 점이다. 스스로 나이든 것이 슬퍼서 잊고 싶은데 같은 또래의 할머니하고 친구가 되면 잊을 수가 없다. 프랑스의 할머니가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본적 있는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한 할머니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아는가. 여자이지 할머니가 아니라는 주장이고 선언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꼭 치마를 입고 정장을 하고 길을 나선다. 비록 갈 곳이라고는 시장과 공원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대의 친구가 된 할머니는 우선 그대처럼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 친구가 돼준 것에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스스로 젊어졌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자기 일로 너무나 바쁜 개인주의자들인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겐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들은 자식에게도 다정한 친구관계를 기대하지 못한다. 그 자신도 젊었을 때 부모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잠시나마 프랑스 할머니들의 깊은 외로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될 터이고, 한국의 문화와 전통에 좋은 점이 있음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들은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 좋은 것까지 마구 배척하고 있지나 않은지, 하는 걱정 어린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 그녀를 즐겁게 해준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그대의 프랑스 말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날 것이다. 그대의 프랑스 말이 아주 서툴러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말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특히 젊은 사람하고 젊게 말하고 싶었고 젊게 듣고 싶었다. 몇 시간이고 그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대에게 프랑스 말을 들려주고 또 몇 시간이고 그대의 서툰 프랑스 말을 들어준다. 시험적으로 석 달 동안만이라도 할머니의 친구가 돼 보라. 그대의 프랑스 말 능력은 스스로 놀랄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신 할 수 있다.
할머니와 더욱 친하게 되면서, 그대는 요리 등 프랑스 문화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그대를 집에 초대하여 자신의 요리 솜씨를 자랑할 것이다. 그대는 할머니를 그대의 조그마한 방에 초대하여 불고기를 대접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고 아주 친한 친구가 된 뒤, 할머니와 함께 프랑스 시민운동단체의 자원봉사자가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시민 운동단체의 자원봉사자에겐 국적을 묻지 않는다. 봉사 활동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국적을 묻지 않는데 봉사자에게 국적을 물을 리가 없다. 그러니 '마음의 식당' 같은 데의 자원봉사자가 되라.
지금은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콜뤼슈가 제창하여 시작된 '마음의 식당'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돕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또 유창한 프랑스 말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대의 할머니 친구와 함께 그 일을 하면 할머니는 더욱 젊어질 것이고 그대는 프랑스 말을 더욱 잘하게 될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진수(眞髓)에 다가가게 된다.
드디어 그대는 파리의 각종 진열창을 통해서 본 사회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사회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만나게 되는 프랑스 청년은 진국이다. 남자 친구를 사귀더라도 그때쯤 사귀면 어떨까. 우리들의 젊고 예쁜 그대는.
좋은 팁 감사합니다
오픈 마인드^^ 홍세화 선생님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도 추천드려요..똘레랑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