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Oia) 마을과 레드 비치(Red Beach) = 산토리니
하얀색과 파란색만으로도 눈부시게 화려한 이아 마을. 산토리니 북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이와 반대로 섬의 최남단 끝에는 레드 비치가 있다. 레드 비치를 먼저 방문하고 이아 마을로 가기로 했다. 섬의 끝에서 끝을 오가는 셈이다. 남에서 북쪽 끝까지는 16마일(26km), 자동차로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레드 비치는 수영을 할 수 있는 여름 외에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전세계에서도 극히 드문 붉은색 모래사장과 언덕이 있다. 기원전 1600년경 칼데라에서 분출한 화산암은 땅 끝 언덕과 해변으로 쏟아졌다. 시뻘건 용암과 시커먼 화산재가 해변과 그 주위를 완전히 덮어 버린 것이다. 검붉은색으로 변한 모래사장과 절벽은 황량하지만 매력적이다. 마치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이다. 해변가 언덕에서 여자 모델을 앞에 놓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델은 여러 자세로 포즈를 취한다. 나도 몇 장 촬영했다. 레드 비치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 가니 벽이 달마시안을 닮은 예쁜교회가 나온다. 파란색 나무 창문과 나무 대문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리스인들은 하얀색과 파란색을 좋아한다.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색상이다. 두 종류의 색만을 사용하는 것은 오스만 제국 지배 시절 그리스 국기를 계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존감을 표현하기 위해 국기 색상을 건물 밖으로 표현한 것이다. 2월이라 레드비치에서는 수영하지 못했다.
“산토리니를 지은 것은 당나귀”다 라는 말이 있다. 현대의 기술로도 할 수 없는 것이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짐을 운반하는 일이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이 많은 산토리니는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도구가 필요했다. 이 어려운 일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가축이 바로 당나귀다. 당나귀는 최대 200파운드 이상의 짐을 싣고 서너시간 정도는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좋다. 짐을 운송하는 가축으로는 최고의 동물인 셈이다. 당나귀는 오래전 부터 산토리니의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거나 사람을 태우고 다녔다. 이아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나귀들이 줄지어 골목길을 오가고 있다. 이것은 성수기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성수기를 대비한 집수리 공사여서 비수기에만 볼 수 있다. 산토리니 주민들은 당나귀를 매우 존중히 여긴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의 삶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자의 역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를 등에 없고 교회로 향하기도 했다. 당나귀가 늙어 일을 못해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특별히 고안된 당나귀 공원(우리)으로 은퇴시킨 후 동물사육전문가가 돌보고 있다. 다른 곳에서 처럼 도살하여 고기를 얻지도 않는다. 인간과 가축이 함께 도우며 공존하는 것이다.
이아 마을은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마을로 불린다. 전세계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서 수없이 봐 왔던 아름다운 마을. 골목 계단을 오르 내리며 아기자기한 집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고양이가 나무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집 고양이가 아니라 야생 스라소니를 닮았다. 17년 전 영국의 젊은 문학도들이 여행왔다 오픈했다는 아트란티스 서점도 보인다. 이아 마을에서는 유일한 서점이다. 역시 셰익스피어의 후세답게 영국인들은 어디를 가나 서점을 찾는다. 마을의 중심인 칼데라 광장에는 하얀색의 그리스 정교회가 있다. 이아 마을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파나기아 플라차니 교회(Church of Panagia of Platsani)다. 파나기아는 그리스어로 성모를 뜻한다. 프라차니 교회는 원래 굴라스 성벽 안에 있던 교회다. 1965년 지진으로 무너지자 마을의 중심인 광장으로 옮긴 것이다. 광장의 대리석 바닥에는 돌고래 문양의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마을에는 모두 70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피르고스 마을처럼 작은교회는 모두 개인소유 교회다.
이아 마을은 레드비치처럼 붉은색 절벽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절벽위로 지은 건물은 모두 하얀색, 파란색 그리고 은은한 파스텔 톤 색이다. 모두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예쁜 색감들이다. 관광객들은 산토리니를 여행하며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갖는다. 하얀색과 파란색이 주는 싱그러움과 즐거움 때문이다. 이아 마을은 오후 5시가 되면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일몰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이시간에는 호텔의 전망좋은 자리는 자리값만 한 시간에 100유로를 받는다. 에게해가 바라 보이는 레스토랑도 일몰시간에는 가격이 비싸다. 혹자는 두 시간 저녁식사에 700유로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난한 관광객은 갈 곳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가장 전망좋은 곳은 무료입장인 굴라스 성채다. 성수기에는 성채는 물론 모든 골목길이 관광객들로 가득찬다. 로마시대 망루였던 성채는 허물어진 채 지금은 성벽만 조금 남았다. 이곳에서 바라 보는 마을 풍경은 정말 황홀하다. 에게해를 바라 보며 가지런히 세워진 하얀집들. 두 개의 풍차가 마을을 더욱 빛내고 있다. 사람들은 소중한 에게해의 일몰을 가슴에 담는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밤.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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