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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사례는 미국 대선의 특징을 적절하게 반영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방법들이다. 그러나 사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시도하기 쉬운 유형은 각 후보자의 특징과 관련한 새로운 상품을 만들거나, 선거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일회성 이벤트를 통해 화제거리가 되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도 가족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 사이트인 Family circle가 후보 부인들의 쿠키 레시피를 공개, 소비자들의 투표를 받는 이벤트를 진행했으며, Bliss 라는 위생용품 제조업체는 50 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O’bama Orange lotion과 ‘Mint’ Romney Minty lotion 중 1개를 선택하게 하고, 제품과 함께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유형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례는 바로 피자헛의 “Pizza Party” 캠페인이었다. 캠페인 메뉴 중에는 “the pepperoni-or-sausage stunt” 가 있었는데, 이는 투표결과만큼이나 중요한 뉴스거리가 되는 TV 토론을 겨냥한 캠페인이었다. 바로 TV토론에서 후보자들에게 ‘페퍼로니 피자와 소시지 중에 어떤 것을 더 좋아합니까” 라는 질문을 한 청중에게 30년 간 매년 520 달러 상당의 마일리지 카드 혹은 현금 15,600 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것.
과연 ‘화젯거리’가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자헛의 마케팅은 화젯거리가 되긴 했다. 문제는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공개 직후에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논의돼야 하는 TV 토론을 일개 기업의 홍보를 위한 장소로 만들려고 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것. 때문에 피자헛은 해당 이벤트를 전면 취소하고, 관련 페이지 역시 즉각적으로 폐쇄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편으로는 기업들의 마케팅 경연장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에서는 후보자들과 관련한 정치 섹션에만 대선 관련 뉴스가 한정돼 있으며, 기업들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왔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현실적 차이가 있다. 미국 대선의 경우 대통령 후보가 양 당에서 나오는 단 2명이기에 확실한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지만, 비해 우리 나라는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어,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기 힘들다. 이에 더해 후보자가 확정되는 전당대회 이후 2개월이 넘는 시간이 확보되는 미 대선에 비해 우리 나라의 대선은 투표 직전까지 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떄문에,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고 펼치기 어렵게 하는 시간적 한계도 갖고 있다.
또한 ‘정치’ 라는 개념에 대한 양 사회 및 국민들의 상이한 인식도 원인 중 하나다. 기업에 대한 보복성 수사 등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치와 경제가 철저히 분리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정치행위가 더욱 강력한 표면적 신성성을 지녀왔던 것이 사실. 때문에 접적 정치주체가 아닌 다른 사회주체들의 정치 행위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부여돼왔던 것이다.
그러나 하물며 날짜와 관련한 숫자 배열로도 수많은 이벤트들이 발생하는 현재의 마케팅 시장에서 대선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뉴스는 기업 입장에서 놓치기 아쉬운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대선이 기업들의 마케팅 소재로 보다 유연하게 이용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중립성은 두 가지 단계에서의 중립성을 의미한다. 첫 번째는 후보자들 간의 균형과 관계된 미시적 차원의 중립성이다. 더구나 수적으로 더 많은 후보자들이 출마하는 국내 대선에서는 중립성의 확보와 관련한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 즉, 2명의 후보자가 대립구도를 펼치는 미 대선과는 차별화 된 새로운 프레임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중립성은 실제 선거와 선거 마케팅 간의 분리를 의미하는 거시적 차원의 중립성이다. 마케팅은 선거의 정치기능을 훼손해선 안되며,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되는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어야 한다. 실례로 앞서 제시한 피자헛의 실패 사례는 거시적 차원의 중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TV 토론이라는 선거 절차는 특정한 이슈에 대한 후보자들의 견해를 점검한다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가치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피자헛의 마케팅이 큰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유세-투표-집계-결과로 이어지는 선거의 매커니즘은 ‘결과’의 공개라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일종의 달리기와도 같다. 그리고 그 클라이막스에서 승자와 패자 간의 극명한 차이는 선거라는 이벤트가 가지는 가장 큰 흥행요소이기도 하다. 때문에 기업들의 마케팅 또한 참여자들에게 분명한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이 흥행요소를 차용해야 한다. 단순히 참여만 유도하는 방식의 이벤트는 선거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죽은 마케팅’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서 살펴 본 7-ELECTION2012의 경우에도 실시간 집계와 노출을 통해 소비자들 각각의 구매가 유의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실제 미국 대선처럼 주별로 승자를 가려냄으로써 그 결과 공개만으로도 소비자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명료함은 대선 마케팅을 시도하는 국내 기업들이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피자헛의 실패와 JET BLUE의 성공 사이에 자리한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바로 참여자들에게 제시된 인센티브였다. 피자헛의 상품은 현금 혹은 피자 교환권, JetBlue의 상품은 항공권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단순한 항공권이 아닌 ‘나라를 떠날 수 있게 한다’는 슬로건이 붙은 항공권이기에 대선이라는 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재밌는 마케티’ 사례가 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피자헛의 인센티브는 비단 대선이 아닌 다른 프로모션에서도 제시될 수 있는 성격의 상품이었다. ‘홍보’라는 목적을 가진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선거’와 맞물려 인식되기 위해서는 선거가 가진 기본적인 ‘정치’ 키워드가 반영된 인센티브가 동반돼야 하는 것이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미 대선을 통해 바라본 기업들의 대선 비즈니스 마케팅의 사례와 함께, 국내의 특성을 반영한 조건에 대해서 알아봤다.
이번 대선에서 역시 정치적 의제 외에 아무것도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수 개월간 이어지는 정치적 논쟁들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우리의 선거 과정에 기업들의 기발한 이벤트들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다양한 관점에서 선거를 바라보고, 비틀어봄으로써, 무겁게만 느껴지던 정치를 보다 일상적인 행위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분명 정치적으로도 의미를 지닌다. 1인 1표의 직접선거제도를 채택한 우리 나라의 경우 투표율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크다.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의 대표성이 지지율과 투표율로 확보된다면, 결국 높은 투표율은 (누가 선출되느냐에 상관없이) 해당 선거의 성패 여부를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도 지지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각 캠프에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에는 내재적으로 ‘정치적’ 관점이 읽힐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미 만연해진 정치적 무관심을 풀기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 이에 비해 정치적 관점을 배제한 기업들의 다양한 선거 마케팅은 선거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이슈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순수하게’ 투표에 대한 관심도 제고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 를 ‘정치’로만 바라보기에 풀리지 않는 논쟁들, 해결책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