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무자성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세친은 비록 그 깊고 얕음이나 깨닫고 깨닫지 못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일단 삼종자성설三種自性說로써 현상계와 본체계를 모두 있다고 긍정하였다. 물론 이것은 소승에서처럼 모든 사물에 실체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본체를 ‘있다’는 측면에서 관찰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그 현상계와 본체계를 ‘없다’는 측면에서 관찰한 것이 삼무자성설이다. 이제 그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상무성
상무성相無性이란 모양[相]에 자성이 없다는 뜻으로, 만물은 모양이 없는 것을 그 바탕으로 삼고있기[離無相爲性]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변계소집성과 대치되는 것으로서, 변계소집성에 의해 펼쳐지는 세계에 그 본래의 체상[體相]이 결국 없다는 점을 이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즉, 변계소집성의 착각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뱀은 실제로는 새끼줄에 불과하여 아무런 실체가 없으므로 허공에 보이는 허깨비와 같이 그 체성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생무성
생무성生無性이란 생겨나는 것에 자성이 없다는 뜻으로 우주만유는 생겨나는 일이 없는 것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기[離無生爲性]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의타기성에 대치되는 것으로서 모든 만물은 여러 가지 인연의 화합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켜 이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즉 의타기성인 새끼줄은 사람의 작업이라는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일 뿐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연이 다하면 마침내는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상무성과 이 생무성은 다함께 자성이 없다[無性]고 했는데 변계소집성은 본래 주관적인 미정迷情의 소산이기 때문에 그 체상이 전혀 없지만 의타기성은 객관적인 인연의 소산이기 때문에 실제로 있는 것[實有]은 아니라도 거짓으로는 있다[假有]는 점이 다르다. 한편, 전혀 없고[全無] 거짓으로 있는 것[假有]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체성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으므로 다같이 무성이라는 말로 대치한 것이다.
승의무성
승의무성勝義無性이란 수승한 이치에 자성이 없다는 뜻으로 참된 이치에는 따로 바탕이라고 할 것이 없기[眞實無性]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원성실성에 대치되는 것으로서, 원성실성인 진여는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범부중생의 미혹한 마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연한 것이므로 이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리의 본체를 진여眞如라고 했는데, 진이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는 뜻이고 여란 항상하여 변함이 없다는 뜻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여는 인연을 따르지만 불변하고 또 모든 사물[법]과 같지 않지만 다르지도 않으면서 만유 제법의 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진여에 자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체성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일체 유· 무의 모든 상(相)을 여의였다는 의미로, 진리는 말을 여의였다[眞理離言]는 뜻에서 승의무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허공은 빛도 모양도 없지만 일체의 빛과 모양을 남김없이 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삼종자성설은 일체의 모든 사물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있다[有]는 뜻을 밝힌 것인데 반해, 삼무자성설은 부정적인 입장에서 공空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삼성과 삼무자성은 서로 겉과 속, 긍정과 부정의 관계를 이루며, 모든 만물의 현상과 본체를 가각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