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의 안전이 걸린 말에 꼭 영어를 써야 하냐는 지적이 많았지만,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는 늘 발뺌하기에 바빴다. 도시철도건설규칙과 철도시설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그렇게 용어가 나오므로 자기들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참 딱한 노릇이다. 규칙을 개정해서라도 스크린도어라는 말을 ‘안전문’으로 바꿔달라는 한글문화연대의 건의에 국토해양부 직원은 “굳이 바꿔야 하나요?”라고 공무원답게 반응했다고 한다.
지난 9월4일 열린 서울시 공공언어 시민돌봄이 한마당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크린도어를 안전문으로 고치겠노라고 약속했다.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의 상급기관으로서 서울시민의 안전을 배려하고 우리말글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 행정용어순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관계기관과 상의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서울시에서는 다가오는 한글날 전에 이를 시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 박원순 시장은 어찌하여 이토록 선선히 요구를 받아들였을까? 젊은 대학생들의 노력 덕분이다. 130여 명으로 꾸려진 대학생 연합 동아리 ‘우리말 가꿈이’ 학생들은 스크린도어라는 말을 안전문으로 고쳐달라고 박원순 시장에게 요청하기 위해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영상을 찍었다. 몇 십 명씩 떼 지어 춤추며 글자를 만드는 번개춤사위로 스크린도어 다섯 글자와 안전문 세 글자를 꾸며냈다. 유튜브에도 올라가 있는 이 동영상을 보노라면 이 젊은이들의 노력에 입이 쩍 벌어지면서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마 박원순 시장도 그 충격과 감동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했으리라.
어른들은 요즘 젊은 애들이 참 문제라고들 걱정한다. 생각도 없고 개념도 없다는 식으로. 중장년 세대가 만들어놓은 역사에 비춰보자면 그런 마음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는 온갖 혼탁함이 함께 섞여 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뒤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주택보유빈곤층을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모두 ‘하우스푸어’라고 부르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이 말은 “번듯한 집이 있지만 무리한 대출과 세금 부담으로 실질적 소득이 줄어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큰 문제로 떠오른 현상이다. 이 사태도 혼탁할뿐더러 이 사태를 가리키는 말도 꽤나 혼탁하다. 정작 그 대상자들 가운데 ‘하우스푸어 대책’과 같은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자기네를 가리키는 말인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이런 혼탁함에서부터 좌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혼탁함을 깨겠다는 몸짓이 한글단체들의 집요한 싸움으로도 바꿀 수 없었던 장막을 걷어버렸다. 지금 젊은이들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