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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로비에서 부산시향 리 신차오가 "함께하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든 단원들에게 허리를 꺾어 인사하고 있다. 독자 제공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에스트로 리 신차오~ 우리와 함께해주세요."
부산시립교향악단의 리 신차오 수석지휘자의 마음은 부산을 이미 떠나 있었다. 그런 지휘자의 마음을 관객과 부산시향 단원들이 되돌려 놓았다. 지난 18, 1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14년 송년음악회'를 끝으로 5년간 잡았던 부산시향 지휘봉을 던질 계획이었던 리 신차오가 팬들과 단원들 사랑의 힘 앞에 그 뜻을 접었다.
50년이 넘는 부산시향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번 파동은 문화예술계에 남다른 과제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5년 만에 개방형 관장 체제로 바뀐 부산문화회관 예술행정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해야 하는 숙제도 남겼다. 이번 기회에 문화예술행정 분야에도 예술경영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 실행하려던 개방형 관장체제의 성과와 과오를 정밀진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세 번의 눈물 끝에 부산시향 지휘봉 다시 잡는 리 신차오
내년 12월 계약이 만료되는 리 신차오는 지난해 7월 부임한 부산문화회관 초대 개방형 민간인 관장 사이에서 불거진 '예술과 행정의 불협화음'을 더는 참지 못하고 미련없이 부산시향을 떠나고자 했다. 그는 19일 이틀째 송년음악회 연주를 마친 뒤 "비예술적 간섭과 인격 모욕 등을 당함으로써 더 이상 부산에서 연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리 신차오는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들로 지금은 갈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는 말과 함께 부산시향 지휘봉을 계속 잡기로 했다. 이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마무리한 리 신차오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눈물과 한탄의 날)를 선사했다.
지난 2009년 6월 부산시향 수석지휘자로서 펼친 데뷔 무대에서 북한 작곡가 최성환이 편곡한 '아리랑'의 애잔한 선율을 앙코르곡으로 선보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리 신차오는 퇴임 공연 앙코르곡으로는 '라크리모사'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크리모사'를 이미 연주한 그는 퇴임 공연 앙코르곡을 다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며칠간 '눈물과 한탄의 날'을 보낸 리 신차오는 세 번의 눈물을 흘린 끝에 내년에도 계속 부산시향 지휘봉을 잡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송년음악회 연습연주에서 '합창' 2악장이 끝난 뒤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당시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직감한 단원 모두가 덩달아 눈물을 쏟아내는 바람이 한동안 연습이 중단됐다.
19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서 그는 또 한 번 울었다. 부산시향은 물론 청소년교향악단 단원들까지 나서서 '함께하자'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떠나려는 리 신차오를 '압박'했으며, 일부 단원은 롤링페이퍼를 만들어 각자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리 신차오는 로비로 나와 두 손을 꼭 쥐고 허리를 90도로 꺾어 절하면서 "한마음으로 오늘 음악을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를 목격한 로비 관객 대부분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대극장 무대를 장식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듬뿍 안겼다. 커튼콜까지 마친 리 신차오는 장미꽃 두 송이를 들고 다시 무대에 나타나 이날 공연을 끝으로 퇴직하는 두 명의 연주자에게 선사했다. 관객들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지만, 무대 뒤로 사라진 리 신차오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어눌한 한국어로 리 신차오가 부산을 떠나는 심정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끝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 여성은 편지를 더 읽어가지 못하자 다른 여성이 편지를 받아 낭독했다. 객석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많았으며, 무대 위 부산시향 단원들은 종이위에 이런 글을 펼쳐 보였다. '가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의 음악을 사랑합니다' '라크리모사 안 돼요' '부산에 머물러 주세요'….
무대 뒤에서 리 신차오의 이런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 편지는 지난주에 작성한 것이며, 최근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은 갈 수 없게 했다." 리 신차오는 무대로 걸어 나왔다. 무대 위에는 단원들의 메시지가 나부꼈다. 이를 본 리 신차오는 눈물을 훔쳤다. '눈물과 한탄의 날'의 아픔을 날려버리는 앙코르곡이 이어졌다.
■ "비예술적 간섭과 인격 모욕"vs "마음대로 하려고 해 규정대로"
시립예술단을 운영하는 부산문화회관은 개관 이후 줄곧 행정직 공무원이 관장직은 맡아왔다. 그 과정에서 예술과 행정의 불협화음이 없지는 않았다. 이를 양보와 절충, 이해와 관객 편의 등을 바탕으로 극복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산문화회관도 시대 흐름에 따라 개방형 관장 체제를 도입했다.
박성택 초대 개방형 관장은 22일 본지 기자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송년음악회가 끝난 뒤 편지글 낭독 등에 불만을 품은 관객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부산문화회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질타의 목소리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박 관장 취임 이후 부산시향과 부산문화회관 간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은 이유의 잘잘못은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다. 이번 부산시향 파동에서 1년 반가량 진행된 개방형 관장체제를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예술행정 업무 영역에다 권한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일 게다.
리 신차오는 개방형 관장 취임 이후 "비예술적 간섭과 인격 모욕"을 거론했다. 박 관장은 지난 19일 부산문화회관 관장실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자꾸 마음대로 하려고 해 규정대로 채용이나 행정 처리하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립예술단을 대표하는 부산시향 수석지휘자와 부산문화회관 관장이 지난 10월 이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술 부분은 터치한 적이 없다"는 박 관장은 "리 신차오 정도 지휘자는 국내 얼마든지 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여기 와보니 지역에서 완전 영웅을 만들어놨더라"는 말도 했다.
박 관장의 이 같은 인식에 대해 "부산을 완전 예술 촌동네로 생각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초대 개방형 관장으로서 더 나은 예술행정을 펼치고자 역량 있는 부산시향 수석지휘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
시립예술단을 운영하는 부산문화회관 개방형 관장체제의 '존재 이유'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파동이 일어났다는 시각이 많다. 한 문화예술인은 "학교 교육현장의 교장이나 행정직원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주체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도와주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며 "마찬가지로 예술행정을 맡은 부산문화회관과 서울 예술의전당 수장이나 행정직원들은 문화예술 발전에 필요한 뒷받침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시민사회는 부산문화회관 개방형 관장이 시립예술단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면서 지역 공연문화의 질적 향상을 꾀하도록 기반을 다져주길 기대했다. 시립예술단의 활동에 간섭을 최소화하되 기량이 떨어지거나 관객의 질책이 이어지는 예술단이나 연주인 등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신상필벌을 가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이 같은 희망 사항을 초대 개방형 관장이 어느 정도 수용했는지 의구심의 시선을 던지는 시민이 많아지는 형국이다.
부산시는 뒤늦게 나섰다. 홍기호 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이 부산시향 수석지휘자와 박 관장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중재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관장은 "부산시 국장이 중재한다고 하는 것이 이해 안 된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부산시립예술단 협의회 노동조합은 교향악단 오디션 문제로 불거진 수석지휘자와 부산문화회관 측의 불협화음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재직 단원들의 명예와 50년 이상 지켜 온 교향악단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고 판단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 소재를 밝힐 것을 강경하게 촉구한다"는 입장을 보여 부산시향 파동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첫댓글 "리 신차오 정도 지휘자는 국내 얼마든지 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여기 와보니 지역에서 완전 영웅을 만들어놨더라" --> 관장 자격이 없네...일단 음악을 모른다는 증거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