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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뜨 12]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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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호는 올해 27세로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박사 과정 2년 차이다. 그는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로 길거리에서도 여자들의 호감 어린 눈초리를 받고 학교에서도 많은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그는 연변 조선족으로 연변에서는 제일로 치는 연변 제1고를 나온 후 연변과학기술학원(연변과학기술대) 전자통신과를 나왔다. 그는 중국수학능력시험(까오카오)에서 750점 만점에 720점을 받아 거의 최상위권인 만큼 북경대학이나 칭화대학으로 갈 수도 있었으나 연로하신 부모님 곁을 떠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고교시절부터 사귀어온 여친 정은지 곁을 떠나기 싫었기 때문에 연변대학으로 진학했던 것이다. 연변대학을 3년만에 마치고 한국의 KAIST로 오게 되었다.
그는 KAIST에서 재외동포 장학금을 받게 되어 학비 전액 면제에 기숙사비까지 무료로 입주하게 되었다. 게다가 한중우호협력재단에서 얼마간의 용돈도 받게 되어 학교생활에서 일단 돈 걱정은 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KAIST에서 리선호의 박사학위 지도 교수는 구범서박사로 그는 스탠포드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전자공학 중 특히 레이더가 전문이다. 이번에 KAI(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개발중인 KF-X(한국형 전투기개발사업)에 들어가는 AESA(능동형 위상배열)레이다를 KF-X 에 장착하는 인터페이스 연구 용역을 맡아 추진 중이다. 리선호는 구 박사의 프로젝트에 파트타임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방위산업 프로젝트는 국가 기밀 사항임으로 연구원에게는 비취(비밀취급)인가가 필요하다. 리선호가 재외 동포인 만큼 비취인가를 받는데 문제가 있었으나 구범서박사의 고교 동기가 기무사 국장으로 있어 어렵지 않게 비취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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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KFX는 f-4, f-5와 같은 공군의 노후화 된 전투기를 교체하는 4.5세대 미들급 전투기로 개발된다. 이후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미국 F-35, 중국 J-31와 비슷한 성능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도와 러시아도 F-35와 제원이 거의 비슷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중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예산 부족 문제에 따라 제대로 된 양산조차 하지 못하는 중이다.
F-35는 단발 엔진 4.3만 파운드 추력, 최대이륙중량 7만 파운드인데, KFX는 쌍발엔진 4.4만 파운드 추력, 최대이륙중량 5.4만 파운드이다. 엔진 출력이 F-35 보다 크기 때문에, 추후에 최대이륙중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KFX 엔진형상은 쌍발형상과 단발형상중 검토결과 2014년 7월 국방부, 방위사업청, 공군이 참여한 KFX TF팀에서 최종 쌍발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고, 기체형상은 수직미익인 일반형과 델타익을 포함 모두 검토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향후 개발될 KFX는 쌍발엔진에 스텔스 형상(매립식 내부무장창 컨셉)의 기운 수직미익기를 채택하여 개발될 예정이다.
쌍발 엔진을 사용하는 기체로는 F-15, MIG-29, 수호이27, 유로파이터 등이 있다. 쌍발전투기는 단발 전투기보다 귀환율이 높다. 엔진 하나를 잃더라도 남은 한 개의 엔진으로도 무사귀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전 시에 엔진의 반을 잃고도 무사히 적으로부터 도주가 가능하겠냐는 의견도 타당성이 있지만, 전투기 손실 중 대부분은 추락으로 인한 것 이었고 이는 대부분 전시가 아닌 평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성하는데에 몇억이 투입되는 조종사와 이보다 몇 십 배 비싼 기체의 전력 보존을 위해서라도 높은 귀환성을 무시할 순 없다. 더불어 엔진의 출력이 높기 때문에 많은 무장량을 갖출 수가 있다. 쌍발전투기의 기본적인 동체 자체는 크기 때문에 엔진 간 거리를 넓힐 경우 두 엔진 사이 즉, 기체 가운데에 위치한 매립식 내부 무장창을 쉽게 확보하기에 용이하다.
쌍발에 기운 형상 수직미익은 한국 공군이 원하는 쌍발 전투기 형태이다. 시뮬레이션 기술의 발달로 공력 해석및 형상의 컨셉은 적은 비용으로도 개발이 가능하고, 초기 개발시 일반적인 수직 미익기보다 개발비용 단가가 더 들더라도 전투기의 기본 형상 컨셉이 좋으면 개발 이후 꾸준히 업그레이드시 기체의 형상 변형이 적기때문에 개발비용이 크게 절감되고 차세대 스텔스 기체를 위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 진다. 하지만 스텔스 형상만을 적용한다고 해서 전투기가 스텔스기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는것은 아니다. 단순한 기체 형상 외에 엔진 블레이드의 난반사방지, 정찰포드의 매립, 캐노피 코팅, 내부 무장창 등 여러가지 요인이 첨가되어 RCS( Radar cross section)를 획기적으로 줄여야만 스텔스기가 될 수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2016년 현재 한국의 AESA 레이다 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의 80% 수준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레이다를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도록 소형화·경량화해야 하고 모듈에서 발생되는 열을 냉각수를 이용해 균일하게 식히는 기술 등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레이다를 시험용 항공기에 탑재해 비행시험을 하는게 중요한데 국방과학연구소는 이를 100회 이상 실시할 예정이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는 KF-X 시제기에 AESA 레이다를 직접 장착해 시험비행을 하게 된다. 문제는 레이다 자체보다 이를 항공기와 결합하는 체계통합 기술, 즉 소프트웨어 개발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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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호가 연변과기대를 떠나 KAIST에 오려고 분주할 즈음 학교에 파견된 당위서기
첸하이란 (千海兰)을 만났다. 당위서기는 공산당 중앙에서 파견된 인사로 학생들의 사상 검증 등 당의 정책 방향을 따르는지 여부를 살피고 유학 등 해외 파견 시 타딩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첸하이린은 리선호에게 한국에 가면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연락이 갈 것이고 당지도부의 명령을 잘 수행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리선호가 KAIST에 정착한지 한 달여 만에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왕후닝이란 자인데 자기는 중한문화교류사업을 담당하며 앞으로 한국생활에 애로사항이 있으면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하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처음 몇 달간 리선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정신없이 지냈는데 어느 날 왕후닝이 학교로 찾아 왔다.
왕후닝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며 날카로운 인상에 꾹 다문 입술이 의지가 굳은 인간같이 보였는데 의외로 말씨는 부드러웠다. 그런데 그는 한국말을 쓰는 것 이었다. 리선호와는 중국어로해도 통할 터인데 주위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어를 쓰는 것이었다. 학교 구내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나누며 가볍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만 가 봐야겠다고 일어서며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내미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리선호가 사양하자 그럴 필요 없다며 굳이 리선호의 손에 봉투를 쥐어주고 가 버렸다. 나중에 열어보니 미화 500달러가 들어있었다. 왕후닝은 그 후에도 거의 매달 한 번씩 리선호를 찾아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갈 때에는 어김없이 봉투를 건네는 것이었다.
덕분에 리선호는 주말이면 동료들과 같이 학교 근처 통닭집에 가서 치맥을 즐기곤 했다. 어느 날 왕후닝이 사람을 시켜 자동차 한 대를 몰고 왔다. 기아차 레이였다. 회색 바탕에 쓴지 얼마 안되는지 주행기록에는 2만 킬로가 채 안되는 것 이었다. 리선호에게 키를 넘겨주면서 부담갖지 말고 차를 받으라고 하는 것 이었다. 마침 KAI와의 업무 때문에 출장이 잦아 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차가 생긴 것이다. 그간 왕후닝과 친숙해진 리선호는 별 부담없이 키를 덥석 받아 쥐었다.
한편 연변에 있는 은지와는 거의 매일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받곤 하였는데 은지는 이번 가을 학기가 끝나면 한국의 연세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한다고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이었다. 은지는 연변대학교 생물화공학부 생물과에서 미생물을 공부했다. 리선호 역시 은지가 한국에 오면 그간 밀린 회포를 풀거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은지는 연변 집에서 중규모 양조장을 하고 있어서 경제적인 여유는 있는 편이다. 은지가 한국으로 유학 오는 데 왕후닝의 도움이 컸다. 유학생 비자를 받는 일부터 연대 근처의 방을 구하는 일까지 왕후닝이 도맡아 해주었다. 마침내 은지가 한국으로 왔다. 인천공항까지 마중 나간 리선호는 입국장에서 은지를 반갑게 맞이한다.
공항 출구를 나오는 은지는 얼핏 수척해 보였다. 아마 긴 여행 때문이리라. 반쯤 길른 머리는 뒤로 묶었다. 곱상스런 눈매며 오똑한 콧날 도톰한 입술은 연변에서 보아온 그대로이다. 은지의 짐가방을 대신 끌고 리선호는 은지를 자기 차에 태웠다. 은지가 기거할 방은 신촌역 근처 원룸 빌라이다. 방 하나 거실 겸 부엌 그리고 화장실 하나 조촐하지만 아담한 집이다. 짐을 내려 놓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두 사람만의 시간이 된 것이다. 긴 여행인데도 은지는 피로한 기색도 없이 우선 샤워를 좀 해야겠다며 욕실로 들어간다.
리선호는 침대에 누워 은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방금 옆쪽 욕실에서 샤워기 물 쏟아지는 소리가 그쳤으니 곧 은지가 나올 것이었다. 반쯤 열린 베란다 유리문을 통해 서늘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은지가 방의 불을 먼저 꺼놓고 욕실로 들어간 바람에 방 안은 어둡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적응되고 나서 사물 윤곽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욕실 문의 아래쪽 틈이 환하다. 문이 열리면 은지는 밝은 불빛 속에서 등장할 것이었다. 리선호는 이미 옷을 모두 벗고 벌거숭이가 된 채 기다리는 중이다. 심장 박동이 거칠어졌고 입안이 말라 자꾸 침이 삼켜졌다. 여자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가장 감동적이다. 실제로 엉키고 나면 정신이 없어서 이렇게 분위기를 음미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환한 빛발 속으로 은지가 등장했다. 은지는 욕실 전등을 끄고 침대로 다가왔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치고 나온 것이다. 브레지어를 벗자 금방 어둠 속에서 통통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리선호가 입을 다물고 은지가 팬티를 내리는 것을 본다. 리선호는 침대에 오르는 은지의 풍만한 몸을 보았다. 어둠 속에 흰 피부가 오히려 더 선명했고 더 육감적이다. 리선호 옆으로 다가온 은지가 얼굴을 가슴에 붙이면서 안겼다. 아직도 물기가 밴 피부가 찼지만 비누 향에 섞인 체취가 맑고 서늘한 숲 냄새 같다. 리선호가 은지의 허리를 당겨 안으면서 귀를 입술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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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왕후닝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어느새 조사했는지 리선호가 구범서박사가 하는 AESA 연구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조용한 말투였으나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이번에 리선호가 하는 일은 중국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은 일이라며 연구의 진척 상황을 알려주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말로 하는게 아니라 USB에 핵심사항을 압축하여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2주일 후에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준비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말이 끝나자 그는 일어났다. 그러고는 예의 봉투를 건넸다. 이번에는 미화 1,000달러가 들어 있었다.
AESA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인터페이스 설계는 일부 하드웨어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문제이다. 얼마 전에는 시제품을 만들어 기체에 탑재하고 모의 비행시험도 마쳤다. KF-X의 성능은 전체적으로 봐서 이제 F-35의 거의 90% 수준에 육박했다. 중국이 개발한 J-31이 F-35에 필적할만하다고 하지만 실제 전투역량은 한참 뒤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이 개발 중인 KF-X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리선호가 AESA 프로젝트의 연구원이라고 하지만 그가 아는 것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모든 것은 구범서박사의 컴퓨터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왕후닝이 찾아올 날이 가까와 오자 리선호는 초조해졌다. 비취인가 받으러 갈 때 기무사 담당자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군사기밀을 유출하면 큰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왕후닝의 말을 거역하기도 힘들다. 그간 받은 것도 그렇고 만일 거절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리선호는 찾아온 왕후닝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부 USB에 담아서 전했다. 흡족한 표정으로 USB를 받아든 왕후닝이 그러면서 하는 말이 리선호가 아는 것만 주지 말고 구박사의 컴퓨터를 뒤져 더 핵심적인 내용을 꺼내오란 것이다. 이번에 왕후닝은 2.000달러를 전하는 것이었다.
리선호는 구범서박사와 같이 쓰고 있는 연구실의 CCTV를 생각해 내었다. 이것은 보통 일과 중에는 꺼놓고 퇴근 시 틀어 놓는 것이다. 이것을 살짝 조작하여 구박사의 책상을 살피도록 각도를 조절하고 일과 중에 작동하도록 손을 써 놓는 것이었다. 리선호는 할 일이 남았다며 구박사가 먼저 퇴근하기를 기다려 CCTV를 재생시켰다. 마침내 구박사의 컴퓨터 암호와 비밀번호 [eaglefly 7536]을 알아낸 것이다. 암호를 알아낸 후 CCTV의 녹화된 내용을 지워버렸다. 리선호는 구박사의 컴퓨터를 열고 AESA연구의 핵심 내용을 USB에 담았다. 리선호는 또 다시 찾아온 왕후닝에게 USB를 전했다. 왕후닝은 구박사의 컴퓨터 내용이 담겼다는 말을 듣고 대만족이라며 5,000달러가 든 봉투를 건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리선호는 파출소 앞을 지나게 되면 괜히 머리가 쭈빗거리는 것이었다.
구범서박사는 자기 컴퓨터를 누군가가 열어본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컴퓨터를 열면 조회수가 자동적으로 감지되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 구박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컴퓨터에 손을 댈 사람은 리선호밖에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대 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생각다 못한 구박사는 기무사 친구에게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기무사에서는 리선호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리선호가 왕후닝과 만나는 장면이 발각되고 두 사람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했다. 증거를 잡은 기무사에서는 리선호를 소한해 마침내 자백을 받게 된다.
드디어 법정에선 리선호에게 판사의 준엄한 판결문 낭독이 있었다. 리선호는 재외 동포로서 KAIST가 주는 온갖 혜택을 받고도 대한민국을 배신해 국가 주요 군사기밀을 중국에 팔아 넘긴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고 ‘군사기밀보호법 제13조(업무상 군사기밀 누설) 업무상 군사기밀을 취급하는 사람 또는 취급하였던 사람이 그 업무상 알게 되거나 점유한 군사기밀을 타인에게 누설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라는 것과 제13조의2(군사기밀 불법 거래에 관한 가중처벌)과 제15조(외국 또는 외국인을 위한 죄에 관한 가중처벌) 라는 조항에 따라 징역6년에 가중처벌 6년을 합쳐 12년을 선고했다. 리선호는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