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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동생의 취미는 요리다. 내가 없으면 차라리 굶고 마는 남편과는 상당히 상반된 시동생의 취미는 결혼 후에 더 발전을 거듭했다. 각종 이색 라면 끓이기로 시작해 이제는 비빔국수와 새우튀김 혹은 일본식 어묵 국수 전골 같은 일품 메뉴에서부터 류산슬 등 중국 요리에까지 도전할 만한 평범치 않은 실력을 갖게 되었다. 요리가 취미가 되다 보니 요리를 담아낼 그릇, 커트러리 cutlery, 서양식 상차림에서 수저류에 해당하는 스푼, 포크, 나이프 등. ‘플랫웨어(flatware)’라고도 한다 등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조리 도구들을 쓰면서 이렇게 하면 좀 더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는 모습도 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엌 가구나 도구, 커트러리 세트, 테이블 웨어의 디자이너는 남자인 경우가 많다. 주방기구 디자인의 귀재로 불리는 덴마크의 두 남자, 클라우스 얀센(Claus Jensen)과 헨릭 홀백(Henrik Holbaek)으로 이루어진 툴스(tools) 디자인 역시 넘치는 상상력으로 평범한 주방 기구들에 부엌의 오브제로 존재할 만큼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들 주방 오브제의 팬의 한 명으로서 대표작을 꼽아보라면 단연 갈릭 프레스를 꼽겠다. 마늘을 꽉 눌러서 짓이겨 요리에 그 즙을 사용하도록 할 때 쓰는 도구인데 묵직하면서도 손으로 잡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날렵한 곡선으로 디자인되었다. 무엇보다 프레스의 밑판이 분리되어 짓이겨진 마늘 찌꺼기들을 빼내는 것이 너무나 쉽게 디자인된 점이 압권이다. 게다가 세트로 구성된 유리병은 남은 마늘을 보관하거나 프레스 보관대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부엌 선반 위에 놓았을 때 조형적인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부엌의 꽃이다. 덴마크의 에바솔로(Eva solo)와 토미 라슨(Tommy Larsen)사에서 생산된 이들의 부엌 기구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유럽과 북미, 아시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두 남자 디자이너들이, 부엌 기구로서의 기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의 취향과 상상력을 동원해 부엌에 대한 로망을 풀어나간 점이 부엌 기구 소비자 중 절대 다수인 여성들에게도 신선함으로 어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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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 주방기구 디자이너, 그릇 쇼핑이 취미인 남자들 이외에도 ‘세상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은 요즘 세태는 TV에 나오는 아파트 광고나 가전제품 광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안방은 부부 공동의 공간, 서재는 아버지의 공간, 부엌은 주부들의 공간으로 인식되어온 전통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이제 부엌은 한 가정의 중심이자 온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순히 요리를 하고 그와 관련된 도구들을 수납하던 주부들만의 공간에서 벗어나 가족이 함께 일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요리가 취미를 넘어서 적극적인 자기표현 방식이 된 남자들의 수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아일랜드형 작업대 island(섬형) 작업대. 어느 한 면도 벽에 붙지 않고 마치 섬처럼 놓여 있는 주방 작업대로, 요리나 설거지를 하며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조다 를 적극 활용해 일하면서도 가족, 친지들과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구조가 선호되고 있다.
디자인 역사상 부엌의 구조나 조리도구, 주방 가전제품 등의 디자인 핵심은 여성의 노동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초기 정착과 농업 사회를 거치면서 자연친화적인 형태에서 서양문물 도입기를 거쳐 자동 인공지능 시스템까지. 부엌은 계속 진화 중이다. “2007년 1월 4일 현재 고객님의 냉장고에는 달걀 3개, 우유 1.5리터 1병, 야채는 브로콜리와 콘플라워가 조금씩 남아 있습니다. 평소 스케줄대로라면 오늘 달걀과 우유 그리고 샐러드 재료가 될 신선한 야채를 마트에 주문하셔야 합니다. 우유의 유효기간은 2007년 1월 3일까지로 폐기처분하기 바랍니다.”
현재 모 가전사에서 개발 중이라는 인공지능과 전자 태그 설비가 장착된 냉장고는 이렇게 제품의 제조일자와 유통기한, 유통과정, 재고 여부 등을 쉽사리 파악해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알아서 솎아내고 자주 찾는 음식 재료가 떨어지면 인터넷 쇼핑을 통해 자동으로 주문까지 처리해줄 것이라 한다. 정말이지 현대 과학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음이 분명하다. 바야흐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의 도래이다. 완벽한 홈 네트워크 시스템의 구축으로 가사 일의 부담이 없는 지능화한 가정을 구현하기 위해 미국 인텔과 삼성전자, 소니 등 유수의 가전업체들이 서로 다른 수많은 가전제품들이 호환될 수 있도록 기술 표준을 확립하기 위한 기술포럼을 결성했다. 전문가들은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지능형 로봇들이 청소와 빨래, 설거지까지 모든 가사노동을 해결해 주는 완벽한 자동화 가정이 2010년이면 실현 가능하다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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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영국의 존 포슨(John Pawson)의 부엌은 외형상 미니멀한 구조 때문에 그런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많이 준다. 너무 모던하고 미니멀해서 혹자들은 이 부엌이 음식 재료가 되는 야채와 고기, 생선을 손질하고 그것들을 수납하고 조리하는 실질적인 부엌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쇼룸이나 갤러리같이 보여주기(showing) 위한 공간쯤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존 포슨의 이 부엌은 너무나 기능적이며, 실제로 그는 이 부엌을 배경으로 요리책을 펴냈을 정도로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베테랑이다. 그가 펴낸 요리책에는 자연친화적인 소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음식들의 레시피와 함께 그의 부엌도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투박하지만 절제된 균형감을 보여주는 커트러리 세트를 비롯해 과일을 담을 때 사용하는 나무 볼, 트레이, 꽃병 등 일관된 미적 취향으로 디자인된 주방용품과 소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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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자동화 시스템의 무결점 부엌이건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걸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의 손길이 묻어나는 부엌이건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가장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진화해 더 이상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날이 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나만의 부엌을 디자인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난 디자이너가 아니야, 혹은 난 전문가가 아니야 라는 식의 고정관념과 편견만 버린다면 내가 원하는 부엌을 꾸미는 일 정도야 내 스타일로 고른 옷과 액세서리, 구두를 매치해 입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편하다.
설령 내 선택이 조금 잘못되어 살짝 불편한들 어떤가. 우린 지금 패션에 있어선 필요하다면 한겨울에도 속살을 다 내놓고 다니는 불편쯤 감수하는 센스(?)를 지니지 않은가. 존 포슨의 부엌을 보라. 일할 땐 꼭꼭 숨어 있던 비밀의 공간에서 묵직한 냄비도 커다란 프라이팬도 모두 나와 잡다하게 준비대와 조리대를 채우겠지만, 간결함과 절제된 공간과 구조를 좋아하는 존 포슨은 작업 후 일일이 모든 기구와 소품들을 다시 비밀의 수납장으로 들여보내야 하는 수고를 기꺼이 즐기고 있지 않은가. 다른 집과 전혀 차별화되지 않은 부엌일지라도 툴스 디자인 오빠들의 갈릭 프레스나 오렌지 스퀴저 같은 오브제 하나만으로도 부엌은 금세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 될 수 있다.
“한 겨울쯤 무난히 넘길 수 있을 만큼 식료품이 가득 채워진 거대한 스메그(smeg) 냉장고가 우뚝 서 있고, 나는 그 핑크색 문에 기댄다. 튀긴 기름으로 눅진한 불탑(bulthaup) 가스 레인지며 녹슨 부엌칼에서 문득 눈을 돌리면, 창 밖에서는 별이 쓸쓸하게 빛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나의 부엌은 그런 곳이다.”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에 나오는 구절에 냉장고와 가스레인지의 유명 디자인 상품 브랜드를 끼워 넣어 인용함-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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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품들너무 예쁘네요 -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