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기도/ 성 노회를 주님의 은혜 안에 거행하게 하시고 새 시대를 준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을 세우셨사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시옵고 말씀에 바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즈음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돈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도 물질 만능의 풍조가 스며들어와 기복신앙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교회마저도 그 수와 양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는 경제논리가 판을 칩니다. 우리는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우리의 신앙을 개혁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18~32에 보면 이 시대의 참상(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을 적나라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18~24 見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32 言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오히려)옳다 하느니라. ···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불의가 만연하여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는 영광은 사실 알고 보면 다 가짜입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고난이 유익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의 믿음의 선조들은 죽음마저도 바울사도처럼 기쁘게 여겼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독보적인 한 믿음의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갈렙입니다. 그는 일찍이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부터 특별한 믿음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분배의 과정에 있어서도 갈렙은 정탐꾼들이 두려워하였던 아낙사람들의 거주지인 헤브론 산지를 요구했고 여호수아는 그 땅을 허락했습니다. 모두가 기피하고 두려워했던 이 헤브론 산지를 그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믿고 쫒아 갔습니다.
민수기 14장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2절 이하는 言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는 언약을 굳게 믿고 약속의 땅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축복의 땅 가나안은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에 의해 새 시대가 전개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농촌교회는 영적전투가 치열한 곳입니다. 유교와 불교가 극심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문화를 바로이해하고 접할 기회마저 없어 교회가 홀대받고 교인들이 이방인처럼 도외시되기 십상입니다. 대부분 종가집들이라 제사와 묘사 등 일 년에 십 수차례씩 제사를 지내며 묘소를 찾습니다. 어떤 집은 한 달에도 수차례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낙과도 같고 이 땅은 헤브론과도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농촌선교를 포기한지 오랩니다. 한국교회의 절반 이상이 미 자립교회이며 그 대부분이 농촌교회입니다. 명목만 농촌선교라는 이름이 있을 뿐, 기껏 월 몇 만원 지원하는 것으로 대안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농촌교회를 사랑하시며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본 교회 재정집사의 기도) 이제 농촌은 단순히 농산물만 생산하는 농산물의 생산지가 아니라 휴식과 휴양지로서의 그 기능과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한차례 경기침체의 늪을 지면서 한국교회는 이제 성장이 멈추고 제정자립도마저 떨어져 선교비지원이나 후원 사업마저 어려워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오히려 농촌교회들이 피곤하고 지치고 상처 입은 도시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농촌인구가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전환되었다는 낭보가 들려옵니다. 귀농이 가시화 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죄로 말미암아 파괴 된 이 땅이 가시덤불과 엉컹귀를 내어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 농촌은 농산물의 생산지 역할 뿐 아니라 휴식과 휴양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농촌교회가 앞장서야합니다.
민수기 14:10~15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우리들도 이 땅의 문제가 하루속히 해결되기를 기도합시다.
지난여름 고신대학원 농생모(농촌을 생각하는 모임)에서 저희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때 ‘창조의 원리에 나타난 21세기의 희망’ 이란 제목으로 특강을 가졌는데 내용은 1. ‘하나님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말하며 향후 한국교회를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먼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그의 나라와 의)이 이루어지며 밖으로 이웃을 돌보고 섬기며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코스모스)을 사랑하셔서 죄로 말미암아 더렵혀지고 생명을 잃어가는 이 땅에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우리 인간 뿐 아니라 만물을 새롭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오늘날 성경을 기록하신다면 저는 반드시 이렇게 기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는 자연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덧붙이실 것입니다.
2. 구원신학의 구조를 뛰어넘어 창조신학에 그 바탕을 두어 보다 더 폭 넓은 신학적 사조를 가지고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을 함께 가지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이 답을 한국 농촌교회의 활성화와 미 자립 교회의 부흥에서 찾아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자연세계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신 인간 사랑의 조화야 말로 21세기 교회가 지향해야할 과제입니다.
어느 듯 한국교회도 산업화와 도시화의 현상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대형화와 도시 일변도의 맘몬 사조가 뿌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시 일변도인 삶의 구조는 농촌교회를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농촌교회가 새롭게 부흥되길 원하십니다. 균형을 잃어버린 이 땅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기뻐하시던 그 창조원리를 회복하고 창조신학을 바탕으로 농촌목회가 활성화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십니다.
지난해, 말로만 듣던 시카고의 윌로 크릭교회와 L.A에 있는 새들백교회와 크리스탈 커뮤니티 쳐치 등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은 이미 도시교회는 침체되고 농촌 전원교회들이 부흥되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성을 본 듯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농촌교회가 크게 부흥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오만개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도회지 빌딩에는 1층에 교회, 2층에 교회, 3층에도 교회... 이처럼 오만상 교회라고 하는데 절반이상이 미 자립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농촌교회 또한 인구감소와 일자리 부족 등 절대 빈곤에서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음증거의 절대적 명제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심각한 실정에 놓여버렸습니다. 방법은 농촌교회를 선교지로 생각하고 도시교회들이 교역자나 또는 장로, 안수집사 등을 교회사정에 따라 이들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이 문제는 설명이 필요)
성경을 통해 본, 주님의 명령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창 1:28 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는 문화명령과 마 28:19~20 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선교명령이 그것입니다. 서부경남 지역은 어느 곳 보다 기독교인 수가 저조합니다. 그리고 제정자립도도 열악합니다. 거창노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갈렙과도 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 외치며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여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각자적인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갈렙과 같은 건강과 승리를 분명히 안겨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오늘 내가 팔십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라고 한 갈렙과도 같이 이산지를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