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在日) 하이쿠」에 대하여
재일민단미야기지방본부 단원 우창수
하이쿠는 이 세상의 시 중에서 가장 짧은 대표적인 일본의 시로 17 음(音)으로 표기된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단가(短歌)로서 일본어로 짓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들도 하이쿠를 읊으면서 그 세계가 넓어지고 있다. 영어, 불어로 읊은 하이쿠도 생겨나고, 차츰 일본어라는 언어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언어로 하이쿠를 지을 수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한자와 한글이라는 두 표기 기법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감안하면 한국적인 하이쿠를 지을 수 있고, 일본과 한반도의 가교를 담당하는 재일(在日) 하이쿠(俳句)에 재일동포의 고유한 정서와 감성을 담아내며 그 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재일(在日) 한국인이 하이쿠를 만들 때, 일본어로만 만들까, 아니면 모국어와 하이쿠의 교환은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일본어만으로는 재일교포의 풍속이나 심상 등을 나타내는 것이 다분히 어색하기 마련이다. 거기서, 한글 용어를 가타카나로 나타내는 수법을 사용하면 어떨까? 이 경우 ‘김치’나 ‘서울’, ‘사랑해요’ 등은 관용구로서 나름대로 인지도는 있지만, ‘나그네’나 ‘당신’, ‘저녁별’ 등이 되면 횡설수설. 그래서 작은 활자로 병기하는 방식인 루비라는 방법을 쓰게 된다. 일본어 용어에 한글 용어의 가타카나로 루비, 한글 용어에 한글을 읽는 가타카나 루비, 그 밖에, 다양한 혼용 방법 등이 있다. 이러한 수법에 의해서, 일본과 한국, 재일동포와 일본인, 각각에 대한 생각·심상을 상당히 광범위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넓어진다. 이러한 형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일본어 문만(一音一音)
B 일본어문(一音一音) + 일본어 용어를 한글로 번역한 가타카나의 루비 (一音一音)
C 일본어문 (一音一音) + 한글 용어 표기에 가타카나의 루비 (一文字一音)
D 한글 (一文字一音)
E 일본어문(一音一音) + 한글 용어 가타카나 쓰기에 한글의 루비 (一文字一音)
F 일본어문(一音一音) + 한글 용어의 가타카나 쓰기에 한글 루비 (一文字一音)
+ 한글 표기에 요미가타가나의 루비 (一音一音)
위의 여섯 가지(A~F) 형식을 활용하여 한국적인 하이쿠를 통해 재일동포의 정서와 감성을 함께 감상해보고자 한다. 17수로 노래한 하이쿠에 일본 센다이에 사는 재일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재일동포들의 마음속에 담고 있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참고로 독자들에게 아래의 하이쿠는 미발표된 작품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 A 「일본어문」뿐인 俳句 _ (一音一音)
在日の数ほど咲きし木槿かな
5 7 5 (17수)
거리를 걷다 보면 의외로 여기저기 무궁화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집집마다, 공원길 따라,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등에도. 1910년 한일합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대마도해협을 넘어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이 돌아갈 수 없는 모국을, 고향을 떠올린다. 누군가가 무궁화를 심고, 성장하고, 꽃이 피는 것으로 향수를 달랬는지도 모른다. 일본에 살면서 다층적으로 이 땅에서 죽은 조선인의 수를 나는 모른다. 계절이 되면, 일본 각지에 피는 무궁화의 수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무궁화를 볼 때마다 반도 사람들이 무궁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집길을 따라 심어져 있는 빨간색과 흰색 두 줄, 센다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아타고산(愛宕山) 산허리 일대에 피어나, 민단 미야기 뒷길을 사이에 둔 호텔 마당 모퉁이에도 무궁화가 심어져 있고, 계절이 되면 센다이 거리 곳곳에 무궁화 꽃이 활짝 핀다.
■ B 「일본어문」 (一音一音) +
일본어 용어를 한글로 번역한 가타카나로 루비 (一音一音)
8・15の空や群青の高きあり
4 3 5 5 (17수)
지금으로부터 131년 전인 1894년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121년 전인 1904년 역시 반도에서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115년 전인 1910년 한일합방이 감행되었고, 그 35년 후인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제국이 패하고, 한반도가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 2년 후인 1947년에 나는 센다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78년, 또 광복절이 찾아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본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동포의 모습이 줄어들었다. 이들은 마음을 담아 고된 인생의 비탈길을 오르고 뜻대로의 길을 걸었을까. 광복절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이들의 얼굴이 불현 듯 떠오른다. 그것이 한국·조선과 재일교포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나에게 ‘군청(群靑)’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상이자 색채다. 그 공유한 시간의 위상의 연결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 C 「일본어문」 (一音一音) +
한글 용어 표기에 가타카나 루비 (一文字一音)
벚꽃놀이歌朗々たりて치마の춤
4 9 4 (17수)
봄이 되면 누구의 마음도 들뜨고 따뜻한 계절 속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시대를 초월해 이어져 온 꽃놀이가 찾아온다. 식사나 술이 준비되어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 술이 무르익고 잔치가 벌어지면, 이맘때쯤이면 할머니가 허리를 들고 18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모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국의 민요에 사람은 손뼉을 치고 몸으로 리듬을 잡는다. 그러자 노래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음곡에 이끌려 아무렇게나 허리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박수(拍手)가 터져 나오고 분위기가 점점 고양되어 간다. 아~~, 1세는 1세의 감회가, 2세는 2세의 생각이, 3세에게는 3세의 정체성이 흘러넘친 것이었다.
■ D 한글로 쓴 하이구 (一文字一音)
넓고도 넓게 왼쪽 오른쪽 모두 봄 얘기 가득
3 2 2 3 2 1 2 2 (17수)
■ E 「日本語文」 (一音一音)
+한글 용어 가타카나 쓰기에 한글 루비 (一文字一音)
成人式チマチョゴリの凛として
6 6 5 (17수)
동포들의 모임인 민단이라는 단체가 있고, 스무 살 청년들이 초청돼 참가자들로부터 축하 물품과 인사를 받는다. 남자는 한복과 양복을 입고, 여자는 한복을 입고 단상에 오른다. 긴장하면서도, 어른이 되는 결의를 가슴에 품고, 젊은 그 모습은 늠름하고 상쾌하다.
■ F 「日本語文」 (一音一音)
+' 한글 용어 가타카나 쓰기에 한글 루비' (一文字一音)
+' 한글표기에 요미카타가나의 루비' (一音一音)
サランヘヨ旅立つ아들に母の声
5 4 3 5 (17수)
길 떠나는 아들에게 엄마의 한 마디, ‘사랑해’.
サランヘヨ旅立つ딸에게父の声
5 4 3 5 (17수)
길 떠나는 딸에게 아빠의 한 마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