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이가 목사안수 받던 날 나는 35년 전 미옥이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 옛날 이야기 잘 해주시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아이들 교육과 정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말도 못하는 어린 아기 미옥이가 잠투정을 할 때면 어머니는 아기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다. 말도 못하는 칠 팔 개월밖에 안 되는 어린 아기지만 옛날 이야기만 해주면 울음을 그치고 조용히 듣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가 외출을 하고 안 게실 때면 어머니처럼 성경 이야기와, 옛날 이야기를 해주면서 잠을 재웠다. 그랬더니 미옥이는 걸음마를 하기 전에 말부터 했는데 말을 빨리 배웠다기보다는 걸음마가 늦었다는 것이 더 오를 것도 같다.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순하기도 했는데 잠 오는 눈치가 보일 때면 우리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럴 때마다 홍어같이 조그만 눈을 깜박이며 조용히 듣다가 사르르 잠이 들곤 했다. 미옥이는 세 살이 되면서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 이야기를 대충 하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서투른 이야기지만 다 알아들을 수가 있어서 귀엽기도 하고 너무 신기하기도 했다.
자라나면서 얼마나 옛날 이야기를 잘하는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미옥이를 만나는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를 해보라고 구슬렸다. 그때마다 미옥이는 나를 쳐다보며 해도 되는지, 눈치를 살폈다. 왜냐하면 만약에 도깨비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기 거북한 장면이 있어서 내가 못하게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자청해서 옛날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보라면 온갖 각가지 흉내를 다 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혹부리 착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갔대요. 그런데 깨금 나무에 깨금이 많이 열려서 낫으로 톡, 때리면 도도독-어리기 때문에 'ㄹ' 발음이 잘 안돼서 '조로록'을 도도독-쏟아지고 라고 표현했다. 톡, 때리면 도도독 쏟아지고 해서 그 깨금을 다 주워서 조끼 주머니 양쪽에다 불룩하게 넣고 집을 오려는데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대요. 그런데 저쪽 산에 불빛이 하나 반짝반짝 해서 그곳을 찾아가
"쥔 양반 계시유? 쥔 양반 계시유? 날이 저물어서 찾아 왔는데 하룻밤만 재워 주시유"
하니까 어떤 아저씨가 나와 반갑게 맞아드려 다락방에 올라가 자게 되는데 깨금을 하나 꺼내 딱 깨물었더니 안방에서 자던 아저씨가 깜짝 놀라 다락방문을 열고 착한 아저씨를 끌어내리고 꽁꽁 묵는데 보니까 쥔 아저씨는 뿔 달린 도깨비더래요. 그 도깨비가 몽둥이를 들고 막 때리려는 순간
"잠깐만! 아저씨, 내가 노래를 불러 줄 테니 들어보고 살려주세요"
하고 노래 몇 곡을 기똥차게 잘 불렀더니 기분이 확 풀려서
"야! 너 어디서 그렇게 노래가 잘 나오니?"
"이 '혹'에서요."
"그러면 이 방망이하고 바꾸자."
해서 디룽거리는 혹을 떼 주고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가지고 집으로 와 식구들을 모아놓고 돈 나와라 뚝딱 하면 돈이 막 쏟아지고, 집 나와라 뚝딱하면 집이 나오고, 쌀 나와라 뚝딱하면 쌀이 막 나오고, 논 나와라 뚝딱하면 논이 나오고 밭이 나와라 뚝딱하면 밭이 나오고, 일꾼 나와라 뚝딱하면 일꾼이 많이 나와서 큰 부자가 됐대요. 이것을 본 이웃집 혹부리 나쁜 아저씨가 나도 그렇게 해봐야지 하고 나무를 하러 갔는데 정말 깨금이 많이 열려서 낫으로 톡 때리면 도도독 쏟아지고 톡 때리면 도도독 쏟아지고 하는데 욕심쟁이 아저씨는 이것을 주머니에 가득 담다 보니 날이 저물어 어두워졌대요. 마침 저쪽에 반짝반짝하는 불빛이 보여 그곳을 찾아가서
"쥔 양반 계시유? 쥔 양반 계시유?"
했더니 주인 아저씨가 나와서 맞아들였대요.
역시 착한 아저씨처럼 다락방에서 자라고 해서 다락으로 올라가 자는데 잠도 잘 안 오고 심심해서 깨금을 하나 꺼내 딱 깨물었더니 이 소리에 깜짝 놀란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도깨비로 둔갑을 해 다락방문을 활짝 열어제치면서
"너 이놈 잘 됐다. 네가 바로 먼젓번에 우리를 속인 그 놈이구나! 너 이리 내려와!"
하면서 착한 아저씨에게서 떼 낸 혹을 하나 덧 붙여 주고 옷을 벗기고 자지를 잡아당기면서
"한발 늘어라 뚝딱, 두발 늘어라 뚝딱, 세 발 늘어라 뚝딱, 네발 늘어라 뚝딱."
이렇게 계속해서 열 발까지 늘이는데 한발 늘어라 할 때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뚝딱' 할 때는 확 잡아당겨 내리며 '뚝딱' 하는데 열 발까지 큰 소리로 신나게 외쳐대는 것이었다. 'ㄹ' 발음도 잘 안 되는 네 살 박이 어린아이가 열 발까지 '뚝딱'을 이렇게 외쳐대고 있으니 듣는 사람들은 모두 다 벽장대소를 했다. 모두들 하하거리며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는 미옥이는 점점 흥이 달아올랐다.
이야기는 계속되어 그 열 발 늘어난 자지를 서리 서리해서 등에다 짊어지고 집으로 와 뒤뜨란 굴뚝에다 쑥- 넣었더니 부엌에서 불을 때던 형수가 부주깽이에 무엇이 거치적거려서
"이게 뭐냐 "
하니까 반대편 굴뚝에서
"시동생 자지유-"
하면서 끝내는데, 끝소리는 충청도 사투리로 입술과 턱을 치켜올리면서 길게 뽑았다. 상상을 해 보라! 듣는 이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며 웃어댔겠는가......!
그러나 점잖은 남자손님이 있을 때는 나는 너무 민망스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이야기가 끝나면 손을 잡고 손바닥에다 종이돈을 쥐어 주는 이들이 있었다.
미옥이는 이렇게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고 교회학교 행사 때면 동화를 많이 했다. 온양에 신리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온양기독병원에 가서 동화를 해 많은 칭찬을 받았다.
네 살 박이 미옥이의 동화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그렇게도 웃기더니 벌써 35세의 나이로 자라나 그 어려운 장로교회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첫댓글 동화치곤 너무 야하군요 ..............ㅎㅎ.......어릴때 부터 들었던 것들이 교육이 되었나 봅니다 .. 미옥님은 분명히 목회일을 부드럽게 잘 이끌어 나가시리라 믿어집니다 ....이 시인님 재미있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