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하던 장기예보는 빗나가고 말았다.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12월의 날씨가 1월보다 추웠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올 해 들어서 제일 춥다던 12월도 가고 새로운 희망 속에 맞이한 2015년 1월을 맞이하여 대체로 포근한 날들이 계속되고 눈이나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심할 뿐만 아니라 특히 강원도 산악지역에도 눈이 별로 오지 않고 가물어서 소양강 물이 바닥을 드러내어 빙어축제를 시작한 지 17년 만에 처음으로 빙어축제마저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특히 강원도 지역에 내린 12월의 강수량은 0,2mm로 한반도의 장기 가뭄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를 할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봄까지 비가 안 온다면 전국적으로 물이 부족하여 제한 급수를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 내가 31살 되면서 결혼을 하여 어언 3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별다르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모은 재산도 없으며 내로라할 만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충실하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며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자랑할 것은 없지만 근검절약하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결혼 39주년이 된 것이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미리 만세 전에 예정하셔서 나를 택정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며 가정을 이루게 해 주신 것으로 믿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사랑하고 건강한 아내와 딸, 아들을 주셔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때가 됨에 사랑스럽고 예쁜 며느리와 잘 생기고 멋진 손주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남은 인생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이 바람이고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언제든지 그 자녀들을 사랑하시며 보호해 주실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남은 삶은 더욱 더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하는 다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지금까지 가정을 잘 지켜주고 어려움 중에도 한 마디 불평하지 않고 언제나 감사를 잊지 않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며, 기분전환을 겸해서 아내를 위해서, 결혼 39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강원도 속초로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일상적인 생활의 틀을 벗어나서 잠시나마 눈 덮이고 빼어난 산세에 동해바다까지 아름다운 산천을 보며 마음의 안식과 치료를 하며 정신적으로 다시 새 힘을 충전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아침에 상가에 다녀오는 바람에 예정보다 조금 늦게 아내와 단 둘이서 모처럼 영동고속도를 타고 가다가 여주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대관령을 지나서 강릉에 도착하여 경포대를 찾았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에서 찾은 경포대는 강릉시 저동이라고 나오는데 가보니 전혀 엉뚱한 데가 나와서 한참을 헤매다가 무조건 경포호수로 가서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서 경포대를 찾아갔다. 바람도 없고 화창한 날씨에 호수는 다림질을 한 것처럼 물결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정경에 마음도 안정감을 찾았다. 가시거리가 좋아서 멀리까지 보이는 경치가 깔끔하고 흐린 날씨에 보는 것보다 훨씬 눈을 즐겁게 하며 기분을 좋게 하였다. 호수를 굽어보며 언덕위에 높이 서서 수백 년을 지켜온 경포대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일찍이 관동팔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8각 지붕에 기둥은 32주로 1326년(고려 충숙왕 13년) 고려 후기 순천박씨 증시조요, 경상도 체찰사를 역임한 안무사 박정숙이 신라 사선이 놀던 일월산 放海亭 북쪽에 세웠던 것을 1508년(중종3년)에 부사 한급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에 수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참으로 멋진 모습과 곧은 기조를 상징하듯이 의연히 경포대를 지키고 있는 것이 마음을 끌었다.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은 호수를 보며 동해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자칫 경포대를 놓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경포호수는 여러 번을 보았지만 경포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호수와 동해바다를 한 아름 품은 경포대는 빼어난 경치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은 곳으로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조선 선조 시대에 강원도 관찰사로 경포대에 들렸던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경포호수를 노래하기를 “십리빙환을 다리고 고쳐 다려 장송 울흔 속에 슬카장 펴뎌시니, 믈결도 자도 잘샤, 모래랄헤리로다. -중략- 죵용한다 이 기상, 활원한다 뎌 경계, 이도곤 가잔대 또 어듸 잇단 말고, 홍장고사를헌사타 하리로다” 라고 노래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요, 강원감사 박신과 홍장의 러브스토리가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근처에 자리 잡은 충혼탑은 차라리 경포대 권역이 아닌 곳에 옮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포대를 보고 동해를 끼고 가다가 주문진 어시장에 들렸다. 그 쪽으로 가면 항상 주문진 어시장을 찾는데 수년전에 맛본 헤뜨기 맑은 탕이 생각이 나서기도 하다. 마침 시장 입구에서 보자마자 아내가 헤뜨기를 알아보고 헤뜨기 4마리, 삼식이 두 마리, 오징어 다섯 마리를 20,000원에 사고 반 건조한 가자미 20,000원치를 사서 속초의 한화콘도로 가니, 한겨울이라서 그런지 대체로 한가롭고 조용하여 좋았다. 집에서 준비해간 밑반찬에 헤뜨기 맑은 탕을 한 냄비 끓여서 아내와 둘이서 조촐하고 소박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맑은 탕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아침까지 먹어도 남을 것 같아서 아내는 밥보다는 맑은 탕을 위주로 저녁을 먹고, 나도 밥은 작은 한 공기에 맑은 탕은 두 그릇을 먹었더니 심심하기는 하여도 물이 켜이었다. 비록 술을 먹지는 않았지만 속을 확 풀어주는 것이 헤뜨기 맑은 탕이 입맛을 돋우고 시원함에 잊을 수 없는 맛의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그렇게 맑은 탕을 많이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일찍 잠에 떨어진 아내를 보며 혼자 티브이를 보다가 더블침대에서 자는 잠은 숙달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편하지가 않았다. 느지기 아침을 먹고 나오니 해는 중천에 떴고 하늘은 맑고 날씨는 포근하여서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속초를 찾는 관광객이 제주도를 재치고, 일 년에 1,200만 명이 된다는 보도가 며칠 전 조선일보에 게재되었는데, 나도 속초에 오면 특히 한화콘도 주변이 너무 좋다. 주변이 온통 푸른 산으로 사방을 둘러치고 바로 콘도를 끼고 골프장과 작은 호수가 시원하게 보이고, 조금만 나가면 동해의 푸른 바다를 마음껏 볼 수도 있으며, 회를 비롯한 먹거리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설악산을 끼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대체로 자주 찾지만 올 때마다 너무 아름답고 좋다는 느낌이 든다. 미시령 길로 접어들어서 터널입구에 차를 세우고 울산바위를 사진기에 담았다. 그 전에도 여러 번 찍었지만 계절마다 느낌이 다른 것이 울산바위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커다란 바위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은 아마 그 곳 밖에 없을 것이다. 미시령 터널 입구에 포토존이 있다. 꼭 그 자리가 아니라도 근처에서 찍으면 거의 다 같은 배경을 잡을 수가 있다. 멋진 그림을 마음에 새기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시간이 가면 기억에서 흐려지고 지워질 수도 있지만 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평생 동안 보고 또 보며 감상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미시령터널을 지나서 황태의 고장 용대리를 지나는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게에도 황태를 걸어놓고 손님들을 유혹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동홍천 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가평 휴게소에서 순두부찌개와 나가사끼 짬뽕으로 점심을 먹었다. 일본 음식은 역시 느끼하고 독특한 맛이 없어서 김기옥 권사는 나가사끼 짬뽕 시킨 것을 후회하였다. 바로 집으로 돌아오니 3시경이다. 일찍 와서 쉬니까 몸도 마음도 편하고 좋다. 조금은 단조로운 나들이였지만 아내와 같이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서로를 잘 이해하며 우리의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는 집사람에게 언제나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진정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되기를 바라며 결혼 39주년 기념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15. 1. 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