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2월 8일 목요일 맑음
8시 넘어서 기상. 만고강산이다. 안사람은 벌써 학교에 가 있을 때다.
문제는 어머님께서 일어나시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신다는 데 있다..
올 한 해 할 일 다 하시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라 긴장이 풀어지신 것 같다.
어디 편찮으시지만 않으시다면, 문제될 일은 없다. 나 때문에 귀찮으신 게 걱정이지. 그런데 10시나 돼야 일을 시작하니 오전 일이 마땅치 않다.
제일 먼저 석유통에서 기름보일러로 석유가 이동하는 호스를 갈아야 한다.
10년이 된 기름보일러라서 여기저기 망가진다. 호스에서 석유가 조금씩 새어 나와 바닥을 적시는데 바로 옆에서 화목보일러가 타고 있으니 자칫하면 큰일이다. 안전장치를 하고 서둘러 정산 철물점에 갔더니 똑같은 것이 없단다.
청양 보일러집에 연락을 해 보니 있단다. 다행이다.
정산의 생활이 다 좋은 데 불편한 점이 이런 데 있다.
청양까지 15분, 귀뚜라미 보일러 대리점에 들렀다.
주인 양반이 참 친절하고 자상하셨다. ‘이런 분이 계시구나. 진작 알았다면 건조기나 화목보일러를 여기서 살 걸. 앞으로 이 집을 이용하자’
사람을 대할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오전에 할 일은 어제 모아놓은 쓰레기 중 비닐만 따로 모아서 분리수거장으로 나르는 일이다.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시간이 한참 걸렸다. 비료 푸대로 25푸대. 농약 빈병 5푸대, 한 차 가득이다. 경로당 옆 공터로 날랐다.
다음은 쇠붙이를 따로 싣고 고물상으로 갔다. 예초기 고장난 것 3대, 녹이 슨 철사 등 그대로 두어야 쓰레기만 되는 것을 가져다 주려는 것이다.
내려놓고 돌아서는 데 사장님이 돈을 꺼내 6천원을 준다.
“아니 이 거 돈을 받으려고 가져온 게 아닌 데요”
“그래도 실어까지 오셨는데 그냥 받을 수 있나요 ? 받으세요”
“생전 처음 고물 팔아서 돈 벌어 보네요” 서로 허허 웃었다. 좋은 사람이다.
점심 후에는 안산 밑 매실 밭에 가서 봄에 가져다 놓은 거름을 날라서 매실 나무 한 그루마다 세 푸대씩 펴주는 일을 했다.
제일 힘드는 일이다. 바퀴 하나짜리 수레로 나르는데 매실나무 밑을 기다시피 날라야 하니 아주 어렵다. 냄새도 지독하고, 피부에 닿으면 가렵기까지 하다.
그런데 좋은 점은 느긋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말에만 일을 할 때는 허겁지겁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진작에 퇴직할 걸 그랬나’
어두워지고 동네 외등이 켜질 때까지 일을 하고 돌아섰다.
‘못 한 건 내일하면 되지’
귀농일기를 쓰다가 보일러에 나무를 더 넣으려고 나갔더니 비가 온다.
그러면 내일 할 일이 달라지는데..... ‘비는 또 왜 와 ?’
방으로 돌아오니 문자가 와있다.
“안녕하세요 ?? 운사모에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예요.
이 번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감사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사무실이나 우편물 보낼 주소를 검색해도 찾을 수 없네요. 주소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대로 옮긴 것이다. 많이 놀랐다. 그리고 가슴이 뭉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스스로 감사 편지를 쓴다는 첫 번째 장학생이다.
‘한밭고 카누 선수 손동건이구나.’ 올 해 졸업생이 동건이 하나뿐이다.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라 가슴의 떨림이 멈추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동건이구나. 고맙다. 감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편지를 처음 받아 보는 내가 감격하고 있단다. 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내가 있는 곳의 주소는 충남 청양군 정산면 용두리 32번지 김순의씨 댁 이건표. 이리 보내주면 운사모 전 회원들께 전해 줄게.
우리 동건이 인성이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한 것 진심으로 축하 해. 운사모 회장 이건표”
오늘 밤 행복하게 잠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