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요즘 참 고울 때다. 녹색 바탕에 주황색 열매로 가지가 찢길 듯 주렁주렁한 모습이 그렇다. 게다가 조각난 햇살 한 줄기 보태어지면 파란 하늘과 대비되며 토해낸 색감이 여간 고운 게 아니다. 손을 못 구해 쩔쩔매는 지인의 과수원에 일손을 보태기로 약속한 날이다. 전날, 사나운 비와 함께 강풍에 우박까지 쏟아져 기온이 하향곡선을 그어댔다. 일손 모자란 지인도, 하필 바싹 추운 날 간다고 대답한 입장도 속내 다른 걱정으로 마음이 혼란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웬일, 햇살은 난처했던 두 입장을 한 방에 날렸다. 그 일요일은 춥기는커녕 겉옷 하나를 벗어야 할 정도로 날씨가 온순했다. 모처럼의 걸음에 조금이나마 일을 덜어줄 수 있어 좋았다. 전정 가위의 찰깍찰깍 소리를 배경에 두고 손은 부지런히 놀리며 작황 상태며 시세 등을 간단히 전해 듣기도 했다.
감귤의 시작은 인도로부터 중국, 인도차이나에 걸쳐 아시아대륙의 동남부 주변으로 많이 분포됐다고 한다. 지금이야 농업 기술도 좋아지고 품종 개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종류도 많고 맛도 좋다. 더러 타지방에서 재배가 된다는 보도도 접한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제주는 감귤 생산의 유일한 곳으로,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 했다. 특히 삼국시대에서 조선조를 거치는 동안 조정에 공물로 바쳐지는 일이 ‘천 년 풍습’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숙종 때는 곳곳에 국가가 과수원을 정하여 군인에게 지키도록 했을 뿐 아니라, 할당량 채우기가 턱없이 부족하여 민가의 귤나무마저도 포함했다. 그걸 낱낱이 조사해 숫자로 기록해 두고 꼬리표도 달아 두었다고 한다. 그중에 하나라도 없어지거나 새가 쪼아 상하게 되면 처벌을 내리거나 그에 상응하는 세금도 부과했다고 한다. 바람 타는 섬에 바람이나 해충으로 귤의 숫자를 못 채우게 되면 소유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그런 일을 당하는 민가에서는 우환을 가져오는 나무라 생각하며 뜨거운 물을 끼얹어 죽여버리거나, 송곳으로 구멍 낸 뒤 후춧가루를 넣어 죽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수확한 귤은 엄격한 검사를 거쳐 배에 진상품을 싣고 나가다 더러 거센 풍랑을 만나기도 한다. 귤 농사에 따른 수확 자체도 어렵지만 운반하는 데도 이곳 사람의 목숨을 담보해야 할 만큼의 부담인 게다. 말이 진상이지 생산자 입장이고 보면 착취나 다를 바 없었던 그 일이 1894년에 와서야 감귤 진상이라는 말이 없어졌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제주 경제의 버팀목 역할인 감귤이 이렇듯 아픈 역사를 품고 있었다니 곱게만 봤던 일이 무색해진다. 기온이 계절 안에서 널 뛰느라 바쁜 요즘이다. 오늘도 노랗게 익은 열매 하나하나에 땀방울을 적시는 손들이 바쁘다. 너나없이 힘들게 노력한 만큼의 기대치를, 땀의 흔적을 정직하게 보상받을 수 있었으면 하고 계절이 그려놓은 풍경 안으로 소박한 바람을 내 널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