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윤회가 고통임을 아십니까 흔히 그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번뇌 때문에 업보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자 곧 부처라했다. 부처의 법어를 통해 깨달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부자(父子)가 있다.
한국불교태고종 옥천대성사 혜철주지스님과 대한불교조계종 청수사 지효 총무스님은 속세의 인연으로 치면 부자사이다.
지효스님이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 혜철스님은 불교에 귀의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물보다 진한 혈육의 인연을 이를 악물고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혜철스님의 악화된 건강 때문이다. 생의 끝자락에서 살기 위해 출가를 결심한 것이다.
보현사 원봉스님의 상좌(제자)인 혜철스님은 출가 전 한국음반협회지부장을 맡으며 물욕의 풍요를 맘껏 누려본 그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무상하기 짝이 없어 가사(袈裟)를 택했다.
혜철스님은 "출가하기 전 화려하던 삶도 죽음의 벼랑 끝에 서보니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할머니와 어머니인 덕인스님의 생활을 보고 자라서인지 속세를 떠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효스님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혜철스님으로부터 출가 권유를 받았다. 공부도 잘하고 남다른 리더십을 자랑했던 지효스님이 아버지의 출가 권유를 망설임없이 수용했던 이유는 아토피 질환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효스님은 "학창 시절 나의 번뇌는 대학진학도 친구도 아닌 아토피질환에 따른 고통이었다"며 "타인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또 다른 이에게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며, 작은 일이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고 털어 놨다.
지효스님은 이어 "출가를 결심했던 시점 이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4대로 이어진 출가가 전생에 지은 업에 따른 행보라는 생각이 든다"며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효스님은 청수사 회주 성관스님의 상좌(제자)로 19세에 출가한 후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선학과와 동대학원 불교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혜철스님은 며칠 전 지효스님을 만나기 위해 청수사를 찾았다. 법랍 7세로 접어든 지효스님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혜철스님은 "지효스님은 어려서부터 자신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며 "지금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돌보는 일에 앞장서는 등 포교활동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탐하고 화내는 속세의 생활습관을 버리는 것이 출가한 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지효스님은 "혜철스님은 내게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인도해 주었고, 지역사회를 위해 어떻게 포교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했다"고 말했다.
안경 너머 내다뵈는 세상이 다르고, 종파 또한 다르지만 인간에서 각자(覺者)가 된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같은 두 스님의 동행길이 행복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