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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자을 도학으로 풀이하면 차자는 초 + 아 = 차자이다. 茶자는 初 + 訝 = 茶자이다. 그래서 차(茶)는 처음 초(初) + 맞이할 아(訝)로서 처음을 맞이한다. 는 뜻이다. 차(茶)자는 우리말과 한글 그리고 도학(道學)의 한문(翰文)을 모두 표현 할 수 있다. |
2. 차(茶)자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
1) 우리민족의 茶자 형성과정
(1) 우리민족은 자연민족으로 자연문화를 처음으로 알게 한 문자가 차(茶)자이다. 그것은 茶자의 형성과정과 쓰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2) 茶자 형성 과정은 처음 맞이한다는 초아(草芽)가 아닌 초아(初訝)에서 찾고,
(3) 茶자의 쓰임은 처음 맞이하는 뜻의 작용인 차사(茶祀)에 있는 것이다. 차사의 원초는 개천(開天)에 있고, 이날을 그리기 위해 음력 10월 3일을 개천의 날로 지절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10월달을 상달이라 이름 하였다.
(4) 하늘(霞乙)이 열리는 개천(開天)의 날이 지나면, 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뜻으로 음력의 동지(東地)가 한해의 설(雪)이 된다.
(5) 동지(東地)가 되면 茶나무 꽃이 흰색으로 시절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이 차나무의 명칭과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동지차사(東地茶祀)를 지내므로 이 차사를 설(雪)이라 한다. 그래서 땅에는 차나무의 흰꽃이 땅위에는 동백이 피어 땅속과 땅위가 하나가되는 문자가 茶자이다. 그 이유가 동백(東白)을 산다화(山茶花)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나무와 동백나무는 같은 과(科)라하고 차나무 전문지에 동백꽃이 그려져 있다. 동백꽃도 차꽃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동백은 동지(東地)에서 하지(霞地)까지의 작용을 하는 나무와 꽃이 된다. 차꽃과 동백꽃이 그려진 일본차완이다.
(6) 茶자의 작용은 이 땅과 원초적인 시원의 자연성을 이 茶자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茶)자는 차사(茶祀)를 지내기 위한 어원이었으며, 그것은 개천(開天)하는 날에 하늘에 고하는 첫 행위가 차사(茶祀)였다. 그것은 바로 자연민족으로 나의 뿌리가 되는 하늘을 열개(開天)하는 것이 차사(茶祀)로 시절을 시작하게 하는 첫 만남인 것이다. 그래서 茶자의 존재를 뜻하는 차나무의 차(茶)자는 차자의 범위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茶자는 처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하늘과 땅의 만남으로, 그 만남의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차(茶)자의 문자가 형성되어 茶자는 초(初) +아(訝)로 初訝는 처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茶자의 쓰임은 차나무의 찻물, 차 음식으로 차사를 지내고 차사(茶祀)는 시절의 처음 만남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사에 쓰이는 움식은 그 시절을 뜻하는 절식을 쓰는 것이 차사이다. 가령 땅의 시작인 동지차사(東地茶祀)에 흰 새알을 넣는 것도 땅속의 설(雪)을 뜻하는 절식인 것이다. 그래서 동지 날은 끝남과 시작이 같이하는 날로 결실의 뜻인 팥죽에 새알을 넣고 차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동지 때는 차꽃이 피는 시절로 이것이 바로 차나무의 흰꽃이 차사를 지내는 시절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2) 중국의 유학적은 표현은 은유법 의인법 비유법으로 만들어져 있다.
(1) 茶 잎을 작설(雀舌)이라 하여 참새 혀와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학문이 은유법이다.
(2) 茶자를 풀초艸변에 나무목木자를 써서 차자라 한다. 이것은 유학의 표현이요.
(3) 茶자를 파자하여 18세 혹은20세의 아가씨가 따는 것이 차라는 것이다.
3) 중국의 차나무 전래
(1) 중국 전국시대 명의인 편작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무덤에서 자라난 것이 차나무라 한다. 편작은 백팔가(白八歌)를 지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2) 인도 향지국의 달마가 중국의 양무제를 찾아가 문답 중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 면벽중 잠을 쫒기 위해 눈꺼풀을 짤라 버리니 그곳에서 차나무가 자라났다.
(3) 인도의 의원 가파가 여행 후 집에 돌아오니 20세 된 딸이 죽어 무덤에 좋은 약을 뿌리니 차나무가 자라드라.
4) 중국의 육우에 의한 茶 설명
나무은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와 같으며, 꽃은 백장미와 같다. 그리고 열매는 병려와 같으며, 줄기는 정향과 같으며, 뿌리는 호두를 닮았다.
3. 우리민족의 시절을 알게 하는 차(茶)나무
차(茶)자의 어원의 뜻은 처음 맞이한다는 뜻으로 처음 맞이하는 것은 하늘이요, 땅이요, 시절이다. 그래서 도학(道學)은 하나의 쓰임과 해석이 있는 것이 아니요 삼재(三在)의 만물에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의 모든 것에 적용되니 하늘을 맞이하는 차사(茶祀)는 개천(開天)의 차사요. 땅이 움직이는 시작을 맞이하는 동지는 동지차사(東地茶祀)로 설(雪)이 된다. 시절을 맞이하는 차사는 추석(秋夕)이 아니고 서수(西首)라 한다. 그래서 하늘을 맞이하는 차사의 절식으로는 찻물(찬물)을 놓고, 동지차사는 팥죽을 뿌리고, 추석의 차사는 오곡백아(五穀白霞)로 승편(昇片)을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개천의 차사는 하늘민족(霞乙民族)인 우리의 뿌리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땅을 움직이는 동지차사(東地茶祀)는 일년의 시작으로 땅속의 설(雪)이 된다. 그래서 신정과 구정을 雪이라 하는 것은 지난날의 책력에 의한 것이요 땅의 생리를 알지 못할 때의 풍습이다. 그래서 지난날 구정 때 절식인 떡국은 팥죽속의 새알이 되고, 그래서 자연민족인 우리민족의 3대 차사는 개천절, 동지의 설 그리고 추석날이 된다. 그러나 개천절은 시원의 차사로 작용이 끝나고 땅에서는 시작과 결실의 차사를 지내는 것이다.
4. 차(茶)자로 세계의 근간이 되는 민족
우리민족은 조하(朝霞)의 작용과 까마귀 땅이 만나므로 그 작용이 삼족오로 땅의 작용이 일어나고, 그래서 처음 맞이하는 시절로 차사(茶祀)를 지낸다. 그래서 원초부터 차(茶)자의 뜻은 자연속의 생활에서 쓰고 있었다.
그래서 동의족의 뜻으로 태양의 생리인 빛과 열로서 민족성을 있게 하고 백의민족으로 인류가 시원의 민족이란 뜻이고, 뿌리민족으로 땅속의 문화를 간직한 민족으로 우리말과 글은 세계의 어느 민족의 말이라도 풀이 할 수 있어 세계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민족만이 운을 일으키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 생활민족이 풀 수 없고 쓰임이 없는 자연의 영향을 받으므로 우리의 말과 글이 생활민족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차나무는 차나무 어원의 뜻으로 세계 차나무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차나무의 생리생태는 시절이 있는 땅에서 처음자라는 나무가되므로 가장 근원적인 발음인 茶자의 발음을 할 수 있고, 그 성분의 영향은 녹차로서 사숨 녹(鹿)으로 최고의 성분의 효능을 일으킬 수 있는 땅이 우리민족이 살고 있는 화강암지대의 이곳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물건이라도 기준은 최상의 위치를 기지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5. 차(茶)의 종류와 이해
1) 녹차(鹿茶)
우리민족은 녹차를 사숨(사슴) 녹(鹿)자, 차(茶)는 초아로 처음 맞이하는 시절을 뜻하므로 녹차(鹿茶)를 임금같은 시절을 처음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녹차(鹿茶) 자연성인 성분과 효능으로 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운(雲)이란 녹차(鹿茶)를 마시므로 茶茗久服令 有人力 脫志로 차를 오래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나고 탈진을 방지 한다.는 뜻은 차의 성분만이 아니라 유인력은 기운으로 기운은 생활민족이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본초신농에 나오는 구절로 인하여 신농은 우리민족인 것이다. 생활차의 녹차(綠茶)는 성분과 효능이 있을 뿐이지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은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녹차(鹿茶)는 체질성 따라 맞고 안 맞고의 차이가 일어난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개인의 체질성 차이에 의한 것이다.
사숨(사슴)은 임금의 표상이다. 녹차(鹿茶)는 성분과 효능이 최상이며 운(雲) 또한 최고이다. 생활인들의 녹차는 푸른 녹(綠)차를 써서 성분과 효능이 전반적으로 동일하므로 맞고 안 맞고가 아니고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뜻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생활민족의 체질은 혈액의 차이가 있으므로 우리민족보다 훨씬 단조로운 식성을 가지고 있다.
杲山大宗師의 飮茶 20 頌 ( 2006년 5. 29. 팻말촬영)
第 一 頌 三神山 鹿野生茶는 眞鑑禪師 始培茶라 新羅禪客 樂飮茶하고 于今僧俗들은 茶의 三昧에 빠졌도다. 삼신산 기슭에 야생한 차는 진감선사께서 처음으로 심은 차라 신라시대는 참선하는 이들이 차를 마시기를 즐겼고 요즘 승속들은 차의 삼매에 빠졌도다. 三神山 鹿野生茶 → 삼신산 기슭에 야생한 차는 이 문장에서 녹야생다(鹿野生茶)의 해석은 사숨(사슴)이 뛰노는 기슭이 아니고, 녹차(鹿茶)가 자라고 있는 곳으로 우리 차는 사숨鹿자인 녹차(鹿茶)인 것이다. |
하동의 차시배지의 고랑 속에 어느 선사의 차시(茶詩)내용에 녹야생다(鹿野生茶)라는 단어가 팻말내용 속에 있었다. 녹야(鹿野)는 사숨(사슴)이 놀고 있는 들이 아니라 차밭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동(霞東)에서 나는 차를 왕의 차라 하는 것이다.
고산대종사의 음다 20송안에도 녹차(鹿茶)라는 단어로 우리 차의 용어가 사숨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녹차(綠茶)와 녹차(鹿茶)의 비교】 녹차(綠茶)는 푸를 녹(綠)자를 써서 차나무가 사철 푸르다. 라는 뜻은 운이 발생하지 않는 생활민족이 쓰는 용어다. 녹차(鹿茶)는 사숨(사슴) 녹(鹿)자를 써서 차나무의 위계를 임금의 직위와 같다는 뜻으로 생리 생태가 최상의 운(雲)인 조하(朝霞)의 차나무이다. |
2) 설록차(雪鹿茶)
설록차(雪鹿茶)의 해석은 시작을 눈 설(雪)자, 사숨(사슴) 녹(鹿)의 최고의 운이 주어지는 차(茶)를 설록차 라 한다. 이 뜻은 처음부터 결실까지의 성분과 효능의 운이 담겨있는 차라는 뜻이므로 우리 차의 우월성을 뜻한다. 우리민족만이 붙일 수 있는 자연성이 들어있는 명칭이다. 녹(鹿)차는 설녹차(雪鹿茶)를 줄여 부르는 명칭이다.
3) 작설(雀薩)과 작살(紫薩)의 비교
(1) 작설(雀舌)의 의미
작설(雀舌)은 중국의 육우가 차 잎이 참새의 혀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라고 다경에 처음으로 茶자가 적혀 있다고 말한다. 차 잎의 표현을 차가 아니라 참새의 혀 같은 것을 차라고 한다. 이러한 표현을 은유법이라 한다. 은유법은 우리민족에게는 진리의 학문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직법(直法)으로 모든 명칭 속에 그 물체의 운이 들어있으므로 말과 문자 그리고 뜻이 같아야 한다.
(2) 작살(紫薩/잭살의) 의미
우리의 하동지방에서는 자라고 만들어진 차를 작살(잭살)이라 한다. 이것은 작이 자(紫)로 풀이하여 자주색의 운을 가진 차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동(河東)이 하동(霞東)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운의 성분인 것이다. 작살의 뜻은, 작살의 작은 자(紫)로서 자주색을 뜻하고, 살(薩)은 땅 살(薩)로 붉은 운을 받는 땅에서 자라난 차라는 뜻이다. 그래서 움직이는 땅에서 붉은 노을의 운을 가진 차가 하동 차이다. 그러므로 하동(霞東)에서 만들어진 차를 왕의 차라고 부른다.
6. 백차(白茶)의 분류
이 땅의 식물로 만들어지진 차를 백차(白茶)라 한다. 우리민족은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백성(白性)이라 했다. 백은 흰 백(白)으로 이 땅에서 시작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나는 모든 식물로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칭으로 백차(白茶)라 한다. 이러한 차를 대용차 혹은 민차라 하기도 하지만 백차는 처음의 땅에 시원의 인류인 우리 백성이 먹는 차(茶)이다.
1) 여의주 (如意珠)차
여의주(如意珠)에 순응하는 차로서 꽃과 열매로 만든 차를 말한다. 오미자 차, 구기자 차, 국화 차 등이다.
2) 설심차 (雪心茶)
설심차(雪心茶)는 잎과 줄기 가지로 만든 차를 말한다. 모든 식물의 잎과 줄기를 가지고 만든 차를 말한다. 그래서 줄기와 잎을 그린 당초문양을 설심초 문양이라 한다.
3) 혈심차 (穴心茶)
뿌리로 만든 차를 말한다. 망개, 민들레 뿌리 등 모든 식물의 뿌리로 차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보완작용으로 잘못알고 있는 차 지식 우리는 백차를 백가지 넣어서 많은 효능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발효된 백차를 같이 우려먹으므로 좋은 차로서 보완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차의 장점을 보완을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오행에서 나온 것으로 잘못된 논리이다. 차의 성질이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차 잎끼리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사람과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차의 성질이 상쇄되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면 차와 술의 배합이다. 백차 중에도 이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
7. 조하(朝霞)의 작용과 적용
조하(朝霞)의 작용은 하을(하늘)의 자연성에 의한 붉은 노을이다. 조하(朝霞)의 적용은 붉은 노을에 의한 차의 성분과 효능이 일어 난다. |
1) 동차송(東茶頌) 2절의 조하(朝霞)의 뜻
아침 조(朝), 노을 하(霞)의 뜻이다. 그래서 조하는 아침의 노을이다. 아침의 노을은 붉은 구름을 말한다. 그래서 동쪽 하늘에는 조하가 일어나고 그 조하를 받고 자란 차 잎은 성분과 효능이 가득하여 우리 몸에 좋은 운을 일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하동(霞東)의 명칭은 조하(朝霞)와 같은 뜻이다.
2) 하동(霞東)의 명칭 속에 들어 있는 차
하동은 조하와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하을(霞乙)인 하늘의 운(雲)이 조하(朝霞)의 뜻과 같으며, 조하(朝霞)는 하도(霞道)로서 붉음이 시작하므로, 우리민족이 홍이인간(紅里人間)인 홍익인간의 민족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홍이인간(紅里人間)은 붉은 땅에 붉은 운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란 뜻이고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은 사람을 두고 학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인본사상이다. 우리민족은 오로지 자연의 순환에 진리의 근간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은 위대한 인물을 칭송하는 기록이 많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 들어와서도 자기를 은둔하고 낮추는 것은 미덕으로 알고 있다. 자연이란 더하지도 빼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서 하동(霞東에)서 자라는 차는 붉은 노을로 인하여 최상의 차가되는 것이다.
3) 조하(朝霞)의 하(霞)를 로(露)로 해석하므로 우리의 차 문화가 실종되었다.
조하(朝霞)를 조로(朝露)인 아침이슬로 해석하여 아침이슬을 담뿍 머금은 차를----- 이렇게 배우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침 노을 하(霞)을 아침 이슬 로(露) 해석하므로 차 잎을 따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잘못 알게 한다. 시각의 잘못으로 우리 차의 지식과 문화를 제대로 알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차 따는 시각을 아침이슬을 받은 차라는 내용을 쓰지 말아야 한다. 아침이슬의 해석으로 차 잎에는 물기가 많다는 느낌을 받으므로 찐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차 맛을 구수한 맛으로 최상으로 치고 있다. 우리 녹차(鹿茶)는 입에서 차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큼하고 싱그러운 차 본연의 맛과 향을 온 몸에서 느껴야 한다. 차 잎 속의 수분만으로 덖어야 진정한 차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동에서 자라는 차가 아니면 하동(霞東)의 터 운(雲)이 하동 차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동의 지명을 물河자가 아니고 노을霞로 고쳐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하동의 터 운은 살아나고 진정한 하동 차의 가치를 다할 것이다. 붉은 노을의 땅인 조하(朝霞)의 땅이 될 테니까.
4) 녹차(鹿茶)는 자라는 환경조건이 맞아야한다.
우리나라 녹차는 해양성 기후의 물이 잘 빠지고 바람이 가벼운 곳으로 습도가 항상한 지역으로 햇볕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이러한 곳은 지금 차나무가 자라고 있는 지역 들이다. 현대에 와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나무 가꾸기를 누구나 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이므로 아무 곳에나 자라지 않는다. 비록 차나무가 잘 자랄지라도 산지와 같은 성분과 효능을 갖추지 못하므로 차나무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
8. 차(茶)와 술(戌)의 연계성
1) 차와 술이 같이 놓인 기록
(1) 수로왕의 제사상 (가락국기)
(2) 상례비요의 상차림
(3) 신농 황제의 제사상 (김대성의 동차송 번역본의 부록)
2) 차와 술의 작용
차는 차(茶=初訝)로 시작하는 음료요. 술은 술(戌=開)로 운을 열어 올라가는 자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茶)로 시작하여 술(戌)로 결실을 얻는다는 뜻으로 차와 술을 같이 놓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뜻은 운(雲)으로 쓰이는 의식행사의 뜻이므로 사람이 직접 이렇게 마셔서는 안 될 것이다. |
3) 차(茶)의 작용, 우리 차가 냉하다?
우리 차를 흔히 냉하다고 한다. 그래서 녹차를 많이 마사면 건강(위)에 좋지 않다고들 한다. 그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① 체질적인 이유? 지나친 땅 체질일 때 차의 온도가 시작의 온도 이므로 몸과 순응하지 못하여 몸이 좋지 않는 상태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두고 맞지 않다고 말을 한다.
② 질병으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위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몸의 상태이다. 못 움직이는 것(질병)은 못 움직이는 것(도자기의 차물)을 만나면 움직임이 일어난다.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것은 결국은 좋아진다는 것이다
③ 차를 마시면 약성을 희석시킨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약성은 어느 물질하고 순응하지 않는다. 순응하지 못하면 서로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성은 인의적인 물질이고 차의 성분은 자연성으로 자율 조정이 되는 것이다.
④ 어린아이나 임산부가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일생을 두고 어릴 때 차를 마시면 유인력(有人力)으로 평생 힘을 잃지 않는다. (어린나이에 먹이지 말라. 임산부는 먹지 말라는 말은 근거가 없다. 카페인 성분이 이유라면 차속의 카페인은 데아닌의 작용으로 자율성이 되는 것이다.)
4) 찻물의 온도는 36.5도로 체온과 순응하는 온도이다.
차를 마시면 몸과 순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차와 마음의 온도가 같을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안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찻물을 식히고, 찻잔을 데우고, 마음을 안정하기 위하여 차 마시는 장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물의 온도와 다기의 온도와 우리 몸의 온도가 같을 때 순응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차의 성분에 의한 효능의 순환으로 즐거운 몸과 마음이 된다. 이런 과정에 의해서 우리 녹차는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차가 되는 것이다.
중국 녹차는 뜨거운 물로 마셔도 된다. 그 이유가 차 잎이 다르고 제다과정이 다르다. 그것은 각 지방마다 차명(茶名)에 의한 유념의 작용으로 차의 모양을 유지하고 뜨거운 물에도 우려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페인과 탄인이 쉽게 우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녹차(鹿茶)는 짙은 유념의 작용으로 뜨거운 물로 차를 우리면 맛과 향 그리고 우리 몸과 순응하지 못한다. 우리 녹차를 우린 잎은 먹을 수 있지만, 중국차의 우린 잎은 먹지 못한다는 것은 차 잎이 억세고 두터운 것으로 그만큼 차나무가 자라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녹차는 끓인다하고, 우리녹차는 우린다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같은 녹차를 두고 차 잎이 다른 것이다.
5) 술(戌)의 작용
차와 술은 운의 궁합이 맞는 음료이다. 그렇다고 실제 차와 술을 같이 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식에 쓰는 음료와 음식은 모두 운을 일으키는 것으로 기록의 것을 보고 실제 행하는 것은 우리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는 시작하는 물질로 시작하는 물질은 낮은 온도여야 순응 한다. 그리고 술은 오르는 운의 자연성이다. 그래서 도학으로 술은 개(開) 술(戌)자를 써서 개(開)는 운이 열리는 작용이 있고, 술(戌)은 운이 올라가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술은 개요 개는 술의 작용을 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술과 개는 같은 운(雲)을 가지고 있다.
차술의 작용 현대에 와서 차술을 연구하고 있다. 차는 시작하는 음료로 조용하고 안정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술(戌)은 열을 올리는 작용으로 차와 술은 반대작용을 한다. 그래서 두 물질이 만나면 두 물질의 특징을 상쇄시키므로 효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차는 차대로 술은 술대로 쓸 자리에 써야 한다. |
6) 숨 쉬는 도자기라서 몸에 좋다고?
도자기에 담은 차물은 무생물로서 움직이지 못하고, 우리 몸의 좋지 않는 상태도 무생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무생물과 무생물이 만나면 움직이게 된다. 움직인다는 것은 순환이 되어 몸의 못 움직이는 질병이 움직이게 되므로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자기에 찻물을 담아 먹으면 좋은 것이다. 도자기가 숨을 쉬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자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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