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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곡
시인이 베아트리체와 함께 일곱째 하늘 토성천에 오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 사다리가 있어 지복의 넋들이 오르고 내린다. 그들은 세상에서 거룩한 관상 생활을 하던 영혼들이다. 피에트로 다미아노가 나와서 예정(豫定)의 현의(玄義)를 단테에게 들려준다. 다음 그는 부패한 고위 성직자들의 타락한 생활을 나무라니 뭇 영혼들도 성자의 말씀이 옳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저 아래 다른 데선 그토록 경건하게
울려 퍼지던 천국의 상쾌한 교향곡이
이 바퀴에선 어찌하여 잠잠한지 알려 다오.
그가 내게 대답하되, “너 가진 것이 인간스런
청각이니 시각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여기
노래가 없음은 베아트리체가 아니 웃음과 같으니라. (천국편 제21곡 58-63, p706)
☑ 베아트리체가 단테의 눈을 위해 웃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제21곡의 맨 처음 3행에 단테가 동경에 휩싸여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주시하는 모습이 나온다. 제4행에는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으며, 의아하게 여기는 단테에게 그녀가 미소 짓지 않는 이유를 5행 이하에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천국에서는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영원한 빛을 풍족하게 받아 아름다움을 더해가기 때문에 베아트리체가 미소까지 짓는다면 언젠가 죽어야 할 역량밖에 가지지 못한 단테의 시력은 익숙해지기도 전에 쇠해 버릴지도 모르니 미소를 짓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단테의 ‘마땅히 죽게 될 인간의 청각’도 그 ‘시각’과 마찬가지로 나약하므로 나중에는 어찌되든 토성천에서는 한결 더 아름다운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29
게파가 오시고 성령의 큰 그릇이
오실 제는 야위고 맨발 벗고
아무 주막에서나 요기를 하셨더니,
요즈음의 목자들이란 이쪽저쪽에서
부축하고 모시기를 원하고 뒤에서
떠받쳐야 할 만큼 무거운 자들이로다.
저들이 타는 말은 외투로 덮고 이리하여
한 장 가죽 아래 두 마리 짐승이 걸어가나니
오, 이다지도 참으셔야 하는 인내시여. (천국편 제21곡 127-135, p709)
☑ ‘성령의 큰 그릇’은 바오로를 말한다. 피에트로 다미아노는 당시 고위 성직자의 부패를 고발하고 있다.
제22곡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어찌하여 함성이 일어났는지 알려준 다음, 성베네딕투스가 시인한테 나타나 관상자(觀想者)들의 영혼을 보여준다. 한때 꽃 피었던 수도생활을 얘기하고 뒤이은 타락을 슬퍼하기도 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여덟째 하늘, 곧 항성천(恒星天)에 올라가 아래의 일곱 별을 내려다 보고 아울러 까마득히 작은 땅덩이를 굽어본다.
내게 말씀하시니라. “너 하늘에 있는 줄을
모르는가. 하늘은 모두 거룩하고 여기선 모두가
좋은 열성으로 말미암은 줄을 알지 못하는가. (천국편 제22곡 7-9, p711)
☑ "천국에서도 뜻밖의 일이나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안심하세요. 모든 것은 선의가 담긴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됩니다“라고 깨우쳐 주는데, 거꾸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도 이처럼 모든 것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길 수 있으면 이미 천국에 가깝다는 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절망이라는 형태로 지옥이 있듯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선의로 수용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천국의 복사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단테의 사상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71
그의 뜻대로 눈을 쳐들어서 나는
모두가 서로의 빛살로 사뭇 고와지는
백 개의 작은 테두리를 보니라. (천국편 제22곡 22-24, p712)
☑ 붉게 빛나며 날아가는 화성천의 혼들도 멋지지만, ‘아름답다’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단테는 제7천의 혼의 빛들이 ‘사뭇 고와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며, 혼들이 천국의 사랑의 빛을 받음으로써 참된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고 노래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72
우리를 이렇듯 들어올리는 진리를
지상으로 가져 오신 그분의 이름을
처음으로 그 위에다가 모신 자가 바로 나인데
넓으신 성총이 내 위에 비치어
세상을 꾀어 내는 불경스러운 숭경(崇敬)에서
주위에 있는 마음들을 건져 냈노라.
다른 이 모든 불들은 거룩한 꽃과
열매를 낳게 하는 저 열에 타오른
관상(觀想)하는 영혼들이었느니라. (천국편 제22곡 40-48, p712-713)
☑ 성 베네딕토스는 수도생활의 기초를 놓은 것을 자기였음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저리 오르고자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내 회헌(會憲)은
종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져 있도다.
수도원으로 쓰이던 돌담은
소굴(巢窟)이 되어 버렸고 수도자들의 의복은
못된 쓰레기가 되어 버려져 있도다. (천국편 제22곡 73-78, p714)
☑ 하지만 지금은 수도생활이 변질되고 타락되어 있음을 개탄한다.
그러나 높은 이자를 받는 돈놀이도
수도자의 마음을 미치게 하는 열매만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는 않나니,
교회가 간수하는 것은 무엇이거나 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비는 백성의 것이요 친척의 것도
더구나 어느 짐승의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천국편 제22곡 79-84, p714)
☑ 교회의 수입을 가로채는 일도 수도원에서 있었다. 교회 안에서의 잘못은 세상에서의 잘못보다도 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인간의 삶이란 이렇듯 무른 것이어서
저 아래 지구에서는 시작이 좋다 해도 떡갈나무가
나서부터 도토리가 열리기까지 가진 못하느니라. (천국편 제22곡 85-87, p714)
☑ 시작이 좋아도 끝이 부패하기가 쉽다. 뜻이 항구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눈으로 일곱 테두리를 모조리
돌아다보고 그리고 저 땅덩이를 보며
그렇게도 보잘것없는 그 꼴에 웃음 지었으며,
이를 가벼이 여기는 의견을 옳은 것으로
여겼으니 지상의 것 이외를 생각하는
그이야말로 진정 옳다 일컬으리로다. (천국편 제22곡 133-138, p716)
☑ 단테는 여기까지는 올라오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하늘의 문이라 불리는 제7천에 다다라 베아트리체의 권유로 지금까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뒤를 돌아본다. 하늘에서 이미 여섯 천구를 올라온 데다 지구까지 넣으니 일곱 개의 별을 거친 셈이다. 뒤를 돌아다보니 지구의 뒤처지는 초라한 모습에 쓴웃음이 배어 나오기도 했고, 하늘에 있는 행복을 절실히 깨닫게 되어 그로 인한 미소도 떠올랐다.
제7천은 ‘하늘의 하늘’의 입구이다. 제7천부터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면 세간으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르는 시람이 등장한다. 그것은 가치의 높고 낮음의 정도 차이가 아닌 가치의 전도(顚倒) 문제를 함유한다. 예를 들면 베네딕투스는 매우 훌륭한 귀족이었으나, 신앙의 영광과 동시에 자신이 다스려야할 영지의 백성에 대한 책임도 내팽개치고 집을 떠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가업에서 벗어나 재신도 전부 수도원에 보내고 독신생활을 했다. 무엇 하나 보족할 것 없던 사람이 징상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고 자급자족하는 청빈과 노동생활을 하며 감히 집안의 대를 끊는 일을 한 것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하느님과 닮은 수행을 한 것이므로 훌륭한 행위로 인정받는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73-574
히페리언이여, 여기 네 아들의
모습에 나 대견하고 그의 주위 가까이
마이아와 디오네가 움직임을 내 보았노라. (천국편 제22곡 142-144, p716)
☑ 단테는 순식간에 회오리바람과 같은 상승기류를 타고 베아트리체와 함께 쌍둥이자리로 들어섰다. ‘히페리온’은 하늘(우라노스)와 대지(가이아)의 아들이며 태양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단테는 ‘히페리온이여’라고 부름으로써 ‘태양의 아버지 히페리온이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아트리체의 격려—‘당신의 두눈을 밝고 강하게 가지소서’(천·22·126)라는 말을 듣고 눈빛을 예리하게 가다듬으며, ‘궁극의 구원’(124)에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발아래 세상을 두루 내려다보는데, 지구의 ‘볼품없는 모습’(133-134)에서 시선을 돌려 ‘그림자 없이 맹렬히 타 오르는 라토나의 딸, 달’로부터 나아가 ‘태양을 응시하고, 마이아의 아들 수성, 디오네의 아들 금성도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단테는 말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32
제23곡
제8천에서 시인은 그리스도가 내려오심을 본다. 이어서 성모 마리아의 장미, 성 사도들의 백합이 나타난다. 어느덧 그리스도는 올라가시고 가브리엘 천사가 내려와 성모 마리아께 대관(戴冠)한다. 모든 성자들은 남아 있어 ‘레지나 코엘리’의 대합창을 바친다.
오, 베아트리체,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길잡이,
그가 내게 말씀하니라. “너를 초월하는 저것은
그 앞을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힘이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길을 열으신
예지와 힘이 여기 계시니
일찍부터 오래 열망되던 바이니라.“ (천국편 제23곡 34-39, P720)
☑ 그리스도가 내려오신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내 항상 부르는
고우신 꽃의 이름이 완전히 내 마음을
움켜잡아 가장 커다란 불덩이를 보게 하였으니,
하계에서 뛰어남같이 천상에서도
으뜸가시는 산 별의 바탕과 크기가
내 두 안광(眼光)을 채색할 제
하늘 한가운데서 조그마한 햇불이
동그랗게 왕관처럼 내려와서는
그이를 감아주고 그 곁을 맴돌더라.
하계의 그 어떤 선율이 제아무리 듣기에
즐겁고 마음을 더욱 저한테 반하게 할지라도
하늘이 영롱한 청옥이 되는
자 벽옥(碧玉)에게 금관을 씌워주고자
소리하는 저 칠현금(七絃琴)에 비긴다면
구름 뚫는 천둥 소리와 같을레라. (천국편 제23곡 88-102, P722-723)
☑ 가브리엘 천사가 내려와 성모 마리아께 꽃을 씌워드린다.
제24곡
베아트리체의 청으로 지복의 넋들이 단테를 즐겨 맞고, 성 베드로가 나아와 또한 베아트리체를 대접한다. 마님이 베드로에게 신덕(信德)에 관하여 단테를 시험하라 하시니 시인은 물음에 즉시 응하여 신덕을 정의하고 그 근거를 대어 삼위일체의 기본 교리를 들어 아뢴다. 이에 성 베드로가 기꺼이 축복을 한다.
“말하라. 착실한 그리스도 신자야. 너를
밝힐지니 믿음은 무엇인고.“ 이 말이
불려 나온 그 빛으로 나는 이마를 쳐들고
다음 베아트리체에게로 몸을 돌리니
그이는 나로 하여금 내 안의 샘 밖으로 물을
쏟게 하려고 재빠른 눈치를 내게 하니라. (천국편 제24곡 52-57, p728)
☑ 제8천(항성천)까지 올라가자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정신도 최고가 되었다고 여기고, 성 베드로 앞으로 이끌고 가서 신학적 시험을 경험하게 한다.
베드로는 단테에게 ‘믿음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물음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34
믿음은 희망한 사상(事象)들의 실체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의 증명이니
이것이 그 본질같이 내게는 보여지나이다.“ (천국편 제24곡 64-66, p728)
☑ 이에 대한 단테의 대답은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1절에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되어 있으며, 신앙이란 바라야 할 것들의 기본적 실체이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다시 말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다. … 천국에 와서 그는 처음으로 믿음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고 ‘믿음이란 소망의 실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않은 것, 요컨대 보이지 않은 것의 증거’라고 명확하게 답변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35
내 이리 시작하리라. “당신은 당장 걸림 없는
내 믿음의 실상을 말하라 하시고
그 원인까지 물으시오니
대답하옵니다. 나는 하나이시요 영원하신
하느님을 믿사오니 그이 사랑과 뜻으로써
온 하늘을 아니 움직이시는 채 움직이시나이다.
나는 이러한 신앙에 대한 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증명만 지닌 것이 아니오라
모세와 예언자들과 성시(聖詩)를 거쳐
복음과 그리고 뜨거우신 성령이 당신을
길러 주신 뒤에 당신이 쓰시었던 것을 두루 거쳐
이런 데서 내린 진리가 그것을 내게 밝혀 주옵니다. (천국편 제24곡 127-138, p731)
제25곡
문득 시인이 망향의 열원(熱願)을 하소연하니 사도 성 야고버가 나타나 망덕(소망)에 대하여 세 가지를 묻는다. 시인과 베아트리체가 이에 응한다. 복음사가 성 요한이 휘황찬란한 빛 속에 나오시매 단테는 눈이 부시어 베아트리체를 볼 수 없이 된다.
“우리 임금님이 은총으로 너를
죽기 전에 그윽한 궁전에서 백작들과
만나게 하신 뜻은
이 궁전의 참모습을 보고 난 다음
하계에서 좋이 사랑하게 하는 망덕을
너와 다른 이들 안에 이로써 굳게 해 주심이니
그것이 무엇인지 너 말하라. 네 마음이 어떻게
이에서 꽃피는지 말하라. 또 어디서 네게 왔는지
말하라.“ 둘째 불빛이 이렇게 또 계속하니라. (천국편 제25곡 40-48, p735-736)
☑ 성 야고보가 망덕에 대해 단테에게 묻는다. 하느님이 단테에게 천국을 보게 한 목적은 이를 세상에 알려 세상 사람들이 천국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려함이다.
“망덕은”하고 내 말했노라. “미래의 영광의
꿋꿋한 기다림으로서 이를 낳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앞서 가는 공덕입니다. (천국편 제25곡 67-69, p736)
☑ 성 야고보가 단테에게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에 대한 단테의 답변이다. 이것도 실은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론』 3·26·1에 ‘희망은 미래의 정복(凈福)의 확고한 기대이며, 신의 은총과 앞서가는 공덕에서 유래한다’라고 되어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영광’이 ‘정복(凈福)’으로 되어 있는 점만 다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36-537
제26곡
성 요한이 애덕을 들어 시인에게 묻는다. 단테는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지, 애덕이 어디로부터 오며 어떻게 성장하는지 똑똑히 설명한다. 이에 지복의 넋들이 노래로 화답한다. 다시 시력을 회복한 시인이 원조 아담이 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관한 자기의 의심을 말하고 그 해답을 아담에게서 묻는다.
선이 선 그대로 알아질수록
그만큼 사람을 불지르고, 스스로 선을
더욱 간직할수록 그만큼 더욱 뜨겁게 되나이다. (천국편 제26곡 28-30, p743)
그렇다, 내 아들아. 나무 열매를 맛본 것이
그 자체가 이런 귀양살이의 원인이 아니었고
다만 한계를 벗어난 그것이 원인이었느니라. (천국편 제26곡 115-117, p746)
☑ 선악과를 먹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려했던 욕망이 문제였던 것이다.
제27곡
영광의 송가가 하늘에 두루 퍼진다. 지복의 합창이 침묵한 다음 성 베드로 나아와 교회의 목자들이 부패하였음을 꾸짖는다. 승리의 넋들이 청화천으로 들어가고 단테는 다시 한 번 땅덩이를 굽어본다. 베아트리체와 함께 아홉째 하늘 곧 원동천(原動天)으로 올라가 그 됨됨이의 설명을 듣는다. 베아트리체가 인간들의 탐욕을 탄식한다.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가 내 피와 리누스며
클레투스의 피로 길러진 것은 황금을
벌기에 쓰여지기 위함이 아니었고
오직 즐거운 이 삶을 얻고자
식스투스와 피우스와 칼릭스투스 그리고 우르바누스가
많은 울음 끝에 선혈을 뿌렸느니라.
우리의 뜻을 그리스도 신자 대중이
우리 후계자들의 오른편에 앉거나
다른 편에 앉는 것이 아니었느니라.
더구나 내게 맡겨졌던 열쇠들도
세례를 받은 자들끼리 싸우는
깃폭에 문장(紋章)이 되라 함이 아니었고
더구나 장사나 거짓의 특전을 위하여
내가 옥새의 그림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이 까닭에 나는 종종 타고 불꽃을 튀기노라.
목자와 옷 속에서 노략질하는 이리들이
모든 목장에 득실거리는 것이 여기 천상에서 보이나니
아, 하느님의 노여우심이여, 어찌 누워만 계시나이까. (천국편 제27곡 40-57, p751-752)
오, 탐욕이여, 인간을 네 밑에 말아 넣어서
누구도 네 물결 밖으로 눈을
끌어올릴 수 없게 하는 너!
의지가 사람들 속에 잘도 꽃을 피우건만
끊임없는 비가 참 오얏을 바꾸어
시큼한 쭉정이가 되게 하였도다. (천국편 제27곡 121-126, p754-755)
신앙과 순진이 오직 어린이들에게
있으나 볼이 채 덮여지기도 전에
이것저것 다 스러지고 마누나.
누구는 아직 말을 더듬으며 대재(大齋)를 지키다가
혀가 풀린 뒷면 어떠한 달에고
어떠한 음식이고를 집어삼키는가 하면
또 누구는 말을 더듬을 제 제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 말을 듣다가도 말을 다 배운 뒷면
그가 묻히는 것을 보고자 원하는구나. (천국편 제27곡 127-135, p755)
오래 기다렸던 폭풍이 뱃머리가 있는
자리에서 노를 저어 이리하여
함대는 쏜살같이 치달으리라.
참 열매가 꽃이 핀 다음에 이어 오리라.“ (천국편 제27곡 145-148, p755)
☑ 천국에서의 출항의 기쁨! 천국은 그 얼마나 폭넓은 자유가 펼쳐지는 곳인가. 베아트리체는 천국에 있지만, 그곳에 있으면서도 앞으로 정말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하계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희망하는 것은 하계의 대혁명이다. 행운을 부르는 거대한 폭풍우가 일기를 바라는 내용이 이 대목은 언뜻 보기에는 천국에 있는 상냥한 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폭풍우를 일으켜 배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거대한 함대를 똑바로 내달리게 합시다. 그렇게 해야만 꽃이 핀 뒤에 진정한 열매를 볼 수 있겠지요’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함대’는 인류를 가리키므로 전 인류의 방향 전회를 희망하는 장대한 기개와 도량이며, 훌륭한 모험 정신, 창조청신이다. 천국에 다다르면 그곳에서 소망이 다 채워져 그걸로 끝나 버리는 게 아니다. 베아트리체의 이러한 적극적인 희망이 단테에게 침투해 간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38-539
제28곡
단테는 비로소 처음으로 천사들의 무리에 휩싸이신 천주님을 뵈옵는다. 베아트리체가 제천(諸天)의 움직임이 천사들의 그것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 시인에게 알려준다. 다시 천사들의 등급에 대하여 디오니시우스와 대(大)그레고리우스의 설을 따라 설명을 한다.
너 또 알아야 할 것은 무릇 누구든지
온갖 지성이 그 안에 안식하는 진리 안에
그의 시야가 깊을수록 그만한 기쁨을 지니느니라.
이로부터 지복을 누림이 직관(直觀)함에
있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사랑함에
바탕하지 아니함을 알 수 있도다.
은총과 좋은 뜻이 낳아주는 공덕은
직관에서 측정되나니 이렇게
차례로 차례로 나아가는 것이니라. (천국편 제28곡 106-114, p762)
☑ 하느님을 직관(直觀)할수록 기쁨은 더 커진다
제29곡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천상 세계의 창조를 차례로 말하면서 천사들과 제천(諸天)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밝힌다. 반역한 천사들의 죄악과 벌, 그리고 죄악의 성격을 들어 말한다. 천사의 활동에 관한 교리를 함부로 다루는 자들을 통박하고 설교자들이 무익한 변론을 일삼는 악폐를 개탄한다.
너 의심하는 것을 나 바라지 않노니
도리어 너는 믿거라, 애정이 열려짐에 따라
은총을 받아들임도 공덕인 것이니라. (천국편 제29곡 64-66, p768)
☑ 겸손한 척 지성인 척 의심하는 것보다는 은총을 은총으로 겸손되이 받아들이는 것이 참다운 덕이다.
제30곡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청화천(淸火天) 속을 들어간다. 천국은 그에게 마치 두 꽃 언덕 사이로 흐르는 빛의 강물처럼 보여진다. 그는 천사들의 개선과 지복자들로 이루어진 장엄한 장미꽃을 본다.
내가 본 아리따움은 우리네의
헤아림을 아주 벗어날뿐더러 그를
내신 그분만이 기리실 줄 나는 꼭 믿노라. (천국편 제30곡 19-21, p775)
몹시도 눈을 부시게 하는 해와도 같이
감미로운 웃음을 회상하는 그것조차가
내 마음을 속으로 녹여 내기 때문이니라.
이승에서 내 그의 얼굴을 본 첫날부터
지금 보기에 이르기까지 나는 줄곧
내 노래를 그친 적이 없었느니라. (천국편 제30곡 25-30, p775)
☑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은 지순하다
또한 언덕이 푸르름과 꽃들로
무성할 제 꾸며진 제 모습을 보려는 듯
그 발끝의 물 속에다 스스로 비쳐 보는 것같이
그와 같이 빛 위에 두루두루 서 있는 이들이
천도 더 되는 층층대에 제 모습을 비치며 위로
우리를 떠나 돌아감을 내 보았노라. (천국편 제30곡 109-114, p778)
☑ 구원을 받은 이들이 천국으로 돌아간다.
제31곡
시인이 새하얀 장미, 곧 지복자들의 신비로운 영광에 취하여 있는 동안 베아트리체는 보좌에 오르고 대신 성 베르나르가 나타났다. 아득히 높은 보좌에 앉은 베아트리체를 시인이 기리니 베아트리체는 웃음으로 회답한다. 시인은 다시 돌이켜 흰 장미와 특히 성모 마리아를 본다.
옛 사람 새 사람이 모여 있는
이 평안하고 즐거운 나라는
직관과 사랑을 다만 한 목표에다 두느니라.
☑ 구약과 신약시대에 구원된 영혼들이 모여 사는 천국…
오직 하나인 별로 저들의 눈에 비치시매
흐뭇이 저들을 채워 주시는 오, 세 빛이시여,
이 하계의 우리네 풍랑을 굽어보소서. (천국편 제31곡 28-30, p782)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 세상의 어려움을 지켜주소서.
이러므로 나는 내 정신이 빠져 있었던
일을 드러내 마님께 묻고 싶은
생각에 다시금 불타올라 몸을 돌이켰노라.
그러나 내 뜻은 이렇건만 대답은 다른 자가 했으니
베아트리체를 보는 줄만 알았던 나는 지복의
무리처럼 옷을 입은 한 노인을 보았음이니라. (천국편 제31곡 55-60, p783)
☑ 천국에 관해 좀 더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베아트리체에게 물어보려고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그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노사부 한사람이 있었다. 이 말은 베아트리체조차도 그 이상의 최고천은 안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베아트리체가 앞으로 보게 될 최고천의 가장 높은 곳까지 단테를 안내해 달라고 부탁한 성 베르나르도이다. 여기서부터는 베아트리체도 안내할 수 없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76
“오, 당신 안에 내 희망이 굳세어지고
나를 살리려 지옥에 당신의 발자국을
대견히도 남기신 마님이시여,
나의 보아 온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힘과 당신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은혜와 크신 덕을 알겠나이다.
당신이야말로 온갖 길, 온갖 모양으로
나를 종살이에서 자유로 끌어 내셨으니
당신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다 하셨나이다.
내 안에 당신의 너그러우심을 간직하사
이미 낫게 해 주신 내 영혼이 당신의
뜻에 따라 육체에서 풀려 나게 하소서.“ (천국편 제31곡 79-90, p784)
☑ '지옥에 발자국을 남긴‘이라는 말은 지옥편 제2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림보에 있는 베르길리우스를 찾아와 단테의 구령을 위해 안내해 달라고 직접 부탁한 일을 뜻한다. 그때 그녀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부터 왔습니다‘(지·2·71)라고 말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78
이렇듯 빌매 까마득히 보이던 그이
웃으며 나를 굽어보고 그리고는
영원한 샘물로 돌이키시니라. (천국편 제31곡 91-93, p784)
☑ 베아트리체는 저 먼 세 번째 둘레에서 나를 보며 미소 짓더니 그 후 조용히 영원한 샘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생명의 샘이며, 생명의 원천, 즉 창조주 하느님의 상징이다. 그녀는 단테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그에게서 몸을 돌이켜 조용히 하느님이 계신 쪽을 우러르는 것이다. 이 정경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또한 비할 길 없을 만큼 슬프기도 하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서 멀어져 하느님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찬가와도 같은 단테의 찬사를 저 멀리서 듣고 그리운 듯 뒤를 돌아다본 후의 일이다. 그리고 단테는 그 후 마치 디도를 버렸던 아이네아스와 같이, 그녀를 쫓지 않고 성 베르나르도와 함께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임하고자 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78-579
저 평화로운 황금 불꽃 깃폭도 한가운데가
눈부시었고 또 사방에서는 똑같은 모양으로
불꽃이 느슨해지더니라.
그리고 그 한복판에 천도 더 되는 천사들이
날개들을 펴고 있는 것을 내 보았는데
저마다 빛과 재주가 따로 있더라.
거기 한 아름다우심이 저들의 놀이와
노래들에 웃음 지으시는 것을 내 보았는데 그는
다른 모든 성자들의 눈에 기쁨이시더라. (천국편 제31곡 127-135, p787)
☑ 그곳에서는 빛나는 모습도 각기 다르고 재주도 다른 천여 명의 천사, 수많은 천사들이 춤을 춘다. 천사는 각각 개체이면서도 아름다운 한 분의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천사들의 아름다움은 개별적으로는 각기 다르지만, 그것이 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80
제32곡
성 베르나르가 시인에게 흰 장미 안에 있는 구약 및 신약의 성자들을 알려 준다. 그 아래 죄없이 죽음을 당한 어린이들의 영혼들이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아베 마리아를 선창하니 모든 지복자들이 되풀이한다. 단테가 성모 마리아를 뵈오니 성 베르나르는 그에게 성모게 빌기를 재촉한다.
지금 “너 의심하고 의심하기에 말이 없도다.
그러나 엉뚱한 생각에 너 묶여 있는
단단한 매듭을 내 풀어 주리라.
이 광활한 왕국 안에 슬픔이나
목마름이나 굶주림이 없는 것처럼
한 점 우연도 있을 수 없나니
너 보는 모든 것이 영원한 법칙으로
세워져 있어 여기서는 가락지가
손가락에 꼭 들어맞느니라.
그러므로 참 삶에로 바쁘게 달려온
이 무리가 자기 안에 더 또는 덜 뛰어남이
있는 것이 이유 없음이 아니니라.
어느 의욕도 감히 더 못 바랄
이렇듯한 사랑, 이렇듯한 열락에
이 나라를 점지하신 임금님이
그 즐겨 보심 안에 모든 얼을 지으시고
당신 뜻대로 은총으로써 색다르게
꾸미셨으니 여기 그 결과만으로 만족하라. (천국편 제32곡 49-66, p792)
☑ 단테는 어찌하여 이루어 놓은 공덕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 천국에 들어와 있는 가하고 의심한다. 성 베르나르도는 천국에서 되어지는 일은 하느님의 법칙으로 아니 되는 것이 없어 마치 가락지가 손가락에 꼭 맞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한다. 아이들이 천국에 있는 것은 하느님 사랑의 은총이니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또 성서 안에 뚜렷하고도 밝게
너희에게 알려져 있으니 어머니 뱃속에서
서로 다른 그 쌍둥이 말이니라.
머리칼 빛깔같이 은총도 그와 같아
지극히 높은 빛은 가장 그 가치에 알맞게
저들 머리에 씌워져야 하기 때문이니라.
이러므로 저들 행실의 공로도 없이
여러 가지 층에 자리를 잡은 것은
오로지 이전의 날카로움 때문이니라. (천국편 제32곡 67-75, p792-793)
☑ 성경의 예로 야곱과 에사우를 든다.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 어린이들이 천국에서 하느님을 뵈올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섭리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왼편에 그이를 모시는 이는
그의 대담한 입맛 때문에 인류가
이렇듯 쓴 맛을 보게 되는 그 아버지니라. (천국편 제32곡 121-123, p794)
☑ 성모의 양옆에 두 남성이 앉아 있다. 먹어서는 안 되는 지혜의 열매를 하와의 권유에 따라 감히 맛본 탓에 인류에게 원죄의 고통을 맛보게 만든 아버지, 즉 아담이 마리아의 왼편에 있다. ‘설마 그 자가’라는 느낌이 든다. 지옥편에서 사람을 계락에 빠뜨리거나 배신하는 일이 가장 나쁘다고 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깨고 금단의 열매를 먹고, 풀숲에 숨어서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는 아담의 행위는 가장 큰 배신이 아닐는지. 하느님에게 최고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런 짓을 저질렀다. 그렇다면 지옥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아담이 천국에 있는 것이다.
단테는 아담이 왜 그곳에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를 것이며, 개개인의 위치나 상태의 차이가 반영되어 차츰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천국에 가더라도 인간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보다 깊게 또한 보다 맑게 수양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82.583-584
오른편에 저 거룩한 교회의 오래신
아버지를 너 보라. 그이에게 그리스도는
이 아리따운 꽃의 열쇠를 맡기셨느니라. (천국편 제32곡 124-126, p795)
☑ 아리따운 꽃의 열쇠란 연옥의 열쇠와 천국의 열쇠일 것이다. 마리아의 오른 쪽에 앉아있는 이는 베드로이다. 이렇게 성모 마리아의 좌우 자리를 베드로와 아담이 부여받았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82
제33곡
성 베르나르가 신비가다운 절창(絶唱)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빈다. 기도의 효험으로 단테는 성총을 입어서 마치 지복의 한 영혼처럼 천주의 본성을 관상하게 된다. 그는 천주님 안에서 조물의 원형을 보고 성 삼위와 천주 강생의 현의(玄義)를 본다. 마침내 은총의 작용은 끝나고 따라서 직관도 막을 내린다.
동정 어머니시여, 당신 아들의 따님이시여,
피조물 중에 가장 겸손되고 가장 높으신 이여,
영원하신 성지(聖旨)가 결정하신 끝이시여,
당신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한껏
높이셨으니 이로써 그 창조주께서 스스로
피조물이 되시기를 꺼려하지 않으셨나이다. (천국편 제33곡 1-6, p798)
☑ '동정 어머니‘와 ’아들의 따님‘이 얼마나 지극한 모순이며 파라독스인가?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여성의 최고 이상인 처녀성과 모성을 고스란히 한 몸에 지니신다. 그리고 당신 아들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므로 이 뜻으로 아들의 따님이시기도 하다. 마리아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것을 천주께서 결정하셨다.
오, 인간의 생각에서 이다지도 높으시사
아득하신 지고의 빛이여, 당신이 보여주신
그 조금만을 내 마음에 새롭게 하시고
내 혀에 힘을 붙여 주사
당신 영광의 불티 하나만이라도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게 하소서.
이는 조금만이라도 내 기억에 돌아오고
조금만이라도 내 시(詩)에 울려남으로써
당신의 승리가 더욱 알려지기 때문이오이다. (천국편 제33곡 67-75, p800-801)
☑ 이는 단테가 『신곡』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 바라는 바일 것이다. 이 시를 읽고 한 사람이라도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단테의 노고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깊이 속에서 나는 보았노라.
조각조각 우주에 흩어져 있는 것들이
사랑으로 한 권의 책 속에 엮어져 있는 것을. (천국편 제33곡 85-87, p801)
☑ 단테는 진리를 직관하고 삼위일체의 진리에까지 도달한다. 하느님의 사랑이 성경 안에 엮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 내가 바라보던 살아있는 빛 안에
하나 이상의 모습들이 있은 때문이 아니니
그것은 항상 전에 있던 그대로, 그대로이니라.
그러나 우러러보면서 내 안에 세어지던
시력으로 말미암아 오직 하나인 나타남이
내가 변하듯 모습이 변해 보이더라. (천국편 109-114, p802)
☑ 내가 보았던 하늘의 생생한 빛(영원한 진리)은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 게 아니다. 이 빛은 늘 예전과 같다. 다만 그 빛을 보는 내 눈의 시력이 강해짐에 따라 단 하나의 영원한 모습이 나의 깊이 혹은 고양에 따라 불변의 영원 속에서 어떤 때는 보다 깊게, 또 어떤 때는 보다 높게 다양하게 보인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83
이를 위한 제 날개가 없었음이로다.
나의 얼이 한 빛으로 후려침을 받아야 하였으니
그것 안에서만 소망이 얻어지기 때문이로다.
까마득한 환상 앞에서 여기 힘이 진하였도다.
그러나 이미 나의 열망과 의욕을
한결같이 움직이는 바퀴와 같이
해와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 돌리고 있더니라. (천국편 제33곡 139-145, p803)
☑ 여기에서 ‘나의 날개’라고 한 것은 지적 차원을 초월적으로 비상하는 추리나 지적 직관을 의미하는 게 분명하지만, 나는 여기에 그 외의 상상력을 덧붙여도 좋다고 본다. 여기에는 시적 상상력과 종교적 상상력이라는 두 종류의 상상력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 어느 쪽을 발휘란다 해도 절대자의 광명을 마주하는 감동적인 상황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지화할 수도 없고 문자화할 수도 없는 이 체험은 결국 절대자 쪽에서, 빛이 있는 쪽에서 내 쪽으로 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줄곧 동경해 온 데 대한 보답과도 같이 저쪽으로부터 와서 안아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은 환상, 고도의 환타지로도 그대로 수용해 낼 수 없다.
종교란 신인합일로 향해 가는 길이다. 하느님을 멀리하고 배반하는 인간존재는 하느님의 창조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받아야만 한다. 이를 위해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즉 아들인 하느님을 인간의 육체에 불어넣는 형식을 통해 신인합일의 한 형상을 완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대표자가 될 수 있게 하였고,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 인류의 속죄가 성취되었으며 인류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열렸다.
그런데 구원은 정말로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느님이 품에 안을 수 없는 인간의 상태는 구원의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광명의 행복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여기에 신인합일의 제2의 형태, 즉 천국에서 하느님의 광명이 펼친 손길에 안기기 위한 다가섬이 있으며, 그에 응해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의 광명 속으로 하나하나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은 환상으로도 그려지지 않지만, 그러하다는 자각적 확신이 사랑의 가르침 속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 희망과 빛의 나라인 하늘은 절망과 어둠의 나라인 지옥의 대극(對極)이며, 그곳은 사랑이라는 타자에로의 관계가 고양되는 곳이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 인간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되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585-587
3. 이책에 대한 간략한 나의 느낌 또는 소개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읽지 못한다는 단테의 신곡을 정말 어렵게 읽었다. 본문보다는 주석이 더 많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가톨릭 교리와 지식, 당시의 이탈리아 정치상황을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그야말로 미궁과 같은 책이다. 덕분에 안내서인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와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곁들여 읽게 되었다.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시어 고마운 마음으로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