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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허씨(金海 許氏)는 가락국의 김수로 왕의 35세손이며, 고려(高麗)때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진 허염(許琰)을 시조로 한 성씨이다. 양천 허씨, 태인 허씨, 하양 허씨, 인천 이씨 등의 분가가 있다.
허씨 기원[편집]
허씨(許氏)는 연원을 멀리 가락국 김수로왕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 두고 있다. 허황옥은 원래 인도(印度)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16세(서기48년)때 배를 타고 지금의 경남 창원시 웅동면 용원리에 있는 부인당(夫人唐)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김수로왕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영접한 후 왕비로 맞이했다. 그 후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許氏)로 사성(賜姓)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歸依)하여 하동칠불(河東七佛)로 성불(成佛)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허황후의 30세손인 허선문(許宣文)의 후손은 공암(孔巖:양천), 허사문(許士文)의 후손은 태인(泰仁), 33세손 허강안(許康安)의 후손은 하양(河陽), 35세손 허염(許琰)의 후손은 김해(金海)로 분관(分貫)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시조와 분파[편집]
김해 허씨(金海 許氏)의 시조 허염(許琰)은 가락국 수로왕비인 허황후(許黃后)의 35세손으로 전하며,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그는 고려때 삼중대광을 지내고 가락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며 시조의 세거지인 김해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가락군인전파(駕洛君仁全派), 호은공기파(湖隱公麒派), 중승공린파(中承公麟派), 전직공인부파(典直公仁副派), 증성군구년파(甑城君龜年派), 판서공언룡파(判書公彦龍派), 상서공상파(尙書公相派)등 크게 7파로 분파되었다.
고려 충렬왕때 지공거(知貢擧:시험관)를 지낸 허유전(許有全)이 충숙왕때 가락군에 봉해지고 첨의찬성사에 이어 정승이 되었으며 허옹(許邕)은 전리판서를 지냈으며 성품이 청렴강직했다. 조선조에 와서는 동지중추부사 허백기(許伯琦)와 목사 허수겸(許守謙)이 유명했고, 한말의 의병장 허위(許蔿)는 3백명의 선발대로 일본 통감부를 격파하려다 실패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외 독립운동가인 허겸(許兼), 허빈(許斌), 허병률(許秉律), 허형(許炯) 등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집성촌(세거지)[편집]
-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모평리
- 경남 의령군 칠곡면 도산리. 봉수면 죽전리
-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야시대리
- 경남 합천군 가회면 덕촌리, 오도리
-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
-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갈산동
- 강원도 홍천군 동면 속초리, 후동리
-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
- 경기도 용인군 일원
- 경남 고성군 마암면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