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겨울.
건강보험공단에서 투쟁을 했었다. 제주 촌년이 서울까지 출장가서 참가한 것이다. 원정까지 간 이유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는 전동휠체어 지원가를 209만원으로 한정했기 때문이었다.
“전동휠체어는 단순한 보장구가 아니다. 우리들에게 활동의 자유를 주는 소중한 것이다.”
새벽녘에 한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추위에 못 이겨 담요를 돌돌 말아가며 졸다가 한 인터뷰였지만 그 뜻은 확고했다. 우리의 발과 같은 전동휠체어 지원가를 높여달라는 것.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전동휠체어는 2002년식 380만원의 오토복 B500이다. 벌써 횟수로 9년이나 되었지만 지금 지원받을 수 있는 209만원 갖고 내 몸에 맞는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기에는 너무나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더군다나 209만의 80%인 160여만원을 제외한 40여만원을 부담해가면서 말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전동휠체어 구입가를 지원하기 전에는 다양한 재단과 후원기관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몸에 맞춘 전동휠체어를 지원해줬었다. 내 전동휠체어도 그런 케이스였다.
심지어는 지원 받은 전동휠체어의 가격이 800만원 이상인 것도 있었다. 그 휠체어는 받을 당사자의 장애에 맞춰 특수한 장치들이 부착되어 있어 휠체어 작동에 큰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209만원 한도에 맞춰야하며(그 이상의 가격들은 본인부담이다.) 부가적인 장치들은 본인의 자부담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금액만으로 본다면 장애인들이 호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는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장애인의 발인 것이다. 수동휠체어를 밀지 못하는 중증의 장애인들도 전동휠체어만 있다면 스스로 이동이 가능하다.
내가 처음 전동휠체어를 탄 날이 기억난다. 부모님이나 가족의 도움 없이는 실외에 나가지 못하는 생활을 하다 전동휠체어를 받고 얼마간의 연습을 한 후 제주시청의 부근을 혼자 돌아다녔다. 출·퇴근도, 병원치료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다녔다.
그 동안 도와 줄 사람이 없으면 집 안에서만 생활하던 내게 전동휠체어는 자유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를 사치품으로 안다. 엘리베이터가 장애인편의시설에서는 필수이고 지키지않으면 벌금을 부과해야하는 것인데, 일반주택에 200kg 이상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5배의 취득세를 증과세한다는 기사를 봤다.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엘리베이터가 사치성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은 일반주택에 살지 말라는 것일까? 이런 것 처럼 전동휠체어도 사치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가격도 중고차가격과 맞먹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동휠체어가 중증장애인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 한 것인데 요즘 내구연한(6년)이 지나 새로이 전동휠체어를 구입하려면 거쳐야하는 절차가 있다. 상지도수근력검사를 받아 근력도수가 낮게 나와야 지원받을 수 있다. 그 조건에 맞지 않으면 지원받을 수가 없어 내구연한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래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당사자들이 많다.
내 주위에도 7년이 다 되어가지만 바꾸지 못하고 주행 중에 갑자기 멈춰버리는 위험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신다.
전동휠체어는 당사자의 목숨과도 직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안전해야한다. 사치품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지역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 기본적인 보장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기 때문에 지원 안됩니다.’ 라는 조건들을 치렁치렁 달아놔서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거나 수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중증장애인이라고 해도 보편적인 삶을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다양한 지원서비스들이 필요하다.
이연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IL지원팀장. <헤드라인제주> |
이번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공약사항 중에 재활공학서비스지원센터 설립 및 재활보조기구대여에 대한 공약이 있다. 이 공약은 장애유형 및 특성에 맞는 맞춤형 보조기구 대여로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일상생활 활동 보장에 대한 장애인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함이라고 나와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자기몸에 맞는 보조기구공급을 통하여 장애인의 삶의 질을 지원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약이 말 뿐인 공약이 아니라 실제 실현될 수 있는 공약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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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립생활지원서비스들이 사치품이 아닌 ‘당연함’이 되는 그런 사회적 기반체계가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연희 / 서귀포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IL지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