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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간이 부활 할 수 있는가?
(고전 15:35-44)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 15:35-44)
위의 말씀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사느냐 또 산다면 어떤 몸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1. 살기 위하여 죽는다.
죽어야 산다
인간은 부활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여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해하지 못한다. 위의 말씀은 인간이 어떻게 부활하며 어떤 인간으로 부활하는가 하는 질문에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한 자들의 대답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모두 부활을 믿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기에 부활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기에 부활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부활하신 후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먹격하게 했고 경험하게 했다.
오늘 말씀은 부활을 목격한 사도 바울의 부활에 대한 말씀이다. 사도바울은 원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적대했던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전하는 자들을 전멸시키기 위하여 공적인 신문으로 핍박을 피하여 다메섹에 모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는 도중에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나 극적으로 변화하여 오히려 부활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된 사람이다.
행 9:3-.9.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려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한지라.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지명 받아 전하였다. 특별히 율법에 대하여 잘 아는 사울은 구약성경을 믿는 신앙의 바탕에서 다른 제자들 보다 구체적으로 논리적으로 증거했다.
고린도 교회가 부활 신앙이 정립되지 아니하여 흔들리고 있을 때 전한 말씀이 고린도 전서 15장 말씀이다. ❶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는가 ? ❷ 다시 산다면 어떤 몸으로 부활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을 구체적으로 전한 말씀이다.
1)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사는가?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다시 살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있고 하나님을 알고 나름대로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진문이다.
어리석은 자여! 바울은 그들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 어리석은 자란 트페라흐(הלָפֵת 아포론 αφρων 소금치지 않은지 무지 한자, 지각 없는자, 석회 같은자,) 이다. “네가 뿌리는 시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한 식물의 작은 씨의 간단한 생존의 자연원리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에 어리석은 자라고 칭한 것이다.
그렇다 씨가 살기 위해서는 땅에 묻혀 썩어야 싹이 난다. 그 씨를 썩히지 않고 쌓아 두면 결코 살지 못하고 말라 버리고 씨가 죽는다. 그러므로 다시 살게 하기 위해서는 땅에 묻어 썩게 하여야 한다.
인간이 타락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 아담을 즉각 다시 살리시지 않았다. 왜냐 하면 흙으로 된 육신을 가지고는 영원히 살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장차 여인의 후손으로 다시 살리시려고 약속하시고 죽음에 내버려 두셨다. 흙으로 된 육신을 가지고서는 영원한 나라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흙으로 된 육체를 가진 인간은 흙을 떠나 살수 없기에 그 육체를 가진 인간은 죽게 하여 새로운 몸을 가진 인간으로 다시 살리시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 이 외의 것은 모르기 때문에 형 생존 세계에서 얻은 지식만 가지고 광활한 우주와 영원한 세계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이 지식을 따른다면 어리석은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땅에 기어 다니는 개미떼와 날아 다니는 꿀벌 떼를 본다. 셀 수 없는 수의 개미떼들과 꿀벌 떼들이 그들 나름대로 생존하는 것을 본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삶의 방법이 있고 법질서가 있고 위계질서가 인간보다 뚜렷하다. 그들에게도 지혜로운 것도 있고 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개미가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그 꿀벌이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인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지혜를 따를 수 없다. 그들 가운데서 지혜로울 뿐이다.
인간도 마찬 가지이다. 인간이 사는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속한 위성 중에 지극히 작은 점하나에 불화하다 그 지극히 작은 점 하나에 붙어사는 인간은 먼제 하나에 불과하다 그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겠으며 헤아린들 무엇을 얼마나 헤아리겠는가! 점 하나에 붙은 먼지에 불과한 것이다. 그 지성으로 그 지식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죽어 없어지기 위해 태어났다면 태어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면 태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한 알이 씨가 죽어야 다시 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이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요 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막 8: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엑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했다.
요 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 하리라.
성령이 오셔서 죄가 무엇이며 진정한 의가 무엇이며 진정한 심판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참 의를 갖게 하신다고 했다.
성경은 말한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고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죽어 없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함인 것처럼 인간이 죽는 것은 다시 살기 위하여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첫 열매로 부활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다시 사는 부활의 종교이다
그 광활하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인 부활의 역사를 목격한 자들의 말을 믿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것이다. 부활의 역사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래 계획 중에 시행하신 역사이다. 죽음에 처해 있는 인간을 위해 계획하고 성취하신 역사이다. 그러므로 한 마리의 개미가 인류를 헤아리려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내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능력자가 행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 것이 오히려 참 지혜이다.
인간은 부활을 위해 존재한다. 죽어 없어진다면 존재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셨다면 죽어 없어지는 인간을 존재하게 하실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부활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2. 인간은 부활을 위해 존재한다.
고전 15:22-24.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 각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가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라.
모든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죄로 인하여 죽는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로 인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은 반드시 다시 산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는 자들의 부활이기에 소중한 진리이다.
대다수의 성도들이 과연 나 자신이 주님의 부활처럼 부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확신이 없는 성도가 많이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 참으로 부활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인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했다.
(요11: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믿느냐. 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부활을 약속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의 존재도 믿어야 하고 그의 십자가의 구속도 믿어야 하고 그의 지상에 오심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죽은 신앙이다.
주님이 이 지상에 오시는 목적은 영생을 위한 것이므로 그 약속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부활을 여러 번 약속하셨다.
2) 예수께서 사셨으니 믿는 자도 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셨다
성경에 역사 시대에 따라서 부활을 계시했다. 성경은 인간을 부활로 인도하는 말씀이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사탄은 저주했다. 그러나 아담을 저주하지 않고 땅을 저주했다. 그것은 죽음에 버려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는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으라 했다.
창 3:14-15.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 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탄을 정죄할 때는 아담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고 여자와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고 했다.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영원히 죽인다는 선언이다. 사탄을 저주한 것은 인간을 위한 형벌이었다. 왜냐 하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탄을 저주할 필요가 없다. 이미 천성에서 저주하고 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저주란 말은 아랄(ררָא)인데 단절하다, 포기하다, 증오하다, 미워하다, 버리다, 이다. 하나님은 사단을 영원히 단절된 대로 내버려 둔다는 말씀이다. 저주는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단절된 세계, 죽음 지옥 게힘놈(מוׂהִיג) 게힘남(מנ הִיג)죽음의 골짜기 인데 바알의 희생제물을 태우는 곳, 무저갱 아븐소스(αβνσσος)인데 끝없는 어둠)에 내버려 둔다는 말이다. 저주는 영원한 지옥 형벌의 선언이다.
아담은 땅을 저주하고 그 땅에서 딸 흘리며 생존을 허락 하시는 날까지 살라고 했다. 죽음에 그늘로 내 쫓은 것이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에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는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저주받은 땅은 죽음의 땅이다. 저주 받은 땅의 소산을 먹는 것은 죽음을 먹는 것이다. 생명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먹고 죽는다. 안 먹어도 죽고 먹어도 죽는다. 왜냐 하면 죄인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 것을 약속하시고 예언 하셨다.
창 3: 아담이 그 아내의 이름들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됨이어라
하와(חַוָּה)라는 말은 일어나다, 존재하다, 소유하다, 봉사하다, 이다. 하와라는 이름은 다시 산자는 의미가 된다. 죄인 여자는 징벌로 죽고 산자의 어미로 산다는 말이다.
창세 시대에는 에녹을 통하여 부활을 계시했다.
창 5:21-23.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 육십 오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왕정 시대에는 엘리아를 통하여 계시했다.
왕하 2:11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신약 시대에 구약의 계시의 실체인 그리스의 부활이다.
[마 28:5-6]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이 살아 나셨다는 것은 인간이 다시 살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신 것이다.
(요14: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했다.
예수님이 살아 나셨다는 것은 의인은 다시 살 수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이 다시 산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고 어느 누구도 다시 사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 나셔서 우리들도 주님 자신처럼 살 것임을 보여 증거하여 믿게 하셨다.
주님은 거짓된 분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의 말씀도 거짓말이 될 수 없다. 그 분이 나도 살 것이라 하셨다. 믿지 못하는 것은 그분을 거짓된 분으로 생각하는 불신앙인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다.
(고전 15: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고.
(요15:1-2)내가 참 포도 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 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류 부활의 첫 열매라 했다. 그리스도는 자신과 믿는 자와의 관계를 포도나무로 비유했다. 첫 열매란 말은 기독교의 부활의 진리를 잘 비유한 말씀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그 원목에 붙어 있을 때에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예를 든다면 들 포도나무를 접을 붙였다. 얼마 후에 한 송이 포도가 열렸다. 그것이 첫 열매이다.
그 포도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악의 상징인 이 세상 나무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접을 붙여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포도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4) 인간은 부활을 위해 존재한다.
세상 안에 여러 생명체가 살고 있다. 모양도 각각이며 생존 방편도 각각이며 수명도 각각이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했음을 믿을 때 모든 삶을 하나님이 각각 부여해 주었다고 믿게 된다. 인간에게는 생명과를 만들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삶을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했다.
타락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신 것은 다시 살게 하여 창조의 목적을 이루려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의 삶의 형태와 의인의 삶의 형태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실 것이다.
굼뱅이는 매미가 된다
어느 날 굼벵이 한 마리가 퇴비더미에서 죽어 썩은 퇴비 속에서 먹을 것을 배부르게 먹고 한숨 푹 자고 깨어났다. 그 때에 매미 한 마리가 하늘을 휘돌아 날아와 굼벵이 가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했다. 굼벵이는 매미가 몹시 부러웠다. 그래서 매미를 향해 야 ! 매미 너는 참 좋겠다.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 어디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또 소리를 질러 마음껏 감정을 품어 낼 수 있으니 좋겠다. 했다. 그러자 매가 굼벵이에게 하는 말이 너도 곧 나처럼 매미가 될 거야 네가 태어난 것은 매미가 되기 위해 태어난거야 조금 있으면 쭈글 쭈글 늙게 되고 그 다름에 번데기가 되고 그 다음에 굼벵이 허물을 벗고 나처럼 매미가 되는 거야 그러자 굼벵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같은 못생긴 굼벵이가 어떻게 너처럼 매미가 되니 조금도 닮은 데도 없는데 했다. 그러자 매미가 하는 말이 믿던지 믿지 않던지 넌 매미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거야 하고 날아가 버렸다.
애벌레는 나비가된다
나무 가지에 사는 애벌레 한 마리가 나뭇잎을 실컷 갉아 먹고 배가 불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나비한 마리가 날아와 나무 꽃 위에 앉아서 꿀을 빨아 먹고 너풀가리고 있었다. 애벌레는 그 나비를 행하여 하는 말이 나비야 너는 참 행복하겠다. 나는 이 ㄱ지에서 저 가지로 하려고만 해도 오래 걸려야 하고 실컷 걸어보았자 이 나뭇가지에서 맴도는데 너는 날개가 있어서 이리저리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어서 얼마나 좋으냐 또 나는 새파란 잎사귀만 갉아 먹고 사는데 너는 아름다운 꽃속에 있는 꿀을 먹고 살지 않니 정말 너는 행복하겠다. 네가 정말 부럽다. 했다. 그러자 나비가 하는 말이 애 네가 애벌레로 태어난 것은 나처럼 나비가 되기 위함이다.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만 하면 너도 죽어 번데기가 되고 또 잠시 지나면 번데기 허물을 벗고 부활하여 나처럼 나비가 되는 거야 네가 애벌레로 태어난 것은 나비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애벌레가 나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라 내 생김새가 너와 비슷한 데가 조금이라도 있어야지 날개가 있나 먹는 것도 나뭇잎만 갉아 머고 사는데 어떻게 나비가 된단 말이냐 하고 말했다. 나비는 네가 이해하는 안하든 믿던 안 믿던 너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야 했다.
굼벵이는 매미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고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듯이 인간은 부활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선한 인간이나 악한 인간이나 모두 부활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활의 형체는 다르다고 했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에 이르는 부활이며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이 형벌을 받기 위한 부활이다.
(요 5:27-29)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