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43:1–5
[서론] 탄식의 어둠에서 진리의 빛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며 한번 쯤 깊은 영적 흑암과 실존적 아포리아(Aporia), 즉 길을 찾을 수 없는 절망의 벽에 부딪히곤 합니다. 나를 이해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세상은 불의하며, 심지어 하나님마저 나를 버리신 것 같은 깊은 고독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43편은 시편 42편과 본래 하나의 거대한 탄식과 소망의 시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인은 원수들의 야유와 불의한 세상의 억압 속에서 바닥까지 구부러진 영혼을 안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고통의 자리에 멈추어 서서 절망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는 탄식의 어둠에서 시작하여, 진리의 빛을 구하고, 마침내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기쁨으로 고백하며 영혼의 위대한 반전을 이루어 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깊은 철학적 사유, 그리고 우리 삶의 실제적 적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낙심이 찬송으로, 우리의 어둠이 거룩한 빛으로 바뀌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공의의 하나님께 위탁하라
본문 1절은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שָׁפְטֵנִי, 십타니)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샤파트(שָׁפַט)는 '재판하다', '공의를 행하다', '신원(伸冤)하여 구원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본문의 '십타니(שָׁפְטֵנִי)'는 이 샤파트 어근에서 파생된 한 형태로, 공의로운 재판관이 재판정에 직접 개입하여 억울한 자의 무죄를 밝히고 공의를 세우는 법정적 선언입니다. 시인은 불의한 세상의 재판에 사로잡혀 있지만, 세상의 판결이 아닌 우주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재판에 자신을 위탁합니다.
이는 거짓 증인들과 빌라도의 불의한 법정 앞에서 잠잠히 고난받으시며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부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벧전 2:23)을 예표합니다.
인간은 원치 않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 던져진 '피투적 존재(Heidegger)'입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소설 속 주인공처럼, 성도는 세상의 불의와 비난이라는 수용소 같은 환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평가에 자신을 정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재판을 바라보는 영적 품위를 지킵니다.
억울한 비난과 불의한 상황 속에서 인간적인 혈기와 보복으로 맞서지 마십시오. 나를 진정으로 판결하실 분은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모든 억울함을 십자가의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위탁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참된 빛과 진리의 인도를 구하라
본문 3절은 "주의 빛(אוֹר, 오르)과 주의 진리(אֱמֶת, 에메트)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라고 합니다. '빛'을 뜻하는 오르(אוֹר)는 '비추다', '밝아지다'라는 동사 어근에서 비롯하여 어둠을 밝히는 거룩한 빛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뜻하는 에메트(אֱמֶת)는 '신실하다', '견고하다', '지지하다'를 뜻하는 어근 아만(אָמַן)에서 파생된 단어로,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변함없는 진실성을 뜻합니다. 어둠과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시인을 거룩한 성소로 안내하는 두 가지 거룩한 사자(Messengers)이자 내비게이션입니다.
구약의 시인이 구했던 빛과 진리는 신약시대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 14:6 "내가 곧 진리요")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요 16:13)을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플라톤이 말했듯, 어둠에 갇힌 인간은 그림자를 실재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반 고흐가 요양원의 어둡고 외로운 창가에서 밤하늘을 요동치는 거룩한 별빛으로 담아냈듯, 참된 해방은 동굴 밖 태양, 즉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질 때 시작됩니다.
내 지식과 경험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말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 성령의 조명을 구하십시오. 세상의 거짓된 정보와 유혹을 거두어내고 오직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자신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으라
본문 4절은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אֵל שִׂמְחַת גִּילִי, 엘 심하트 기리)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라고 합니다. '기쁨'을 뜻하는 심하(שִׂמְחָה)는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어근 사마흐(שָׂמַח)에서 파생되었고, '환희/즐거움'을 뜻하는 길(גִּיל)은 '기뻐서 춤추다', '소리치다'라는 어근 길(גִּיל)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수사학에서 유사한 의미의 두 어근을 겹쳐 사용하는 것은 최상급 표현입니다. 직역하면 "내 모든 기쁨의 근원이자 기쁨 그 자체이신 하나님(God, the Joy of my Exultation)"입니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완성되는 '목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단번의 제사로 성전의 장막을 찢으셨기에, 이제 성도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최고의 기쁨(요 4:23-24)을 누리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가 탐구한 삶의 '최고선(Summum Bonum)'은 세상의 조건이 아닌 절대자와의 교제입니다. 외로움과 비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한 분과의 내면적 합일을 이루었던 아빌라의 테레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니,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Solo Dios basta)."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의 복이나 문제 해결에만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고난 중에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분 자신을 내 삶의 '최고의 기쁨'으로 선택할 때, 환경을 초월하는 참된 예배자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넷째, 영혼을 향해 소망을 선포하라
본문 5절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תִּשְׁתּוֹחֲחִי, 티슈토하히)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라고 합니다. 어근 샤하(שָׁחָה) 혹은 샤하흐(שָׁחַח)는 '구부러지다', '낮아지다', '절하다/바닥에 납작 엎드리다'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이 어근에서 파생된 형태로 쓰여 "네 스스로를 바닥까지 구부러뜨리다/짓눌리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시인은 슬픔의 무게에 눌려 자기 영혼이 바닥까지 납작하게 구부러져 있는 상태를 객관적으로 직시합니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자기 영혼을 향해 신앙의 의지로 명령을 선포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탄식하셨으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부활의 승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마 26:38, 롬 8:36-37)과 연결됩니다.
리쾨르(P. Ricœur)의 '자기 해석학'처럼 시인은 감정에 휘둘리는 나 자신과 한 걸음 물러서서 비판적 거리두기(Self-Distancing)를 수행합니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증명했듯,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마지막 자유"를 발휘하여 절망 대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감정과 불안에 이끌려 스스로를 바닥으로 밀어 넣지 마십시오. 한 걸음 물러서서 여러분의 영혼을 향해 거룩한 호통을 치십시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이 거룩한 선포가 여러분의 삶을 일으키는 승리의 동력이 될 것입니다.
[결론] 빛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도를 구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시인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우리에게 영적 승리의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어둠이 아닌 빛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감옥에서도 "선한 능력으로"를 노래했던 본회퍼처럼, 아우슈비츠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지켰던 프랭클처럼, 그리고 평생 어둠 속에서도 내면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파니 크로스비처럼 거룩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ㆍ불의한 세상 앞에서 판단자 되신 하나님께 나를 위탁(샤파트, שָׁפַט) 합시다.
ㆍ어둠 속에서 진리(에메트, אֱמֶת)의 빛(오르, אוֹר)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도를 구합시다.
ㆍ환경이 아닌 하나님 그분을 내 인생 최고의 기쁨(사마흐, שָׂמַח & 길, גִּיל)으로 삼읍시다.
ㆍ그리고 낙심하는(샤하, שָׁחָה) 내 영혼을 향해 하나님의 부활 소망을 선포합시다.
오늘 이 시간, 바닥에 엎드러진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 삶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을 향해 찬송하며 담대히 나아가는 거룩한 성도님들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