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깨미 올라 고추가 퉁퉁 부은 소년
그 때 유무(알미늄) 그릇은 발쌔(벌써) 나왔고, 나이롱(나일론) 양말이 나와서 그 질경이 같은 ‘질김’에 감사했고,
아직 플라스틱 그릇은 귀해서 목욕을 하려면 욕조도 큰 그릇도 없으니, 명절 전에는 큰 댁의 뜨뜻하게 데운
소여물 구이(구유)에 올라가서 때를 퉁퉁 불궈(불려) 베꼈지.
그래서 내 별호를 '소여물'이라고 지었고.
암소가 삶은 꼬질(마른 짚)도 먹고, 여물도 먹다가, 그 큰 눈으로 내 고추를 들여다 보는 것 같아, 황급하게 감추었어.
자다가 오줌싸면, 나락 까부는 ‘치(키)’를 쓰고 소금 얻으러 큰 댁에 갔어.
우린 이불에 오줌을 싸는 건 “싼다”고 했고, 일상적인 오줌 배변은 “눈다”고, 품격있게(?) ‘가려서’ 말했다.
그 땐 할아버지 옥식기랑 뽁직개(밥뚜껑)같은 놋그릇 닦을 때 기왓장을 깨서 가루로 만들어 닦았어.
그 갉(가루)을 만지다가 쉬할 때 손 안 씻고 고추 만지면, ‘재깨미 올라서’ 고추가 말갛게 당나발(퉁퉁 부음)이 되었다.
그건 소녀들은 모르는 소년들만의 애환이었다.
손톱깎이라는 것이 없던 때니, 돋을 돋을한(약간 우툴두툴한) 벽에다 손톱 끝을 갈기도 하다가, 광목이나 옥양목
가심(천) 자르는 큰 가새(가위)로 왼 손, 오른 손 다 쓰며 손발톱 톺았으니, 손재주가 많이 발달했고.
그러다 훗날 손톱깎이가 나왔을 땐 얼마나 좋던지!
특히나 일제 손톱깎이는 날이 무드러(문드러)지지도 않아서 인기가 아주 좋았어.
시골 영화 구경
그 때도 영화나 악극단은 시골에도 이따금 왔다. 극장이 없으니, 국민학교 운동장에 큰 천막을 치고 관객을 받았는데,
나는 할머니에게 돈 좀 달라 말도 못 하고, 표는 못 사니, 시작무렵에는 경비가 심하여 주위를 어슬렁 어슬렁 맴돌다가,
다 끝나갈 무렵 경비가 허술해질 때, 그 때 천막 밑으로 얼찐(얼른) 숨어 들어가 잠깐이라도 구경했다.
경비 아저씨가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신거지 뭐.
주전부리
군입질로 복숭아와 감이 주종. 꽤추(자두)는 귀했고, 감은 뭐 동네가 감나무 밭이라 흔했어.
황금색으로 잘 익은 왕감을 손으로 힘주어 쪼개면 분이 파삭파삭 나서 떫지 않고 맛이 좋아.
한꺼번에 두세 개 따 먹었다가 똥구멍이 막혀서, 나는 궁딩이를 쳐들고, 할머이가 꼬챙이로 파내 주신 일도 있었어.
생감 많이 먹으면 속이 엄청 대룹다(거북하다).
감은, 색인(삭힌) 감, 반물래기(반 잘 익고, 반은 좀 덜 익음 ), 홍실(홍시), 곶감, 말린 곶감 껍데기, 곶감 삐지미
(껍질째 썰어 말림) 등 여러 상태로 먹었어.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하실 때, 아침 쩔에 반물래기 한 개 따서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면 참 좋아하셨어.
그것 말고도 바닷물에 담가 삭인 ‘침감’도 있대.
맛있기야 잔 감자를 썪혀서 가루를 받아 만든 감자 송편이 제일이지.
할머니가 밀갉기(밀가루)하고 콩갉그 (콩가루를) 썪까 이게가주고(섞어 반죽해서) 넙적한 안반(나무 판)에다
홍두깨로 국시(국수)를 만들어, 이리꾸(메리치. 멸치) 좀 넣고 끓여 주시는 손칼국수에 깨보시이(깨소금)하고 꾀미(고명) 얹어 먹는 맛 끝내줬지.
그 때는 국시 꼬랑디기(꽁지) 받아다가, 정지(부엌) 아궁이에서 부지깽이로 끄집어낸 알 불에 구우면, 이양(금방) 뽁쟁이(복어) 배처럼 부풀어.
시루떡 장사 나가시는 날은 떡 실기(시루)에 붙은 팥고물 뜯어 먹고,
미국 원조 ‘우유 가리(가루)’를 반죽해서 도시락 통에 넣어 밥할 때 솥에 넣고 찌면, 딱딱한 밀크 쿠키가 되지.
역시 미국 원조 ‘강냉이 가루’ 찐 것도 밥에 섞어 먹으면 참 맛있고요,
초봄에 땅이 녹을 때 월동초 뿌리기(뿌리) 캐다 먹으면 기가맥혀.
미역 꾸딩이(미역귀), 아 참! 감재 소디끼(감자 누룽지)도 있다. 그거 숟가락으로 힘들여 떼내 먹으면 짱!
그 맛 이적지(여태) 잊을 수 없지.
소나무 순을 꺾어 바깥 껍질은 벗겨내고, 하얀 속살을 긁어 먹기도 하고,
새총나무 열매 속 하얀 부분은 쫄깃쫄깃한 게, 여러개 씹으면 완전 껌이었지 뭐...
밀이 다 익어가면 밀을 베다가 불에 슬쩍슬쩍 구워 먹고,
콩서리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