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현
충남 부여 출생. 시인. 장승조각가. 호 林川, 郞相齋. 한국현대시 작품상, 서초문학상 외 다수. 가온문학회 회장, 서초문협 감사. 시집:장시 〈익명의 그늘〉 외 4권.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
김 우 현
스쳐지난 풀잎도 지나고나면 그립거늘
구름 사이 숨어버린 잠깐의 달항아리
가슴으로 묻었거니
몇 날 몇 해
이제는 가버린 세월만큼의
더께는 더께대로 푸르름만 더하였다
물안개 내린 은사시나무에 길을 물을까
두물머리 강변물에 헹군 머리 속절없다
언제쯤일까, 흔적 지운 합수合水 너머
그대 이름 불러보는
해거름녘 우수 하나
황포돛배 겨울나기 푸르름만 더하였다
서도西都로 서도로
달려가는 상심傷心이어
뒷모습 아름답다 그 누가 말했는가
무영탑無影塔 돌을 얹어 가는 길 빌어볼까
고운 향 풀어내는
이 밤이 이 밤이 더 없이 푸르렀다.
카사비앙카
어둠일랑 잠든 밤에
바다를 걸어요
끝없는 수평의 바다에
꿈을 뿌려요
추억을 끊은 지는 오래
홀로 된 바다
눈물이 만든 저 바다에
카사비앙카, 섬은 있을까
비에 젖은 야자수 거리엔
길 잃은 붉은 우산 꽃
아, 부겐베리아
춤추는 카사비앙카
명징했던 나의 가슴에
슬픔은 쌓이고
어스름 묘비명 스러져 우는
하얀 언덕 그곳에
바다는 출렁이는데
카사비앙카, 카사비앙카
이밤, 그대를 떠나겠어요
낯선 비정의 거리를 걷겠지요
사랑이 없는 곳-
무엇이든 쉽게 잊힐 거예요
그런데 나는 왜 울고 있을까요
낡은 하얀 집의 유령처럼요
안녕-, 내 사랑
안녕-, 모든 것
타는 나의 심장은 어쩌죠
나의 붉은 우산 꽃은 어쩌죠
이제는 꿈을 꾸지 않을래요
다시는 찾지 않을래요
바다엔, 바다엔 섬
섬처럼 섬 그늘로 숨어요
그리움 안아보는 부겐베리아
바다는 온통 카사비앙카.
섬초롱꽃
지난 밤 꿈속에서
너를 닮은 들꽃 하나 보았지
꽃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냥 궁금한 거야
놓인 꽃길, 길 따라 한참을 걸었지
아이야, 사랑하는 아이야
지난 밤 꿈속에서
나는 나의 꽃을 보았지
꽃의 마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냥 보고픈 거야
은별 여름밤, 나는 무얼 본 거지
아이야, 사랑하는 아이야
강나루 이야기 들려주는
너의 종소리에 너의 귀를 대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