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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전외신번역
How America's most humble president Jimmy Carter shunned the greed of successors to live modestly
미국의 가장 검소한 대통령 지미 카터는 후임자들과 같은 탐욕을 피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번역자 부제; 우린 언제쯤 방 두칸짜리 집에서 여생을 보낸 전직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원문 출전
From humble beginnings to the White House and back, the United States' 39th President Jimmy Carter shunned greed to live in a modest $223,000 home, fly commercial and teach Sunday school. Dubbed the 'un-celebrity president', Carter - who died Sunday aged 100 - grew up in Plains, Georgia. The son of a peanut farmer, he returned to his two-bedroom ranch instead of cashing in on political riches following his tenure.
검소한 삶을 시작으로 백악관까지 이르렀던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퇴임 이후에도 22만 3천불 짜리(우리돈 3억 남짓) 집에 살면서 여객기의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고 건강이 악화되기 이전까지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봉사했다. ‘겸허한 대통령’으로 불린 카터는 지난 주일 그가 성장한 조지아주 플레인즈에서 100세로 별세했다. 땅콩농장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퇴임 이후 전임 대통령들이 챙길 수 있었던 엄청난 정치적 치부를 거부한 채 방 두 칸짜리 집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The humble property - whose décor is said to be charming, if dated - is theoretically worth $223,000, according to a Zillow estimate. But its links to Carter mean the true value is far higher - although the property will never appear on the open market, as he and wife Rosalynn planned to leave it to the National Parks Service. Carter's successors have all made tens or even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by writing books, giving speeches and doing consulting work after leaving 1600 Pennsylvania Avenue - but Carter said that path never appealed to him.
Zillow의 추정에 따르면 인테리어가 매력적이라고 알려진 이 소박한 부동산은 이론적으로 223,000달러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가치평가는 카터와의 연관성 때문에 과대 평가된 것이고 그와 부인 로절린이 국립공원관리청에 기부한 것이라서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온 적도 없다. 카터의 후임자들이 모두 백악관을 떠난 후 책을 쓰고 연설하거나 기업 컨설팅 작업을 통해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까지 벌었지만, 카터는 결코 그런 삶에 눈 돌리지 않았다.
It wasn't the first time the he had returned to his hometown. He left behind his Naval career after his father, James Earl Carter Sr, died of pancreatic cancer aged 58 in 1953. The decision proved to be a catalyst for his political career. Then again, following his loss to Ronald Reagan in 1980, he and his beloved wife Rosalynn packed their things and headed back to the town where they fell in love - and lived there until they died. In a 2018 look into the Carters' day-to-day lives, the Washington Post detailed the 'fairly ordinary' life led by the childhood sweethearts in the blink-and-you'll-miss-it town of Plains. Jimmy and Rosalynn would often have dinner with neighbors.
그가 고향으로 되돌아온 것은 대통령 퇴임 후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제임스 얼 카터 시니어가 1953년 53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해군을 제대한 때였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 경력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리고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한 후 카터 부부는 군말 없이 짐을 챙겨 그들이 사랑을 맺고 여생을 바쳤던 고향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2018년 워싱턴 포스트는 카터의 일상을 묘사한 글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플레인즈 마을에서 맺어진 그 옛날 어린 시절 연인들(카터 부부)이 주도한 '매우 평범한' 삶을 자세히 설명했다. 카터 부부는 자주 이웃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A sharp contrast to his successors, Carter drew his unpretentious nature from his farmhouse youth during the Great Depression, which also solidified his no-frills sensibility and beliefs about racial equality. Stuart E. Eizenstat, a Carter aide and biographer, told the Washington Post that Carter 'didn't feel suited to grandeur. 'Plains is really part of his DNA. He carried it into the White House, and he carried it out of the White House,' he said. Even for those who didn't start out rich, including Bill Clinton and Barack Obama, making tens of millions of dollars on the private-sector opportunities has been a rite of passage for most who've served as president.
카터는 그의 후임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삶을 살았다. 그는 대공황 당시 농가 청년 시절의 꾸밈없는 성격을 드러냈고 동시에 인종 평등에 대한 소박한 감성과 신념을 확고히 다져나갔다. 카터의 조력자이자 전기작가인 스튜어트 에이젠스타트는 워싱턴 포스트에 카터는 자신이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늘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평범함은 그의 타고난 천성이다, 그는 이것을 백악관에 가지고 들어갔고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를 포함하여 부자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그랬다. 민간 기업에서 주어지는 기회를 이용해 수천만 달러를 버는 것은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들에게는 통과의례였다. 하지만 카터는 예외였다.
But for Carter, making money from corporate speaking and joining the boards of big companies - as his predecessor Gerald Ford had done - was not on the cards. Instead, he planned to return to the town where he was born and reinvigorate his career as a peanut farmer. But when the Democrat got home, his finances were in tatters and the family's peanut business had racked up $1million in debt. He was forced to sell it and took pen to paper to repair his finances - writing 33 books on a variety of subjects, although not as successfully as some other presidents. On top of his writing revenue, Carter also commanded a $210,700 annual pension - received by all former presidents.
카터는 그의 전임자인 제럴드 포드가 그랬던 것처럼 대기업의 고문이나 강연 등으로 많은 돈을 벌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 땅콩농장 농부로서의 경력을 되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재정은 망가져 있었고 땅콩 사업은 10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주제에 걸친 33권의 책을 집필하고 이 책을 팔아 빚을 갚았고 21만 700불의 대통령 연금도 여기에 쏟아 부었다.
But, meeting him, you wouldn't know. Carter is the only president in the modern era to return full-time to the house he lived in before he entered politics. The modest $223,000 home boasts only two bedrooms. 'He doesn't like big shots, and he doesn't think he's a big shot,' his former White House communications director, Gerald Rafshoon, told the Washington Post. In fact, Carter cost U.S. taxpayers the least amount of money of any former president, according to the 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The total bill for him in the last fiscal year was $496,000, covering pensions, an office, security staff and other expenses.
하지만 그를 만나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카터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정치에 입문하기 전 살던 집으로 돌아와 그곳에서만 살았던 유일한 대통령이다. 22만 3,000달러짜리 소박한 집은 침실이 두 개뿐이다. ‘그는 자신이 거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거물인 체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았다.’라고 그의 전 백악관 소통담당관 제럴드 랍슨이 말했다. 실제로 미국 국세청에 따르면 카터는 전직 대통령 중 미국 납세자에게 가장 적은 비용을 부담시켰다. 지난 회계연도에 카터의 총청구내용은 연금, 사무실, 보안 직원 및 기타 비용을 포함하여 49만 6,000달러(약 6억4천만 원)에 불과했다.
Meanwhile, Bill Clinton cost $1.27M and George W. Bush cost $1.21M as the two highest expenses to the taxpayer, beating Donald Trump, at $1.04M and Barack Obama at $1.18M. Carter told the Washington Post in 2018 that he didn't want to pursue riches and that he just wanted to go home. 'I don't see anything wrong with it, I don't blame other people for doing it,' he said. 'It just never had been my ambition to be rich.' While many ex-presidents fly in private jets, sometimes loaned to them by wealthy friends, Carter continued to fly commercial. Footage as he boarded a Delta flight from Atlanta to Los Angeles on June 8, 2017, went viral as the then 93-year-old headed down the aisle to shake hands with passengers and smile for selfies.
반면 빌 클린턴은 127만 달러로서 조지 W. 부시는 121만 달러로 도널드 트럼프 (104만 달러)와 버락 오바마(118만 달러)를 제치고 납세자들에게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다. 카터는 2018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절대로 부(富)를 추구하고 싶지 않으며 다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를 추구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그게 뭐 잘못된 거냐.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다고(부를 추구하는 것) 탓할 생각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전임 대통령들이 가끔 돈 많은 부자 친구들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닐 때 그는 민항기의 이코노미석을 고집했다. 2017년 6월 8일, 애틀랜타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델타항공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당시 93세의 그는 승객들과 악수하고 셀카를 찍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통로를 걸어가면서 입소문을 탔다.
The heartwarming video showed the former president enthusiastically greeting passengers as his fans yelled out to him saying: 'You're my favorite president!' and 'I love you Jimmy Carter.' Flying commercial was just one of the many ways he led a simple life following his 1977 to 1981 tenure in the White House. In addition to his humble home-life, Carter taught Sunday school at the Maranatha Baptist Church on the edge of town every two weeks, but had to stop when his health took a turn for the worse. According to locals, lines of worshippers would form around the block the night before to hear his Bible studies.
이 비디오는 가슴 따뜻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기내에서 전직 대통령이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가운데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입니다. 나는 지미 카터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승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백악관에서 근무한 이후 이같은 그의 민항기 비행은 소박한 삶을 살았던 여러 방법중 하나를 보여 준 것에 불과했다. 카터는 그의 소박한 가정생활 외에도 2주마다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그의 건강이 악화되기까지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그 당시 교회 인근 여러 마을에서 그의 성경 공부를 듣기 위해 많은 교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We feel at home here,' Carter said in the 2018 interview. 'The folks in town, when we need it, they take care of us.' While it remains unclear where the former U.S. president will be buried, Carter told the Washington Post in 2018 that he'd hoped to be laid to rest at his home by a willow tree near a pond he'd helped dig, beside his beloved Rosalynn. The hope was to draw tourism to Plains and boost the small town's economy even after his passing.
카터는 2018년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기서 편안함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필요할 때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돌봐줍니다.' 전 미국 대통령이 어디에 묻힐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카터는 2018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 로잘린의 옆, 고향마을 연못 근처 버드나무 옆에 누워 쉬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사후에도 고향 플레인즈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작은 마을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희망이었기 때문일까.
* 20250102/ 번역정리 최익제(칼럼니스트/敎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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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註)/ 들리는바, 1월 9일 국립성당에서 장례식이 끝나면 카터의 시신은 조지아주 플레인즈 고향마을로 옮겨진다고 한다. 기차로 운구할 계획이었지만 ‘차갑게 식은 시신이 여기저기를 거쳐 가는 것은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는 고인 생전의 바램에 따라 군용비행기로 직송한다고 한다. 그리고 77년간 해로했던 아내 로잘린 여사가 2023년 11월 먼저 잠든 그곳, 고향마을 연못 가장자리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영면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럼 우리나라 퇴임 대통령의 모습은 어떤가? 단 3명 YS, DJ, 문재인을 제외하고는 그리 온전한 사람이 없다. 망명, 시해, 자살, 감옥행, 탄핵으로 얼룩졌다. YS, DJ도 아들이 비리로 구속되는 등 결코 개운치 못한 퇴임 후의 삶을 살았다. 문재인 역시 오랏줄을 받아 마땅하나 지금은 운이 좋아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다. 한국 대통령사가 이토록 처참함에도 불구하고 퇴임 대통령에 대한 국가적 예우만은 전혀 다르다. 가히 특별대우를 넘어선 초월적 대우다. 우선 ‘소득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서도 예외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에는 연금소득의 면세점이 월 350만 원이다. 그런데 현직 당시 연봉 2억 4,000여만 원의 95%를 매달 나누어 받는 퇴임 대통령이 받는 월 1,390만 원의 연금에는 소득세가 한 푼도 없다. 필자가 퇴임 이후 받았던 그 몇 푼 안되는 대학 강의 강사료에조차 종합소득세를 꼬박꼬박 받아 간 나라인데 말이다. 2010년부터 시행된 소득세법 개정으로 그렇게 되었다. 만인이 결코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소득세법 12조 3항은 ‘근로소득과 퇴직소득 중 다음의 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한다,’라고 규정한다. 즉 (카) 국가유공자, 보훈대상자 (파) 작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외국에 주둔 중인 군인 사이에 (타) 전직 대통령이 받는 연금을 슬쩍 끼워 넣었다. 전임 대통령을 국가유공자로 분류해 탈세를 시키고 싶은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셈이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에게는 사실 푼돈에 불과할 그런 세금조차 안 내도록 만든 이상한 법이다.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유치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지금 이상의 모든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하늘 아래 오직 문재인 전대통령 한 사람뿐이다. 생존 전임 대통령(이명박, 박근혜)이 있지만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거나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은 경호 등 극히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희대의 아이러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심각하게 나라를 말아먹었던 자에게 주어진 특혜니까.
또 전직 대통령 예우법에는 연금 말고도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그리고 4가지 예우가 더 있다.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 교통, 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본인 및 그 가족에 대한 치료, 그 밖에 전직 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예우 등등이다. 물론 시행령에는 더 많은 예우 규정이 산재해 있다. 이런 엄청난 특혜에도 불구하고 문 정권 임기 말 전임 대통령 예우에 관한 국가예산을 대폭 인상시켰다. 연금과는 별도로 예우보조금을 2억 6000만 원에서 3억 9,400만 원으로 인상했다. 각 부문 예산도 2022년 그의 퇴임 직후부터 늘어나도록 만들었다. 비서실 활동비는 7,200만 원에서 1억 1,400만 원, 차량 지원비는 7,600만 원에서 1억 2,100만 원으로, 국외여비는 4,800만 원에서 8,500만 원으로, 국립병원의 무료 진료 규정이 있음에도 신규로 민간진료비 1억2,000만 원을 신설했고, 간병인 지원비는 4,300만 원에서 8,700만 원으로 인상했다. 거기다가 퇴임 지원금으로 10억 3,000만 원, 매월 연금은 1,390만 원으로 확정했다.
모조리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항목들이다. 물론 여기서 그의 사저에서 수발을 드는 3명의 상근 비서관과 운전기사 인건비에다가 60여 명 경호 인력에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 사항이다. 대통령 예우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기막힌 현실이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멀쩡한 나라를 골병들게 만들어 놓고 산수좋은 양산 통도사 근방 수십 억짜리 집에 산다는 사람에게 묻는다. 책방 수입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애완견 사료대금을 국가에서 보조해 주지 않는다고 기르던 개를 어디로 팔아버렸다는 쪼잔한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 땅에서 오직 홀로 과분한 예우를 받는 게 정녕 부끄럽지 아니한가?
첫댓글 박정희 대통령이 그러셨을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