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마을은 '섬계(剡溪)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7세기 중엽에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입향조인 박수가 이 마을에 들어와 '섬계초당(剡溪草堂:지금의 晩竹齋)'를 짓고 정착하기 시작한데서 유래한다. ‘섬계’에는 사연이 있다. 서기300년대의 중국을 붓끝으로 주름잡았던 명필가 왕희지(王羲之)의 아들로 또한 당대 유명인이었던 왕휘지(王徽之)는 어느 눈 오는 날 밤 문득 거문고의 명인이기도 한 친구 대규(戴逵)를 만나러 섬계(剡溪)로 찾아간다. 그런데 밤새 배를 띄워 대규의 집 문 앞에 이르러서는 불현듯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까닭을 묻는 이에게 그는 승흥이생 흥진이반 하필견대안도야(乘興而行 興盡而反 何必見戴安道耶)라고 답한다. ‘흥이 올라서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대안도(대규)를 만나야만 하리오!” 가다가 흥이 다해 돌아오고 말았다’는 이야기지만, 실은 자신의 감정보다도 상대의 형편을 생각하는 이타(利他)의 극치가 내포된 일언이었다.
梁箕星( ?-1755) 섬계회도(剡溪廻棹)
무섬마을을 걷다보면 무섬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지형이 대규가 살던 섬계(剡溪: 현재 중국 절강성의 조아강 상류에 있는 섬)지역의 지형과 비슷한 점에 매우 애착을 가져왔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곳저곳의 고택의 이름에 '섬계(剡溪)'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죽재(晩竹齋)'의 첫 이름이 '섬계초당'이었듯이, 현재의 '김동근家'도 ‘섬계고택’이라는 이름을 이어받고 있다. 이래저래 '섬계'라는 이름은 '왕휘지'의 배려있는 우정과 따뜻한 만남의 의미를 생각하는 깊은 의미로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중국 절강성 섬계
그래서인지 섬계를 닮은 무섬에는 그리움과 만남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외나무다리에서 결코 만나지 말아야하는 것이 원수이기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외나무다리는 만남과 필연적인 깊은 관계가 있다. 시집오는 새색시의 유일한 길이었듯이 외나무다리는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절대절명의 좁은 외나무다리에도 중간 중간 비켜서있을 수 있는 추가의 공간이 있다. 이 추가의 공간은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양보이다. 바로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서사(恕思)’의 마음인 것이다.
무섬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많다. 경쟁으로 달려가는 현대사회에서 19세기로 타임슬립시켜주는 곳이 바로 무섬이다. 태양이 작열(灼熱)하는 여름 한낮의 무섬마을 뚝길에서 내려다보는 백사장은 바로 김소월선생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꿈꾸는 바로 그 강변이 아닌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뒷 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작이는 금 모래 빛
뒷 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화제가 바뀌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빨랐던 일본의 여행업계관계자는 주마간산식(走馬看山式)의 관광을 ‘슬라이드관광’이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나라이건 초기의 여행형태는 여행의 질보다는 방문 장소의 수에 승부를 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을 잘 아는 한 외국인이 세계적인 경제선진국 대열에 오르고도, ‘우리는 아직 선진국대열의 현관에 서있다고 손사래를 치는 한국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어 놀랐는데,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은 확실히 주제파악을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내심 우리 한국인들은 언제쯤이나 스스로가 선진국임을 인정하고 좀 더 선진국사람답게 여유롭게 될 것인가 끊임없는 의문을 가져본다. 이젠 우리의 관광이나 여행도 좀 더 성숙해져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문득 일본에서 본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홍보용 간판의 문안이 생각난다.
“좁은 일본, 그렇게 서둘러서 어디로 가는가?(狭い日本、そんなに急いでどこへ行く。)”(1973년 일본국무총리상 수상 표어)
이제는 달리기보다는 머무르는 관광의 형태가 도시의 속도전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한 시대가 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모두들 100년 정도 옛날로 돌아가 이곳 힐링의 수도(水島)인 무섬마을에서 슬로 라이프를 즐김은 어떨지. 예이츠(W.B.Yeats)에게 이니스프리 호수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이 있다면 내게는 영주의 무섬마을이 있다. 오늘 비오는 무섬을 거닐며 생각해본 일이다.
첫댓글 영주문화관광해설사 이동희선생님께서 올리신 글 모셔왔습니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섬 마을에 재미있는 내용을 너무 잘 표현 하셔서 가 본듯한 기분이 듬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꼭 한번 무섬마을을 방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무섬마을 아름답네요.
잃어버린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영주에 가면 무섬마을 찾아봐야겠네요~
권선생님 좋은글 감사함으로 접해봅니다~^*^
대학원 학우가 영주에서 먼길을 매주 1회씩 오곤했습니다. 사는 곳이 영주 무섬마을이란 말씀을 자주했는데,
바로 그곳이군요. 이한주샘인데 무섬마을을 활용하기 위한 논문을 준비하고 계시더군요. 참으로 아름답고 유서깊은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늦게 보게 되어 죄송합니다. 권화자샘이 올려주셔서 제가 늦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숨어있는 진주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