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룻밤에 읽는《홍루몽》
《홍루몽》이란 소설은 《옥단춘》이나 《구운몽》처럼 기생이야기가 아니면 남녀간의 애정행각, 혹은 권선징악을 다룬 고전 소설쯤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야기 듣기는 했어도 읽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작심을 하고 일어볼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여느 전집류처럼 7권 혹은 12권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이 느껴졌는데 단권으로 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화명도서관에서 빌렸다.
이 소설을 평역(評譯-재해석하여 번역함)한 이언호 선생은 부산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도 중문학에 심취해 중국문학을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저자인 조설근(曹雪芹, 본명 조점曹霑)에 대하여는 따로 적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중국에서 삼국지보다 더 많이 읽히는 책, 등장인물만 450여 명. 금릉(金陵-지금의 난징)을 배경으로 주인공 가보옥(賈寶玉)과 그의 고종사촌 누이인 임대옥(林黛玉)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배경으로, 가문의 흥망성쇠를 웅장하게 그린 대하소설’이라고 하였듯이, 소설은 장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것을 알겠다.
이 소설은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소설 중의 하나로 꼽히고 홍학(紅學)이라는 학문적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하고, 또 청나라 말 막후 실권자였던 서태후(1835∼1908)는 열렬한 애독자로 책에 등장하는 고사를 제재로 한 벽화를 거실에 걸어두기도 했다고 한다. 또 ‘중국예술연구원 홍루몽연구소’쑨위밍 소장은 “홍루몽처럼 줄곧 중국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소설은 없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위키백과’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서, 몇 군데 음미해볼 구절들을 옮기는 것으로 독후감에 대신할까 한다.
「오늘날 난징인 금릉의 한 부유한 가(賈)씨 가문에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영국공(榮國公)‘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차남 가보옥(賈寶玉-남자주인공)과 똑똑하지만 몸이 약한 가보옥의 고종사촌 임대옥(林黛玉-여자주인공1), 그리고 건강하고 가정적인 이종사촌 설보채(薛寶彩-여자주인공2) 등 세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영국공(榮國公) 등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의 후예들로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인 가원춘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 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와 폭정으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가진’및 가진의 손자 ‘가용’, 그리고 영국공 ‘가사’와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쓸모없는 이들이었다.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며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장조카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가문원들이 대부분 무능력하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정실부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어떻게든 4대 가문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는 못했다.
남자주인공 가보옥은 신화시대 ‘여와’가 ‘축융과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신선에게 부탁해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고, 또래 계집애들과 어울리기만을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한편 임대옥은, 신선이 건넨 돌이 가보옥이 태어나기 전 신영시자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해 선계를 돌아다니던 중, 물 주었던 풀인 강주초의 화신으로, 물을 머금은 끝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영시자는 이미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풀이었던 자신도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인간계로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어머니인 ‘가민’이 사망하자 지방관직에 있던 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가씨 가문에 의탁되었으며 시 짓기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갖춘, 아름다운 소녀이기는 해도 병약한 탓에 신경질이 잦고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또한 설보채(보차)는 가보옥과는 이종사촌지간으로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문장이 적힌 금목걸이를 항상 착용하였는데, 가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있었던 구슬에 새겨진 문장과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었고, 둘이 서로 인연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옥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면서 설보채는 차분하고 단정한 외모와 성격을 갖추고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황제의 후궁이 되어 귀비라는 봉호를 받은 보옥의 고모 ‘가원춘’은 특별히 허가를 얻어 친정을 방문하였는데, 대관원의 모습을 보고 빈공간으로 두기 아깝다며 보옥 등에게 대관원에 거주할 것을 명하였고 보옥은 임대옥과 설보채 등 또래 소녀들과 함께 대관원 안에 거처를 두고 시와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단란한 시절을 누렸다.
그러나 점차 나이를 먹은 가보옥은 설보차에게도 호감이 있긴 했지만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했다. 그러나 병약한 임대옥을 탐탁치 않게 여긴 가보옥의 할머니 사태군은 임대옥보다는 설보채가 신부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형수인 왕희봉과 어머니 왕부인이 동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다니던 구슬인 ‘통령보옥’이 돌연히 사라지는 일이 생겨 가보옥은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고, 고모인 귀비 가원춘도 병사했다. 이에 사태군은 불길한 기운을 액땜한다는 명분으로 가보옥과 설보채의 혼인을 강행하게 된다. 이때 가보옥의 측근 시녀이던 화습을 통해 임대옥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보통이 아님을 알게 되자, 왕희봉은 가보옥에게는 신부가 임대옥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설보채와 결혼시킨다. 가보옥이 설보채와 결혼한 날, 임대옥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나중에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된 가보옥은 엄청난 충격으로 허탈상태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 후에 가문원의 폐단이 겹치고 가씨 가문은 공작위와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몰락해 버렸고, 가보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카와 함께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나 응시장을 떠난 후 실종되어 버린다. 이후 가보옥은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재회하지만 한 마디 말도 없이 목례만을 하고 승려와 도사의 무리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결국 쓸쓸히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후일담으로 ‘진비’가 낙향하는 ‘가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를 낳자마자 죽은 딸 영련의 영혼을 천도하여 천계로 보낸 뒤, 망망대사와 묘묘진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설보채는 보옥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홀로 키우며 수절한다.」
소설의 흐름을 보면 마치 펄벅의 『대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경환선녀가 고개를 한번 끄떡이고 나서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가경이 천천히 옷을 벗고는 벽사(碧紗)로 몸을 가린 뒤에 보옥 앞에 반듯이 누웠다. 비록 벽사로 가리긴 했으나 허연 맨살과 검은 음모가 훤히 비쳐 보였으므로 보옥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세요. 여기 여자의 두 젖가슴이 있지요?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유방인 동시에 쾌락의 폭약과 같은 것이예요. 이 젖꼭지는 괘락의 뇌관과도 같아요. 이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만져주거나 입술로 빨아 주면 빳빳하게 일어나면서 여자의 온 신경이 쾌감으로 조여들게 되지요.’
경환선녀는 계속해서 운우*의 일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는 문을 닫고 가버렸다.”- 83쪽
*雲雨之情 :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懷王)이 무산(巫山)에 놀러 갔다가 고당관(高唐觀)이라는 누대에 잠시 머물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자신을 신농의 딸이라고 밝힌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정(情)을 맺었는데 어찌나 속궁합(?)이 좋았던지 그녀가 떠나려 할 때 회왕이 아쉬워 다시 만날 수 없냐고 하자, 여인이 "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산기슭에 내리는 그게 바로 저랍니다"라며 사라졌다. 회왕이 잠에서 깨어 저녁이 되자 산기슭에 정말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무산 남쪽에 조운관(朝雲觀)이라는 누대를 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후에 송옥이라는 초나라 시인이 지은 고당부라는 시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가진은 워낙 난봉꾼이라 여자의 몸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진씨까지도 어떤 때는 남편보다 시아버지를 더 기다리는 적이 있기도 하였다. 사실 가용은 허우대만 멀쩡했지 여자를 진정으로 만족시켜 줄 줄을 잘 몰랐다. 시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 상태를 느낄 때는 진씨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만 싶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자기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는지 시아버지 가진이 바람을 피우는 중에 바깥에서 낳은 자식 하나가(시동생) 그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진씨의 몸을 요구할 때는 정말이지 당장 혀를 깨물고 우물로 뛰어 들도만 싶었다.”- 105쪽
“귀를 틀어막고 방울을 훔친다”더니 이거야말로 그 짝일세, 가서 숙장님을 뵙거든 시경보다는 사서를 달달 외울 만큼 가르쳐 달라고 전해라.
“원래 글방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동족의 자제들과 일부는 친척집 자제들이었지만, ‘용 새끼 아홉 마리가 제각기 다르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이 많다 보니 용과 뱀이 섞여 있게 되고 그것도 못 되는 하류배들도 그 속에 없지 않았다.”- 116쪽
“가슴이 답답하고 입맛이 떨어지고 다리 맥이 풀리고, 눈은 초를 친 것처럼 시고, 밤에는 열이 나고 낮에는 나른해지며 아래로는 유정(遺精)을 하고 가래에는 피가 섞이고ⵈ 이런 중세들이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한꺼번에 일어났다. 결국에 가서는 몸을 지탱할 수 없어 누워 버렸는데 눈을 붙이기만 하면 가위에 눌리고 헛소리를 하며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많은 의원들을 데려다가 보이고 육계(肉桂-계수나무 껍질), 부자(附子-바꽃 뿌리), 별갑(鱉甲-금계 꿩), 맥동(麥冬-맥문동), 옥죽(玉竹) 같은 약을 몇십 근 써 보았으나 효험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 151쪽, 화봉을 짝사랑하다 상사병에 걸린‘가서’
“뚝을 두른 버들은 연못이 있어 더 푸르고
언덕 너머 꽃들은 향기를 뿌리누나.”
“솥 안의 차는 다 끓었어도 연기 아직 푸르고
창가에서 바둑은 파했어도 손가락 그냥 시리네.”
“봄물은 불어 불어 갈포 씻는 빨래터에 넘실거리고
구름은 둥실둥실 미나리 캐는 여인을 지켜 주누나.”
- 197쪽 ‘보옥 글 재주를 보이다.’중에서
“속담에 강보에 싸인 할아버지가 있고, 지팡이 짚은 손자가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나이만 위면 뭐 해요? 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하늘의 해는 가리지 못한다는 격이지요. 부친이 세상을 떠나신 뒤부터 저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보옥아저씨가 못난 저를 마다하지 않고 양자로 들여주신다면 저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지금 이 사람이 하는 소릴 들었나? 아들로 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가련(보옥이 작은아버지)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가고 보옥도 곧 자리를 떠나야 했다.
“내일 틈나는 대로 날 찾아오우. 오늘은 볼일이 있으니까 내일 내 서재로 찾아오란 말이오. 같이 대관원 안에 들어가 놀면 좋잖아!”
보옥이가 대답했다. - 282쪽, 뒤채에 사는 다섯째 아주머니의 아들인 운아가 보옥이 작은 아버지를 찾아와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올 때부터 언홍의 몸매와 미모에 반해있던 가련은 드디어 기회를 만난 듯 슬슬 언홍이를 유혹하려고 했다. 가사가 손사막 이야기를 들려준 의원의 말대로 성적인 것들에 대해 초연해지기 위해 도교를 한번 믿어 볼까 하고 오대산에 사는 어느 유명한 도인을 만나러 간 사이에 가련은 마침내 겁탈하다시피 해서 언홍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언홍은 가사가 오대산에서 돌아온 이후에 아버지와 아들 둘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가사는 도교의 영향 때문인지 언홍을 다시 괴롭히지는 않고 편하게 안고 자기만 했는데 가사의 포옹으로 은근히 달아오른 언홍의 몸속으로는 가련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처럼 위험한 행각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 했다. 가련의 아내 희봉이 눈치를 챘을 무렵, 언홍은 사실이 알려져 분란이 일어나기 전에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 가련은 자기의 정욕을 주체하지 못 하는 바람에 벌써 두 여자로 하여금 자살을 하도록 만든 셈이었다.”- 416쪽
“소산 뒤로 돌아가니 큰 살구나무에 벌써 콩알만한 작은 열매들이 파릇파릇 달려있었다. 얼마 전에 살구꽃이 만발해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보옥은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저 열매들도 얼마 후면 다 떨어지고 가지마저 앙상해지겠지. 나중에는 살구나무마저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겠지.’
보옥은 자기의 몸도 그 살구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오묘하고 강인한 것 같으나 때가 지나면 진액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결국 부스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청춘과 장년 시절에 잠시 열매를 맺는 듯하다가 어느새 헐벗은 가지가 되어 죽음의 삭풍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446쪽 보옥이 대옥을 만나기 위해 소상관으로 걸어가며.
“울기(鬱氣)가 간장을 엄습해 간장이 피를 담아 둘 수가 없어서 신기(神氣)가 안정을 잃은 것입니다. 울기는 본인의 의지로 물리쳐야 하는것이니 그렇게 하지 못하면 몸이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음(陰)을 다스려 피를 멎게 하는 약을 짓는 정도의 처방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병을 고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 493쪽, 대옥이 몸이 약해 쓰러지자 진맥을 한 의원의 말
“여기 와서 보니 이승의 생을 스스로 포기하고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큰 죄이더군. 그리고 그다음 죄는 나처럼 음욕과 요사한 짓거리로 자기 몸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것이야. 그러니 매사에 조심하여 자기 몸을 잘 간수하다가 이승을 떠나오란 말이야”
“알겠어, 이제 대옥누이도 죽고 보채누이랑 혼인도 한 몸이니 한눈을 팔지도 못할 거야. 아니 이제는 내게 한눈을 팔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아”
“보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518쪽, 보옥이 비몽사몽간에 저승에 당도해 이전에 죽은 친구 진종을 만나서 나눈 대화.
《홍루몽》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후기를 통해 이렇게 적고 있다.
“그 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하루는 공공도인이라고 하는 도사가 선도(仙道)를 구하느라고 편력하던 중에 대황산 청경봉 아래를 지나다가 우연히 큰 돌 위에 선명한 글씨로 무슨 사연이 빽빽히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공공도인은 그 글을 처음부터 쭉 읽어 보고는 그 돌이 원래 찟어진 하늘을 기울 재간이 없어 버려졌다가 작은 옥으로 변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망망대사와 묘묘진인에게 이끌려 홍진세계로 갔다가 피안에 끌려온 생돌임을 알게 되었다. 돌의 앞면에는 한 집안의 일, 여인들의 애정, 그리고 시사(詩詞)와 수수께끼 같은 것들이 적혀있고, 뒷면에는 ‘하늘을 기울 재주가 없어서, 홍진세계 해매이기 몇몇 해던가, 기구한 전생후생 이 운명을, 누구의 손을 빌려 이야기로 전할 건가!’하는 싯구가 적혀있었다.”
돌에 새겨진 내력을 다 읽고 난 공공도인이 돌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경력담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새겨서 기이한 일을 세상에 전하려고 하신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왕조와 연대가 없어 상고할 수 없고, 훌륭한 현자나 충신이 나라를 다스리고 풍속을 바로잡은 것과 같은 어진 정사에 대해서 보다, 그들이 다정다감했다거나 치정에 얽매였가거나 또는 좀 영리했거나 선량했다는 것만 적혀 있을 뿐이오. 그러니 설사 내가 그대로 베껴간다고 해도 신기한 이야기책은 될 수 없을 것 같소.”하고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내가 반평생 동안 직접 보고들은 몇몇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만 못하지요. 비록 그들이 이전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보다 꼭 낫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있었던 사연을 본다면 심심풀이도 될 수 있고, 광시(狂詩) 몇 수를 술 안주거리 삼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이합(離合)과 비환(悲歡), 그들의 흥망성쇠의 운명은 모두 사실 그대로 썼을 뿐, 진실성을 잃을까 두려워 섣불리 손대지 않았습니다. 바라건데, 세상 사람들이 술에 취했다가 깨거나 혹은 세상을 피해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할 때 이것을 한 번 읽어 본다면, 지난날의 과오를 씻어 버리고 새로운 길로 나가게 되어 수명과 근력을 좀 더 보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질없고 허망한 것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여러번 제목이 바뀌기도 한 책이 《홍루몽》이라고 하고 절구 한 수를 제사(題詞)로 썼는데 그것은 이렇다.
이야기는 모두가 허튼소리 같지만
눈물겨운 사연이 스며 있어라.
세상 모두 지은이를 미쳤다지만
그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