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불영계곡 "丹霞洞天(단하동천)으로 오르는
길"
"丹霞洞天으로 오르는 길"인 울진 불영계곡이 푸른 물을 하늘로 퍼트리며 물안개에 싸여있다.
울진 불영계곡(佛影溪谷)은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杏谷里)에서 서면 하원리(下院里)
불영사(佛影寺)에 이르는 15㎞규모의 기암절벽과 속살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맑은 광천
(光川, 빛내)을 품고 있는 수려한 계곡이다.
그 품세가 인공으로는 도무지 흉내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기괴하고 수려해
"한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어진다.
지난 1979년 12월에 명승 제6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3년 10월에 군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됐다.
불영계곡은 누천년 제자리를 지키며 바람과 비와 햇살에 제 몸을 맡겨 창옥벽(蒼玉壁)ㆍ의상대(義湘臺)ㆍ
산태극(山太極)ㆍ수태극(水太極)ㆍ명경대(明鏡臺) 등 30여 개의 명소를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자연풍광만 선사한게 아니다. 불영계곡은 울진지역의 역사와 삶을 오롯이 반영하는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불영계곡을 성역으로 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투영해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의상대사와 구룡(九龍)의 쟁투"이다.
의상대사가 울진 온정 백암산 기슭에 '백암사(白巖寺)'를 창건하고 고개를 들어 서쪽을 보니
"석가모니가 수도하던 인도의 천축산을 닮은" 산을 보고 그곳을 향해 지팡이를 던졌다.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사찰을 짓기 위함이었다.
지팡이가 꽂혀있는 곳에 당도하니 아홉 마리의 용이 길을 가로막았다. 의상대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구룡과 쟁투를 벌여 여덟마리의 용을 퇴치하고 마지막 한 마리의 용과 일진일퇴의 사투를 펼친 끝에 마침내
'주천대(酒泉臺, 현 근남면 행곡리 구미마을)'에서 용을 물리친다.
의상대사는 아홉마리의 용과 인연을 빌어 사찰을 창건하고 '구룡사(九龍寺)'라 이름 지었다. 이후 구룡사는
"용이 살던 못에 부처의 설법 형상"이 비치자 오늘날의 '불영사'로 개칭했다.
의상과 구룡이 석 달 열흘을 두고 벌인 사투(死鬪)로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감입사행계곡'인 불영계곡이다.
의상에게 패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주천대'는 또 다른 세계관인 유학(儒學)의 울진지역 발상지이다.
울진이 낳은 대철학가이자 천문학자인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는 이곳 주천대에서 울진 철학의 대계를
세웠으며,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 1601년~ 1673년)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임천(臨川) 남세영(南世英),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년~ 1722년)과 함께 울진지역 철학의 숲을 이뤘다.
최근 국내 최고의 비구니 학습도량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불영사로 들어서는 초입은 "붉은 노을이 걸린 지상의
낙원"이라는 뜻을 가진 '丹霞洞天'이다. '洞天'은 '천상의 동네'라는 의미로 도가(道家)사상을 품고 있다.
의상대사가 불영에서 부처님의 세상을 열기 전, 울진 사람들은 이곳을 "천상의 비처"로 여기고
"붉은 노을과 흰 물안개와 푸른 물"이 솟는 이곳 우람한 절벽에 "丹霞洞天" 네 글자를 새기고 "사람살이의
평온"을 갈망했다.
웅장한 불영계곡을 밟고 계곡이 빚은 순백의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비처인 "丹霞洞天"에서 불영사로 이어지는
길은 가히 천상으로 오르는 절경이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