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1천만원 제1회 천태문학상 대상 수상작]
별지화(別紙畵)
김숙영
처마 밑 연꽃이 천년을 산다
진흙 물결도 없는데
한 번 돋아나면 오직 적멸을 향해 움직인다
그러니 꽃은 피고 지는 게 아니라
화려함 뒤에 숨어
나무의 숨결과 함께
천천히 조금씩 흩어지고 있는 거다
처음엔 그저 썩지 않게
다스리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틈 하나 없이
나무를 껴안고 놓지 않는다
이것은 밀봉이 아니라 밀착
색(色)이 공(空)을 향해 걸어가려는 의지
봉황의 춤이 허공중에 스민다
바람이 색을 민다
풍경 소리가 찰방찰방 헤엄친다
지붕 아래 꽃들이 소리 나는 쪽을 본다
색과 색이 만나 서로의 색을 탐독한다
꽃의 안쪽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될 때까지
나는 화두 밑을 걷고 또 걷는다
머리 위에 꽃의 말이 내려앉는다
대웅전 안쪽 문수보살이
아무도 모르게 웃을 것만 같다
몸속이 화심(花心)으로 가득 찬 기분
꽃의 마음이란
식물성 부처를 만나는 일이었을까
절 쪽만 바라봐도
날개를 편 단청이 꿈속으로 날아왔다
당선자 김숙영 시인
[심사평]
첫 공모전임에도 불구하고 본심에 올라온 작품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제1회 천태문학상 공모전은 출품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심사위원들은 출품자의 문단 이력은 물론 등단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온전히 작품으로만 수상작을 선정했다.
응모작 중에서 시 부문의 출품작 ‘별지화’가 단연 눈에 띄었다. 이 작품은 사찰 당우에 그려진 ‘연꽃’을 매개로 자아가 본래면목과 만나는 과정을 탄탄한 구성과 감각적 표현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몸속이 화심(花心)으로 가득 찬 기분/ 꽃의 마음이란/ 식물성 부처를 만나는 일이었을까/ 절 쪽만 바라봐도/ 날개를 편 단청이 꿈속으로 날아왔다’는 끝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는 ‘식물성 부처’라는 전혀 새로운 표현과 불이(不二)와 원융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레 번져 나오는 ‘환희심’을 결구로써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심사위원 : 신달자 시인, 이상문 소설가, 김영재 시조인, 윤효 시인, 이혜선 시인, 권득용 시인
출처 : 금강신문(https://www.gg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