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소설 별 바라기 소년 제2화 (마을 이름 짓기)

[배수진]

제2화 마을이름 짓기

서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적한 영천의 보현산 천문대가

두 사람에게 익숙해졌다.

한별과 인숙은 휴일이면 영천의 명승지를 찾아 다녔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지 못한 댓가로 인숙이 얻어낸 국내 여행이었다.

장거리가 피곤하다는 말에 인숙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라

경북만을 팽이처럼 뱅뱅 돌았다.

‘임고 서원’에서는 포은 ‘정 몽주’를 만나고 팔공산에 올라

안흥 바위와 건들 폭포를 만났다.

자천리에서는 좌우로5리에 걸쳐 울창한 숲이었었다는 ‘오리장림’에서

수령 20~350년의 거목들도 만났다.

‘돌 할매’라는 10킬로그램의 화강암 돌은 들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들지 못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돌도 들어 보았다.

한별과 인숙은 돌을 들었기 때문에 아이가 없다며 쓴 웃음을 웃기도 했다.

“한별씨 마음을 비워야지 아이를 달라고 애걸복걸 욕심을 부리니까

돌이 가볍지~하하하하”

350년 동안이나 찾는 사람들에게 길흉화복을 주었다는 돌은

전염병이 생기면 영천 사람들은‘돌 할매를 만나러 갔다.

참배를 하는 토속 신앙이 사람들에게는 잔잔한 희망의 돌이었다.

어떤 역병이 만연하고 나라와 집안에 흉한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

대구. 포항. 안동. 청송. 영천에 사는 사람들이 역병으로

이곳을 찾는 일이 없기를 소원해 보았다.

명승지를 다 돌아보니 이젠 영천의 산골 사람이 된 듯 착각도 일어났다.

경북의 쉴만한 곳을 찾아다니고 시간이 짧으면 산 오솔길과 영천댐을

돌아보는 것도 자신의 뒷동네처럼 여겨졌다.

꽃길과 담장이 예쁜 시골집엔 호박이 올라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세로줄 입술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골목, 이름도 없고 발길도 뜸한 한적한 곳을 바라 보는 것도

서울과 다르니 풍성한 볼거리였다.

시인이자 국어 선생님인 인숙은 여행지를 다녀 올 때마다 장소를 기록하고

그에 맞추어 시를 쓰는 일이 취미였다.

이름이 없는 곳은 다음에 찾아갈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이름도 지어 주었다.

오늘도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온 터라 여유가 있어 인숙은 연필을 들었다.

마을 이름과 시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별은 그와 달리 샤워를 하고 벌써부터 시작했다.

꾸벅 꾸벅.....

낮의 여운이 아직 남은 인숙은 여행지를 머릿속에 인식 시킬 겸

조는 남편이 살짝 미워서 놀려줄 생각으로 마악 지은 동네이름으로 물었다.

“한별 씨, 산모퉁이 구불구불 다섯 동네와 까치아파트 3층 마을 중에서

어디가 더 마음에 남아요?”

“어? 어어어.”

졸다가 졸지에 날마다 하는 ‘어어’ 자만 반복했다.

그리고 나중에 희미하게 들은 까치 아파트 3층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까치 아파트 3층이 뭐야?”

“그건 동네 입구에 큰 나무가 서 있는데 까치집이 층층이 3개나 있어서

붙여준 동네야.”

“아 아아아 거기가 거기야~”

“아이구 졸 남이....어서 자세요. 졸 남씨.”

   

그렇게 시처럼 마을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그러나 별 특색이 없는 곳은 부르기도 기록하기도 불편하고

기록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곳이 어딘지 이름만 보곤 잊어 버렸다.

인숙은 처음엔 한별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대로 쓰러져 자는 것이

내일 출근을 위해서 자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열이 나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는 허약 체질이었다.

그런 날엔 상비약도 드링크제도 없어 약국을 달려가는 날도 가끔 있었다.

인숙은 준비성이 없었지만 사랑은 많아 그때마다 사랑이 달음질치게 했다.

사랑 때문에 한번 먹은 마음을 돌이켜 후회를 하는

연약한 마음을 가진 천상여자였다.

사랑 없던 날 -김인숙-

약을 사러 가는 길에

안색이 노랗게 변한 별이 아프다는데

발길에 채일까 구석에 숨은 노랑 민들레가 보였다.

시궁창에서 막 올라온 곱등이도 보이고

해도 보이고 실눈 살살 감아버린

초승달도 보였다.

나는 별을 많이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지금 어디만큼 왔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보여

이름 모를 꽃에 가는 눈과

초승달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내 눈은 보지 않아도 되는,

굳이 명찰을 달 필요도 없는 풀꽃이

노랗게 질린 내 별보다 잘 보였다.

사랑 없는 까닭에

채우지 못한 사랑 때문에.

*남편이 몹시 피곤해 했다. 약을 사러 갔다 오는 길에 꽃이 보이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꽃이 보이지 않아야 해도별도 달도 보이지 않아야

내가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1997년 4월5일 사랑 없던 날-

인숙은 남편의 직장인 천문대 주변마을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옥계마을은 이름이 있지만 몇 가구가 되지 않아 주소만 있는 마을은

 ‘삼거리 오른쪽 동네’ ‘왼쪽 동네’라고 부르기엔 심히 마땅치가 않아

한별에게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리 만족하지 못했다.

“여보. 당신이 시인이고 국어 선생님이니까 이름을 지어 봐요.

내가 관계기관을 찾아가서 마을 이름을 붙여 보자고 건의는 할 테니까.”

“아니요? 그것 보다는 천문대 부근이니까 천문대 홍보도 할 겸

당신이 지어주면 더 좋은 이름이 나올 것 같은데요?”

“이번만은 그럴까?”

“한별 씨. 저는 여기 와서 서울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내는 ‘은하수’를 보고

아주 황홀했어요. 말 그대로 별천지였어요.”

인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별은 마을 이름이 생각났다.

“아. 당신 말을 듣고 생각났다.

저기 높은 곳에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은하수 같으니까 

 ‘은하 마을’이라고 짓자. 어때?”

“굿~ 엄지 척!”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또 하나를 지었다.

그리고 영천시청을 찾아 갔다.

“시장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천문대장님. 개관 때 뵙고 한번 찾아간다 했는데

워낙 바빠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는 제 아내입니다. 영천여고 선생님으로 서울에서 내려 왔습니다.”

“아 사모님. 영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장님, 영천의 진산이나 다름없이 좋은 산에 천문대가 들어서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터인데 관광 수입도 늘어나겠지요?”

“아 예 그렇겠죠.”

“그런데 천문대를 가기 전에 있는 마을 아시죠?”

“아 그 동네요? 몇 가구가 없는데 왜요?”

“예. 그 동네는 번지만 있고 마을이름이 없습니다.”

“아하 그러십니까?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네요.

워낙 가구 수가 적어서 그러나 보죠?”

“그래서 제가 마을 이름을 지어 왔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예? 그럽시다.”

“우리 보현산 천문대는 전국에서 가장 별빛이 가장 아름다우니까

하나는 ‘별빛마을’이라고 짓고 또 하나는 은하수를 따서

 ‘은하마을’이라고 하면 천문대 이미지도 살리고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아하~ 정말 천문대 주변으로 가장 적합한 마을 이름이네요. 하하하하.”

한별은 천문대 홍보로 관광 수입도 올리고, 천문대를 찾기 쉽게

 마을이름 팻말도 세워 마을과 천문대를 함께 알리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아 관장님 외지 분이 영천을 사랑해서 그런 생각까지 하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그 이름을 주소로 쓰기에 가능한지 타진해보고 가능하다면

주민들도 설득해서 빠른 시일 안에 결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영천에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후 시간이 흘렀다 아니 세월이 흘렀다.

그 결과 2003년 행정 자치부에서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을 해서

마을가꾸기가 시작되었다.

생태마을로 변신도 하였다. 이름을 지은 지 7년 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명’ ‘은하 마을’ ‘별빛 마을’이 태어났다.

천문대장과 주민 영천시장의 협력과 지원 아래 도로변에는

 ‘별빛마을’ ‘은하마을’ 이정표도 만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천문대에 걸맞은 이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천시의 새 명물 천문대 홍보 덕분으로 ‘별빛과 은하마을’은

빈집으로 사람들이 돌아왔다.

은하 마을은 총 50가구로 늘어났다.

100여명의 주민들은 다랑이 논에 저 농약 논농사를 짓거나

산자락에는 별빛 고추 별빛 미나리 별빛 사과수확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약초나 산나물 수확도 소득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의 귀향은 어려웠다.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떠날 수 없는 노인들만 남는 것은 여전했다.

-다음편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