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군중에게 바치는 위로! 이영희 개인전
글 : 故 황태영 (수필가)
작가는 꽃밭에 성찰하고 휴식할 수 있는 의자를 준비해 두었다.
의자의 쓰임은 홀로 존재하는 데 있지 아니하다. 의자는 받침이 되어 지친 누군가를 위로해 줄 때 빛이 난다.
의자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 소통시켜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현대인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며 성공한 사람들조차 우울증을 느낄 정도로 불안하고 외롭다.
이영희 작가는 이들에게 의자를 통해 휴식을 제공한다. 휴식은 이전의 끝이며 새로운 출발이다.
얽매임 없는 편안한 위안의 꽃
숲은 새를 품고 강은 고기를 품는다. 새는 숲을 닮고 고기는 강을 닮는다. 새를 알려면 숲을 알아야 하고 고기를 알려면 강을 알아야 한다. 작가와 그림도 같다. 그림은 작가를 닮고 그림을 알려면 작가도 알아야 한다. 밝은 작가가 어두운 그림을 따뜻한 작가가 차가운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다. 이영희 작가는 꽃을 좋아한다. 꽃은 잘남과 못남을 차별하지 않고 보는 모든 이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 하늘은 차별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곳, 모든 생명에게 비와 이슬을 내려주고 빛과 바람을 맞게 한다. 재산도 이념도 지역도 직업도 따지지 않는다. 이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작가의 꽃은 하늘을 닮았다. 내편, 네 편을 모두 아우른다. 그래서 작가의 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밝히는 봄볕이 된다. 그의 그림을 볼 때면 봄바람 같은 달콤한 휴식에 젖는다..
고요 속의 행복
작가의 꽃은 상념 없는 행복을 준다 현대는 자극과 속도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초고속 문명의 멀미를 호소하며 벗어나고 싶어 한다. 행복은 상념에 젖어 ‘뛰는 곳’이 아니라 상념에서 벗어나 ‘멈추는 곳’에 있다. 작가의 꽃을 보다 보면 스스로 멈추어진 꽃이 되는 꿈을 꾼다. 꽃은 화려하다. 그러나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작가를 닮은 꽃에서는 담백함이 묻어난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찬란함으로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소 거친 우직함으로 폭과 깊이를 넓혀 간다. 작가는 나이프와 붓질의 중첩을 거듭하며 드러낸 두터운 질감을 통하여 세월의 퇴적감과 더불어 행복의 쌓임을 이야기한다. 좋은 물은 향기가 없고 좋은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 작가의 꽃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현란한 피로가 없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원시의 달과 별을 닮았다. 그래서 꽃 앞에 서면 몸과 마음을 옭아매는 그 모든 소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요 속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의자가 주는 휴식과 위로
빠름은 우리를 얽어 매지만 멈춤은 우리를 풀어 준다. 참 행복은 빠름의 풍요가 아니지만 현대인들은 늘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꽃밭에 성찰하고 휴식할 수 있는 의자를 준비해 두었다. 의자의 쓰임은 홀로 존재하는 데 있지 아니하다. 의자는 받침이 되어 지친 누군가를 위로해 줄 때 빛이 난다. 의자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 소통시켜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현대인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며 성공한 사람들조차 우울증을 느낄 정도로 불안하고 외롭다. 이영희 작가는 이들에게 의자를 통해 휴식을 제공한다. 휴식은 이전의 끝이며 새로운 출발이다. 돌아봄과 내다봄의 쉼터이며 힘을 비축하는 곳이다. 작가의 의자에 앉으면 주위가 조용해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작가의 의자는 마주보며 다툼을 하는 의자가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곁에 있어주는 의자이다. 내 편이 되어 그냥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 꽃밭 속의 의자는 ‘멈춤과 쉼’이 실패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행복의 근원임을 알려준다.
지나온 매 순간이 다 꽃이었다.
꽃은 내려갈 때 비로소 보인다. 욕망과 성공을 향해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던 그 잘난 시절에는 결코 볼 수가 없다. 꽃은 행복이다. 기쁨이고 희망이고 노래요 꿈이다. 무거운 짐을 벗고 탐욕도 내려놓고 쉴 때 꽃은 길섶 저만치서 조용히 웃는다. 올라갈 때도 거기 있었다. 눈비가 오고 비바람이 불 때도 꽃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보아주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냥 홀로 피었고 홀로 견뎠고 홀로 울고 홀로 웃었다. 지나온 매 순간이 다 꽃이었다. 작가의 의자에 앉아서 보면 하나하나의 꽃이 비로소 제 빛을 드러낸다. 캔버스 가득 메운 꽃은 지나온 날마다 느꼈던 행복이다. 작가는 꽃 이미지 크기의 점진적 변화로 행복의 시간적 흐름을 나타낸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꽃 이미지의 변화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이기도 하다.
행복이 무한히 퍼져나가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냥 버려져 있는 꽃이 아니다. 누군가는 나의 꽃이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꽃일 것이다. 한 장의 꽃잎으로는 꽃이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꽃잎이 연대해야 하나의 꽃이 완성된다.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각자가 다 보석처럼 귀한 존재이며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며 공존한다. 작가는 꽃의 행복과 의자의 휴식이 서로의 빛이 되어 온 우주로 무한히 퍼져나가기를 염원한다.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 따뜻한 작가의 꽃은 차가운 세상을 녹여 갈 것이다. 배려하는 작가의 의자는 상처 난 자리에 분홍빛 꽃을 피울 것이다.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이 ‘저 그림 속 의자에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천생 작가 이영희. 작가의 꽃과 의자가 고독한 군중에게 위로가 되기를 또 행복한 세상, 공존하는 우주를 만들어 가는 무한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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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 평론가>
“타인에게 위로 받고 싶고, 또 때때로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 내면”은 작가만의 가치가 아니라 동시대 보편적 가치에 해당된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가치를 조형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작가의 그림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메시지의 핵심적 매개가 바로 의자 이미지이다. 오래 전부터 등장해 온 의자 이미지는 근작들에서 전례 없이 강렬하게 부상하고 있다. 의자는 존재의 사회성을 시사하는 상징으로 등장하곤 한다. 휴식, 대화, 기능, 권위 등을 상징하는 의자,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다의적 아이콘이다. 나아가 조병화 님의 詩에서와 같이 하나의 ‘세대’를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다의적 상징의 대상인 의자 이미지가 작가의 화면에서 구현되는 방식은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향유하고 음미할만한 심미적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야말로 화면에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題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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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 화가>
화가에게 가장 친근한 소재 중 하나는 꽃이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일 게다. 정물화에서도 으뜸을 차지하는 것 역시 꽃이다.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꽃을 주요한 소재로 택해 많은 화가들이 그려 왔고, 아예 ‘화훼’라는 장르를 정해 대접해왔다.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꽃이 작가의 생각을 포장하는 상징으로 훌륭한 매개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영희의 꽃밭도 이런 상징을 품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꽃이 지닌 환상적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꽃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보인다. 반짝이는 꽃은 조금씩 흔들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화면 전체를 감싸는 공기가 보인다. 단색조의 색채 때문이다. 안개 속의 꽃밭은 우리네 인생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꽃밭 같은 미래를 꿈꾸지만, 꿈속처럼 모호한 인생길. 그 길의 지표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영희는 의자를 등장시킨다. 화면 중앙에 또렷하게 배치한 의자에서 작가의 의도가 확연히 읽힌다.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의자는 몽롱한 배경 때문에 입체감이 도드라져 보인다. 한 쌍의 의자는 음양을 상징하듯 밝고 어둡게 그려져 있다. 인생의 정확한 지표를 설정하기 위한 작가 자신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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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작가노트>
나의 작업에서 조형적 이미지의 의자는 타인에게 위로 받고 싶고, 이웃과 소통하고 싶은 현대인의 내면을 그리고자, 압축적이고 감각적인 표현 방식을 통하여 더 이상 기능적인 물건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나갈 방법을 제시하는 따스한 손길로 변화하였다. 의자라는 물체가 내 경험과 관계성을 가지고 교통하게 되면서 나의 존재성을 대신하는 생명체로 승화된 것이다. 나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저 그림 속 의자에 앉아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겠다.
<Artist Notes>
After painting chairs as ordinary objects that has consistently been a theme of mine, .I tried to attach 3D chairs on the canvas this time to represent the inner mind of contemporary people who want to communicate with their neighbors. My artwork proceeds to illustrate that the physical comfort of sitting on the chairs can also lead to finding happiness. Happiness is only not the target, but an ongoing process that is constantly propelled forwards .I paint the euphoric feeling by utilizing the images of flowers being completely filled with and representing the flow of time through the gradually changing sizes of these flower images .If the viewers thought “‘I’d like to take a rest on the chairs of her paintings”, I could not be any happier.
이영희 李英姬 Younghee Lee
이화 여자 대학교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한국 미술 협회, 전업 미술가 협회, 서울 미술 협회, 탄천 현대 작가회, 한오 문화 협회, 다암예술원 & 싱가폴 갤러리 전속 작가
개인전 26회(뉴욕, 도쿄 & 서울)
국내단체전
한국 국제 아트 페어, 마니프 아트 페어, 스카프 아트 페어, 서울 아트쇼, 아트 부산, 모던 아트쇼, 대구 아트 페어, 조형 아트 페어
위드 아트 페어, 남송 아트 페어, 국전, 한국 여성 미술 100년전
해외단체전
아트 햄튼(뉴욕), 아트 토론토(토론토), 칼스루헤 아트 페어(칼스루헤), 어포더블 아트 페어(홍콩,싱가폴&뉴욕)
SWAB 아트 페어(바르셀로나), Brooklyn 아트 페어(뉴욕), LA 아트쇼(LA), 아트 차이나(베이징), 한국 예술제(비엔나)
이메일 : leeauditor@gmail.com 홈페이지 : www.artistyoungh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