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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포츠 클라이밍(인공 암벽등반) 여자 선수 중 최강자로 꼽히는 김자인 선수(22,고려대·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스파이더 걸’로 불리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목받아 온 그가 마침내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지난 4월 일본에서 열린 스포츠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에 출전, 놀라운 성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일주일 뒤 태국에서 치러진 아시안컵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것. 두 대회 모두 그의 주 종목인 ‘난이도’가 아니라 ‘볼더링’에서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줄을 맨 상태로 15m 높이의 인공 암벽을 제한 시간 안에 오르는 난이도와 달리 볼더링은 줄을 매지 않은 채로 높이 5m, 너비 4m의 인공 암벽에 설치된 홀드(인공 손잡이)만을 잡고 오르는 경기.
홀더간 간격이 넓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서양 선수들이 유리한 경기다. 그는 작은 키(152cm)라는 약점을 딛고 20여 개국에서 출전한 30명의 선수들과 경쟁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세계 스포츠클라이밍 관계자들이 그를 더욱 주목하는 이유다.
그가 신체 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비결로 주변 사람들은 ‘지독한 연습’을 꼽는다. 김자인 선수가 평소 연습장으로 사용하는 ‘서종국 실내암벽등반’을 운영하고 있는 서종국 관장은 “자인이의 연습량은 정말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번은 연습하다 손바닥에서 피가 났는데, 갑자기 앉아서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워낙 피부가 두껍게 벗겨져 아파서 우는 줄 알았는데, 그 통증보다도 그날 연습량을 채우지 못한 게 속상해서 우는 거였어요. 그러더니 끝내 장갑을 끼고 와 계획했던 시간만큼 연습하고 가더라고요. 평소에도 다른 사람의 몇 배는 연습하고, 남자들과의 경쟁에서도 지는 걸 못 참기 때문에 다들 자인이를 ‘악바리’라고 불러요.”(웃음)
철저한 자기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체중관리는 거의 ‘살인적’이다. 평소에도 살이 찌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대회를 앞두고는 근력 강화 훈련과 함께 식이요법을 병행한다. 아침 겸 점심으로 한 끼를 먹고 나면 오후 6시쯤 고구마 한 개와 사과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계에 올라 100g 단위까지 살핀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그는 온몸이 땀범벅이 될만큼 강도 높은 연습을 끝내고 겨우 사과 한 쪽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괜찮은지” 묻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는 많이 고프지만 어쩔 수 없어요. 몇 백 그램이라도 몸무게가 늘면 발에 실리는 하중이 몇 배나 커지거든요. 게다가 저는 먹는 걸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에 정말 자제해야 해요. 그래도 오랫동안 습관이 돼서인지 이제 참을 만해요.”
이야기를 나누며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보니 온통 멍 자국이다. “홀드에 부딪쳐서 생긴 것”이라며, “격한 운동이 아닌데도 크고 작은 부상들이 생각보다 많아 항상 조심한다”고 한다.
“손가락 부상이 제일 많고, 어깨 상체 쪽도 많이 다쳐요. 재작년에는 계속 부상에 시달려 좀 힘든 한 해를 보냈죠. 발목 인대가 파열돼 오랫동안 깁스를 했고, 작년에는 어깨 연골이 찢어져 한동안 쉬었어요. 스포츠 클라이밍이 발달된 유럽에서 1년정도 공부하고 올 생각으로 휴학까지 했는데 결국 부상 때문에 그 계획도 접었어요. 한번 다치면 연습도, 대회도 제 욕심만큼 할 수 없어서 그게 제일 속상해요.”
온 가족이 암벽등반 즐기는 산악인 가족
그가 스포츠 클라이밍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산악인으로 그의 어머니 이승형 씨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스포츠 클라이밍 1급 심판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다. 산 사랑이 각별해 자인 씨의 이름도 암벽등반 때 몸을 묶는 장비인 ‘자일’과 북한산 ‘인수봉’의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스포츠 클라이밍에 입문한 두 오빠(김자하, 김자비) 역시 남자 부문 국내 정상급 선수들. 현재 둘째 자비 씨는 군복무 중이라 잠시 운동을 쉬고 있고, 첫째인 자하 씨는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소속 선수이자 그의 전담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가 된 것은 전적으로 오빠들의 영향이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 주말이면 엄마, 아빠를 따라 산에 다녔고 평일에는 집 근처에서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등을 즐겼죠. 그런데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오빠들이 대회 출전하느라 1년에도 몇 번씩 외국으로 나가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나도 하게 해 달라’고 엄마를 졸랐죠. 아빠는 ‘딸은 험한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리셨는데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그저 ‘비행기를 타는 오빠들이 부러워’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산악인 부모에게 물려받은 그의 재능은 곧 빛을 발했다. 입문 3개월 만에 출전한 첫 대회에서 초등 부문 3위에 입상한 것. 실력은 일취월장해 이듬해 그는 ‘아시안 주니어 엑스게임’에 출전하기 위해 소원대로 비행기를 탔고, 이 대회에서 ‘스포츠 클라이밍’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그는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스포츠 클라이밍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암벽등반을 한다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제 해보면 정말 매력 있는 운동이거든요. 온 정신을 홀더에만 집중하게 돼 다른 잡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암벽과 제가 하나 되는 느낌이 드는데 저는 그 일체감이 정말 좋아요.”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재미있어 힘들다는 생각은 했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김자인 선수.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오는 6월,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 월드 챔피언십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더없이 희망적이다.
첫댓글 자인이 이쁜girl 초등학교때 오빠랑 멜빵하네스 차고 간현에서 등반하는거 본게 엇그제인데 멋지게 자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