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갈피표를 책갈피라고 하면 안 되고, 청서를 청설모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와 있으니 갈피표를 책갈피라고 해도 되고 청설모를 청서라고 해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맞긴 맞는데, 뭔가 좀 거시기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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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며칠 전 부산일보에, 국립국어원이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새말을 추가하고 실린 말의 풀이도 다듬어 지난 2008년부터 웹사전을 개통했다면서, 그 사전의 도움으로 '책갈피에 책갈피를 끼웠다'처럼 어색한 문장도 생기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써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되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저같이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참 가슴 아픈 기사였습니다.
한국어문기자협회 2010 봄 호에 보면 청설모와 청서를 같은 것으로 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고 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책갈피'는 "책장과 책장의 사이"로 책의 낱장을 뜻합니다.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찾기 쉽도록 책의 낱장 사이에 끼워 두는 물건은 '갈피표'입니다. 두 낱말은 뜻이 다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책갈피의 뜻풀이에 갈피표 뜻을 같이 넣었습니다. 이건 잘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청서'는 다람쥣과의 동물로 다람쥐처럼 생긴 갈색 동물입니다. 붓을 만드는 데 많이 쓰는 참다람쥐나 날다람쥐의 털은 '청설모'입니다. 두 낱말은 뜻이 다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청서'의 뜻풀이에 '청설모'의 뜻을 같이 넣었습니다.
제가 갈피표를 책갈피라고 하면 안 되고, 청서를 청설모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와 있으니 갈피표를 책갈피라고 해도 되고 청설모를 청서라고 해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맞긴 맞는데, 뭔가 좀 거시기 합니다.
표준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표준국어대사전에 저를 헷갈리게 만들고, 더 나가 가슴 아프게 만드네요.
자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글을 따다 우리말편지를 쓰는 저지만, 그래도 가끔은 표준국어대사전이 미울 때도 있답니다. ^^*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미운 마음보다 훨씬 큽니다.
고맙습니다.
보태기) 제가 우리말 갈피표를 만들어서 가끔 선물로 나눠 드립니다. 거기에 보면 책갈피가 아니라 갈피표가 바르다고 써 놨습니다. 그 갈피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우편번호, 주소, 이름을 먼저 보내주시는 10분께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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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예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죽살이]
안녕하세요.
주말 잘 쉬셨나요?
아침에 컴퓨터를 켜니 부고가 많이 와 있네요. 환절기라 그런지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시군요.
사람이 살려면 숨을 쉬어야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 코 또는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또는 그렇게 하는 일"이 숨입니다. 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거죠. 그래서 죽는 것을 숨을 거뒀다고 하거나 숨졌다고 합니다. 어디론가 넘어가는 게 '지다'이므로 '숨지다'도 숨이 넘어간 것이므로 죽은 거죠.
사람이 막 태어나면 배로 숨을 쉬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슴으로 숨을 쉬고, 죽을 때가 되면 그 숨이 목까지 넘어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 '목숨'인가 봅니다.
사람은, 아니 생명체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오신 곳으로 다시 가신 것이죠. 사람이 죽는 게 영어로는 go나 gone이지만, 우리말로는 return이 되는 거죠. 우리 조상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삶과 죽음을 우리말로 '죽살이'라고 합니다. ('죽사리'나 '죽살'이 아닙니다.) 어떤 일에 모질게 힘을 쓰는 것을 두고 죽살이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공부시키시느라고 죽살이치셨다, 그는 잡히지 않으려고 죽살이치며 도망갔다처럼 씁니다. 저는 어떻게 살다 언제 죽을지...
우리는 앞날을 모르죠? 모르니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우리 죽살이가 뜻깊지 않을까요? ^^*
이번 주도 열심히 삽시다.
아자, 아자, 아자~~~~~~~~~~~~~~~!!!
우리말12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