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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方向(방향)성에 대하여... 1 (29P)
👭 (빌 3: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요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겔22:30)이 땅을 위(爲)하여 성(城)을 쌓으며, 성(城)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滅)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31)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震怒)의 불로 멸(滅)하여 그 행위(行爲)대로 그 머리에 보응(報應)하였느니라. 나 주(主) 여호와의 말이니라.
👭 (사62: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城壁) 위에 파숫군(把守軍)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終日終夜)에 잠잠(潛潛)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記憶)하시게 하는 자(者)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世上)에서 찬송(讚頌)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 ‘방향성’을 말할 때, 나는 항상 네비게이션을 생각한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화살표가 방향을 지시한다.
클릭 하면, 실제 가야 할 길이 나온다.
가다가 도중에 길을 잘못 들면, 그 지점에서 다시 화살표가 재방향을 설정하고, 다시 최선의 길이 표시된다.
우리는 날마다 리셋 하고, 원점에서 다시 성령 하나님께 나의 방향성을 물어야 한다.
길을 잘못 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잘못 가고 있음을 모른다.
리더의 말을 들어야 한다.
멘토의 말을 들어야 한다.
배우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쓸모가 없으니, 과감하게 버리라.
교만 방자한 것이다.
말씀, 기도, 은혜, 믿음, 성령, 사랑, 섬김과 나눔, 전도, 경건...으로 날마다 바른 길을 찾아 일평생을 꾸준히 나아가라. 아멘.
♥ 리더는 시대의 불침번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해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설”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말한다(겔22:30).
(겔22:30)이 땅을 위(爲)하여 성(城)을 쌓으며, 성(城)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滅)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31)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震怒)의 불로 멸(滅)하여 그 행위(行爲)대로 그 머리에 보응(報應)하였느니라. 나 주(主)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는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워 두셨다고 말한다. 그들도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으며,”,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들도 쉬지 않고 하나님도 쉬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사62:6-7).
(사62: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城壁) 위에 파숫군(把守軍)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終日終夜)에 잠잠(潛潛)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記憶)하시게 하는 자(者)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世上)에서 찬송(讚頌)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주님! 저의 앞과 뒤를 둘러막으시고, 제 안에 정직한 영과 온전한 영을 창조하셔서, 저로 하여금 무너진 데를 막아서는 당신의 종이 되게 하소서. 아멘.’
리더는 왕따, 폭력의 위기로 죽음에 이르는 청소년에게 정체성과 희망을 주고, 외로움 병에 걸려 아파하고 마음이 병든 현대인들에게 애정과 사랑으로 미인 대칭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시대 정신을 사는 사람이다.
남들이 자고 있을 때도, 리더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늘 생각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아의 울타리, 자기 상자에서 나와야 한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리더가 되어서는 안된다. 왕과 왕따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외롭다는 것이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왕따도 왕이 되고, 왕도 왕따가 된다.
독서를 하라.
단 사유하는 독서다. 책 읽는 시간 보다 읽은 내용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두 배로 가져라!
이것이 나의 독서 특징이다.
격려, 용기, 함께 함, 사랑함, 희생함, 섬김과 나눔... 칭찬 박사는 시대의 불침번이다.
🔥 2022.8.7.주일. 토요 <성령사관학교> 기도 진행 방향
1>. 시간마다 돈 문제를 개인적으로 제목을 내고, 함께 해결하도록 기도하자.
2>. 온갖 문제를 내놓고 바로 기도하여, 즉석에서 해결 받자.
바로 바로 응답이 오리라.
3>. 갖가지 은사와 능력을 실제적으로 훈련하고, 바로 받자.
🔥 2020.1.30. 리더란 가야 할 방향성을 아는 사람이다.
이는 리더의 자리에서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고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다.
리더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람 훈련, 돈 훈련, 사역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다. 그 중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으며, 기간도 아주 오래 걸린다.
아랫 사람이나 참모나, 방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 부목사들이나 장로들이나 교인들은 방향성이 없다. 그들은 단편적으로 보고 판단할 뿐 멀리, 길게, 바르게, 옳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방향성을 볼 줄 모른다.
리더인 담임목사는 항상 독단과 주관성을 경계하며, 참모들과 장로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 들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리더의 마음 중심의 결단이다.
사람들의 말은 어디까지나 참조할 뿐, 리더는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결단하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리더는 ‘아비’ 라야 하며, ‘태산’ 같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리더가 가볍고, 자꾸 실수하고, 시행착오가 심하여 사람들이 믿을 수 없고, 붙어 있을 수 없고, 인내할 수 없으면 다들 떠난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미숙했으나, 예수님께 훈련 받고, 오랜 시간을 성령으로 훈련 받은 이후에는 비로소 원숙해졌다. 그는 강력한 성령의 은사와 권능으로, 아비의 태산같은 영적 권위로, 초대교회 위에 우뚝 섰다.
40대가 무엇을 알리?
그들은 단지 아직 어려서 철이 없고, 방향성이 없다. 그냥 잘 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그냥 운전을 잘 하는 것과 방향성을 알고 운전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50대는 비로소 그 시행착오를 몸으로 겪는 시대이다. 끊임없이 방향성을 생각하며, 길을 찾는다. 그래서 50대에 사람은 환골탈태한다.
내 나이 이제 60대!
이제서야 비로소 방향성이 보인다.
그 짧은 방향성 끝에, 벌써 내 인생의 끝이 보인다.
그래서 슬프다.
왜 정작에 철이 들지 않았던고!
🔥 속도가 중요합니까 방향이 중요합니까?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나그네가 있었다. 먼 길을 걸어 오다 보니 다리가 몹시 아팠다. 그 순간 다행히도 길에서 마차를 만났다. 나그네는 마부에게 다리가 아픈 사연을 설명하고,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기꺼이 태워주는 마부에게 나그네가 물었다.
"여기서 예루살렘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마부가 대답했다. "여기서 30분 쯤 걸리는 거리입니다."
나그네는 30분 쯤 졸다가 깨어났다. 다시 물었다.
"예루살렘 다 왔습니까?"
그러자 마부가 대답하기를, "여기서 예루살렘까지는 1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아니, 아까는 30분 거리라고 해 놓고, 그 사이에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시간이라니요?" 하고 나그네가 되물으니, 마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마차는 예루살렘에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마차인 걸요."
여러분! 속도가 중요합니까? 방향이 중요합니까?
대한민국의 장래와 후손들에게, 속도가 중요합니까? 방향이 중요합니까?
속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부끄) 우리는,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성평등, 동성애, 동성결혼을 결단코 거부합니다.
💚💚💚
🔥 시간과 방향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기를 원한다. 또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돈을 원하고 명예를 원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을 채우려 한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하라)는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욕심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다. 모두가 노력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한정돼 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시간관리에 치밀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방향관리다. 시계를 가진 사람보다 나침반을 가진 사람이 성공한다.
망망대해에서 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나침반이다.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다.
방향을 잘못 잡은 인생은, 노력하면 할수록 위험하다.
등산을 해 본 사람은 안다. 한번 길을 잘못 들여놓으면 나중에는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한다는 것을...
성공적 인생을 살고 싶은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나침반을 소유하라.
👭 그 다음에 노력하라.
샬롬! 오늘도 시간 관리와 방향 관리를 잘 함으로, 영육간에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시는 복된날 되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내 맘 속의 노래
http://www.youtube.com/watch?x-yt-cl=84503534&v=ACFFREAiIFc&feature=player_detailpage&x-yt-ts=1421914688
🔥 시간 관리보다 방향 관리
사람을 최고로 괴롭히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의미의 문제'이다.
비전 없는 분주함은 곧 지치게 만든다.
가치 없는 열심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라는 책의 앞부분에는 스티븐 코비와 결혼한 딸의 대화가 나온다.
출산 후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자신의 일을 거의하지 못하는 딸이 푸념을 한다.
"아버지, 이 어린 아이 하나를 키우느라고 내 할 일을 전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활용할 기회가 없어요. 이것이 일종의 시간 낭비는 아닌가요?"
그 때 스티븐 코비가 이렇게 말한다.
"시간 관리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아라. 달력은 없애 버려라. 그리고 지금 네가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를 돌보는 것을 감사하고, 즐기도록 하여라.
명심해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
시계는 시간을 가리킨다. 반면에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제까지 우리는 얼마나 시간 관리에만 마음을 빼앗겼던가!
그러나 그렇게 분주하게 살면서 실상은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가지는 않았는가?
주님은 여유로운 인생을 사시면서도 해야 할 사명은 모두 이루셨다.
왜?
시간 관리보다 방향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시간 관리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 관리라는 사실을!
🔥 다만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유대교에는 하시디즘(Hasidism)이라고 하는 신비주의 종파가 있다. 이 종파의 창시자인 바알 셈(Baal Shem)은 희귀한 인물이었다. 그는 강에 나갔다가 한 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그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한 밤중의 강가는 고요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으며 그는 그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곤 했다. 다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을 뿐이다. 관찰자를 관조하면서...
그 날 밤도 그는 강에서 돌아오다가 대부호의 저택 앞을 지나게 되었다. 커다란 대문 옆에는 경비원이 서 있었다. 경비원은 매우 궁금했다. 이 사내는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이 길을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경비원이 밖으로 나와 말했다.
"쓸데없이 참견해서 죄송합니다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요. 낮이나 밤이나 당신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분인지요?
날마다 강가에 나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차례 당신 뒤를 밟아 미행을 했습니다만, 그 곳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그저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 밤중이 되면 돌아오곤 했지요.“
바알 셈이 말했다.
"당신이 내 뒤를 밟은 것은 나도 알고 있소. 적막한 밤이라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당신이 날마다 대문 뒤에 숨어서 나를 지켜 본 것도 알고 있소. 하지만 궁금한 것은 당신 만이 아니오. 나 역시 당신에 대해 궁금하오. 그래서 묻는데, 당신은 무엇 하는 분이오?“
경비원이 말했다.
"저는 그저 경비원(watchman)일 뿐입니다.“
바알 셈이 말했다.
"오, 저런! 당신은 핵심적인 단어를 말했소. 그것은 내 일이기도 하오.“
경비원이 물었다.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경비원이라면 집이나 궁전을 지켜야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강가 모래 뻘에 앉아서 무엇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까?"
바알 셈이 말했다.
"우리 사이엔 약간 다른 점이 있소. 당신은 외부 인물이 저택에 들어가는 것을 지키지만, 나는 다만 이 '보는 자'를 관찰하고 있소.
이 보는 자는 누구인가?
이것을 아는 게 내 평생의 과업이오. 나는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소.“
경비원이 말했다.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군요. 그러면 보수는 누구에게 받습니까?“
바알 셈이 말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지복(至福)과 기쁨, 이 엄청난 은총 자체가 그 대가요. 단 한 순간만 이것을 맛본다 해도 세상의 어떤 보물도 이에 비교할 바가 못되지요.“
경비원이 말했다.
"그것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평생 동안 지켜 보는 일을 해 왔습니다만,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경험은 한 적이 없습니다.
내일 밤에는 당신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제게 당신의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 역시 지켜보는 법을 압니다.
다만 방향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켜보는 방식은 저와 다른 것 같습니다.“
🔥 두 개의 방향
사람에게는 두 개의 방향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과, 하나님을 등진 방향입니다.
인간도 이 두 종류의 인간 밖에는 없습니다.
한 번 방향을 전환한 사람들 중에는 증상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내가 중생을 했으냐, 안했느냐가 확실치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이것은 임신이 되었는데도 얼마 동안은 임신이 됐는지, 안됐는지 전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병도, 암에 걸려서 자각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고, 안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때인가는 나타나지만, 처음에는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꾼 후로 어떤 사람은 빨리 빨리 뛰어가는 사람이 있고, 젊은 독수리처럼 날개 치고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이 있고, 가다가 뒷걸음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한참 방황하다가 늘그막에 죽을 때가 되어서 회심을 하고, 주님을 부르고 믿고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잠도 안 자고 마구 뛰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속도 빠르게 자라나는 사람입니다.
아무든 예수 안에서 더디 자라고 빨리 자라고, 빨리 가고 더디 가고 하는 차이는 있지만, 방향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방향과, 하나님을 등진 방향의 두 개의 방향밖에는 없습니다.
복음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등진 사람에게 '뒤로 돌아 섯!' 해서 하나님을 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방향성을 잘 정하십시오.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구원의 방향성을 잘 일러 주십시오.
🔥 방향 바꾼 삶 –찰스 피니
법률가가 되려고 준비하던 젊은이가 어느 날, 「자아의 심각한 질문」을 받았다.
『너 여기서 수습이 끝나면 무엇을 하겠느냐?』
『법률사무소를 해야지요』
『그 다음에는?』
『은퇴 전까지 돈도 벌고, 명성도 얻어야지요』
『그 다음에는?』
『은퇴하고 편히 쉬어야지요』
『그 다음에는?』
『글세, 죽을 준비를 해야 하나?』
『그 다음에는?』
젊은이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앞 날과 영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삶의 방향을 돌이켜 목사가 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찰스 피니의 이야기다.
🔥 방향이 틀리면 소용이 없다
중국에 이런 예화가 있다.
마차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도중에 쉬고 있는데, 부근에 주민들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예 초나라 갑니다.”
“초나라라고요? 아니 초나라는 남쪽인데, 당신이 가는 방향은 북쪽 아니요?”
“걱정 말아요. 이 말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굉장히 빨리 달리니까요.”
“아무리 빨라도 이 방향으로 가서는 초나라에 갈 수 없어요?”
“괜찮아요. 아무리 오래 걸려도 여비는 충분하니까요.”
“아무리 여비가 많아도, 이리 가서는 초나라에 갈 수야 없지요.”
“괜찮아요. 우리 마부는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니까.” 하면서 끝내 듣지 않았다.
남 다른 준비, 충분한 여비,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마부이면 마부일수록, 여행자는 가자 하는 초나라와는 멀어져 갈 뿐이었다.
방향이 틀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 (빌 3: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한 설교자
찰스 브라운 박사는 젊었을 때 버밍엄에서 지내면서 조지 자르만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의 기도 아래 평신도 설교자반이 조직되어 그 지방 남성 교인들이 모여 공부하고 있었는데, 헨리 플래튼이란 젊은 목사가 청년반을 지도하였다. 그 반에 찰스 브라운도 끼어 있었다. 지도목사는 찰스 브라운이 범상치 않은 인물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어느 날 밤 브라운을 불러 어깨에 손을 얹고서 이런 말을 했다.
"자네! 성직을 소명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나?“
그 후 찰스 브라운은 목사의 개인 지도를 받게 되었다. 먼 훗날 찰스 브라운은 자기 교회 목사에 대해 이런 고백을 했다.
"그는 결코 훌륭한 설교가는 아니었다.
그의 설교가 너무 지루해 졸면서 지겹게 시간을 보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목사였고 진실된 친구였다.
그를 알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 리더란 가야 할 方向性(방향성)을 아는 사람이다.
<성령의군대> 기도원을 순적히 인수하게 해 주옵소서.
이0 현, 허0 우의 대학 입시를 승리케 하소서.
박0 영 자매, 김0 경 집사님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12월 18일 주일 – 21일 수 <제주 영성 and Healing> 마지막 국내 여행을 인도해 주옵소서. 2023년부터 실시할 <해외 영성 and Healing> 사역을 예비해 주옵소서.
<성령의군대> 殉將(순장)들, 사역들을 새롭게 쇄신해 주옵소서. 아멘.
👭 <성령의군대> 기도원을 주신 주님!
10년 기도 응답으로, 100억대의 기도원을 주신 주님!
올해 내로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성령의군대> 기도원 마중물로 장군들의 통장에 500만 이상씩 예치하여,
<성령의군대> 군자금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주소서.
앞으로 필요한 돈 수억, 수 십억, 수 백억, 수천억을 주옵소서. 아멘.
👭 사람에게 묶이지 말기,
👭 돈에 묶이지 말기,
👭 신앙이란 것에 묶이지 말기,
👭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말기,
오직 하나,
난 ‘성령님의 侍從’이니,
성령 하나님 한 분에게만 묶여 가기!
👭 절대 문제에 눌리지 말기
👭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기
👭 기다리기
👭 또 기다리기
👭 태연히 기다리기
👭 믿음을 잃지 않기
👭 신음하고, 또 신음하되, 절대 걱정은 하지 않는다.
♥ 지도자, 리더는 아랫사람, 참모, 부교역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 최근에 나는 내게 진정한 리더(Leader)의 資質(자질)들이 탁월함을 검증하면서 스스로 놀란다.
내가 언제 이렇게 成熟(성숙)했지?
사람들이 어찌해서 나를 이렇게 따르지?
내가 언제 이렇게 사람들에게 影響力(영향력)을 미치게 된 거지?
나는 평생에 리더(Leader)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리더쉽(Leadership)에 대하여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스스로 나의 비전을 고민하거나, 바른 인격을 돌아보거나, 나의 돈을 바로 관리하거나, 사람 관계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내가 좋아하는 육적, 육신적인 욕심을 좇아 살았다.
남들이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유익과 嗜好(기호)와 情慾(정욕) 만을 좇아 살았다.
나의 아내와 아들 딸, 부모는 나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을 당했었다. 나의 가족 들은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서로 인정하지 아니함으로, 서로 멀어져 갔다.
그리고, 23년 전 성령을 받았다. 예수 믿고서 기나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성령 하나님을 비로소 人格的(인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초창기 10년은 성령을 배우며, 영적 세계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갈팡질팡했다. 멘토가 없다는 것은 정말 五里霧中(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나의 주 성령님은 나를 빠르게 ‘성령의 길’로 인도하셔서, 올바른 ‘성령의 삶’을 살게 하셨다.
👭 이제 나는 성령의 大家(대가?)가 되었다.
이런 말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지만, 어느 사이에 내가 이 자리로 밀려 올라왔다. 수많은 목사님들, 사모님들, 주의 종들, 성도들이 나를 그렇게 인정하고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명실공히 ‘성령님의 侍從(시종)’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두고, ‘성령의 리더쉽’ 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侍從(시종)’, ‘殉命(순명)의 사람’, ‘하늘 國務總理(국무총리)’, ‘골방의 先知者(선지자)’인 나 배종부 목사의 리더쉽을 내 삶의 초점으로 고민한다.
이런 감당할 수 없는 단어들을 정말 쓸 만한 자격도, 영성도 되지 않지만, 나의 주 성령님이 그렇게 나를 呼稱(호칭)하심으로, 나는 오직 순종할 뿐이다.
나의 주 성령님께서 나를 명실공히 진정한 성령의 大家(대가), 성령의 리더(Leader)로 보다 더 온전하게 세워 주시기를 간구한다.
♥ 차는 내 몸과 신경과 연결되어,
내가 원하는 대로 운행한다.
내가 속도를 높이면 속도가 빨라지고,
내가 거칠게 몰면 운전이 거칠어진다.
갑자기 내가 기계에 묶여 있다는 게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난 운전 안한다.
일류 운전자 아내가 다 운전해 준다.
♥ 지도자, 리더는 아랫사람, 참모, 부교역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 1.충성함과 마음을 시원케 함을 원한다.
그 보이는 정성과 섬김과 봉사> 충성> 헌신> 산순교의 삶이 답답한 자는 안된다.
어느 공동체 훈련에서 ‘배추’ 를 거꾸로 심으라 했다.
順從(순종)이 되지 않는 사람은 실격처리 되었다.
CIA의 직원 모집에서는 아침 7시에 면접장에 나오라 하고서, 하루 종일을 기다리게 하여, 밤 12시에 남은 한 사람을 데려간다.
👭 2.예의가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친근하다고, “야! 자!” 막 나가면 안된다.
정말 정중한 禮儀(예의)가 상호 간에 있어야 한다.
서로 존경할 수 없는 사이는 유대가 이어질 수 없다.
👭 3.사적(私的)인 관계로 변질되면 안된다.
사랑 받고 신임을 받을수록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 4.바른 말과 사실을 보고해 주기 바란다.
좋게만 말하면 믿지 않고, 결국 신임하지 않는다.
자기의 의견을 사실인 양 말하면 안된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고하여, 리더가 진실과 眞相(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게 해야 한다.
👭 5.부정적이고, 이간질하고, 남을 險談(험담)하는 자는 쓸 수 없다.
자기의 감정과 견해에 따라 좋고, 나쁘게 말하면 아니된다.
👭 6.책임 회피와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면, 지도자에게라도 태연히 화살을 돌리고 허무는 자는 신임할 만한 아랫사람으로 쓸 수 없다.
👭 7.상급자는, ‘아랫사람이 항상 윗사람을 의식함으로, 심히 힘들다.’ 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항상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정을 알아서 챙겨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랫사람이 스스로 자기 憐愍(연민)에 빠져, 윗사람에게 위로받기를 바라면 안된다.
👭 8.나이가 든 사람은 아랫사람으로 있기 힘들다.
나이에 따라 섬김의 자리도 달라지는 것이다.
👭 9.아랫 사람은 각 방면에 才能(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과 기술과 전문성이 없는 자는 쓸 수 없다.
牧會(목회)가 안되는 이유도 사실 목회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설교를 못하고, 사람의 심령을 뒤집어 놓을 수 없는 자는 부흥사로 살아남지 못하듯...
담임목사는 종합 경영자이다.
👭 10.부교역자의 자질중에 운전, 컴퓨터, 사무처리, 상시 예배 인도와 설교 투입, 기도회와 찬양 인도, 심방, 기본 인격, 영성의 갖춤... 등은 기본 자질이다.
찬양 인도, 기도 인도, 설교 인도, 대인관계, 기본 인격과 처신... 등이 기본이 안되는데, 어찌 쓸 수 있단 말이냐?
👭 11.목회 사역의 특성상, 여자 사역자는 出他(출타)나, 밤 시간이나, 응급 상황시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불편함과 한계가 있다.
👭 12.사태의 眞相(진상)과 상황을 탁- 파악하고 처리하는, 소위 눈치가 빨라야 한다.
나의 이사라 사모가 탁월하다.
그는 나의 제일의 軍師(군사)이다.
👭 13.리더(지도자)의 마음을 충분히 읽어야 한다.
숨은 감정을 가장 먼저, 잘 읽어야 할 사람이 남편, 아내, 자식, 부모, 上官(상관), 친구, 애인... 등 가까운 사람 순이 아닌가?
👭 14.항상 리더(지도자) 중심으로 일해야 한다.
서로 각자가 野合(야합)하여 지도자를 속이거나, 다른 일들을 은밀히 추진하면 안된다.
교회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항상 담임목사, 단체의 長(장)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지, 파당이나, 갈래가 따로 있으면 아니된다.
정치계를 보라.
불과 50여 명이 온 나라를 다 거들내고 있지 아니하는가?
교회가 깨어질 때에 부목사, 장로 등이 그 主動(주동)이 되지 아니하는가?
👭 갈5: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성적인 죄)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파당, 분리의 죄)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자기 관리 실패의 죄)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지도자를 키우는 목회
1. 닮은 꼴을 만들라.
교회의 목회철학과 노선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지도자로 양성하라.
2. 소수에게 집중하라
정예화 된 소수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훈련된 그들이 또 다른 소수를 지도자로 키우도록 하라.
3.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주라.
절대적인 신임을 주어, 그들이 대담한 자세를 갖고 모험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라.
4. 끊임없이 인정해 주고,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라.
그들에게 이미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음을 인정해 주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계속 주지시키라.
5. 칭찬과 격려속에 성장시키라.
그들의 단점이나 약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독특하고 고유한 능력과 장점을 확신시키고 강조하라.
6. 진행 과정을 정규적으로 체크하라.
간섭보다는 도움을 주고, 적성과 자질을 개발해 주고자 하는 차원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라.
7.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라.
관리자, 또는 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방법을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개발을 반드시 장려하라.
8.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라.
점검과 공동체 의식을 위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모임을 주재하여, 자유로운 토론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라.
9. 지속적으로 훈련시키라.
인격적인 제자화훈련에 주력하고, 업무과정에서도 훈련과정을 두며, 봉직 중에도 교육받을 수 있는 그들을 후원하라.
10. 모범을 보이라.
가르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역자들의 눈을 항상 의식하고,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라.
♥ 지도자(指導者)의 德目(덕목)
👭 담임목사로서의 배종부 목사 100점
딤전3:1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배목사 – 0)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배목사 – 0),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배목사 – 0),
절제하며 (배목사 – 0),
신중하며 (배목사 – 0),
단정하며 (배목사 – 0),
나그네를 대접하며 (배목사 – 0),
가르치기를 잘 하며 (배목사 – 0),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구타하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오직 관용하며 (배목사 – 0),
다투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배목사 – 0)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배목사 – 0),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배목사 – 0),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장로의 덕목 – 담임목사를 指稱(지칭)함 (부목사는 중간 리더일 뿐이다.)
디도1:5내가 너(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책망할 것이 없고 (배목사 – 0),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배목사 – 0),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배목사 – 0),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배목사 – 0)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배목사 – 0),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급히 분 내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구타하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배목사 – 0),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배목사 – 0),
선행을 좋아하며 (배목사 – 0),
신중하며 (배목사 – 0),
의로우며 (배목사 – 0),
거룩하며 (배목사 – 0),
절제하며 (배목사 – 0),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배목사 – 0),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배목사 – 0)
👭 평신도 장로, 안수집사 -
8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 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 권사 :
11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1. 지도자가 되려면... (딤전 3:1)
지도자는 지도자의 직분을 사모해야 한다.
👭 2.솔로몬이 말한 지도자의 5대 책임사항
1) 책망과 바르게 함
지도자는 그에게 맡겨진 사람들 안에 있는 죄를 책망하거나, 그들이 저지르는 합당치 못한 행동을 바르게 해 주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잠28:23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 결단성
고귀한 가치가 있고 의미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어떤 일을 할 기회가 생길 때 지도자는 결단성 있게 행동할 책임을 져야 한다.
3) 비판을 경청할 것
지도자는 휘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잠15:4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5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잠15:9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10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11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12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잠19:19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20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 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4) 정직할 것
모든 것을 개방하여 사람 앞에 드러내 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
잠18:6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 가느니라.
5) 공평할 것
잠11:1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2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3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 3.지도자의 성품
지도자의 참된 성품은 그가 칭찬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드러난다.
칭찬 받음을 두려워하고, 좋아하지 아니하며, 정말 그런가 하고 자신을 새삼 뒤돌아 보아야 한다. 칭찬을 좋아하면 아첨군을 만든다.
👭 4.친밀함
사랑스럽지 못한 자를 사랑하고, 친하지 못한 자를 친구 삼고, 침체에 빠진 사람을 복돋우고, 자기의 모든 것을 들여 섬기는 사람들을 칭찬해 주고자 노력하는 지도자는 그 노력의 댓가를 틀림없이 받는다.
👭 5.악한 지도자의 영향
-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것 -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 전역, 온두라스 일대에 퍼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고대에 형성시켰던 찬란한 문명을 마야 문명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안목을 가지고 보아도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이 고대의 문명은 A.D 850-950년 경에 별 다른 이유없이 갑자기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후세 사가들은 마야 문명을 대하면서 신비스러운 의혹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침입을 받은 흔적도 없고, 자기들끼리 싸운 흔적도 없이, 일시에 사람들이 증발해 버림으로 끝나버린 마야 문명의 신비는 도대체 무엇일까?
역사학자들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대 마야 문명의 소멸 원인을 규명하고자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있는 연구로 이런 것이 있다.
마야 문명은 지도 계층의 각종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그 도시로부터 하나, 둘씩, 또는 집단으로 도망을 함으로써, 소멸했다는 학설이다.
즉, 무거운 세금, 각양각색의 추징금, 그리고 군인과 마야 신의 횡포, 이런 것들에 피를 빨린 어진 백성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무조건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즉 마야 문명의 멸망의 원인은 그들을 이끈 暴政(폭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서워, 자기의 삶의 터전을 버리지는 않는다.
👭 6.호랑이보다 무서운 것
중국의 고전 [예기]라는 책을 보면,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 갈 때라고 한다.
한 여인이 무덤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공자가 그 연유를 묻자, 여인은 대답했다.
우리는 이 산골에서 살고있는 사람인데, 처음에는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 남편이 그랬고, 오늘은 내 아들이 虎患(호환)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가 그렇다면 왜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았는가 라고 묻자, 그 여인은 대답했다.
비록 호랑이 때문에 무서운 곳이기는 하나, 가혹한 정치가 없는 곳이기에 주저 앉아 있었다고 한다.
공자는 돌아 와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고 일렀다.
강자로서 약자를 수탈한다는 것은 자기의 이기적인 삶에 유익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약자가 살 수 없는 사회는 마침내 강자도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약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태복음 19:19에서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 7.앞 날을 내다보는 지도자
중국의 춘추전국 시절 노나라에 복부제라는 분이 있었다. 복부제가 선부라는 마을의 원님으로 있을 때 이웃 제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 왔다.
복부제는 즉시 성문을 닫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때 마침 추수기여서 성문 밖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있었다. 곡식을 아깝게 생각한 백성들은 원님을 찾아가서 곡식을 적병들에게 넘겨 줄 바에야, 적이 도착하기 전에 모두 나가서 아무 밭에서나 자기 힘대로 걷어가게 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했다.
복부제는 그들의 청을 뿌리치고 성문을 닫게 했다. 복부제를 존경하던 백성들은 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복부제는 적을 이롭게 했다는 죄목으로 왕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복부제는 일년 지은 곡식을 적병들에게 빼앗긴 것은 아깝기 짝이 없는 일이오나, 급하고 손쉽다고 해서 남의 곡식을 마구 베어다 먹는 버릇이 생기면, 그것은 10년이 가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라고 했다.
복부제의 말을 들은 왕은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그의 識見(식견)에 탄복했다. 죄의 버릇도 마찬가지이다. 그까짓 정도야 하는 소홀한 마음이 결국 큰 일을 저지르는 결과가 된다.
한 작은 돌을 빼내어 큰 담이 무너지듯, 작은 법을 지키지 않아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8.좋은 지도자
유명한 스펄전 목사가 그의 장막 성전에서 평생을 사역하다가, 이제 늙어 몸이 쇠잔해지니까 사역에 대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랬더니 온 성도가 일어나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자 스펄젼이 제가 이 건강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그처럼 불충하게 목사 일을 하는 것보다 나를 쉬게 해 주십시오. 라고 청했습니다. 온 교회가 안된다고 반대했습니다.
목사님. 한 달에 한번 밖에 설교 못하셔도 좋으니, 제발 그만둔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교인들이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지금이야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제가 말했지만, 그 다음 달에는 한 달에 한 번도 설교를 못할 터인데... 라고 하자 온 교인들이 울면서, 목사님. 우리 교회 목사님이 스펄전이다 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저희들은 만족하겠습니다.
제발 그만둔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라고 온 교우가 울며, 말렸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요?
많은 축복 중에 하나는 좋은 신앙의 리더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 9. 언행일치와 권위
불란서 혁명 때의 일입니다. 광포하고 거칠어진 군중들이 거리로 달려 나왔습니다. 한 백발 노인이 높은 건물의 앞 층계에 올라 가 질서를 지키라는 연설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분노에 찬 군중들은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그들의 지도자가 그 백발 노인 옆으로 뛰어 올라 가, 외쳤습니다.
조용히 하고, 이 분의 연설을 들으시오. 70년 이상을 선하게 살아오신 이 분의 말씀을 들으시오.
군중들의 목소리는 잠잠해지고, 무리는 노인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리는 조용히 흩어져 갔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예언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연설하였을 때에도, 이 노인이 연설을 통해 보여 준 언행일치와 권위가 서로 관계가 깊은 것임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약점이라도 있으면, 대 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인정하게 한 뒤, 그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비난을 받을 만한 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일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남을 인도할 권리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들 지도자들이 회개하면, 그들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그 전과 같은 지도자의 직위로 복귀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신임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들에게서 삶의 정직성과 성실성과 순수성을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은 특성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언행이 일치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위로써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윌러 로빈슨 - 리더쉽의 벌은 고독이다.
▷ 줄레스 오르뭉 - 위대한 지도자는 책임을 지는 것 외에는, 절대로 자기의 추종자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 꼬리가 리더가 되면 아니된다
뱀의 꼬리는 항상 머리 뒤에 붙어, 머리가 가는대로 따라다니게 마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리가 화가 나서 머리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어째서 나는 항상 네 꽁무니만 무조건 따라다녀만 하고, 나는 항상 네 마음대로 나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이건 공평하지 못한 일이야. 나도 분명히 뱀의 한 부분인데도 항상 노예처럼 네게 달라 붙어 끌려 다니기만 해야 된다니, 이건 너무 부당해.]
그러자 머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바보같이? 너에게는 앞을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위험을 알아차릴 귀도 없고,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잖니, 나는 결코 나 자신 만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너를 생각해서 끌고 다니는 거야. 알겠니?]
꼬리가 큰 소리로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은 지겹도록 들어 왔어. 폭군이나 독재자들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일한다는 구실로, 제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응수하자, 머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네가 한번 내가 하는 일을 맡아 볼래.]
그러자 꼬리는 매우 좋아하며, 신이 나서 앞에 나서서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여 뱀은 곧 도랑으로 떨어졌고, 머리가 천신만고 끝에 뱀은 간신히 도랑에서 기어 올라 올 수 있었다.
또 얼마를 기어 다니다가 꼬리는 그만 가시투성이인 덤불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꼬리가 가시덤불을 빠져 나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가시에 점점 더 찔려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뱀은 머리의 도움으로 상처 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가시덤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또 다시 꼬리가 앞장서서 나가다가, 이번에는 불길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고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뱀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몸은 불타고, 머리도 함께 죽어버렸다.
머리는 결국 맹목적인 꼬리에 의해서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는 항상 머리와 같은 자를 선택해야지, 꼬리와 같은 자를 선택해서는 안된다.
리더는 어리석은 꼬리같은 사람에게 重責(중책)을 맡겨서는 결코 아니된다.
👭 뛰어난 사람을 아끼는 리더
미국 남북전쟁 초기에 링컨 대통령은 멕시코 전쟁에서 참가했다가 전역하여 철도기사로 근무하고 있던 맥클래런(McClellan)을 현역 소장으로 복귀시켜, 수도방위사령관 격인 포토맥 군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행운의 주인공 맥클래런은 혁혁한 전과를 올림으로써, 임명권자의 기대에 부응했다. 어느 날 전황이 궁금해진 링컨은 수행원들과 함께 맥클래런 장군을 찾아갔다. 마침 장군은 부재 중이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있자니, 그가 돌아왔다.
그러나 맥클래런은 당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안하무인이었다. 대통령이 와 있다는 전언을 듣고서도 “대통령에게 피곤하다고 그래...” 라며 제멋대로 사라져 버렸다. 수행원들은 얼굴이 벌개져서 그를 解任(해임)하라며 격분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달랐다. “이 사람은 전투에 이기고 있네. 우리가 빨리 이 참담한 유혈극을 끝맺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장군의 말고삐라도 기꺼이 잡겠네.”라면서 더 이상 왈가왈부 말라고 엄명했다.
링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못난 존재인가를 잘 알고 있던 진정한 謙遜(겸손)의 소지자였다.
이러한 탁월한 리더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 겸비한 리더
송 태조 조광윤이 남당국이라는 나라를 정벌하려고 군대를 편성했을 때다.
조빈을 사령관, 반미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 때 조빈은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장의 직책을 굳이 사양했다. 그러나 반미는 그까짓 남당쯤이야 하루 아침 해장거리도 안된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군 최고지휘관인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송 태조는 “대장이란 분수 넘치게 덤비는 부관의 목을 간단히 베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격이 충분하오. 그대가 그 만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사양하지 말라.” 면서 기어이 조빈에게 총사령관을 맡겼다.
이 말을 들은 부장 반미의 심정을 생각해 보자.
기록에 의하면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고, 황제의 얼굴조차 감히 우러러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겸손한 사람에게 강한 힘과 용기를 덧입혀 주면서, 동시에 멋진 기회를 부여해 주시는 최고의 인격자가 계신다.
바로 <성령의군대>의 총사령관, 만군의 여호와, 엘 샤다이(El Shaddai)의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우리 <성령의군대>의 총사령관은 예수님이시다. 부사령관 배종부 목사는 절대적으로 총사령관 예수님께 순종, 복종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66장에서 위정자(爲政者)의 자세를 이렇게 제시했다.
“강과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자가 되는 까닭은, 스스로 아래로 아래로 자신을 낮추기 때문이다.”(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강과 바다는 세상의 물을 모두 담고 있으므로, 가히 물의 왕자라 할 만하다. 그 강과 바다를 위정자로, 골짜기들을 백성으로 바꿔보면 뜻은 분명해진다.
“강과 바다가 물의 왕이지만, 골짜기보다 제 몸을 아래로 낮추듯이, 위정자들은 자신을 백성들 아래로 스스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위정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에서, 교회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들 모두 진정한 謙遜(겸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 리더는 현자를 찾는 사람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위(魏)나라의 왕 무후(武候)가 회의를 열었다. 그는 자기보다 나은 의견을 내놓는 신하가 없자 우쭐해졌다. 그 때 오기(吳記)라는 장군이 조용히 말했다.
“옛날 초나라의 장왕은 회의할 때, 자기를 뛰어넘는 의견이 나오지 않으면 깊이 탄식했다고 합니다. 성인을 찾아 스승으로 받드는 자는 제왕이 되고, 현자를 찾아 친구로 삼는 자는 패자(覇者)가 된다고 했으니, 자기 주위에 뛰어난 신하가 없는 것을 슬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전하께서는 뛰어난 신하가 없는 것을 기뻐하시니, 나라의 앞 일이 걱정됩니다.”
무후는 깊이 반성하고, 훌륭한 임금이 되었다.
회사는 사장의 그릇만큼 성장하고, 조직은 관리자의 그릇만큼 발전하게 되어 있다. 교회는 목사만큼 자란다.
어느 누구나 자신은 어느 정도 그릇인지, 깊이 되돌아 보아야 한다.
오호라! 내 그릇이 심히 일천하도다.
♥ 2020.1.30.목. 리더란 가야 할 方向性(방향성)을 아는 사람이다.
👭 최근에 나는 내게 진정한 리더(Leader)의 資質(자질)들이 탁월함을 검증하면서 스스로 놀란다.
내가 언제 이렇게 成熟(성숙)했지?
사람들이 어찌해서 나를 이렇게 따르지?
내가 언제 이렇게 사람들에게 影響力(영향력)을 미치게 된 거지?
👭 나는 평생에 리더(Leader)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리더쉽(Leadership)에 대하여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스스로 나의 비전을 고민하거나, 바른 인격을 돌아 보거나, 나의 돈을 바로 관리하거나, 사람 관계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내가 좋아하는 육적, 육신적인 욕심을 좇아 살았다.
남들이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유익과 嗜好(기호)와 情慾(정욕) 만을 좇아 살았다. 나의 아내와 아들 딸, 부모는 나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을 당했었다. 나의 가족 들은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서로 인정하지 아니함으로, 서로 멀어져 갔다.
👭 그리고, 23년 전 성령을 받았다. 예수 믿고서 기나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성령 하나님을 비로소 人格的(인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초창기 10년은 성령을 배우며, 영적 세계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갈팡질팡 했다. 멘토가 없다는 것은 정말 五里霧中(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나의 주 성령님은 나를 빠르게 ‘성령의 길’로 인도하셔서, 올바른 ‘성령의 삶’을 살게 하셨다.
👭 이제 나는 성령의 大家(대가)가 되었다.
이런 말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지만, 어느 사이에 내가 이 자리로 밀려 올라 왔다. 수 많은 목사님들, 사모님들, 주의 종들, 성도들이 나를 그렇게 인정하고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명실공히 ‘성령님의 侍從(시종)’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두고, ‘성령의 리더쉽’ 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侍從(시종)’, ‘殉命(순명)의 사람’, ‘하늘 國務總理(국무총리)’, ‘골방의 先知者(선지자)’인 나 배종부 목사의 리더쉽을 내 삶의 초점으로 고민한다.
이런 감당할 수 없는 단어 들을 정말 쓸 만한 자격도, 영성도 되지 않지만, 나의 주 성령님이 그렇게 나를 呼稱(호칭)하심으로, 나는 오직 순종할 뿐이다.
나의 주 성령님께서 나를 명실공히 진정한 성령의 大家(대가), 성령의 리더(Leader)로 보다 더 온전하게 세워 주시기를 간구한다.
♥ 2022.7.4.월. 잘못된 리더(leader)를 만난다면...
잘못된 親舊(친구)를 만난다면...
잘못된 家長(가장)을 만난다면...
잘못된 牧師(목사)를 만난다면...
잘못된 上司(상사)나 部下(부하)를 만난다면...
잘못된 社長(사장)을 만난다면...
잘못된 大統領(대통령)을 만난다면...
끔찍하지.
파국이지.
비극이지.
불행이지...
👭 ‘만남’ 을 위한 기도는 제일의 기도이다.
항상 해야 할 기도이다.
잘못된 사람을 만나거든 정말 깊이, 많이, 처절하게 기도하라.
당신은 리더를 잘못 選定(선정)한 것이다.
스스로 어리석음을 따라 간 것이다.
👭 ‘그물 방어망 기도’ 를 해야 한다.
기도의 방어망이 뚫리면, 온갖 불행이 온다.
비극이 온다.
죽는다...
👭 그러므로 하루 하루 신음하며
충분히, 충분히 기도해야 한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때려 치우지 말고,
24시간을 내내 성령님을 주목하며 늘 기도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라.
단 한 순간도 나 혼자 살면 아니된다.
100% 성령으로 살려 하면, 97-98%의 진정한 ‘성령 동행의 삶’ 이 나온다.
👭 사탄은 속이고,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온다.
나를 파괴하는 것이 사탄의 목표이다.
내가 파괴되면 나의 모든 사람들도, 주변도 다 파괴된다.
율법과 책임과 의무와 돈과 사람과 일들... 의 무게에 눌려 질식하며 살지 말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 말고,
날마다 ‘해방과 자유’ 의 평강 가운데 살아가라.
요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리더는 가장 마지막에 먹고, 내리는 존재이다.
- 연세대 정동일 경영학 교수 -
일본 요코하마항에 머물면서 3,700여 명이 한 달 가까이 고립되어 있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려 696명이 나오면서 언론들은 ‘공포의 크루즈선’ 혹은 ‘바다 위의 감옥’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써 가면서, 이 크루즈선의 상황을 매일 전달했다.
배에 고립되어 의약품이 바닥나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진 승객들이 혼이 나간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사진을 보면서, 인류 종말을 떠올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통제되었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내의 코로나19 감염사태는 28일 만인 3월 1일 종료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131명의 항해사와 승무원 중 제일 마지막에 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하선한 이탈리아 출신의 제나로 아르마 선장의 모습을 전 세계가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르마 선장이 객실에 갇힌 승객들에게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힘을 보여줘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 용기를 주었으며, 때로는 유머감이 넘치는 연설을 통해 모두에게 평정심을 심어 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모든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후, 혼자 가방을 끌며 배에서 걸어나오는 아르마 선장의 사진을 보며 필자는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이고, 리더가 위기 상황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감동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미 해병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룰 하나가 있다.
바로 장교는 마지막에 먹는다 (Officers eat last) 라는 룰이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란 책을 쓴 사이먼 사이넥 (Simon Sinek)이 책을 집필하면서 조지 플린 (George Flynn)이란 미 해병대의 퇴역 장군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사이넥은 이 장군에게 “미 해병대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부대가 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플린 장군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장교는 마지막에 먹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다.
미 해병대에서 ‘장교는 마지막에 먹는다’란 표현은 행사 때만 외치는 형식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장교 혹은 리더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골든 룰이자 이 조직을 지탱해 주는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장교가 병사들에게 배식을 하고, 맨 마지막에 남은 음식을 먹는 장면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이를 통해 리더는 솔선수범과 자기 희생을 실천하고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에 대한 신뢰와 존경, 그리고 조직에 대한 자부심을 매일 쌓아가는 것이다.
위기 상황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생존 본능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더는 이런 본능을 억제하고, 조직과 구성원들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자기 희생이야말로 리더를 리더답게 해 주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리더인 당신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 주며, 리더십의 선순환을 구축해 준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내부 상황이 종료되고,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내린 후에 맨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리는 아르마 선장의 얼굴에서 고독하지만, 리더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 것 같다.
코로나 기간, 대구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구석 구석에는 이렇게 자신을 내려놓고, 환자들을 돌보고 방역 조치를 하느라 하루 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아르마 선장이 많다.
이들의 자발적인 희생으로 인해, 코로나19는 곧 진정될 것임이 분명하다.
아무쪼록 기업과 나라에도 아르마 선장처럼 내가 아닌 구성원들을 위해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진짜 리더가 많았으면 한다.
리더는 가장 마지막에 먹고 내리는 존재이다.
♥ 포기하지 마십시오!
- 릭 워렌 (Rick Warren) -
캘빈 쿨릿지(Calvin Coolidge)는 "세상에 인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고 말합니다. 재능은 인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재능을 가지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천재적인 자질도 인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천재가 100% 다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교육도 인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교육을 받고도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성취하는 것은 끈기와 결단력에 달려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란 비범한 결단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을 진행하던 중에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상상 조차 못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일을 해 나갈 뿐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함이란 그 사람의 명성이나 지위, 혹은 재산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낙담시키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그가 비판과 실패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이 당신을 낙심하게 만듭니까?
매사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까?
당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습니까?
누군가 당신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안정감 있고 토대가 든든한 물건이 되도록 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결단력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한 그루의 참나무를 만드시는데, 60년이란 시간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버섯 하나를 만드시는 데는 6시간이 듭니다.
당신은 당신의 사업이 참나무와 같은 안정감이 있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버섯과 같은 안정감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경력이 이 참나무와 같이 든든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버섯처럼 금방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가정과 개인의 삶은 어떠하길 원하십니까?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왔던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번 주를 인내하며 지낼 수 있도록, 힘을 허락하소서.
기억합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라는 말씀에 힘 입어, 인내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