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강 이사-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5. 5. 4. 월
이사
민문자
지금부터 이사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사를 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생기게 됩니다. 일생에 이사를 한 번도 안 하고 태어난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도 없이 이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몇 번의 이사 경험이 있습니까?
이사를 몇 번 하지 않은 사람은 평탄하게 안정적인 삶을 살고 이사를 많이 한 사람은 아마도 변화무쌍하게 고생을 많이 하고 산 사람일 것입니다.
저는 태어나 바로 아랫집으로 이사한 후 결혼할 때까지는 지금도 고향에 그대로 있는 친정집에서 자랐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이사할 때에는 시어머님 말씀을 따라 손 없는 날에 제일 먼저 밥솥과 요강을 안방 아랫목에 들여놓고 이삿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팥죽이나 고사떡을 해서 이웃에게 돌리며 이사를 왔노라고 알렸습니다. 이사한 첫날 밤에는 머리를 부엌 쪽으로 향해서 자야 탈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했지만, 사업 욕심 많은 남편을 만나서 그랬던지 매번 이년 남짓 살다가 이사하곤 해서 열일곱 번이나 옮겨 다니며 살았습니다. 빌딩 위에 살림집도 나의 설계로 주택을 마련도 해보고 큰 아파트에 천년만년 살 줄 알고 대리석 타일로 거실을 꾸미는 등 치장도 해보았는데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2002년 7월 9일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날입니다. 해마다 같은 날 정오에 거실에서 촛불을 켜고 고사떡과 돼지편육과 막걸리와 청수 한 사발을 차려놓은 상 앞에서, 향을 사르며 이 집에서 생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며 기도를 한 덕분인지 13년째 살고 있습니다. 삶이란 어떤 경우라도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사한 집에 갈 때는 옛날에는 선물로 성냥이나 양초를 사 가며 불꽃처럼 재산이 일어나 부자 되라는 의미였는데, 근래에는 현대문명의 발달로 가정생활의 필수품인 화장지와 비누나 화학세제 등을 많이 사 가지고 가지요. 또는 집주인과 의논해서 이사한 새집에 필요한 가재도구나 그릇 종류를 사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친척이나 친지들을 초대하여 ‘집들이’라 하여 간단한 잔치를 베풀기도 하는데 이 집들이도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점점 사라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남의 집에서 세를 살다가 발가락이 부르트도록 마음에 드는 남향집을 찾아 헤매다 처음 새집을 마련하고 몇 날 며칠 잠도 설치도록 가슴설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 집에 어울릴 가구를 보러 다니다 이사를 하고 한 달 동안 뒷정리를 하며 몸살을 앓던 젊은 날의 그 추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사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박재릉시인 약력
1937년 강릉출생. 춘천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1년 자유문학지로 문단에 등단
정일학원 국어과 강사, 교수실장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역임.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 및 평의원
한국문인협회 한국사 편찬위원
국제펜클럽 자문위원
주요시집
작은영지1집’ 1963년
작은영지2집’ 1964년
꺼지지 않는 잔존’1965년
밤과 연화와 상원사’1972년, 1992년재판
망부제’1992년
삭발하고 분바르고 2002년
박재릉시99선 2005년
박재릉 시전집 2008년
가야의 혼’ 2011년
*박재릉의 시는 문명비판과 서구고대신화에 대한 구신적 세계를 보임.
*아무도 다루어 보지 못한 한국 저변의 무속적 세계를 시로써 엮을 수 있다는 길을 열어 놓았으며 한국적 낭만주의 시의 한 방향을 교시하였다.
*무속시의 저변확대와 민속적인 세계의 심도를 가중하였다.
*무속시 세계의 현실화와 더불어 미당 서정주의 전통시를 계승하고 있다.
★현대문학상(1973) 한국현대시인상(1992) 한국문학상(2002) 청마문학상(2012)
출처:http://cafe.daum.net/2000poet
원주 / 박재릉
저 치악산은 그의 기인 치맛자락처럼 늘어뜨린
발치의 펄럭이는 그늘들로
이 시중의 얼굴들을 한번도 쓰다듬거나 스쳐 주는 법이 없이
차라리 그의 발치에서 떠는 낡은 몇몇 초가들을
의중 천심 인양 가려주고 키우고 있다
원주를 덮은 안스런 산들은 모두들 그렇게 띄엄띄엄 떨어져선
제가끔 제 하늘만 지붕처럼 받들고 섰고
산란히 피어오르는 이 한바닥 종소리들은
그대로 백열리 하늘 위로 치솟다간 사라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 수많은 지붕과 지붕들은
늘 찬 바람을 만나기 마련이면서
찬 바람 내 나는 종이조각처럼 펄럭이기 마련이면서
외투 하나 거치지 않은 듯 떠는, 오고 가는 수많은 숨결들이
바람에 떠서 싸늘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옛적부터 머언 옛날 옛적부터, 아마 정이이나 정구품쯤은 될
큰 이들이 더러는 묻혔을, 암장된
이 바닥 위를 밟고선 깊은 마음들이야
그시적 빨간 옷 청사등 켜들고 오던
수렁이며 논두렁이던, 흐려진 머언
이 바닥을 묵묵히들 바라보고만 있다
그래 그때 그 숱한 진상을 받던 상좌들이며, 객혼들이며
또는 오고 가던 그 많은 혼들을
저들은 어떻게 감당해내거나, 또는 위로를 하거나
어떻게 해 견디고 사는지 또한 나는 모른다
그들, 자리를 잃은 숱한 그들은
더러, 저 수라장이 된 빛들 곁에서 움추리다간
날래게 서버리는 몇몇 산 몸짓에 함께 붙어 서 있거나
또는 깊숙한 집집마다 帶主의 안을 맞붙어 들어가
저들 파란 산 눈들이 되어
온통 모두들 이 밖을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 박재릉
저렇게 하늘이 얕아서 쓰겠는가?
광하문부터 종로를 사뭇 걸어가노라면
지붕이며, 유리창이며, 간판이며 모두들
저렇게 얕게 하늘 가까이 들러붙어
沿邊(연변)의 경복궁은 저만큼 먼발치서 차라리
안 보이는 뒷뜰악의 그, 응향의 먼지 낀 냄새들을 쭈그리고 앉아
낡은 섬돌의 이끼 낀 침묵들을 묵묵히 맡고 섰다
아, 그 누가 알 것인가 ?
머언 그 옛적 머언 그 조선시절에
구중에서 안락하게 살다 간 이들이
지금은 무릎까지 시려 오는 그 제단에서 드디어는 떠나
저기, 저 눈부신 빛들을 화사히 줏어 입고들 나와 선 것을
층층벽으로 , 모퉁이로, 길가로
바람에 채일 듯이 싸늘히 선
낯선 저 얼굴들 위에, 눈빛 위에, 몸짓 위에
그리고 그 예리한 빛들이, 지금은
지붕 위에서 다락키만큼 높은 그 끝까지 다가 붙어
위태로이 그 위를 닿으려고 저마다 날카롭게 빛이 선 것을
그래도 그래도 꺼질 듯이 흩날려버릴 듯한
이 서울이 끄덕도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저 삼각이나 북악만큼 든든한 마음끼리
이 바닥을 깊이 움켜 잡고 있는
힘 있는 어느 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렸다
乭이...乞이...乭이...乞이....엇갈린 아우성들....
고층을 오르내리는 그물을 드는 손짓과 손짓들
앞뒤 물의 낯들. 엇갈린 선과 선들
愁然(수연)이 그리워, 눈물이 그리워, 슬픔이 그리워, 그늘이 그리워
제 콧날 위의 하얀 제 별도 못 떠받아
서울은 나부껴, 하얗게 가루처럼 나부껴
삭발하고 분바르고 / 박재릉
밝은 곳으로 태어나고 싶어
밝은 곳에서 새색시처럼 수줍고 서럽고 싶어
가슴이 뛰는
욕계 사바의 푸른 그늘을 품고
맨드라미처럼 고개 쳐들고
먼 시댁을 찾아나서듯 낯설고 싶어
하얀 신작로길 위에서
박꽃처럼 피어오는 낯선 얼굴과
눈웃음치는 울렁거림으로
타는 애기를 배고 싶어.
-(삭발하고 분바르고) 부분-
이 시에서는‘밝은날’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밤엔 꿈을 누르는 귀신이 나타나고 몸이 허약할 때도 귀신들이 사방에 있어 무의식 속에서도 시달리며 사는 게 아닌 다시 태어나면 고향처럼 어디라도 몸 뉘이면 편히 받아주는 세계에 붉은 알몸으로 태어나고 싶어 한다. ‘소란한 잔치 한마당’이란 독자와의 소통을 의미하며 이는 무속 시에서 나타나는 현실라인을 구축했다고 볼 수가 있다. 시인의 무섭고 두려운 복합적인 심정을 독자와 접촉하며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나누어 위로 받고 싶어 한다.
[출처] 박재릉 시선집을 읽고-무속적 환상의 시 작성자 아름다운(김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