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白翎島)의 추억
♣나는 초등학교에 근무했는데 2006년, 첫 교장(敎長) 발령지가 우리나라 최서단(最西端) 백령도(白翎島)였다.
교감(校監) 초임지는 강화 화도(花道) 초등학교였는데, 출생지는 동해안 강릉(江陵)이었으니 어린 시절, 정동진(正東津) 동해(東海)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아침을 맞이했는데 교감(校監) 초임지는 강화 화도(花道)로, 해가 서해(西海)로 스며드는 정서진(正西津)이었으니 나의 인생은 신기한 인생이다.
정동진(正東津)과 정서진(正西津)은 우리나라 수도(首都)인 서울에서 보면 정동(正東)과 정서(正西)이다.
교장(校長) 초임지는 우리나라의 최서단(最西端)인 백령도였는데 그때 쓴 글들을 모아보았다.
1. 백령도(白翎島)의 위치(位置)와 지형(地形)
백령도 지도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최서단(最西端)이자 최북단(最北端)에 있는 외로운 섬으로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222km, 북한 장산곶의 몽금포(夢金浦)까지 12km이고 중국 산뚱(山東) 반도까지는 159km이며 가장 가까운 섬인 대청도(大靑島)까지는 8km이고 연이어 소청도(小靑島)도 있다.
백령도는 위도(緯度)상으로 동해안의 강원도 고성(高城)보다 남쪽이지만 서해안으로 보면 바로 북한 땅 턱밑으로 북한의 개성(開城)보다도 더 북쪽이다. 백령도에서 보면 동쪽(오른쪽)으로는 북한의 옹진반도(甕津半島)가 삐죽이 나와 있는 모습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황해남도 장산곶(長山串)도 지척(咫尺)으로 빤히 건너다보인다.
이곳의 세 섬은 원래 북한 땅으로 황해도 소속이었으나 해방 후 우리나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백령도의 이름난 관광지를 꼽아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곶(沙串) 천연비행장과 콩돌해안, 작은 해금강(海金剛)이라는 찬사를 받는 두무진(頭武津) 포구가 있고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印塘水)와 연꽃이 떠올랐다는 연봉(蓮峰)바위, 물범과 가마우지 집단서식지를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백령도는 명실공히 천혜의 비경(秘境)이며 우리나라 국방의 요새로 해병대(海兵隊)의 왕국이기도 한데 해병 제6 여단이 주둔하고 있고, 훨씬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육군, 공군, 해군도 주둔하고 있다.
백령도의 명칭으로 예전에는 곡도(鵠島), 백학도(白鶴島)라 불렸는데 섬의 모습이 흡사 학의 깃털(翎)처럼 생겼다고 하여 백령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곡도(鵠島)-고니섬, 백학도(白鶴島)-백학의 섬>
백령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구로 두무진(頭武津)을 꼽는데 이곳 지명은 예전에는 머리카락이 우뚝 선 것 같다고 하여 두모진(頭毛津)이라 불렀는데 나중 장군의 머리와 닮았다고 하여 두무진(頭武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백령도의 서북쪽으로 삐죽이 내민 두무진 근해(近海)는 특히 낚시의 명소로 꼽히는데 바로 지척(咫尺)이 북한의 장산곶(長山串)과 몽금포(夢金浦)라 눈을 들어 바라보면 북녘의 산들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바로 앞이 북방한계선인 NLL(Northern Limit Line)로 해경선(海警船)이 항상 떠 있고 그 인근 바깥쪽으로는 중국 어선들이 항상 새까맣게 몰려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중국 어선들은 온통 검은색이다.
고려 말, 이곳을 다녀간 충신 이대기(李大期)는 두무진의 기암괴석군(奇巖怪石群)을 보고 ‘늙은 신의 마지막 걸작품’이라 감탄했다고 하는 절경(絶境)이다. 이대기는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도와주다가 연루되어 나이 70에 백령도로 귀양을 와서 4년간 이곳에서 유배(流配)하였다는 인물이다.
백령도에는 백령중∙고등학교, 백령(白翎)초등학교, 북포(北浦)초등학교의 3개교가 있는데 나의 초임(初任) 교장(校長) 발령지가 북포초등학교로, 백령도에서 1년 반을 근무했었던 나는 이곳에 대해서 비교적 속속들이 알고 있어 기록으로 남겨본다. 예전에는 백령도에 남포(南浦)초등학교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백령도 남동쪽은 만(灣)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바다였던 곳인데 입구 쪽을 건너막아 담수호(淡水湖) 백령호수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이곳 부근이 사곶(沙串)인데 백사장이 단단해서 한국전쟁(6.25) 때 비행기 활주로로도 이용되었고 자동차도 달릴 수 있어서 사곶(沙串) 천연비행장으로 불리던 곳인데 호수를 만드는 바람에 파도의 영향으로 모래가 물러져서 비행기의 착륙은 물론 자동차도 다니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백령호수가 생긴 후 인근에 논도 많이 들어서게 되었고 관개수로(灌漑水路)도 축조되어 백령도는 고기 잡는 어항(漁港)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농산물의 수확량도 많아져서 생활이 나아졌다고 한다.
백령 호수에서는 낚시가 매우 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