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4. 토 08:00-11:30
은파-월명산-장항 30km
매년 장마는 라이딩의 발목을 잡는다. 올해는 예년보다 늦게,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기세였지만, 인근 코스이니 비를 맞더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은파
은파 수변로를 지나는데 연꽃이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다. 예전에 "꽃길만 걷자"라는 말에 꽂혀 연꽃지를 중간 지점 삼아 꽃구경하고, 힘든 임도를 거쳐 돌아와도 피로가 한결 가볍게 느껴지곤 했다. 연꽃 라이딩을 할까, 고민하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은은한 연꽃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먹구름의 고민을 잠시 잊게 해준다. 연꽃은 오전에는 활짝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꽃잎이 닫히거나 시들어 버린다. 아침을 사랑하는 연꽃은 부지런한 자들을 위한 꽃인 것 같다. 산책 나온 보행자들을 위해 얼른 또 다른 싱글 길로 피신해야겠다.
월명산
부곡산 업힐 구간의 성공률은 딱 반타작이다. 힘이 넘친다고 건방지게 페달을 밟았다간 중턱에서 다리가 먼저 항복 선언을 하고, 그렇다고 너무 얌전 떨며 살살 올라가면 이번엔 관성이 배신을 때린다. 결국 답은 하나다. 숨을 고르며 이 빡센 길 앞에 겸허해지는 것. 노 젓는 뱃사공처럼 지긋이, 우직하게 나아가야 겨우 반타작이라도 건진다. 물론 배째하며 끌바로 올라갈 수 있다.
알바
부곡산 정상에서 평소 다니던 코스 대신 왼쪽 길로 처음 들어섰다. 결과적으로는 알바였지만, 덕분에 안 가본 구간 하나를 개척(?)한 셈 치기로 했다. 다시 주 경로로 복귀하기 위해 동아아파트까지 허탈한 마음을 페달에 실어 내달렸다.
라이딩이 끝나갈 무렵에는 한 번 더 알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곡산 정상으로 가야 하는데 어느새 군경합동묘지 쪽으로 내려와 있었던 것. 자주 오는 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초행길도 아닌데, 잠깐의 방심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오늘 하루에만 알바를 두 번이나 적립하고 나니, 월명산은 구석구석 다시 공부해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점방산 전망대는 패스하고, 땀도 식히고 간식도 생각나서 장항으로 고!
왕자다방
노포. 사전적으로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뜻한다. 쉽게 말해 오래된 가게다.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신문이나 잡지에 관광지 소개 글이 보이면, 혹시 다음 라이딩에 쓸모가 있을까 싶어 메모하거나 기억해두는 습관이 있다.
장항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장항6080맛나로”라는 음식 특화거리가 있다. 1960~8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노포들이 옛 간판과 메뉴로 손님을 맞이한다고 한다. 주방을 물려받은 손길이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자녀로 바뀌었어도 "맛은 그대로"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건 다방이었다. 단돈 2,000원에 콩물과 깨죽, 달걀 프라이, 모닝커피까지 한 상 차려주는 곳.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풍경을 직접 보겠다는 일념으로 왕자다방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잔뜩 기대를 안고 허름한 문을 여니 '딸랑' 워낭소리가 손님 대신 나를 맞았다. 두 평 남짓한 가게는 반은 개방형 주방인지 그냥 싱크대인지 모를 공간이었고, 반대쪽 테이블 위 컴퓨터에는 온라인 게임 하나가 정지 화면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작 주인은 보이지 않고, 퀴퀴한 담배 연기만 자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콩물도 깨죽도 만나지 못한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건너편 김밥집 사장님께 사정을 여쭤보니, 왕자다방은 이미 작년 10월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2,000원짜리 영화 같은 풍경은, 아쉽게도 스크린 속에만 남게 되었다.
후기를 쓰려고 지도를 뒤적이다 보니, 모닝커피세트를 파는 다방이 장항에 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닐다방, 금희다방. 왕자다방은 놓쳤지만, 다음번엔 이 중 한 곳에서 꼭 그 전설의 모닝커피세트를 맛보고 와야겠다.
라이딩을 마칠 무렵, 길목의 편백숲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신록 사이로 퍼지는 청아한 소리에 마음이 절로 놓인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홀딱벗고"를 외쳐대는 검은등뻐꾸기의 유혹도 들려오지만, 오늘만큼은 그 유혹보다 내 정서가 한 수 위인 듯했다. 알바도 두 번이나 하고, 낯선 초행길에서 헤매고, 그토록 기대했던 모닝커피세트도 결국 맛보지 못한 채 돌아서는 길. 허전한 마음을 편백숲이 조용히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첫댓글 모닝커피셋트를 같이 마시라고
왕자다방(임피에도 왕자다방이 있었는데 ㅎ) 문 닫았나보네요^^
편백나무숲이 여유로워 보여요~
수고하셨습니다
모닝커피세트 쏘겠습니다!!!